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대구.경북권

정감록의 십승지를 찾아서 ~ 1)예천 금당실마을

by 안천 조각환 2022. 5. 28.

예천 금당실 마을은 정감록의 십승지중 다섯번째로 꼽히는 곳으로,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으나 한강과 같은 큰 냇물이 없어

아쉬워 했다는 전설이 전해 지고 있는 마을이다.

금당실은 물에 떠있는 연꽃을 닮았다 하여 금당이란 이름이 붙여 졌다고 하며,

마을 주변에 고인돌 등이 산재해 있을만큼 오래된 마을이다.

 

마을앞 10승지 표지석

 

기록상으로는 15세기 초엽에 감천문씨인 문헌이 이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의 손자사위인 박종린과 변응녕 등이 이 마을에 살게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재는 감천 문씨의 자취는 거의 없고, 함양박씨, 원주변씨, 그 외 타성씨가 살고 있다.

금당실 마을에는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저택 터를 비롯하여, 사괴당 고택,

조선 숙종때 도승지인 김빈을 추모하는 반송재 고택 등이 많이 남아 있고,

초간 권문해의 유적인 종택과 초간정, 금곡서원, 추원재와

고택 사이를 미로처럼 이어주는 돌담길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금당실 서북쪽에는 천연기념물 제469호인 소나무 숲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정감록(미상), 송하비결(송하노인), 격암유록(남사고) 등

 3대 예언서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그 중 정감록에 있는 10승지란 3대 재난인

전쟁,흉년,전염병이 들어 올 수 없는 땅의 기운이 좋고 청정하고 안전한 지역을

말하는데, 아래의 10승지 중 예천 금당실 마을은 4번째이다.

 

1.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원(금계촌 일대) : 소백산 아래

2.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원(춘양마을 일대) : 문수산 아래

3.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 화남면 일원(난중항 일대) : 속리산 아래

4. 경북 예천군 용궁면 (용궁당동 북쪽 금당실 마을) : 학가산 아래

5.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동정촌 부근) : 지리산 아래

6.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마곡사 주변) : 계룡산 아래

7. 강원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거운리 일대) : 마대산 아래

8.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북쪽 골짜기)  : 덕유산 아래

9.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호암아래, 개암사 부근) : 변산 아래

10. 경남 합천군 가야면 일대(만수동 골짜기) : 가야산 아래

 

마을 안 용문면사무소 입구의 용도천문(龍跳天門) 표석

 

용도천문(龍跳天門)이란 용이 하늘 문에서 뛰어 논다는 뜻이다.

 

마을입구

 

사괴당 고택 담장

 

사괴당 고택(四塊堂 古宅) 


사괴당고택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지은 집이다.

마을 입향조인 귀계 변희리(歸溪 邊希李)의 증손 변응녕(邊應寧,1518~1596)

처음 터를 잡은 곳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7호 이다.

당시 그는 집 앞에 큰 연못을 만들고 근처에 네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어

사괴당이라는 이름이 유래 하였는데, 현재 연못 자리는 면사무소가 들어서 있으며,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한 그루만이 남아 있다. 

 

우천재 대문

 

우천재(愚泉齋)

 

우천재의 망와 명문에는 강희24년(康熙, 1681년) 신유(辛酉) 4월 문인 김중원(金中元)

최종산(崔鐘山) 경신하조(庚申夏造) 기미하조(己未夏造) 라고 기재되어 있어

이 후 수차례 개수를 하여 1,870년에 현재의 건물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광서당 대문채

 

광서당 사랑채

 

광서당 안채

 

반송재 고택 대문채

 

반송재는 조선숙종 때 도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낸 갈천 김빈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살던 집이다.

 

반송재 고택 우물

 

반송재 사랑채

 

반송재 고택은 조선시대 문신 갈천(葛川) 김빈(金賓,1621~1694)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1680년(숙종 6)에 지었다.

210여년뒤 구한말 대신 이유인이 99칸 대저택을 지으려고 2,000여평의

대지를 매입할 때 그 땅에 있던 갈천고택도 함께 사들였으며, 갈천고택은

1899년(고종 36)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어 이유인의 동생 이유직이 살았다.

 

반송재 안채

 

그 뒤 김빈의 아우 반송헌 김정의 10대 주손인 김환명(金煥明)이

1940년에 되찾아 반송헌의 종가로 삼으면서 반송재로 이름 붙였다.

 

안채 옆 감자밭

 

이 감자밭 담너머가 구한말 양주목사를 지낸 이유인의 99칸 집이 있던곳이다.

이유인(李裕寅) 대한제국의 한성부 판윤, 시종원경, 중추원부의장 등을

역임한 관료로, 1894년 함경남도관찰사, 1896년 중추원일등의관을 거쳐,

1897년 덕수궁 수리 임무를 맡았으며, 천주교인으로 당시 조선교구장인

뮈텔(Mutel, G. C. M.)주교를 고종에게 소개하여 국호(國號, 大韓帝國)와

연호(年號, 光武) 제정을 돕도록 하였다.

 

반송재 고택 뒷마당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디딜방아

 

금당실 마을안길

 

김대기 가옥 입구

 

김대기 가옥은 1920년에 지은 고가옥으로, 예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형식 선생이 살던 집이며, 2008년에 개축한 백년 초가집이다.

김형식 선생의 후손인 김대기씨 내외가 살고 있다.

 

현재 민박숙소로 운영

 

유천 초옥

 

1900년대 고가옥을 2008년에 개축하였으며, 현재는 민박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금당실 전통마을 한옥체험관

 

금당실 마을앞 들녘

 

밤꽃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