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171 김천 개령향교와 감문국(甘文國)이야기 개령향교는 김천시 개령면에 있는 향교로 조선 성종 4년(1473)에 처음 지어졌다. 이곳 개령면은 삼한시대에 감문소국이 있었던 곳으로 231년 신라가 감문국을 공격하여 점령한 후 감문군을 설치했다. 이후 557년(진흥왕 18)에는 감문주, 661년 다시 감문군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개령군으로 되어 어모현, 김산현, 지례현,, 무주현 등의 영현을 거느리기도 했었는데, 그동안 여러차례의 행정구역변동을 거치다가 1914년 군면 폐합시 개령군이 폐지되고, 개령군 영역의 서면·부곡면이 개령면이 되었다. 개령향교 명륜당(明倫堂) 이러한 개령향교는 1609년(광해군 1) 잦은 수해로 동쪽으로 이건하였다가 1837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일제강점 말기에는 금산향교에 폐합되었다가 1946년 봄에 복원하.. 2023. 4. 18. 거창 덕천서원의 벗꽃풍경 거창읍 장팔리에 있는 덕천서원(德泉書院)은 단종복위를 꾀하다 사사(賜死)된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충장공(忠壯公) 이보흠(李甫欽)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이다. 거창 덕천서원옆 작은 호수와 벗꽃 금성대군 이유(錦城大君 李瑜,1426~1457)와 당시 순흥부사였던 대전(大田) 이보흠(李甫欽,?~1457)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1457년 10월 21일 금성대군은 사사되고, 3일 후 이보흠도 처형되었다. 이후 영조 14년인 1738년에 금성대군과 함께 신원(복권)되어 이보흠은 자헌대부 이조판서겸 오위도총부총관으로 증직되었으며, 1791년(정조 15)에 충장(忠莊)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현재의 덕천서원은 이보흠의 후손인 영천이씨 호산 이학두(湖山 李學斗)가 선조를 기리기 위해 .. 2023. 4. 3. 삼척 죽서루(竹西樓), 오십천 절벽위에 명성 제28호이며 보물 제213호인 삼척 죽서루의 화려한 봄을 찾아본다. 죽서루는 오십천이 휘감아 돌아가는 절벽 벼랑 위에 날아갈 듯 아름답게 서 있다. 1875년(고종 12) 삼척부사로 부임했던 심영경(沈英慶)이 죽서루의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하여 노래한 시(詩)는 물론, 1662년(현종 3) 도호부사였던 미수 허목은 죽서루기(竹西樓記) 에서 “조선의 동쪽 경계에는 경치가 좋은 곳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여덟 곳은 가장 뛰어나다.” 라고 표현하는 등 죽서루를 찬양한 글들이 많다. ※ 2023년 12월 28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 화려한 벗꽃속의 삼척 죽서루 차 죽서루판상운(次 竹西樓板上韻) ~ 삼척부사 심영경(沈英慶) 관동에서 제일가는 죽서루 / 관동제일죽서루(關東第一竹西樓) 누각 아래 푸른 물 도도.. 2023. 3. 31. 김장생의 임리정과 죽림서원, 송시열의 팔괘정 임리정(臨履亭)은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1548~1631)선생이 후진을 교육하던 장소로 논산 강경읍(江景邑) 황산리 금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임리정 바로 아래에는 김장생이 건립한 죽림서원(竹林書院)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우암 송시열이 지은 팔괘정(八卦亭)이 있는 강경의 명소이다. 강경 임리정(臨履亭) 임리정은 사계 김장생(金長生)이 1626년(인조 4)에 이곳으로 내려와 황산서원(黃山書院, 지금의 竹林書院)과 임리정(臨履亭)을 세워 선현(先賢)을 추존하며 후진을 교육하던곳으로, 이후 김장생의 학맥을 이은 송시열(宋時烈)이 1663년(현종 4)에 팔괘정(八卦亭)을 지어 금강(錦江)의 수려한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언덕위의 임리정 이곳은 원래 황산정(黃山亭)이라 하였으나 시경(詩經)의 전전긍긍(戰.. 2023. 3. 14. 송림속의 예천 초간정과 석송령 예천 초간정(草澗亭)은 소나무사이로 보이는 깔끔한 겨울풍경이 더 아름답다. 이 정자는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선생이 1582년(선조 15)에 말년의 생활을 보내고자 금곡천 개울가 바위위에 원림을 조성하면서 함께 건립하였다. 명승 제51호로 지정된 초간정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원림(園林) 정자이다. 예천 초간정 당시에는 초간정사(草澗精舍)라고 하다가,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 1517∼1586)이 초간정이라 이름 지었으며,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탔다가 1626년(인조 4)에 권문해의 아들인 죽소(竹所) 권별(權鼈)이 다시 건립하였다. 이 역시 화재로 불타고 말았으며, 1739년(영조 15)에 현손인 권봉의(權鳳儀)가 옛 터에 집을 짓고는 바위 위에도 정자 3칸을 세워 원림.. 2023. 2. 8. 옥천 청풍정(淸風亭)과 김옥균의 애잔한 이야기 청풍정은 옥천 군북면 석호리 대청호반에 있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정자이다.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고려시대부터 선비들이 자주 찾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특히 조선말기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이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청풍정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곳으로, 물이 굽이쳐 흐르는 바위절벽 위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청풍정(淸風亭) 청풍정에는 김옥균(金玉均,1851∼1894)과 기생 명월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업식 연회를 기회로 김옥균은 박영효, 홍영식 등과 함께 사대당 거두들을 죽인 뒤 신정부를 조직하고 호조참판 겸 혜상공국 당상이 되었으나 청나라가 군대를 보내 정변을 막는 바람에 삼일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대청호반의 청풍정 정변에 실패한 김옥균은 옥천 청풍정에서 울분을 달.. 2022. 12. 2. 은행나무단풍이 곱게 물든 전주향교 사적 제379호인 전주 향교의 거수목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전주향교는 고려 공민왕 때인 1354년에 경기전(慶基殿) 북편에 창건하였다가 1410년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한 경기전 건립으로 이전하였으며, 그 뒤 1603년 좌사우묘지제(左社右廟之制)에 어긋난다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걱 건물앞에는 3~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 10여그루가 노랗게 믈들어 가고 있다. 대성전 앞 서무(西廡) 앞 명륜당 앞 계성사 입구 계성사 계성사에는 5성(聖)인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의 부(父) 위패를 봉안란 곳 동무(東膴) 앞 며칠후 은행잎이 모두 떨어질때면 서원마당은 노란 비단물결로 출렁일테지. 2022. 11. 9. 금호강 아양루의 가을 속으로 서거정의 금호범주(琴湖泛舟) ~ 금호강의 뱃놀이 금호강 맑은 물에 조각배 띄우고 / 한가히 오가며 갈매기와 노닐다가 달 아래 흠뻑 취해 뱃길을 돌리니 / 오호라 어디더냐 이 풍류만 못하리- 금호청천범난주(琴湖淸淺泛蘭舟) / 취차한행근백구(取此閑行近白鷗) 진취월명회도거(盡醉月明回棹去) / 풍류불필오호유(風流不必五湖遊)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500여년 전 대구를 대표하던 문신으로 대구10경(大邱十景)을 노래하였는데 그 중 제1경이 금호강 뱃놀이 이다. 아양루(峨洋樓) 아양루(峨洋樓)는 동촌 아양교 옆 금호강변에 있는 누각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금호강과 멀리 팔공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이양이라는 이름은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는 금호강의 아름다운 풍광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주변에 단풍이.. 2022. 11. 4. 성주 죽헌 최항경의 오암서원과 주변 사적들 오암서원(鰲巖書院)은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에 있는 서원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한강 정구(鄭逑 1543∼1620)선생의 문인이었던 죽헌 최항경(崔恒慶 1560~1638)과 그의 두 아들 최은, 최린 등 삼부자를 배향한 서원이다. 최항경은 1605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암정사(鰲巖精舍)를 지어 학문에만 힘썼다고 한다. 오암서원 전경 죽헌선생 사후 90여년이 지난 1730년(영조 6)에 운암서원(雲巖書院)을 지어 최항경의 제사를 지냈으나 1741년(인조 17) 서원훼철령으로 사라졌고, 1781년 다시 오암서원을 지어 배향했으나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숭덕재사(崇德齋舍)만 남기고 철거되었다. 1985년 후손들이 대강당과 광영루(光影樓)를 지었고, 2.. 2022. 11. 4. 벗꽃과 쌀다리로 유명한 거창 용원정(龍源亭) 용원정(龍源亭)은 거창 마리면 고학리에 있는 해주오씨들의 정자이다. 용원정앞에는 수령 100여년이 넘은 거수목 벗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데, 이 벗나무에 꽃이 만개했을 때는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전국적인 사진 명소가 되었다. 거창 용원정(龍源亭) 또 정자로 가기위해서는 길이 10여m정도의 앞개울 돌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 돌다리는 중간에 받침돌 기둥 하나에 크고 긴돌 두개를 연결지어 놓아서 마치 거문고가 누워있는듯한 평교인데, 1758년 오성재, 성화 두 형제가 쌀 1천석을 들여 놓았다하여 쌀다리라 부르며 보물로 여기고 있다. 돌다리와 용원정 정자 마루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 오성재(吳聖載),성화(聖化) 형제설교사적비(設橋事蹟碑) 효열각(孝烈閣) 효열비(孝烈碑) 오른쪽비는 효자해주오공유모모지려(孝子 海州吳公.. 2022. 10. 17. 구배석 위의 거창 건계정(居昌 建溪亭) 거창 상림리 건계정(居昌 上林里 建溪亭)은 거창읍에 있는 조선말기의 누정이다. 이 정자는 거창 위천(영천)의 맑은 물 위에 꼬리를 담그고 거열산성을 향해 기어오르는 거북바위 등 위에 지어진 거창 장씨의 정자로, 정자가 지어진 바위를 구배석(龜背石)이라 한다. 거창 건계정(居昌 建溪亭) 거창장(章)씨의 시조인 평보(平甫) 장종행(章宗行)은 고려 충렬왕(1240년)때 중국으로부터 귀화했는데, 그의 아들인 두민(斗民)이 공민왕 때 홍건적들이 침입하여 개경까지 점령 당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군사들을 지휘하여 개경으로부터 홍건적을 몰아내고 국란의 위기를 극복하는 무훈을 세우자, 이에 대한 공로로 공민왕이 두민을 아림군(娥林君)으로 봉했다. . 거창 위천 거창장씨 후손들은 시조 장종행과 두민의 공을 기려서.. 2022. 10. 17. 조선 선비들의 숨결어린 거창 심소정(居昌 心蘇亭) 거창 심소정(居昌 心蘇亭)은 거창 남하면 양항리에 있는 정자이다. 심소정은 조선 세종 때 북벌(北伐)의 공로자이며 성종때 단성현감을 지낸 화곡 윤자선(華谷 尹仔善)이 1450년 하향하여 1489년(성종 20)에 정자를 건립하고 인근에는 심영재(深淵齋)를 지어 산수를 즐기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1771년과 1917년에 중수하였으며 심소정 앞에는 소심루(小心樓)가 있다. 심소정앞의 소심루(小心樓) 또한 이곳은 1919년 지방 유림들이 모여 "파리장서거사"를 의논한 곳이며, 현 거창 초등학교의 전신인 창남의숙(昌南義수塾)을 세워 교육하던 곳이다. 건물 옆에는 윤자선의 유허비가 있으며, 심소정은 "마음을 되살리는 정자"라는 뜻이라 한다. 심소정(心蘇亭) 심소정 옆 윤자선의 유허비와 거창위천 심소정 내부 .. 2022. 10. 17. 국가지정 보물로 지정되는 봉화 청암정 봉화 청암정은 봉화읍 유곡리 닭실마을 안동권씨 충재종택 경역 내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로, 조선 중기 지리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조선 4대 길지 중 하나라고 칭송한 명당이다. 봉화 청암정(奉化 靑巖亭) 닭실마을은 안동권씨 세거지로 가문에서도 닭실권씨라는 독립적인 세력을 이루었고 종가인 충재 권벌(權橃, 1478~1548)의 고택을 중심으로 다수의 한옥이 마을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충재 권벌(1478~1548)은 중종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고 우찬성까지 올랐는데, 명종때 윤원형이 윤임, 류관, 류인숙 등 3대신을 배척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삭주에 유배되어 그 곳에서 생을 마쳤으며 선조때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정공이다. 거북바위 위의 청암정 청암정은 충.. 2022. 9. 13. 대산 이상정선생의 안동 고산서원(高山書院) 고산서원은 조선후기 유학자인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1711∼1781)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1789년(정조 13) 대산서당이 있던 자리에 건립된 서원이다. 이 서원 앞으로는 암벽벼랑에 천연기념물 제252호 구리 측백나무숲이 바로 보이고 그 아래로는 의성과 안동 일대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미천이 휘감아 흐른다. 미천(眉川)은 굽이쳐 흐르는 모양이 마치 눈썹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동 고산서원(高山書院) 고산서원은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추었으며. 특히 동재인 면언재(앙지재)와 서재인 백승각의 양 끝은 개방된 마루를 두어 주변 경관을 음미하도록 꾸며져 있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때는 앞의 누각만 허물고 다른 건물은 보존되었다. 1977년 고산정사와 백승각을 보.. 2022. 9. 1. 곡성 함허정(涵虛亭)과 제호정(霽湖亭)고택 곡성 함허정은 곡성군 입면 섬진강변에 있는 정자로, 1543년 심광형(沈光亨)이 만년에 유림들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세웠는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이다. 그 후 증손 청안현감(淸安縣監) 민각(民覺)이 쇠락한 정자를 옛터의 아래로 옮겨 새로 건립하였고, 다시 5대손인 세익(世益, 호는 浩然亭)이 중수하였다. 곡성 함허정 전경 이곳은 선진강변의 구릉지로 수림(樹林)의 풍광이 좋아 방백(方伯:관찰사) 등이 향음례(鄕飮禮)를 베풀거나 시인묵객들이 시를 짓고 읊던 곳으로, 안에는 기문(記文)과 시문(詩文) 등이 적힌 15개의 편액이 있다. 함허정의 전방은 천마봉(天馬峯)이고, 후방은 섬진강과 평야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한 것이며, 함허정에서 100m 가량 떨어진 곳에 심광형이 .. 2022. 3. 7. 이전 1 2 3 4 5 6 7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