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당 송준길(宋浚吉)고택이 있는 대전 대덕구 송촌동일원은
동춘당역사공원으로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공원안의 동춘당(同春堂) 건물은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宋浚吉)이
자신의 호인 동춘당(同春堂)을 따서 건축한 별당으로, 보물 제209호이다.
이 별당 뒤에는 송준길의 고택인 사랑채와 안채· 사당 등이 독립된 건물로
건축되어 있으며,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이다.
동춘당 송준길(宋浚吉,1606~1672)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유학자·성리학자·정치가로서
유교 주자학의 대가였으며, 문묘나 각 향교에 종사된 우리나라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한성(서울) 정릉동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대전 회덕 송촌으로 아버지를 따라 내려왔다.
김장생, 김집의 문하생이며, 우암 송시열과는 친척이자 친구였고, 우복 정경세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1624년(인조 2년) 증광과 생원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그해의 진사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에도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을 계속 연구하였다.
그 뒤 학행으로 천거받아 1630년(인조 8년) 세자익위사세마(洗馬)에 제수된 이후
효종이 즉위할 때까지 여러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대부분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단지 잠깐 동몽교관직에 나갔다가 장인인 정경세의 죽음을 이유로 사퇴하였고,
그 뒤 대군사부로 봉림대군, 인평대군을 가르치는 사부의 한사람이 되었다.
1649년(인조 25년) 스승 김집이 이조판서로 기용되면서 송시열과 함께
송준길도 발탁되어 부사직(副司直)이 되었다. 이후 부사직· 진선(進善)·
장령 등을 거쳐 집의에 올랐고 통정대부로 품계가 올랐다.
1658년(효종 9년)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 겸 성균관좨주(종3품)를 거쳤다.
1659년 병조판서· 지중추원사· 우참찬에 임명되어 송시열과 함께 효종의 측근에서
국정을 보필했으며, 이후 여러관직을 거쳐 정헌대부 이조판서 겸 성균관제주가 되었다.
이후 그는 학문을 가르쳤고, 그의 문하에서 민유중, 황세정, 남구만 등을 배출했으며,
제자 중 민유중을 그의 사위로 삼았는데, 후에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이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가 되며, 곧 민진원, 민진후를 낳은 생모이다.
한편 어머니 광산김씨는 김은휘(金殷輝)의 딸로, 사계 김장생과는 사촌 남매간이며,
김은휘는 노비로 환천될 뻔한 송익필, 송한필 형제의 일가족을 보살피기도 했었다.
송준길은 예학에 밝았고 문장과 글씨에 능했는데,
특히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당대의 많은 비갈문(碑碣文)을 짓고 썼다.
그는 이이(李珥) 이후 김장생·김집 등 기호학파의 학맥을 계승하면서
초년에는 율곡계 명필 석봉(石峯) 한호(韓濩)의 글씨를 익혔고,
뒤에는 영남학파 학자였던 장인 정경세를 통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문뿐 아니라 글씨까지 수용하였다.
이 건물은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가 1674년 분가할 때 지은 건물을
그의 아들(송준길의 증손자)인 소대헌 송요화가 1714년에 현 위치로 옮겨 지은것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90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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