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대구.경북권

퇴계 이황선생이 절경에 심취한 소백산 죽계구곡

by 안천 조각환 2022. 5. 28.

죽계구곡이 있는 죽계(竹溪)는 소백산 국망봉에서 발원하여 초암계곡을 흘러

소수서원이 있는 백운동을 지나 영주 서천으로 이어지는 냇물을 말한다.

고려말 안축(安軸,1287~1348)은 죽계별곡을 통해 자연을 즐기며

학문을 숭상하는 고향사람들의 수려한 모습을 자랑하였다.

 

죽계구곡 탐방길의 소백산 국립공원

 

우리나라의 구곡은 송나라의 주희(朱熹,1130~1200,성리학 시조 주자)가

명명한 무이구곡에서 연유하는데, 조선의 유학자들은 

소수서원과 죽계구곡이 있는 이곳을 성리학의 성지로 생각하고,

평생 한번은 꼭 걸어보고자 했던 선비들의 순례길 이었으며,

그래서 오는 사람마다 계곡을 예찬하는 많은 시들을 남기기도 했다.

 

죽계구곡 표석

 

퇴계 이황선생은 계곡의 절경에 심취하여 물 흐르는 소리가

노래소리 같다하여 절경마다 걸맞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소수서원 앞의 취한대를 1곡으로 하고 거슬러 올라가며 구곡을 이름지었다.

그 뒤 순흥부사 신필하는 초암사 바로 위 금당반석을 제1곡으로 하고

다른 구곡과는 달리 물이 흐르는 방향인 상류에서 하류로 따라 내려오면서

순서를 정하였는데, 현재 죽계구곡은 신필하가 정한 구곡이다.

오늘은 표석이 있는 이곳부터 시작하여 제9곡을 지나 1곡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9곡 이화동(梨花洞)

 

이화동은 옥녀봉(玉女峰)과 이자산(二子山) 사이로 흐르는 죽계구곡을 말하며

이화동 아래 깊은 물을 용소라 부르기도 하였다 하며,

이화동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배꽃이 많았기 때문이라 한다.

지금은 제9곡 바로위로 다리가 놓인데다 주변에 축대와 집들이 지어지고  

봄가뭄이 심해 수량까지 적어 그 모습들을 상상하기 어렵다.

 

깊은 봄 새 생명이 기지개를 펴는 들녘

이화동 이름 석 자 전해지는 먼먼 세월

가득히 열매 익는 날 이름 다시 얻으리라.

 

제9곡을 뒤로 하고 다시 한참을 상류쪽으로 올라간다

 

사과밭 옆길을 지나 계곡 건너 탐방길로 접어든다

 

큰 바위 밑을 지나서

 

예쁜 다리도 건너고

 

출발지점에서 1,4km를 올라와서 다시 6,7,8곡이 있는 탐방로로 향한다

 

6,7,8곡으로 가는 탐방로 입구

 

이 다리를 건너 조금 더가면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아름다운 계곡옆 탐방길에 사가 서거정의 소백산 시판이 있다

 

소백산(小白山)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1420~1488)

 

소백산이 아득하게 태백산에 이어져 있는데

백리나 구불구불 뻗어와 구름사이에 솟았네.

분명하게 동남쪽의 경계를 모두 갈라놓으니

천지 자연이 만든 비밀을 귀신이 깨뜨렸구나.

 

小白山連太白山 (소백산연태백산)  

透迤百里揷雲間 (투이백리삽운간)

分明畫盡東南界 (분명획진동남계)

地設天成鬼破慳 (지설천성귀파간)

 

제8곡 관란대(觀瀾臺) 란

 

서거정의 시판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물결을 바라보는 곳이란 관란대가 나온다.

"물을 보는데는 방법이 있나니 반드시 그 여울목을 보아야 하느니라."

맹자(孟子)의 진심장구(盡心章句) 상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리고 그 주해에 관수지란(觀水之瀾) 즉지기원지유본의(則知其源之有本矣)

"즉 물의 여울목을 보면 곧 그에 근본이 있음을 알게 되니라"라고 풀이한다.

 

이곳에는 금계 황준량(金溪 黃俊良,1517~1563)의

"서 죽계팔경 후(西竹溪八景後)"라는 시판이 있다

 

소백산 원기 여기에 뿌리박아 서려있으니

많고 적은 명승구역 골짜기 어귀에 산재하네.

흐르는 물에 떠가는 도화 탈없이 있는가?

장풍 타고 신선의 근원 방문 하고자 하네.

 

제7곡 탁영담(濯纓潭),

 

탁영담은 초나라의 굴원이 지은 어보사(漁父辭)의

구절 중에서 인용한 글이다.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건을 씻을 수 있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을 수 있으리라."

 

제6곡 목욕담(沐浴潭)

 

목욕담은 소(沼)의 아래 위가 숲으로 가려져 있어

선녀가 내려와 몰래 몸을 씻고 갔을법한 곳이다

 

목욕담(沐浴潭)

 

담재 강구률(澹齋 姜求律, 동양대 교수)

 

小白山中沐浴潭(소백산중목욕담)  /  소백산중 자리잡고 있는 목욕담은

冷冷活水作槽藍(냉냉활수작조림)  /  맑게 흐르는 활수가 구유를 지어 쪽빛이네.

世人多貴除身垢(세인다귀제신구)  / 세상 사람 많이들 몸의 때 없애는 것 귀히 여귀나

我愛洗心無一慙(아애세심무일첨)  / 마음 씻어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나는 사랑하네.

 

산 벗꽃 고운 영자 목욕담에 비추이는 날

밤 깊어 별이 내려 오순도순 목욕할 때 

귀촉도 구슬픈 울음 서산마루 달이 진다.

 

제5곡 청련동애(靑蓮東崖)

 

청려동애는 청련암 동쪽 낭떠러지라는 뜻인데

서쪽 어딘가에 있을 청련암(靑蓮庵)은 찾을길 없고

안간교(安干橋) 다릿발을 세웠던 흔적인양 바위위에 머리만한 홈만 보인다.

안간교 건너 동쪽 낭떠러지로 물만 흘러 내린다.

 

안간교 다릿발을 세웠을 구멍파인 돌자국

 

다시 길을 거슬러 올라 초암 탐방지원센터와 쉼터를 지나면 

제4곡인 용추비폭을 만날 수 있다

 

제4곡 용추비폭(龍湫飛瀑)

 

용추(龍湫)는 죽계구곡 중 소(沼)가 가장 깊은 곳이다.

아래 위로 반석이 편편히 깔리고 좌우편 깍아 지른듯한 암각 가운데로

급한 여울이 성 낸듯 달리다가 쏟아져 드리워 비폭(飛瀑)이 되었다.

밑에는 검푸른 물굽이가 소용돌이치는 깊은 못을 이루고,

큰 바위가 못 가운데 누워 마치 용이

꿈틀꿈틀 구름비를 뿜는듯 하다 하여 용추라 불린다.

 

순흥사람들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살아있는 돼지를

이곳에서 목을베어 돼지머리를 용추 깊은곳에 던져 넣으면

소의 물이 끊어 오르듯 핏물이 솟구친다고 하는데, 용은 신성한

처소의 핏물을 씻어내고자 곧 비를 내리게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제3곡 척수대(滌愁臺)

 

천고의 세월동안 흐르는 물은 3곡에서 좌우로 부딪치며

돌부리마저 말끔하게 씻어내게 되는데, 이와같이 3곡을 찾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온갖 근심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제3곡을 둘러보고 죽계1교를 건너 

 

죽계천(竹溪川) 비경 저 안쪽으로 제2곡이 나타난다 

 

제2곡 청운대(靑雲臺)

 

주세붕은 소백산 흰 구름이 비치는 곳이라고 백운대(白雲臺)라 하였고

이황은 소수서원의 백운동과 구분할 수 있도록 청운대(靑雲臺)로 바꾸었다고 한다.

부딪쳐 휘감아 흐르는 물길속에 우뚝 서 자신의 존재를 지켜나가는 

바위 앞에서, 스스로 청운의 꿈을 키운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제2곡의 절경

 

2곡을 보고 나오면  바로 앞이 초암사다.

 

초암사 수조

 

초암사 대적광전

 

초암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호국사찰을 세우고자 산수좋은

이곳에 초막을 지어 임시 거처를 정하고 명당자리를 골라 부석사를 세운 뒤

초막을 지었던 곳에 절을 지어 초암사라 했다고 전해진다.

제1곡은 초암사를 지나 국망봉가는 탐방로입구를 지나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인근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수서원과 부석사가 있다.

 

제1곡은 이곳 초암사 위 국망봉 가는길 입구를 지나서 있다

 

드디어 제1곡이 나타났다

 

제1곡 금당반석(金堂盤石)

 

금당(金堂)은 절에서 본존 즉 석가모니불을 모셔두는 건물이나 

크고 화려한 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듯이 죽계구곡중에서 가장 핵심인 곳이 바로 금당반석(金堂盤石)이다.

화강암 너럭바위도 일품이지만 그 위로 흐르는 맑은 물길은

마치 거울같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준다.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부석사를 구상했듯이 새로운 계획은

금당반석 맑은 물에서 자신의 구상을 살펴 보아야 한다.

 

제1곡 까지의 탐방을 마치고 울창한 숲길을 지나 다시 내려온다

 

죽계구곡의 수줍은듯 함박꽃

 

백당나무꽃

 

참조팝나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