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8대 명당중 하나인 무송대(舞松臺)는 문경 황장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전국 명산 묘터 중 옥관자(玉寬子) 서 말, 금관자(金寬子) 서 말이 나온다는
연주패옥(連珠佩玉) 명당(明堂)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오고 있는 곳이다.
연주패옥이란 선녀가 화장을 하기 위해 거울을 보며 목걸이를 벗어놓은것 같은
선경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자손이 아주 귀하게 되는 곳이라 하여
경국대전에서는 오직 당상관만이 쓸 수 있는 명당이라 하였다.
무송대와 마총
이 이야기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원군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병영과 진지를 잡는 수륙지획주사(水陸指劃主事)
두사충(杜師忠)을 데리고 왔는데, 처음전투인 평양성에서 크게 승리를 거둔 명군은
왜병을 무시하며 한양을 조기 수복하고자 서둘러 남하하다가 고양의 벽제관에서
매복 중인 왜병에 크게 패하게되자, 두사충에게 그 책임을 물어 엄중 문책하려고 하였다.
이를 안 약포 정탁(鄭琢) 대감(1526~1605)의 도움으로 두사충은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무송대 소나무(보호수)
이에 두사충은 정탁 대감에게 은혜를 갚고자 전국을 돌며 명당을 찾았으며
마침 문경에 연주패옥형 명당이 있어 데리고 온 머슴(구종)에게 그 자리를 알려 주었다.
그 후 정탁은 아들에게 그 자리를 찾아보라고 해 구종과 같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구종이 저기라고 하려는 순간, 갑자기 말이 뒷발질을 하여 구종이 죽어버렸다.
이에 화가 난 아들은 말의 목을 베어 죽인 후, 머슴은 소나무 밑에 묻고
말은 그 아래에 묻었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무송대와 마총이다.
그 후로 연주패옥 명당은 다시 찾을 수 없었다고 전하며,
지금도 일대에는 명당을 찾으려는 지관(地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으로
주변에는 백두대간(白頭大幹) 명산(名山)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천주봉, 대미산(大美山),
황장산(黃腸山), 옥녀봉, 경대봉이 있어 천하의 명당다운 형세를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약포 정탁(藥圃, 鄭琢,1526~1605)선생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 백곡(栢谷)이며, 예천출신으로 우의정, 좌의정,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마총(馬塚, 말무덤)
정탁은 1589년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좌찬성으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경사(經史)는 물론 천문·지리· 상수(象數)· 병가(兵家) 등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으며,
1594년에는 곽재우(郭再祐)·김덕령(金德齡) 등의 명장을 천거하여
전란 중에 공을 세우게 했으며, 이듬해 우의정이 되었다.
호종공신(扈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으며,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저서로 약포집, 용만문견록(龍灣聞見錄) 등이 있으며,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노총(奴塚, 종의 무덤)
무송대(舞松臺) 표지석
"좌의정 약포 정탁선생 유택설화처" 표지석
무송대를 둘러보고 문경 하늘재로
하늘재에서 괴산 미륵사지 가는길
하늘재 탐방로의 황장목
탐방로옆 비비추
포암산 전경
포암산 아래 관음사
쌍곡계곡의 소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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