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로정(狎鷺亭)은 대구 검단동 왕옥산 아래,
금호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있는 정자이다.
이 정자의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으나
병조참판을 지낸 이영(李榮,1494~1563)이 건립한 후 그의 외손인 채응린이
조선 명종 16년(1561년)에 후진 양성을 위해 물려 받은 것으로 보인다
채응린은 1570년 압로정의 인근 남쪽 산언덕의 돌 층계를 깨뜨려
소유정(小有亭)을 건립하였는데, 1597년 정유재란시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복원했으나 인근 마을 불량배들의 부주의로 1673년 다시 불에 탔는데
압로정은 1796년(정조 20), 8세 손 채필훈(1759~1838)이 복원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압로정은 여러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이 이르고 있으나
소유정은 복원하지 못하고 유허지만 남아있다.
금호강과 압로정
회화나무 오른쪽이 압로정의 대문채이다
압로정
-압로정이나 시 등의 편액은 별도 보관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압로정 정면
압로정의 파노라마
대청
대청 오른쪽
대청 왼쪽
왼쪽 방
압로정 뒷편
안에서 보는 대문채와 금호강(검단교쪽)
일부 허물어진 뒷담장과 서산원허비 출입문
-기념물이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정부지원 없이 문중에서 관리하므로 많은 어려움이 있는것 같다-
인천채씨사선생서산원허비(仁川蔡氏四先生西山院墟碑)
-이곳은 과거 서산서원이 있던 자리로 서원에 배향되었던 4선생인
다의당 채귀하,송담 채응린,달서재 채선수,양전헌 채선견의 단소(壇所)이다.
송담채선생유허비(松潭蔡先生遺墟碑)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1529~1584)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서(君瑞),
호는 송담(松潭)이며, 대구지역에서 최초로 성리학을 가르친 유학자라 전해진다.
외할아버지인 이영(李榮)은 병조참판을 지냈으며 퇴계 이황과 같은 해 청백리로 뽑힌 분이다.
압로정(狎鷺亭)은 "물새와 더불어 노닌다."는 의미로 자연을 사랑하며
강호(江湖)에 은거한 은자들이 취하여 제호(題號)로 사용하는 말이다.
왕옥산(王屋山)은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 황제(黃帝)가 찾아가서
도(道)를 물었다고 하는 신선들이 사는 산을 일컫는데, 송담 채응린이 따왔다고 하며
소유정(小有亭)은 세상의 33개 이상향 중에서 첫번째 왕옥산에 있는
작고 청허한 마을 “소유청허지천(小有淸虛之天)”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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