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지금부터 530 여년전인 어느 늦가을날
조위 선생이 김맹성(1437~1487,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선원)과
조위의 동생인 조신(자는 숙도) 이렇게 세분이 직지사에 들러
주안상을 옆에 놓고 낮부터 밤 늦게까지 두견주를 돌려가며
시를 한 수씩 주고 받는다.
멀리서 개짓는 소리와 스님의 독경소리도 들어가면서
늦게는 밤새 촛불을 들고있는 노복의 수고로움까지 시에 등장하는데
이 시는 김 선원이 고령에 유배중이던 1478~1482년 경이 아닐까?
이러한 상황을 머리속에 상상하며 당시의 시 세계속으로 들어가 본다.
김선원(맹성), 숙도와 직지사에 가서 함께 읊다
-與金善源(孟性).叔度往直指寺 聯句
매계 조위(梅溪 曺偉. 1454~1503)
고국추장진(故國秋將盡) 고향땅에도 가을이 저무는데
초재공객심(招提共客尋) 절간을 객들과 함께 찾았다(태허)
청천음이인(淸川吟裏咽) 읊조림 속에 맑은 냇물은 콸콸 흐르고
향무망중심(香霧望中深) 바라보니 산안개는 더욱 짙어만 간다.(선원)
일난금어영(日亂禽魚影) 해가 비치자 새와 물고기 그림자가 어지럽고
풍전초목음(風傳樵牧音) 바람결에 꼴 베는 목동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숙도)
연농촌이명(烟濃村易暝) 안개 짙어지자 마을은 쉬이 어두워지고
엽탈수무음(葉脫樹無陰) 잎 떨어진 나무들은 그늘도 없다.(태허)
구수동서령(癯廋東西嶺) 동서쪽 고개 마루는 풀들도 시들었건만
고저상하림(高低上下林) 높고 낮은 위아래로 숲이 무성하다.(선원)
상위최만가(霜威催晩稼) 서리 무서워 늦은 수확을 재촉하고
세사박단금(世事迫單襟) 세상살이는 홑옷을 압박한다.(숙도)
격수문한견(隔水聞寒犬) 개울 건너에선 개짓는 소리가 들리고
연촌향석침(連村響石砧) 마을마다 다듬질 소리가 요란하다.(선원)
건려천취밀(蹇驢穿翠密) 절름발이 나귀타고 푸른 숲을 지나고
단책상금잠(短策上嶔岑) 단장을 집고 산꼭대기에 오른다.(태허)
경아운하잡(境訝雲霞雜) 저녁노을에 구름이 떠가는 것을 감탄하며
객무진누침(客無塵累侵) 나그네는 속세의 생각을 떨쳤다.(숙도)
명종지근사(鳴鍾知近寺) 종소리가 들리니 절간은 가까이 있고
사주한무금(賖酒恨無琴) 외상술은 있는데, 한스럽게도 거문고가 없구나.(태허)
부간고대벽(俯澗高臺闢) 굽어보니 시냇가엔 높다란 망루가 서 있어
영인노납흠(迎人老衲欽) 사람을 맞아들인 늙은 스님은 좋아한다.(선원)
청유자불첨(淸遊茲不忝) 맑은 놀이가 이를 더럽히지 않으니
복지흥난금(福地興難禁) 이곳의 즐거움은 그만두기가 어렵구나.(숙도)
야월문승게(夜月聞僧偈) 달밤에 스님들의 염불소리 들리고
송풍청학음(松風聽鶴吟) 솔바람에 학 울음소리가 실려 온다.(태허)
고담비사설(高談霏似屑) 주고받는 고상한 애기소리는 눈가루가 날리는 듯
가구척여금(佳句擲如金) 좋은 시구는 금가루를 뿌린 듯(선원)
보전휘단방(寶殿輝丹牓) 대웅전의 붉은 편액은 반짝이고
금로기록침(金爐起綠沉) 금향로엔 푸른 연기가 피어오른다.(태허)
산천원자고(山川元自古) 산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데
결구도여금(結搆到如今) 인연 따라 얽기여 지금에야 이르렀다.(숙도)
둔허동휘진(遁許同揮塵) 의지하며 함께 세속 먼지를 털어내고
진뇌공화심(陳雷共話心) 큰 소리로 떠들며 속마음을 이야기 한다.(선원)
보경령이전(報更鈴已轉) 오밤중을 알리는 종소리도 이미 지나
집촉복난임(執燭僕難任) 촛불 들고 있는 노복도 견디기 어렵구나.(숙도)
갈해장이작(渴解張梨嚼) 갈증을 풀기위해 배를 꺼내 한입물고
수소두주짐(愁消杜酒斟) 두견주를 마시니 근심은 사라진다.(선원)
당지정관관(當知情款款) 마땅히 알리라. 정이란 끈끈하게 이어 진다는 것을
의한세침침(宜恨歲駸駸) 또한 한탄하노라. 세월이 빠르게 흘러감을(숙도)
산수감행락(山水堪行樂) 산수는 즐길 만 하지만
잠영부족흠(簪纓不足歆) 벼슬살이는 흠모할게 못된다.(선원)
타시호분부(他時好分付) 다른 땐 나누어주길 좋아 했으나
작의경등임(作意更登臨) 다시 또 마음먹고 오른다.(숙도)
*김맹성(金孟性.1437~1487)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선원(善原), 호는 지지당(止止堂)
*숙도(叔度) 조위의 동생(弟) 조신(曺伸)의 자(字)로서 숙분(叔奮)또는 숙도
성주를 지나며 지지당을 회고하다 (過星州有懷止止堂)
매계 조위(매계 조위,1454~1503)
마상유연홀단혼(馬上悠然忽斷魂) 말 위에서 갑자기 망연자실 넋이 나가니
차생하처공론문(此生何處共論文) 이 같은 생활에 어느 곳에서 함께 문장을 논하랴?
난고혜사춘무소(蘭枯蕙死春無所) 난초와 혜초가 다 시들었으니 봄이 와도 소용이 없고
봉서난비일우훈(鳳逝鸞飛日又曛) 봉새와 난새도 다 날아갔는데 햇볕만 더욱 따갑구나.
무몰단양장우택(蕪沒丹陽張祐宅) 단양 장우의 집은 잡초만 무성하고
처량오하백난분(凄凉吳下伯鸞墳) 오하 백란의 무덤은 처량하구나.
임풍만주무종체(臨風謾酒無從涕) 바람속에 부질없이 눈물을 뿌리나
일속생추미존군(一束生蒭未尊君) 한 가지 제수로도 그대에게 제를 올리지 못하네.
*김맹성(金孟性.1437~1487)의 본관은 해평(海平)이며
자는 선원(善源), 호는 지지당(止止堂)이다.
지지당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자질이 총명하여 스승의 사랑을 받았다.
147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간원의 헌납과 정언을 지냈으며
1478년 도승지 임사홍과 함께 현석규를 탄핵한 죄로 고령에 유배되었다가
1482년에 풀려난 후, 뒤에 이조정랑·수찬 등을 지낸 뒤 사직하였다
바로 위의 시는 조위선생이 지지당 김맹성이 잠들어 있는
성주를 지나면서 갑자기 지난날들의 감회에 젖어 읊은 시로
지지당이 사망한 1487년 이후에 지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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