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금호재는 이장곤을 배향한 서원과 사당, 재실 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금호재(琴湖齋)와 금호서원(琴湖書院)은 같은 건물이고,
사당인 제의묘(制義廟)는 별도의 건물로 창녕 대합면 대동리 265에 있으며
바로 뒤 야산에 있는 이장곤의 묘역은 대동리 산6 이다.
금헌 이장곤(琴軒 李長坤, 1474~?)의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자는 희강(希剛), 호는 학고(鶴皐)· 금헌(琴軒)· 금재(琴齋)· 우만(寓灣)이다.
금호재(琴湖齋) 겸 금호서원(琴湖書院)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2호)
이장곤은 이신지(李愼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흥해군사(知興海郡事) 이호겸(李好謙)이다.
아버지는 참군(參軍) 이승언(李承彦)이며, 어머니는 이조참판 이래(李徠)의 딸이다.
조광조, 김안국, 성세창 등 쟁쟁한 이들과 함께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신지(李愼之)는 조우희(曺遇禧)의 손녀사위가 되며, 즉 조익수(曺益修)의 사위이다.
금호재 겸 금호서원의 출입문인 유정문(由正門)과 건물
1492년(성종 23) 유자광(柳子光)에 의해 유장(儒將)의 적격자로 천거된 적이 있으며,
1495년(연산군 1)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502년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04년 교리로서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이듬 해 거제도에 유배되었는데.
이 때 연산군이 무예와 용맹이 있는 이장곤이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해
서울에 잡아올려 처형하려 하자, 이를 눈치채고 함흥으로 달아나
양수척(楊水尺,버드나무로 고리를 민들어 파는 천민)의 무리에 발을 붙이고 숨어 살았다.
금호서원(금호재)
중종반정으로 자유의 몸이 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1508년(중종 3) 박원종(朴元宗)의 추천으로 다시 기용되어 홍문관부교리·
교리· 사헌부장령을 거쳐 이듬 해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어 평안도병마절도사가 되었고, 1513년 이조참판이 되고,
1514년에 예조참판으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금호재 강당
1515년 대사헌이 되고, 이듬 해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북쪽 변경의 일을 잘 안다 하여 곧 함경도관찰사로 교체되었다.
1518년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고, 이듬 해 우찬성으로
원자보양관(元子輔養官)이 되고 병조판서를 겸임하였다.
제의묘(制義廟) 금헌 이장곤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
기묘사화 때 조광조 등을 심문했으나 조광조일파의 처형(사사)에는 반대하다가
결국 삭탈관직 당하였으며, 그 뒤 1520년에 병을 핑계로 체직해 은퇴하고
1522년 복관되었으나 사양하고 경기도 여강(지금의 여주)과 경상도 창녕에서
은거하다가 별세했는데, 일부자료는 1519년 사망이라 되어있으나
앞뒤가 맞지 않으며 적어도 복관된 1522년 이 후 사망한것으로 보인다.
저서로는 금헌집(琴軒集)이 있으며, 시호는 정도(貞度)이다.
사당 내부에 봉안된 이장곤의 위패
금호재앞 대동저수지
대동지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계곡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이장곤의 묘역이 나온다
멀리 보이는 이장곤의 묘와 묘역
2.금헌 이장곤 묘역
금헌 이장곤 묘역 맨 앞의 비가 이장곤의 묘도비(신도비)이고,
그 뒤 묘는 첩에서 정경부인이 된 중화 양씨의 묘이며,
제일 위에 보이는 쌍분이 금헌 이장곤의 부부묘이다.
이장곤의 묘 뒤에 제주 하르방을 닮은 한쌍의 특이한 석상이 있고,
그 뒤에 이장곤 형의 묘로 추정하는 2기의 묘가 있다.
또 그 뒤에는 조선조 초기로 추정되는 정방형의 석분 1기가 있다.
금헌 이장곤의 묘도비
이 묘도비(墓道碑)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9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단 가로로 쓴 전서는 "금헌이선생묘도비(琴軒李先生墓道碑)"이다.
본문 세로로 쓴 비문의 제목은 "유명조선국우찬성금헌이공묘비명
(有明朝鮮國右贊成琴軒李公墓碑銘)"으로 되어 있다.
이 비문은 1781년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이 지었고,
당시 성주목사였던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이 글을 썼다.
이상정은 조선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
아버지는 이태화(李泰和)이며, 어머니는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조윤형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치행(穉行), 호는 송하옹(松下翁).
할아버지는 판결사 조하기(曺夏奇)이며, 아버지는 개성부유수 조명교(曺命敎)이다.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수원 화성과 행궁 등의 편액에 글씨를 남긴 명필로
자하 신 위(申 緯)가 그의 사위이다.
이 비문 말미에는
숭정기원후삼 계묘 육월 일입(崇禎紀元後三 癸卯 六月 日立)이라 새겨져 있어,
이는 1781년에 이상정이 글을 지은 2년 후인 1783년 6월에 비를 세운것이 된다.
앞에 있는 정경부인 중화양씨묘(貞敬夫人 中和楊氏墓)이다.
이 묘는 이장곤이 거제도에 유배 중일 때 탈출하여 천신만고 끝에 함흥에 이른다.
교리 이장곤은 어느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 버들잎을 띄운 물을 얻어 마신다.
이 여인이 양주삼의 딸인데, 소나 돼지같은 가축을 잡는 일을 하는 백정으로써
주로 버드나무를 엮어서 바구니를 만들어 팔아 생활하는 고리백정 집안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이장곤은 그 집에 눌러앉아 살게되며, 18살난 딸 봉단을
아내로 맞게 되는데, 그래서 고리백정 양주삼의 사위가 된것이다.
장인이 된 양주삼의 처질(妻姪)이 임돌이고 임돌이의 아들이 바로 임꺽정이다.
즉 임꺽정은 봉단의 외조카인바 바로 이장곤의 (후)처 외조카가 된다.
중화양씨 묘비(정경부인 중화양씨지묘, 서기 2001년 자좌,子坐)
그러던 중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이장곤은 사면되어 상경 후, 임금을 알현하니
임금이 그간의 행적을 묻자 사실대로 아뢰었으며, 중종은 이장곤의 처가를
면천(免賤, 천민을 면함)시켜 주고 지혜롭고 기특한 버들부인을 가상하게 여겨
가마를 보내 한양으로 불러 올렸으며, 후처의 첩지까지 내려 주었다.
이 묘가 바로 고리백정 양주삼의 딸로써 정경부인이 된 봉단이의 무덤이다.
금헌 이장곤 부부의 묘(쌍분)
이장곤의 묘비
숭정대부 의정부우찬성 겸 병조판서 지경연사판의금부사 이공양위지묘
(崇政大夫 議政府右贊成 兼 兵曹判書 知經筵事判義禁府事 李公兩位之墓)
가정14년(1535년) 을미5월 일(嘉靖 十四年 乙未 五月 日)
망주석
다음은 이장곤이 여주에 있을 때 아우와 이별하며 지은시다.
바다를 건너가는 아우와 이별하며(送別渡海弟)
여주(驪州) 여강(驪江) 강가 우만(祐灣)에서 이장곤(李長坤,1474~?)
태어나서 이 세상에 함께 사니 어찌 다행스럽지 않으랴 생동일세녕비행(生同一世寧非幸)
게다가 나는 자네와 한 몸에서 나누어진 사람인데 황아어군일체분(況我於君一體分)
백발가를 큰소리로 부르며 지는 해를 바라보니 백발고가간낙경(白髮高歌看落景)
망망한 넓은 바다에는 칼자국도 남지 않는 듯하네. 망망창해검무흔(茫茫滄海劒無痕)
이장곤 묘 뒤의 석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6호)
이장곤의 묘 뒤에는 좌우에 한쌍의 석상이 있는데 들고있는 물건이 매우 특이하다.
보통 문인석은 홀을, 무인석은 칼을 들고 있는데, 이 석상은 철퇴같은 것을 들고있다.
이러한 모습의 석상은 창녕 유어면 부곡리 130에 있는
이장곤의 부(父) 이성언의 묘 석상과도 거의 같다.
이장곤의 묘와 형으로 추정하는 묘 중간지점에 세워져 있는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장곤이 사망하기전 형의 묘에 세워진 석상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이장곤 중형의 묘로 추정하고 있는 석상뒤에 있는 묘
이장곤 중형의 묘로 추정한다는 2기의 묘 뒤에 있는 방형의 석분
(이 석분은 이장곤 증조부 이신지(李愼之)의 장모인 성산이씨묘로 추정)
묘등에서 보는 묘역과 안산
묘역 입구 멀리에서 보는 이장곤의 묘
3.이장곤의 부 동원 이성언 묘와 석상 그리고 재실인 부곡재(釜谷齋)
금헌 이장곤의 부(父) 동원 이성언(東園 (李承彦)의 묘는
창녕 유어면 부곡리 130에 있으며, 이장곤의 묘에 있는 석상과 거의 같은 석상이 서있다.
묘 입구에는 부곡재가 있고 이성언의 신도비도 있다.
동원 이성언의 묘
석비
이 석비는 오래되고 글자가 부식되어 잘 보이지 않으므로
어 묘 중간에 새로운 석비를 세운것으로 보인다.
증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충강공동원이선생지묘
배정경부인 완산이씨 부
이성언 묘앞의 좌우 석상
이장곤묘역(좌)과 이성언묘역(우)의 석상 비교
이장곤의 묘뒤에 있는 좌측의 석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6호이다.
이장곤의 부 이성언의 묘앞에 서있는 우측 석상은 높이가 조금 더 높고
세운 시기도 조금 더 오래된것 같긴하나 각각의 특징이 있어
전문가들이 정밀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
묘 아래 부곡재(釜谷齋)
동원 이성언의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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