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義城)이란 말 그대로 "의로운 성" 이란 뜻으로 이름 만큼
의로운 선비가 많았던 곳인데, 특히 3명의 정승이 태어 날 형세인 점곡면 사촌마을은
안동 김씨, 안동 권씨, 풍산 류씨들이 세거하는 유서 깊은 선비 마을이다.
이 마을은 연산군의 폭정을 보고 낙향한 송은 김광수, 송은의 외손자 서애 류성룡,
퇴계 학맥을 이은 거유 김종덕(金宗德), 임란창의 정제장 김사원, 병신 의병대장 김상종,
국채보상운동 참여자 75명과 과거 급제자 46명 (문과 12, 무과 1 생원 24, 진사 8, 도산별과 1),
문집류를 남긴 분이 94명에 이르는 등 충절과 문향이 가득한 곳이다.
사촌마을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종택(왼쪽건물이 만취당)
사촌마을이 기록에 나타난것은 1392년으로 고려말 안동김씨 중시조인
충열공 김방경의 5세손 도평의(都平議) 김자첨(金子瞻, 1369~1454)이
안동의 희곡에서 의성 사촌으로 이주해 오면서 부터이다.
600여년의 내력을 지닌 마을에는 아름다운 숲과 30채에 이르는 옛 한옥들이 즐비하다.
마을 서쪽에는 마을 역사와 함께란 천연기념물 제405호인 "사촌리 가로숲"
즉 서림(西林)이 있는데, 이 숲은 조선 중기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이 태어난 곳이기도하다.
의성 만취당(義城 晩翠堂, 보물 제1825호)
만취당은 김사원(金士元, 1539-1602)이 1579년(선조12) 이곳 사촌마을로 옮길 때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선조 15년(1582)부터 3년간에 걸쳐 세운 건물이다.
공사를 마치고 자신의 호를 따서 만취당이라 불렀으며, 당호는 한석봉의 글씨다.
만취당 측면
이 건물은 조선조 특유의 11칸 대청 건물로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에 이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의 목조 건물로써
임진왜란 이전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병신병란, 6.25전쟁 등 역사 전환기를 거치면서도 불타지 않았으며
또 한 번도 해체 복원되지 않고 원형대로 보존해온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유가의 보물인데, 2014년 보물 제1825호로 지정된 후 지붕 등을 일부 보수했다.
이 건물은 안동김씨 집성촌인 사촌 문중의 상징물이자 자존심이기도 하다.
고풍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만취당 건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만취당 3형제는 나란히 창의해
나라 위한 충절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김사원은 의성 정제장에 추대되었고,
전쟁 중 흉년이 계속되자 개인 창고를 열어 빈민을 구제했다.
그는 부녀자가 오면 꼭 의관정제를 한 다음 구휼했다고 전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김씨의창(金氏義倉, 김 씨의 의로운 창고)"이라 불렀다.
또 양식을 꾸러 오면 차용증을 쓰게 했는데 갚지 못하고 토지문서를 가져왔을 때는
그 자리서 차용증서를 찢어버리고 “차용증을 쓴 것은 빌려간 곡식을 갚는데
게으르지 마라는 뜻이지 논밭을 뺏기 위함이 아니다" 라며, 오히려 위로하였다고 한다.
만취당 누대(마루)
만취당은 대청마루와 온돌방을 갖춘 대형 건물이다.
만취당(晩翠堂) 당호 ~ 현판 글씨는 명필로 잘 알려진 한석봉의 글씨이다.
"만취(晩翠)"란 천자문(千字文)과 송(宋)나라 때 재상을 지낸
노국공(魯國公) 범질(范質)의 글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1)천자문에는 “비파만취(枇杷晩翠)하고 오동조조(梧桐早凋)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그 뜻은 “비파나무는 늦게까지 푸르고 오동나무는 일찌감치 시든다”이다.
2)범질은 “더디게 자라는 개울가의 소나무는 (지지간반송,遲遲澗畔松)
울창하게 자라 늦게까지 푸름을 간직한다 (울울함만취,鬱鬱含晩翠)”라고 하였다.
이 두글귀에서 사시사철 푸른빛을 띠는 비파나무와 소나무에 비유해 늦게까지
변하지 않고 푸르름을 간직한다는 뜻의 만취당(晩翠堂)이라는 호를 취하였으며,
이는 곧 늙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거나 꺾지 않는 지조 있는 삶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600여년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기둥, 마루 등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종택(만취당 본채)
만취당은 사랑채 격이지만 본채에서 떨어져 있어서 정자같은 느낌을 준다.
본채에는 사랑채가 따로 있으나 규모가 매우 작다.
이 마을은 역사가 오래되었음에도 유일하게 남은 고택은 만취당 하나 뿐인데
그 이유는임진란때 의병을 일으킨 마을이라 왜군들이 불태웠고,
구한말에는 명성황후 시해후 이곳에서 병신의병이 일어나자 일본군이 또다시
마을을 불태우는 바람에 황폐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평의공 고려(都平議公 古廬,옛집)
안채
사랑채
종택 전경
만취당 옆 향나무(만년송,萬年松)
만취당 담장옆에 있는 수령 500여년 된 향나무로 송은 김광수가 심은 나무다.
뒤에 의성지역에 군수나 현감이 부임하면 만연송의 안부를 물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높은 벼슬을 하지 않았던 만취당 주인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다.
서애 류성룡은 묘갈문에서 그를 한평생 온화한 마음을 가져 어진 자나 어리석은 자
모두가 존경했으며 ‘독행군자’라 하였다.
만년송
"만년송"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소나무가 아닌 향나무다.
수령 500년으로 추정을 하지만, 만취당 김사원의 증조부이자, 류성룡의 외조부인
김광수의 "송은"이라는 호와 시가 만년송에서 나왔다는 것을 미루어 볼때
심을 당시 이미 노송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만년송정운(萬年松亭韻)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1468~1563)
묻노니 조래산(徂徠山) 떠나온지 몇해련고
만년송 푸른 그루 고이고이 심었노라.
맑은 향 은은하게 시축(詩軸)에 풍겨오고
송화가루 날아서 벼루에 진다.
푸른 잎 무성한데 새소리 한가롭다
늙은 줄기 이끼 끼니 인갑(鱗甲)인양 아롱진다.
은사(隱士)의 동산에 우뚝 서 있으니
심상(尋常)한 저 속사(俗士)야 몰라준들 어떠리.
사촌서림(沙村西林,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405호)
사촌리 가로숲(서림)은 고려말에 안동 김씨인 김자첨이 사촌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설에 따라
마을 서쪽의 샛바람을 막아 삶의 터전을 보호해줄 방풍림으로 숲을 조성했다.
기로(街路)숲은 길이가 920m, 폭이 90m정도이며, 나이가 300~600년 가량되는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5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안동김씨 사촌입향 600년 추원비(安東金氏 沙村入鄕 六百年 追遠碑)
사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3명의 정승이 태어날 형세라고 한다.
신라 때 이미 "나천업"이 나왔고, 풍수상 두 번째 정승인 "류성룡"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이어 정승 1명이 더 배출된다고 믿고 있다.
사촌 가로숲(서림,西林)
1542년 서애 류성용의 어머니(안동 김씨)가 친정인 사촌에 왔다가
바로 이 숲에서 류성용을 출산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수령 600여년의 이런 상수리나무가 즐비하다
작은 도랑 양편으로 숲
숲을 돌아 다시 사촌마을 안으로
후산정사(後山精舍) 정문인 관선문(觀善門)
후산정사(後山精舍)
후산정사(後山精舍)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이황의 제자인
김사원(金士元, 1539~1602)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김사원의 본관은 안동,.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천성이 어질고 부모에게 효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공경을 받았으며,
자라서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 들어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했다.
향나무를 중심으로 왼쪽이 후산정사, 오른쪽은 사당이다
만취당앞의 향나무보다 수령이 더 오래되고 수형도 훨씬 좋아 보인다.
회나무(왼쪽)와 향나무
볼수록 천연기념물 감이다
민산정(閩山亭)
민산정은 민산 류도수(1820~1889)를 기리기 위해 류시억을 비롯한 후손들이
2005년에 세운 건물로 총 4채의 건물과 강당으로 이뤄진 전통 한옥이다.
류도수는 풍산류씨 병촌파로 퇴계학통의 주맥을 서애 류성룡에게서 이어 받았다.
의성서당 출입문
의성서당
사촌리 류한식 고가(沙村里 柳漢植 古家)
류한식 고가는 1935년에 건립된 근대 한옥건물로 현 소유자가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
안채
경암서당(敬菴書堂)
후송재(後松齋)
후송재는 임진왜란 당시 화왕산성전투에 참전한 의병장이며 학자인
후송재(後松齋) 김사정(金士貞) 이 임진왜란 후 강학하던 곳이다.
김사정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숙(正叔). 호는 후송재(後松齋)이다.
사촌마을
자여당(自餘堂)
자여당은 만취당 김사원의 손자인 자여당(金尙珏)을 추모하여
그 후손이 1978년에 지은 한옥 건물이다.
옅은 분홍색 매화가 만발하여 그 향이 온 사촌동네를 취하게 하고있다.
사촌마을 안동김씨 자손들은 입향조의 증손 송은 김광수(1468~1563)가 남긴
경심잠(警心箴)을 기치로 삼는데, 경심잠은 사친(事親), 보군(輔君), 제묘(祭廟),
정가(正家:齊家), 우애(友愛), 근형(謹刑), 폐참(廢讒), 신색(愼色), 결우(結友), 안빈(安貧) 등
10조목(條目)으로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해 지은 잠언집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나라에 대한 충성 등 자신의 마음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사촌마을 중심에 자리한 사촌마를 자료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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