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한 폐렴으로 중국은 물론 지구촌 곳곳이 큰 몸살을 앓고 있는 형국에서
문득 조위선생이 중국 우한(무한)의 황학루에 올라 읊은 시가 생각나기에
바로 그 우한의 폐렴(코로나 바이러스)사태가 빨리 끝나서
아름다운 절경들을 자유롭게 오가며 볼수있는 날을 기대하면서.올려본다.
황학루는 중국 무한시(武漢市, 중국 발음 우한)에 있는 중국 강남의 3대 정자중 하나로
원래는 233년 삼국 시대에 오나라 왕, 손권(孙权)이
촉나라 유비(刘备)와의 전쟁을 대비해서 세운 망루였다.
지금도 황학루 가장 높은 곳에는 당시 손권의 강한 의지가 남아 있다.
‘촉천극목(楚天極目)’이라 적힌 편액이 그것인데, 초나라의 하늘을 끝까지 보겠다는 의미다.
처음에는 3층 28m 높이로 세워졌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전쟁과 화재에 7차례나 소실되고
중건되기를 반복하면서, 군사들이 망을 보던 장소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관망하는 누각으로 변화하였다.
중국 황학루
黃鶴樓 畵簇 황학루 그림족자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仙翁捻笛幾時歸(선옹염적기시기) 선옹(仙翁)은 피리 불며 어느 때나 돌아오려나?
縹緲層樓接翠微(표묘청루잡취미) 아득히 높은 누각 푸른 하늘에 접해있네
紛壁曾留黃鶴去(분벽증류황학거) 단장한 벽엔 일찍이 머물던 황학이 떠나가고
羽衣還跨白雲飛(우의환과백운비) 날개옷입고 다시 흰 구름 타고 날아갔네.
漢陽城郭臨晴浦(한양성곽임청포) 한양성은 쾌청한 물가에 접해있고
鄂渚風姻暗舊磯(악저풍인암구기) 물가는 안개에 원래의 모습 보이지 않네.
多少倚欄人悵望(다소의난인창망) 몇 사람이 난간에 기대어 쓸쓸히 바라보는데
世間安得學令威(세간안득학령위) 세상에는 어떻게 정령위(丁令威)를 본받겠는가?
*조위선생은 1483년 10월 명나라 칙사의 반송사 종사관이 되었다가
칙사를 따라온 갈귀와 같이 명나라에 갔다가 1484년 2월에 돌아왔는데
아마도 그때에 무한(우한)을 들러 이 시를 읊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전설속의 황학
황학루의 전설
옛날 황학루 터에는 주막이 있었다고 하는데
주인은 공짜 술을 즐기는 도사를 싫어하는 기색 없이 환대했다.
어느 날 먼 길을 떠나게 된 도사가 밀린 술값이라며 주막 벽에 황학 한 마리를 그려 줬다.
그리고 도사는 "손님이 올 때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시오.
황학이 나와서 춤을 추며 주흥을 돋울 거요."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실제로 주인이 손뼉을 치고 노래를 할 때마다 황학이 나와 춤을 추었는데,
이것이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지면서 주막이 크게 번성하였다.
10년 뒤 도사가 돌아와서는 피리를 불어 황학을 불러내더니 그 학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훗날 부자가 된 주인이 도사와 학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주막을 헐고 누각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촉천극목(楚天極目) 편액
당(唐)나라와 송(宋)나라 시대에는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찾아와
황학루를 예찬하는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최호(崔颢)가 쓴 시 <황학루>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며.
이백도 그의 작품을 보고 더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며
붓을 내려 놓았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황학루 초입에서 만나는 각필정(搁笔亭)이 이백이 붓을 내려 놓았다는 장소다.
지금의 황학루는 1884년 청나라 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85년에 재건한 것이다.
높이가 55.47m로 겉에서 보면 5층이지만 내부는 9층으로 이뤄져 있다.
황학루(黃鶴樓)
최호(崔顥,704~754. 당나라 때 시인)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옛날 신선이 황학을 타고 떠나갔고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이 곳에는 황학루만 덩그러니 남았네.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부반) 황학은 한 번 떠나선 다시 돌아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천년이 지나도록 흰 구름만 떠도네.
晴川歷歷漢陽樹(청천력력한양수) 맑은 날 강물에 비치는 한양의 나무들 또렷하고
芳草萋萋鸚鵡洲(방초처처앵무주) 앵무섬에는 싱그런 풀들이 뒤덮었네.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해 저무는 데, 내 고향은 어드메인가?
煙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수) 물안개가 강위로 피어올라 시름만 깊어지네.
*이백이 이 보다 더 훌륭한 시를 쓸수 없다며 붓을 내려 놓았다는 그 유명한 시다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
황학루에서 광릉으로 떠나는 맹호연을 보내며
이백(李白,701~762. 당나라 때 시인)
故人西辭黃鶴樓(고인서사황학루) 옛친구 서쪽 황학루를 이별하고
煙花三月下揚州(연화삼월하양주) 춘색 완연한 삼월에 양주로 내려간다네.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외로운 돛단배 멀어져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惟見長江天際流(유견장강천제류) 보이는 건 하늘에 맞닿아 흐르는 장강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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