신라 사선(四仙)이 놀던 옛터인 경포대에서 옛 선현들의 글과 시(詩)를 만나본다.
조선 헌종 때 한성부 판윤을 지낸 이익회(李翊會)가 쓴 현판 글씨와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의 필체라는 제일강산(第一江山) 편액,
숙종임금의 친서인 어제시, 그리고 율곡 이이(李珥)가 10세때 지었다는
경포대부(鏡浦臺賦), 강릉부사 조하망이 지은 송경포대(시)와 상량문 등을 ...
조선후기 문신이며 서예가인 유한지(兪漢芝)가 쓴 전서체(篆書體)의 경포대 현판
조선 후기 문인 이익회(李翊會)가 쓴 해서체 현판
제일강산(第一江山)은 서거정이 강릉경치가 천하에서 제일이라 한데서 따온 말이며
글씨중 "강산"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의 필체라 전해지고 있는데.
"강산"은 본래 글씨이고 "제일"은 잃어버려 후대에 누군가가 써넣었다고 한다.
*이 숙종 어제시는 숙종이 직접 경포대에 내려오지는 않았고
김홍도에게 경포대의 실경을 그려오게하여 그 그림을 보고 지은시라 전한다.
숙종(肅宗)의 어제시(御製詩)
汀河蘭岸芷繞選(정난안지요서동) 난초 지초 가지런히 동서로 둘러섰고
十里煙霞映水中(십리연하영수중) 십리호수 물안개는 수중에도 비치네.
朝曀夕陰千萬像( 조에석음천만상) 아침햇살 저녁노을 천 만가지 형상인데
臨風把酒興無窮(임풍파주흥무궁) 바람결에 잔을드니 흥겨웁기 그지없네.
세조가 경포대에서 지은시(편액은 없음)
속세는 간데 없이 온갖 선경이라나
오느니 서경시요 들리느니 노래라.
바다에는 갈매기 호수에는 철새들이 쌍쌍이 날고
천병만마 늘어선 송림 사이로 거니는 선남선녀의 모습이 그림 같구나.
이 부(賦)는 율곡이 겨우 10세때인 1545년(명종 즉위)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기운(一氣)의 유통하는 조화가 맺히기도 하고 녹기도 해서,
그 신비함을 해외(海外)에 벌여 놓아, 청숙(淸淑)함을 산동(山東)에 모았도다.
맑은 물결은 천지(天池)에서 나뉘어 한 개의 차가운 거울처럼 맑고,
왼편 다리를 봉도(蓬島)에 잃어버려 두어 점의 푸른 봉우리가 나열했네.
여기에 한 누각이 호수에 임하여, 마치 발돋움 자세로 날을 듯하다.
비단 창문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아침 햇빛은 푸른 하늘에서 비춰주네.
아래로는 땅이 아득해 성곽(城郭)을 보고서야 겨우 분별하게 되고,
위로는 하늘에 솟아 있어 별을 잡아 어루만질 성싶다.
경계는 속세 바깥이요, 땅은 호중(壺中)에 들어 있어라.
물결엔 두루미 등위의 달이 잠겨 있고, 난간은 뱃머리의 바람을 받아들이네.
길가는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면 긴 무지개가 물 속에 박힌 것처럼 보이고,
신선 궁궐이 구름결에 솟으니 흡사 신기루(蜃氣樓)가 허공에 뜬 것 같구나.
-중략-
그러나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 자신을 사사로이 하지 않고,
혹시 풍운(風雲)의 기회를 만난다면 마땅히 사직(社稷)의 신하가 되어야 하리.
융중(隆中)의 와룡(臥龍)이 비록 문달(聞達)을 구한 선비가 아니었으며,
위천(渭川)의 어부(漁父)가 어찌 세상을 잊어버린 사람이었겠는가?
아! 인생은 바람 앞 등불처럼 짧은 백년이고, 신체는 넓은 바다의 한 좁쌀이라네.
여름 벌레가 얼음을 의심하는 것이 가소롭고,
달인(達人)도 고독(孤獨)을 당할 때가 있음을 생각하네.
풍경(風景)을 찾아서 천지를 집으로 삼을 것이지,
하필이면 중선(仲宣)이 부질없이 고국 그리워함을 본받으랴?
송경포대(頌鏡浦臺) -서주(西州) 조하망(曺夏望)-
열두 난간 사이로 옥통소 소리 드려오고 / 십이주란벽옥소(十二朱欄碧玉簫)
맑은 가을 옥나무에선 향기가 나부끼네. / 추청기수암향표(秋晴琪樹暗香飄)
천년세월 진시황의 불로초 이야기 아득하고 / 천년해활진동원(千年海闊秦童遠)
월나라 미인 노랫소리 교태롭게 들리는 듯. / 일곡호명월녀교(一曲湖明越女嬌)
풀 향기 그윽한 계절 해가 떨어지면 / 방초가기당락일(芳草佳期當落日)
그리는 사람 오늘밤엔 꿈에서 보이겠지. / 미인귀몽격층소(美人歸夢隔層宵)
늙은 어부 영주곡이 끝나지 않았는데 / 어옹유창영주곡(漁翁猶唱瀛州曲)
조각배는 강문교 엤 다리를 지나고 있네. / 선과강문구판교(船過江門舊板橋)
이 상량문 편액은 조하망(曺夏望)이 1742년(영조 18) 강릉부사로 부임하여
경포대(鏡逋臺)를 중수(重修)하고 상량문(上樑文)을 지었는데 명문장으로 격찬을 받았다
*조하망(曺夏望,1682,숙종8∼1747,영조23)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아중(雅仲),
호는 서주(西州), 본관은 창녕으로 조한영(曺漢英)의 손자로, 현령 조헌주(曺憲周)의 아들이다.
여주향교 출신으로 1711년(숙종 37) 진사가 되고 좌랑과 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장원한 후 판결사를 거쳐 1742년(영조 18) 강릉부사로 부임하여
경포대(鏡逋臺)를 중수(重修)하고 상량문(上樑文)을 지었는데 명문장으로 격찬을 받았다.
1746년(영조 22) 영월부사로 전임했다가 병으로 사퇴했다.
의령현령 때에 백성들이 세운 송덕비(頌德碑)가 전하고 있다.
경사(經史)에 밝고 시부(詩賦)가 뛰어났으며 술을 즐겼다.
묘는 묘는 경기도 여주시 송촌3리 작은송구터마을의 북서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아래에는 아들인 조명준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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