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숭겸장군 유적지의 배롱나무가 빨간꽃을 활짝 피었다.
신숭겸장군유적은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申崇謙, ?~927)장군이
후백제와의 공산전투(公山戰鬪)에서 포위된 태조(太祖, 877~?)를 위해
태조의 옷을 바꾸어 입고 피신시킨 후 싸우다가 전사한 바로 그 자리다.
신숭겸(申崇謙)장군 순절단과 배롱나무꽃
이곳은 고려 태조 왕건이 자신을 대신해 전사한 신숭겸을
기리기 위해, 공이 숨진 자리에 피 묻은 흙과 옷을 수습하여 묻고
지묘사와 순절단을 세워 명복을 빌었던 곳이다.
400년이 넘은 배롱나무(보호수)
1607년(선조 40) 신숭겸의 외손인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柳永詢)이
옛 절터에 사당과 충렬비(忠烈碑)를 건립하고
표충단(表忠壇)을 쌓아 장군의 충절을 추모하였다.
1672년(현종 13) 사당은 표충사(表忠祠)라 사액(祠額)을 받았다.
1819년(순조 19)에 후손 신의직(申義直)이 단을 중수하고
옆에 고려 장절 신공 순절지지비(高麗 壯絶 申公 殉節地之碑)를 세웠다.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령으로 표충사가 헐렸다가
뒤에 후손들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신숭겸은 곡성현 출신으로 춘천으로 옮겨와 활동한 인물이다.
고려를 건국한 개국 1등공신으로 태조 왕건에게서 신(申)씨를 사성받고
숭겸(崇謙)이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또한 평산을 본관으로 내렸다
고려 장절 신공 순절지지비(高麗 壯絶 申公 殉節地之碑)
훗날 참수된 신숭겸의 시신은 왼쪽 발 밑에 북두칠성 모양의
사마귀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겨우 찾았지만 머리는 끝내 찾지 못해서
왕건은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고, 신후지지(身後之地)에 매장해주었다.
춘천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신숭겸의 무덤은 봉분이 3개인데
머리를 대신한 황금 두상을 지키고자 이렇게 했다고 전한다.
장절공 신숭겸 순절단과 순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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