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 경상감영공원은 옛 경상도의 중심지였던
상주 경상감영을 재현하여 시민들이 역사와 전통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한 대표 문화공간이다.
경상제일문(慶尙第一門)
경상도라는 지명은 1314년(고려 충숙왕 1)에 확정되었는데
경주와 상주의 앞글자를 따서 지어졌으며,
조선 초기에는 감영이 경주부에 있었고, 경주를 다스리는
부윤(府尹)이 경상도관찰사 즉 경상감사를 겸했다.
경상제일문 누대
경상감영은 조선 지방 행정의 8도제하에 경상도(慶尙道)를
관할하던 감영(監營)으로, 현대의 도청과 같은 역할을 했다.
조선 초기에는 경주(慶州)에 위치해 있던 것이 상주(尙州), 팔거현,
달성군, 안동부 등지를 옮겨다니다 선조 34년(1601년),
마지막으로 대구로 이전되어 그곳에 정착하였다.
경상제일문을 통과하는 탁 트인 도로
태종 7년(1407년)에 경상도가 다른 도에 비해 땅이 넓고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낙동강을 경계로 서쪽을 우도(右道),
동쪽을 좌도(左道)로 나누어 좌도는 전에 처럼 경주부윤이 맡고
우도는 상주목사가 맡아 해당 도의 관찰사를 겸하게 하였다.
경상제일문에서 내려와 보는 경상감영(상산관)
경상도의 우 · 좌 분도(分道)가 당시 조세 체계의 혼란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자 이듬해 원래대로 환원하고, 대신 경주에 있던
감영을 상주로 옮겨 상주목사가 경상감사를 겸하게 했다.
경상도 개도(慶尙道 開道) 700주년 기념비
그러나 중종 14년(1519년) 감사가 맡은 업무가 과중하다는 지적이
들어오면서 종전대로 다시 우 · 좌도를 나누어 상주목사와
경주부윤에게 각각 관찰사를 맡겼다가 12월에 다시 분도로 인한
폐해가 크다는 호소에 따라 원래대로 되돌렸다.
새로 조성한 더 넓은 경상감영
1895년(고종 32) 전국을 23부로 개편할 당시 경상도에는
대구, 안동, 진주, 동래의 4곳에 관찰부를 두었다.
1896년(고종 33)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면서
경상도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분리 되었으며,
경상북도는 대구에, 경상남도는 진주에 관찰사를 두게 하였다
진남루(鎭南樓) ~ 상산관 남쪽에 있던 외삼문(外三門)
상주에 있던 옛 경상감영건물은 지금의 왕산역사공원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상주읍성과 함께 대부분 철거되었다.
이때 읍민들이 뜻을 모아 상산관, 태평루, 침천정 건물을
매입하여 북천 전적지에 보관하였다.
관찰사는 임기 1년동안 도내 각 읍을 순회하였으므로
감영에 상주 하지는 않았지만 관찰사와 목사를 겸하기도 했다.
경상감영은 경상도 전역의 공무 집행, 공물 진상, 공문서 보관 등
모든 행정업무가 이루어 지는 중심지였다.
새로 조성한 경상감영은 조선시대 관찰사가 근무하던 청유당,
제금당 등 18개 동의 전통 한옥시설 등이 조성되어 있다.
상산관(商山館)
상산관은 상주 관아를 찾아온 손님들이 머무르던 곳이다.
상산은 고려 성종 9년(990)에 성종이 붙인 상주의 별명이다.
고려 초에 처음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조선 인조 17년(1639)에 지금의 경찰서 자리에 다시 지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상주여자중학교로 옮겨 교실로 쓰다가
1990년에 북천 전적지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상산관 전경
작청(作廳) ~ 향리가 행정업무를 수행하던 공간
작청 측면
군뢰청 정문
군뢰청(軍牢廳) ~ 죄수를 관리하는 군졸들이 대기하면서 업무를 보던곳
태평루(太平樓) ~ 상주 관아의 정문
조선 순조 8년(1808)에 상주목사 정동교가 세웠다.
일제 강점기에 헐려고 하자 읍민들이 사들여 보존하였다.
민속놀이 체험장(광장 )
민속놀이 체험장
청유당(聽猶堂)
청유당은 수령이 업무를 보던곳으로 관아의 중심이 되는건물이다.
내아(수령의 생활공간)의 동쪽에 있어서 동헌(東軒)이라고도 한다.
인조 18년(1640) 상주목사 김광환이 처음 세웠고,
순조 27년(1827) 불에 타서 상주목사 홍세주가 고쳐 지었다.
청유당앞의 조형물
청유당(동헌) 관찰사(감사) 자리
청유당에서 보는 풍경
형틀(1)
형틀(2)
제금당(製錦堂)
제금당은 청유당의 별관에 해당하는 건물로
가벼운 업무를 보거나 손님을 맞이하던 장소로
공적공간인 청유당과 사적공간인 내아 및 내삼문 사이에 있다.
이 건물의 옛 이름은 군자헌(君子軒)이라고 하며, 선조 38년(1605)
상주목사 김삼용이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제금당이라 불렀다.
내아로 가는 통로
내아(內衙)
내아는 수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상주 내아는 건물 뒤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사우(祠宇)가 있었다.
안에서 보는 태평루
청정사 정문
청정사(淸淨舍)
청정사는 사령청에서 사용한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내아의 크기와 비슷한 "ㄱ"자형 건물이다.
사령청 정문
사령청(司令廳)
사령청은 관아의 여러일을 맡았던 사령들이 일하던 공간이다.
사령은 군사일을 다루는 군관이나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포교,
죄인들의 곤장을 치는 등 다양한 일을 맡았다.
관아의 사령과 나찰을 아울러서 나졸(羅卒)이라 하고
군사일을 담당하는 나졸들은 군졸이라고 하였다.
사령청 마당의 훈련장
정기룡장군의 상주성 탈환 기념탑
정기룡(鄭起龍,1562~1622) 장군은 명나라 장수 마귀가
이순신, 정기룡, 한명련, 권율을 조선 제일의 장수로 꼽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방어사 조경의 선봉별장으로
전투에 참가, 김산(현 김천)전투에서 포로가 된 조경장군을 구출하였다.
임시판관으로 화북면 용화동 전투에서 왜군을 격퇴하였고, 화공법으로
상주성을 탈환하고 함창군 창의군과 합동으로 대성산 왜군을 격퇴하였다.
충의공(忠懿公) 정기룡장군 임란전승 기념탑비(왼쪽), 연보(오른쪽)
1593년 상주목사 겸 감사군대장, 1597년 정유재란 시 토왜대장으로
고령에서 6만 왜군 대파, 함양 전투에서 8천여 왜군을 격퇴하고,
상주, 성주, 합천, 초계, 의령 등 여러성을 탈환하고, 경주, 울산을
수복하는 등 60여차례 전투에서 승전하였다.
선무원종공신 1등 녹훈, 선무공신 1등 녹훈, 오위도총부 도총관,
15대와 17대 삼도통제사 겸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경상감영과 조각공원
조각공원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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