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趙芝薰,1920∼1968)이 태어난
영양 주실마을은 일월산 남쪽자락에 있으며, 조지훈 시인이
태어난 호은종택(壺隱宗宅)은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옥천종택(玉川宗宅) 등 많은 문화자원들이 있다.
마을 입구 주차광장의 조형물
조지훈의 본명은 동탁(東卓)이며, 1946년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청록집의 시편들에서는 주로 민족사의 맥락과 고전미
세계에 대한 찬양, 선(禪) 세계 등을 노래하였다.
조지훈은 어릴 적부터 서당 교육을 받았고, 검정고시를 거쳐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에 합격했으며, 일제식 교육은 받지 않았다.
1941년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부터 사망할 때까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재직 당시 지은 "고려대학교 교가"와
"호상비문" 에서 따온 "민족의 아리아"라는 고려대 응원가가 있다.
지훈 문학관 입구
조지훈은 4월혁명의 사회시라는 부제를 붙인 시집 여운(餘韻),
터져오르는 함성, 시집 역사 앞에서(1959), 수필집 창에 기대어(1958)
시와 인생(1959), 돌의 미학(1964), 지조론(1963), 평론집으로는
시의 원리(1953), 한국문화사 서설(1964) 등을 남겼다.
그는 1968년 고혈압으로 토혈한 후 입원했으며
기관지 확장증 합병증으로 인해 만 47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지훈문학관 내부
조지훈(趙芝薰) 흉상
지훈문학관 전시물
청록파 시인(조지훈,박목월,박두진)
조지훈 부모 형제 등 가족들
조지훈은 조광조의 후손으로 이곳 주실 마을에 종가가 있다.
조지훈의 증조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 조승기(趙承基)이며
할아버지 조인석(趙寅錫)은 구한말 성균관과 사헌부 대간을 지낸 후
낙향했는데 6.25전쟁 당시 주실마을이 좌우 이념으로 문중끼리
갈등을 빚자 이를 개탄하며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조지훈의 학문연구
조지훈의 아버지 조헌영은 한의사 출신이며, 제헌의원으로서
의학계에 많은업적을 남겼다. 6.25 전쟁 중 납북됐는데
북한에서도 최초로 동의학(한의학) 박사가 되었으며, 동의보감
국역을 주도하기도 하는 등 한의학에 큰 공헌을 하였다.
지훈문학관 안쪽
조지훈의 집안은 6.25 전쟁으로 많은 곡절을 겪었는데
할아버지 조인석은 집안에서 일어난 이념 싸움으로 자결했고,
아버지 조헌영과 매제 이상달(李相達) 서울대 농대 교수는 납북됐으며,
막내동생 조동위는 서울대 재학 중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사망했으며,
어머니도 홧병을 얻어 1953년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주실마을
부인 김난희여사는 2024년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으며
102~103세 정도의 나이(출생년도 미상)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지훈의 자녀 3남 1녀 중 막내아들 조태열은 외교부 차관을 역임하고
2024년 1월부터 제41대 외교부장관으로 재직 중이다.
조지훈 생가인 호은종택 입구의 조지훈 시판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뒤에 머언산이 다가서다.
조지훈 생가 호은종택(壺隱宗宅) 대문채
호은종택은 몸채와 사당, 관리사로 나뉘어 있으며,
몸채는 앞면 7칸, 옆면 7칸 규모에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호은종택
이 집은 안동 등 경북북부 지방 주택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조선 중기인 인조(재위 1623∼1649) 때에 조정형이 지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일부 불탄 것을 1963년 복구하였다.
사당 건물
호은종택은 조지훈 선생 외에 한말의 의병장이었던
조승기 선생과 선생의 조부인 조인석 선생 등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분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옥천종택 전경
옥천종택은 옥천 조덕린(玉川 趙德鄰,1658~1737)선생의
옛집으로 살림채인 정침과 글 읽는 별당인 초당, 가묘(家廟)인
사당으로 구성된 17세기 말 양반 주택의 대표적인 예이다.
살림채는 안동지방의 전형적인 양식인 ㅁ자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옥천종택(玉川宗宅)
조덕린은 조선후기 교리, 사간,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택인(宅仁), 호는 옥천(玉川)이다.
옆에서 본 옥천종택
창주정사(滄州精舍)
창주정사는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의 정사로
옥천종택에서 돌계단을 따라 우뚝 솟은 창주정사에 올라서면
앞이 탁 트여 주실마을과 논밭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전경
조영걸 가옥(趙永傑 家屋)
조영걸 가옥은 원래 조진도가 1767년경 봉화에 정착할 때
지은 집인데, 조진도의 6세손 조현기가 1901년경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으며, 2006년 지금의 조영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조영걸 가옥 큰 대문채
대문의 높이가 엄청 높은데 아마도 말을 타고 출입을 했던 대문으로 보인다.
조영걸 가옥의 대문채
보수중인 조영걸가옥 앞집
주실마을 안내표지판
월록서당은 후학들을 교육하고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으로,
월하 조운도(1718∼1796) 선생이 의견을 내고 한양 조씨, 야성 정씨,
함양 오씨가 주축이 되어 조선 영조 49년(1773)에 지었다고 한다.
비오는 날씨인데다 해도 저물어 여타 탐방은 다음기회로 미룬다.
주실마을 한옥들
촉촉히 내리는 가을비에 운치를 더해주는 주실마을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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