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김씨(光山 金氏)는 광산(광주의 별호로 현 담양과 광주지역)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는 신라 제45대 신무왕(?~839)의
왕자(셋째아들)인 김흥광(金興光, 810~820년경 탄생)을 시조로 한다.
참고로 김씨 분관록과 동국만성보, 조선씨족통보 등에는
신라 49대 헌강왕(김정,金晸)의 셋째아들로 되어있기도 하다.

광산김씨 평장사 전경
광산김씨는 신라의 왕자인 김흥광(金興光)이 무진주 추성군
서일동(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자리 잡으면서 시작되었으며,
김흥광의 아들 김식(金軾)이 각간에 오르고, 손자 김길(金吉)이 고려에
귀의하여 무공을 세워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어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르자 조부인 김흥광은 광산부원군(光山附院君)에 봉해졌다.

평장사 입구의 광산김씨 발상지(왼쪽)와 광산김씨 지 평장동(오른쪽) 표석
이 후 고려시대에는 대대로 8명의 평장사(平章事, 정2품)를
배출함으로써 "평장동"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다.
따라서 김흥광의 작호(爵號)이자 세거지인 "광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으며, 현재도 평장리라 불리고 있다.

홍살문
조선시대에는 5명의 정승과 대제학 8명, 청백리 4명, 왕비 1명을
배출하였고, 문과 269명, 무과 7명, 사마시 275명, 역과(번역관) 15명,
의과 4명, 음양과(천문 지리)에 1명, 율과(잡과 중 하나)에 1명,
주학에 19명 등 584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

광일문(光一門)
특히 조선 예학의 태두인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과
신독재 김집(愼獨齋 金集) 부자는 유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우리나라 18현으로 성균관 문묘(文廟)에 배향되었으며,
김집은 종묘(宗廟)에도 배향되어 국반(國班)이라 불렸다.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金興光) 단(壇) 비
(맨 오른쪽부터) 1)신라왕자 신도비, 2)신라왕자 광산김공 휘 흥광지단(새로만든 단비),
3)신라왕자 광산김공 휘 흥광지단(옛 단비), 4)신라왕자 광산부원군 김공지단
이렇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주요 문벌 중의 하나로 꼽히며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한국을 이끌어가는 인재의 산실, 삼한 갑족의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현재도 본관별 성씨 인구 순위는 김해김씨, 전주이씨, 밀양박씨,
경주김씨, 경주이씨, 경주최씨, 진주강씨 다음으로 8위에 속하며,
인구는 86만 여명으로 신라계 김씨로는 경주김씨 다음으로 많다.

광산김씨 선대제단(光山金氏 先代祭壇)과 광산김씨 시조공 설단봉향 유적 안내문(비)
신라 왕자인 김흥광이 무진주(광산지역)에 자리를 잡게된 연유는
신라 42대 흥덕왕이 승하하자, 종친들간에 왕권 쟁탈전이 벌어져
김흥광의 할아버지인 김균정이 조카 김제룡에게 밀려 살해당하자
아버지(신무왕)가 완도의 장보고를 찾아가 "원수와는 같은 하늘아래
살 수 없으니 원수를 갚을 수 있게 나를 도와다오" 라며 의탁하자

취사당(聚斯堂)
43대 희강왕(김제룡)에 이어 왕위에 오른 44대 민애왕을 폐위시킨 후
3개월 후에 왕위에 올라 45대 신무왕이 되었으나 피부병으로 6개월만에
사망하게 되고 장남(김경응)이 46대 문성왕(839~857)에 오르는데,
이러한 쟁탈전을 직접 겪었던 김흥광(金興光)은 장차 나라가
어지러워 질것을 예상하고 무진주 서일동에 정착하여 은거하게 된다.

경모재(敬慕齋)
김흥광이 신라의 왕자 출신이라는 것은 고려 충렬왕 때
제안황대전고(提按黃臺典誥) 벼슬을 지낸 김이(金珥)의
광산현 제영시서(光山縣 題詠詩序)에 나오는데, 이 문건에 의하면
"이 고을은 신라 때 왕자 김흥광이 장차 난리가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왕궁을 버리고 서인이 되어 이 땅 서일동에 와서 사셨고"라 되어 있다.

신라왕자 광산김씨 유허비(각)와, 천년기지(千年基址), 팔세평장(八世平章) 주련
"광산현제영서"와 다른 기록인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김양감(金良鑑)의
아들 김의원(金義元) 묘지명에 쓰여 있는 나주광양현인(羅州光陽縣人)이라는
금석문에는 광산김씨가 광주의 토성으로 있다가 고려 말에 가문을 일으키고
중앙 정계에 진출한 뒤, 광양김씨 선계에 자신을 이어 붙인 것이라는 가설도있디.

신라왕자 유허비와 평장사 묘정비(平章祠 廟庭碑)
광산김씨는 세계(世系)를 내려오면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는데,
광산김씨 내에서는 양간공파, 낭장공파, 문숙공파, 문정공파, 문원공파,
사온직장공파 등 6개 파이고, 각 파는 다시 수많은 지파로 나뉘어졌다.

수존재(修存齋)
아예 새로운 성이나 본관을 만들어 나간 파도 적지 않은데,
그중 김흥광의 31세 손이면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충장공(忠壯公) 김덕령 장군을 시조로 하는 용안김씨(龍安金氏)가 있다.

앞에서 부터 수존재, 유허비(건물사이 뒷편), 취사당, 경모당, 묘정비
또 사계 김장생에서 시작된 기호학파는 영남학파와 견주며,
조선 학맥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였는데, 김장생의 단일 후손에서는
7명의 대제학이 배출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평장사 오른는 계단
그 외 김전개(金田槪)를 시조로 하는 은진김씨(恩津金氏)도 있으며,
또 시조 김흥광의 14세 손 김경량의 아들인 김수(金須)를 시조로 하는
초계김씨(草溪金氏), 또 다른 분파로 중종 때 예조판서를 역임한
김극성(金克成)을 시조로 하는 보령김씨(保寧金氏)도 있다,

평장사 내삼문(신문,神門)인 모선문(慕先門)
또 조선 명종조 김태진(金泰辰)을 시조로 하는 남해김씨(南海金氏),
김흥광의 16세손 김승진을 시조로 하는 청거김씨(淸渠金氏),
김남우(金南雨)를 시조로 하는 무주김씨(茂州金氏) 등도 있으며,
김극윤(金克胤)을 시조로 아예 성씨를 바꾼 사씨(舍氏)도 있다.

광산김씨 시조 사당인 평장사(平章祠)
광산김씨의 주요 역사적 인물로는
김흥광의 10세 손인 김체의 아들 김위(金位)와
김주영(金珠永)의 형제 대에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김광세(金光世)와 김광존(金光存)의 양대산맥을 이룬다.

평장사 측면
김광세의 후손으로는 삼별초의 난에 순절한 대장군 김경량,
세조 때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김성원이 있으며, 손자인 김구(金絿)는
조광조와 함께 혁신정치를 도모하다 사사된 기묘명현(己卯名賢)에 속한다.

평장사 뜰에서 보는 재실 건물들과 멀리 안산인 무등산
김광존의 후손으로는 그의 고손자 김진이 대제학에 올랐고,
김정의 아들 김약채(金若采) 이후 광산김씨의 화려한 명맥이 이어졌다.
김정은 추성보리공신에 책록되고, 벼슬은 중대광(重大匡, 종1품)에
이르렀고, 광성군에 봉군되었으며, 김약채·김약항·김약시 등
세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광산김씨 역사관
김장생은 가례집람(家禮集覽) 3권, 경서변의(經書辯疑) 8권 등
총 21권의 저서를 남겼으며, 조선 예학의 최고봉을 이룬다.
김장생은 아들과 함께 동국 18현으로 성균관에 배향되었으며,
안성의 도기서원과 연산의 돈암서원 등 10여개 사원에 제향되었다.

평장사 입구의 홍살문,광일문, 비석군
숙종 비(인경왕후)의 아버지인 김만기와 서포 김만중(金萬重)은
형제가 모두 대제학에 올라 명성을 드높였으며,
김만중의 순 한글 소설인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서포만필(西浦漫筆), 서포집(西浦集) 등이 전해지고 있다.

평장사유허서(平章祠遺墟序)와 광산현제영시서(光山懸題詠詩序) 비
고려 충렬왕 때 제안황대전고(提按黃臺典誥) 벼슬을 지낸
김이(金珥)가 지은 광산현제영시서(光山縣題詠詩序)에는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이 신라의 왕자 출신" 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오른쪽 부터 평장사 사적비문, 평장동 유허지 성역화사업 사적비, 진입로 확장,
단소 중수사업, 세수사적비, 대종각건립, 유허지실적비, 광산김씨와 평장동의 유래비 등
근현대 인물로는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여성)와 김필순이 있으며,
한국 천주교의 개혁에 헌신하고 민주화 운동과
서민을 돌보는 데 커다란 족적을 남긴 가톨릭 추기경 김수환,
17,19,20,21,22대 5선 국회의원 김태년, 18대,19대 국회의원 김선동,
18대 국회의원 김성수, 18,19,20대 국회의원(고양) 김용태 등이 있으며,

평장사 우물
제41대 국무총리 김황식, 보건복지부와 통일부장관 김하중,
국방부장관 김장수, 법무부장관 김경한, 교육부 장관 김숙희,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
철학과 교수 김용옥, 건양대 초대총장 김희수, 시인 김춘수,
영화배우 김용건, 김아중, 김성환(김용일)과 연예인 김병조 등이 있다.

평장사 입구와 평장리마을
광산김씨 항렬(行列)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 상(相) | 재(在) ○ | ○ 현(鉉) | 영(永) ○ | ○ 수(洙) | 용(容) ○ | ○ 중(中) | 선(善) ○ | ○ 순(淳 | 동(東) ○ |
*최근 광산 김씨 상대 계보를 정리하면서 기존의 세수에서
모두 자연스럽게 한 세대씩 위로 올라가는것으로 정정 되었다고 한다.

평장사 전경
평장사(平章祠)는 1722년에 발의하여, 1786년 완공한 후
종사당이라 하였으며, 1796년에 문안공을 설향하였다.
단제 봉향은 2002년 사우복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평장사(平章祠)라 하였으며, 280여 년만에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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