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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한국 성씨의 뿌리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 묘소와 보광사

by 안천 조각환 2025. 2. 20.

청송심씨(靑松沈氏)는 청송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낸 심홍부(沈洪孚)를 시조(始祖)로 삼으며, 그의 증손 심덕부(德符)가

우왕(禑王)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러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다가 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에 진봉되어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청송심씨 시조묘소 입구

 

그뒤 심덕부(德符)는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창업에 공을

세우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으며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와

영삼사사(領三司事)를 거쳐 1399년(정종 1)에 좌정승(左政丞)에 이르렀다.

그의 아우 원부(元符)는 고려말에 여러 관직을 거쳐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이르렀으나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새 왕조(王朝)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節義)를 지켰으며, 후손들도 그의 유훈을

받들어 선훈불사(先訓不仕)라 하여 대대로 벼슬을 멀리 하였다.

 

청송심씨 시조묘소 입구 표지석과 사적비, 공적비 등

 

조선조에 들어와서 세도가문으로 역사에 자주 거론이 되는데,

왕비 3명, 부마 4명, 상신 13명, 문형 2명, 청백리 2명, 호당 2명, 공신 8명,

장신 1명, 문과 급제자 194명과 종묘 배향 인물 1명을 배출했다.

 

묘소 오르는길

 

고려, 조선조의 주요 역사인물로는 

심덕부(고려 문하시중,조선 좌정승), 심원부(고려 전리판서),

심온(부원군 겸 영의정), 심회(영의정), 심결(영중추부사), 심연원(영의정),

심통원(좌의정),심강(부원군,영돈녕부사),심의겸(병조판서),심충겸(병조판서),

심희수(좌의정), 심열(영의정), 심기원(좌의정), 심지원(영의정),

심수현(영의정), 심호(부원군), 심환지(영의정), 심상규(영의정), 

왕비는 소헌왕후(세종비),인순왕후(명종비),단의왕후(경종비)와

 부마는 심종, 심안의, 심익현, 심능건 등 4명이다. 

 

묘소 앞

 

근.현대 주요인물로는

심호택(대한제국 내부주사, 청송 송소고택 건립자, 만석꾼, 재벌),

심남일(대한제국 의병장), 심상훈(대한제국 참정대신 겸 중추원의장),

심순택(대한제국 의정대신), 심의환(총무처,상공부장관),

심수관(일본 도자기 명가  사쓰마 자기 시조)

 

장명등과 묘소

 

심상우(제11대 국회의원, 아웅산 테러로 사망), 심상명(법무부장관),

심명보(제11,12,13,14대 국회의원), 심완구(제12.13대 국회의원),

심정구(제12.13,14.15대 국회의원), 심규섭(제16대 국회의원), 

심재권(제16.19.20대 국회의원), 심재덕(제17대 국회의원),

심대평(제17,18대 국회의원), 심재철(제20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청송심씨 시조묘소

 

유명 인사(연예인 등)로는

심형래(코미디언), 심혜진(배우), 심훈(독립운동가,소설가,언론인),

 심현섭(코미디언 겸 방송인, 심규섭의 아들) 등이 있다.

 그리고 유명 소설 인물로는 심청전의 심햑규와 심청이 있으며,

인구는 24만여명이 전국각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전국 37위이다.

 

묘비

 

고려국  문림랑 위위승 청이군 심홍부 지묘

(高麗國 文林郞 衛尉丞 靑已君 沈洪孚 之墓)

 

묘소 측면(왼쪽에서)

 

묘소 측면(오른쪽에서)

 

묘지 석물(문인석과 촛대석, 좌.우)

 

묘소 뒷쪽 솔숲

 

묘소 앞쪽

 

석물

 

석축

 

묘도(墓道)

 

묘소입구의 청송심씨 원당사찰인 보광사(普光寺) 전경

 

청송심씨 시조묘소 입구에 있는 청송 보광사(普光寺)

신라 문무왕 8년(668)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보광사는 관아의 남쪽 5리에 있으며 심홍부(沈弘孚)의

무덤을 수호하는 사찰”이라 하여 청송심씨의 원당사찰임을 밝히고 있다.

 

보광사 만세루(萬歲樓)

 

조선 세종 때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가 조상의 묘가

이 산에 있다고 하여 원당으로 삼고 재실인 추모재(追慕齋)와 만세루를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며, 보광사 극락전과 요사채가 뒷산과 골 안을

배경으로 배치되고 청송심씨(靑松沈氏)의 만세루와 추모재가

사찰 진입을 가로막듯 입구에 놓여 전체가 튼 ⎕자를 이루고 있다.

 

만세루 뒷편

 

이 건물은 조선 세종이 부사 하담(河澹)에게 명하여 건립한

청송심씨 시조인 심홍부(沈弘孚)의 묘재각(墓齋閣)이다.

청송읍 월막리에 위치한 찬경루와 같이 1428년(세종 10)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1856년과 1958년에 후손들이 중수하였다.

 

만세루 측면

 

이 누각은 사찰 뒤편 보광산에 위치한 청송심씨 시조묘에

재를 지낼 때 비가 오면 이용한다고 한다.

보광사 사찰 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극락전과 마주보고 있다.

  

만세루 누대 위(왼쪽에서)

 

만세루 누대 위(오른쪽에서)

 

만세루 중수기 등 편액들

 

잠곡 김육선생의 시(청구영언에 수록) 편액

 

자네집에 술 익거든 / 부디 날 청하시게.

초가에 꽃 피거든 / 나도 자네를 청하옴세.

꽃보고 잔 나누며 / 속 애기도 나누면서

백년 덧 시름 없을 일을 / 의논코자 하노라.

 

군가주숙필청오(君家酒熟必請吾) / 초각화개역자호(草閣花開亦子呼)

작주간화논저사(酌酒看花論底事) / 백년욕득몰유려(百年欲得沒憂慮)

 

* 김육(金堉, 1580~1658년)

김육의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이다.

조선 후기의 명재상, 122,124,126대 영의정, 시호는 문정공(文貞公)

 

조그만 바람에도 청아한 음률을 낸다

 

안심당(安心堂)

 

극락전(極樂殿)

 

극락전은 근래 수리 공사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615년(만력,萬曆 43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물 제1840호(2014년 지정) 이다

 

보본당(報本堂)

 

산신각과 칠성각

 

추모재(追慕齋)

 

보광사 만세루와 극락전 등

 

한바퀴 돌아 다시 입구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