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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대구.경북권

신라 최초의 마애여래좌상 등 보물 탐방

by 안천 조각환 2024. 5. 16.

경주 남산 불교유적중에서 가장 이른시기에 조성되었다는 신라최초의

불곡 마애여래좌상(보물 제198호)탑곡 마애불상군(보물 제201호),

그리고 미륵곡 마애여래불상(보물 제136호) 등 보물 불상들을 만나본다.

 

경주 불곡 마애여래좌상(보물 제198호)

 

경주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경주 남산 불교 유적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남산에서 많은 불상이

조성되는 단초를 제공하였을 뿐만아니라 경주 남산 불교 유적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는 불상이며, 보물 제198호이다.

 

자연석에 굴을 파서 조성한 석굴형 감실

 

또한 석굴사원 형식을 본떠 조성한 석굴형 감실의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경주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한 바위에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이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우리나라 불상 중에서 바위를 깎아 불감을

만들고 정벽을 마애 기법으로 처리하여 불상을 봉안한 유일한 예이자, 

참선 수행하는 모습의 선정인 불좌상으로서 가장 큰 예이다.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것 같으며,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약간 숙여져 있으며,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으며,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감실 석불의 바위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 불상으로 인하여

계곡 이름을 부처 골짜기(불곡,佛谷)라고 부르게 되었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을 만나보고 다시 옥룡사로 향한다

 

경주 남산 옥룡사와 탑곡 마애불상군 가는길

 

옥룡암(玉龍庵)

 

이곳 옥룡암(玉龍庵)은 신라의 반월성 왕궁에서 800m 정도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찰로서 왕들이 늘 산책하러 왔던 사찰이었다.

그래서 암자 뒤편에 있는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의 30여구 불상과 보살들은

신라왕과 왕비의 모습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계림만초(鷄林漫草) 

 

옥룡암 삼층석탑

 

옥룡암(玉龍庵)은 통일신라 시대 명랑법사 계종의 신인종(神印宗)인

신인사(神印寺)가 있던 곳으로, 1924년 박일정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삼소헌(三笑軒)

 

삼소헌(三笑軒)은 시인 이육사가 1936년(32세)과 1942년(38세)

두 차례에 걸쳐 옥룡암에 내려와 요사체인 이곳에서 요양했던 곳이다.

이때 머물면서 유명한 시(詩) 청포도를 썼다.

또한 시인 이상과 김유정도 이곳에서 요양했다고 하며,

 거슬러 올라가면 추사 김정희가 와서 1년간 묵으며 서각 작품 활동을 했고

당시의 진품 서각 작품들이 사찰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대웅전 오르는 계단

 

이육사는 1936년 8월 4일 요양 차 머물고 있던 이곳 옥룡사에서 

쓴 시조 두 수를 시인 신응식(申應植, 석초,石艸)에게 보냈다.

 

전서(前書)는 보셨을듯, 하도 답(答) 안오니 

또 적소, 웃고 보시요

 

비(뵈)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
하루가 열흘같이 기약도 아득해라
바라다 지친 이 넋을 잠재울까 하노라.

 

차 없는 밤에 초(燭)태워 앉았으니

이별에 병(病)든 몸이 나을길 없오매라

저 달 상기보고 가오니 때로 볼가 하노라.

 

8월(八月) 4일(四日)

 

1936년 8월 4일 보낸 엽서

 

경주 남산 옥룡암내 이육사(慶州 南山 玉龍庵內 李陸史)

 

대웅전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창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돚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대웅전옆 "일로향각" 현판이 걸린 전각

 

일로향각(一爐香閣)이란 "한 마음을 화로에 넣고 담금질해

향기를 만든다"는 뜻으로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알려져있다.

 

건물 앞의 일로향각(一爐香閣)과 조용육죽 세식일색(祖牅六竹 世識一色) 편액

 

일로향각은 큰스님이 거처하는 전각으로 향로전이라고도 하는데,

정결하고 엄정한 성역으로 인식되며, 전각에는 주지 스님이 거처 한다.
또 아래의 조용육죽 세식일색(祖牅六竹 世識一色)

"조사 창문앞의 6그루 대나무, 진리는 하나의 물상속에 있네." 이다.

 

옥룡사 관음전

 

옥룡사 뒷편의 경주 탑곡 마애불상군(慶州 南山 塔谷 磨崖佛像群,보물 제201호)

 

옥룡사 뒷편에 있는 높이 약 9m, 둘레 약 26m의 큰 바위 4면에는

신라왕과 왕비의 모습이라고 알려진 30여구의 불보살상과 기타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바위 남면은 산등성이와 연결되어 한 단 높은 대지를 이루고,

동·북·서면은 이보다 한 단 낮아 바위의 전체 높이가 9m 정도 된다.

이 마애불상군은 보물 제201호로 지정되어있다.

 

경주 탑곡 마애불상군 상부인 남쪽면

 

경주 탑곡 마애불상군의 불상들은 석주 4면에 새겨져 있어

일종의 사방불로 보이며, 우리 나라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라고 하며,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과

금광명경(金光明經)에 의한 사방불이며, 이 절이 옛 신라 신인사(神印寺)로

밝혀져 신인종의 미술로 불교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마애불상군 전경

 

또한 이 사방불은 새로운 방위 개념을 체계화시킨,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의지를 나타낸 작품인것으로 보고있다.

사천왕사(四天王寺)가 신상(神像)으로 당군(唐軍)을 물리치고자 하였다면,

이 신인사방불은 사방불로써 마군을 항복받고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북쪽면

 

북쪽면의 9층탑과 7층탑 등

 

북면에는 9층탑과 7층탑이 있고, 탑 밑에는 마주보는 두마리의

사자상이 있으며, 탑 상륜부 사이 연꽃대좌 위에는 불상이 있다.

불상은 동면 본존과 흡사하며, 머리 위에는 화려한 보개(寶蓋)가

새겨져 있고, 9층탑의 상륜에 걸쳐 비천 1구가 불상을 향하여 날고 있다. 

이 탑은 옛 황룡사 9층 목탑을 추정해 볼 수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동쪽면 중앙과 오른쪽

 

동쪽면에는 삼존불상과 공양하는 승려상, 6구의 비천상 등이 있다. 

삼존불의 중앙 본존은 둥근 얼굴에 눈은 가늘고 길며,

코 역시 길고 큼직하며, 입은 작고 미소를 머금고 있다.

상체는 유연하고 길며, 하체의 무릎은 유난히 넓다.

두 손은 앞섶의 옷자락 속에 넣고 있다.

 

동쪽면 중앙부분

 

광배는 둥근 두광(頭光)으로, 16잎의 연꽃과 36선의 광선으로

구성된 독특한 모양이며 대좌는 특이한 연꽃무늬이다.

왼쪽 협시보살은 옆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긴 눈썹, 매부리코,

큼직한 입 등 이국적인 모습이며, 공양상(供養像)도 이국적인 얼굴이다.

이들의 위에는 상체만 보이는 비천상들이 날고 있다.

 

동쪽면 왼쪽부분

 

왼쪽부분의 앞면에는 두 그루의 나무 밑에 참선하고 있는 스님상과

그 앞에는보살형상 등 모두 11구의 불상과 보살상 등이 새겨져 있다.

 

탑곡 마애여래불상군의 삼층석탑

 

남면에는 석탑과 석등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탑은 최근에 복원되었다.

 

남쪽면

 

남쪽의 바위 면은 40㎝ 정도의 틈이 벌어져 두 면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오른쪽에 삼존불상이 새겨져 있고, 왼쪽에는 상체만 보이는

나한상(羅漢像)이 부조(浮彫)되어 있다.

 

남쪽면 중앙

 

삼존불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보살이 본존 쪽으로

몸을 비틀고 있으며, 본존은 마멸이 심하여 명확하게 구별할 수 없지만,

동면 본존불과 유사하게 얕은 육계, 둥근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길고 유연한 상체에 넓게 퍼진 무릎이 특징적인 체구,

간명한 옷주름 선 등이 나타난다.

광배는 두광으로 원형 광배에 연꽃과 광선무늬가 있으며,

대좌는 만개한 연꽃무늬로 구성한 특이한 모양이다.

 

불상 입상

 

삼존불앞에 환조(丸彫,입체형)의 보살형 불상이 서 있고

그 옆의 바위에 또 하나의 나한상이 부조되어 있다.

 

남쪽면 왼쪽의 상체만 보이는 나한상(羅漢像)

 

왼쪽 암면에 새겨진 나한상은 앳된 동안(童顔)의 모습과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옷자락으로 덮어 내린 동자승 모습이다.

환조상의 옆 바위에 새겨진 나한상은 옆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길고 복스러운 얼굴, 위엄 있는 자세 등을 뛰어난 수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보살형 불상 측면

 

남쪽면 전경

 

서쪽면

 

서쪽면에는 나무 밑에 결가부좌한 불상 1구와 비천 2구가 새겨져 있으며,

두 그루 나무 밑의 불상은 얼굴이나 체구가 거의 동면상과 흡사하다.

바위 사면에는 탑을 비롯하여 부처님, 보살, 수행중인 스님과

사자등 많은 그림들이 조각되어 있다.

 

옥룡사 탑곡 계류

 

계류앞의 용왕각

 

단풍으로 유명한 옥룡사 입구

 

옥룡사에서 1km정도 남쪽의 미륵곡 보리사

 

미륵곡 보리사 전경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보물 제136호)

 

경주 남산 미륵곡 보리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1963년 보물 제 136호로 지정되었다.

 

 

불상 높이 2.44m, 대좌 높이 1.92m로 보리사지 석불좌상이라고도 불리며,

대좌와 광배(光背)를 모두 갖춘 완전한 불상으로서,

원래는 법당에 봉안되어 있었을 것이나 비록 광배 윗부분에 금이 가고

대좌도 깨어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보존 상태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측면

 

불상 높이 2.44m, 대좌 높이 1.92m.

 

보리사 전각 마당의 꽃잎이 좁은 메발톱

 

보리사의 싱그러운 꽃양귀비를 보며 경주 남산 보물 불상 답사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