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묘산면에 있는 묵와고택은 국가민속문화유산 제 206호이다.
이 고택은 가야산에서 뻗어 내린 깊은 산속의 화양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선조 때에 선전관을 역임하였던 윤사성(尹思晟,1557~1619)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고택의 명칭은 윤사성의 고손자인
묵와 윤우(默窩 尹楀,1784~1836)의 호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묵와고택 입구
묵와 고택은 윤사성의 10대손인 독립운동가
만송(晩松) 윤중수(尹中洙, 1891~1931)의 생가이기도 하다.
대문채
대문을 닫아 놓아 내부를 볼수없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문화재청의 설명에 의하면 문간채의 가운데에 있는 솟을대문을 들어가면
‘ㅜ’자형으로 동향한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의 우측에는 중문채가 있다.
중문채를 들어서면 ‘ㄱ’자형의 안채가 있으며, 안채 마당을 지나면
사당이 위치하고 사당은 사랑채 옆면의 협문을 이용하여 진입한다.
자연을 이용한 경사진 집터와 가옥 배치
산간에 집터를 잡아 양반집을 짓는다는 것은 드문 사례인데,
임진왜란 이후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선비들이 난을 피해 은거하고자 했던
생각과 풍수적 이상향을 찾고자 했던 조선 중기 선비들이 집터 선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며, 조선 중기 양반집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담장너머 바깥에서 보는 가옥배치(중하단)
담장너머 바깥에서 보는 가옥배치(중상단)
대문채는 제일 아래 낮은곳에 있고, 사당은 제일 뒤편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뒷편에서 보는 사당
묵와고택 바로 옆에 위치한 육우당 전경
합천 육우당 출입문
육우당은 파평윤씨의 종손인 윤석우가 지은 가문의 재실로,
묵와 윤우의 아들인 윤병구,윤병래,윤병은,윤병부,윤병효,윤병민
여섯 형제의 우애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합천 육우당(六友堂) 건물
1960년대까지는 서당으로 활용하였다고 하며
유림의 거두이자 한학자인 춘산(春山) 이상학(李相學)과 성암(誠菴)
윤석희(尹錫熙)와 애국지사 윤중수가 이곳에서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육우당 측면
육우당 건물은 팔작지붕에 납도리집으로 상량기문에
상원(上元) 갑진(甲辰) 삼월 십삼일 임오(壬午) 사시(巳時) 입주(立柱)
동월(同月) 이십팔일 정유(丁酉) 미시(未時) 상량(上梁)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갑진년은 1904년으로 이해 봄에 상량을 하고 집을 지었다.
위 왼쪽 : 상량문, 위 오른쪽 : 육우당기(六友堂記), 아래 : 천정의 특이한 조각문양
대청 마루와 육우당(六友堂) 편액, 육우당기(六友堂記)
육우당 대청 좌측에서
육우당 대청 우측에서
육우당 마루와 방앞의 편액들
위에서 아래로, 육우당(六友堂),돈목재(敦睦齋),정양헌(靜養軒) 편액은
독립운동가 우당(愚堂) 유창환(兪昌煥,1870∼1935)선생 글씨이다.
사당인 세덕사(世德祠)
세덕사와 육우당 옆의 사각 연못
육우당 옆에서
육우당 앞뜰의 큰 회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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