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관 삼문(臨瀛館 三門)은 강릉시 용강동에 있는 객사 문(門)이다.
단층의 맞배지붕으로 3칸 2호(戶)의 장중한 형태를 갖춘
우수한 팔각문(八脚門)으로 1962. 12. 20 국보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임영관 삼문은 고려 말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객사문으로
강원도내 건축물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며,
간결하고 소박한 주심포(柱心包)계 양식과 맞배지붕의 삼문(三門)이다.
배흘림 기둥은 현존하는 목조문화재 중 가장 크며,
기둥과 지붕이 만나는 곳의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 말,
조선 초기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노후와 변형으로 최근 완전 해체·보수하였으며,
공민왕의 친필로 전하는 임영관 현판이 임영관의 철거시
임영관 삼문에 걸었던 것을 2006년 10월 임영관 복원 준공 후
본래의 위치인 전대청에 옮겨 걸었다.
임영관은 강릉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 官衙)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이었다.
1994년 7월 11일 대한민국 사적 제38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83칸의 건물이 있었으나,
1627년(인조 5) 대청(大廳)이 화재를 당하여, 1633년 부사 유문화(柳文華)가
다시 건축하였다. 그후 수차례의 중수와 중창을 거쳐 1927년에 이르렀는데,
일제강점기인 1929년 강릉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면서 철거되었다.
그 뒤 객사문(국보 제51호)만 남아 있었는데 이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1993년 강릉 시청 건물을 지을 계획으로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관아 성격의 건물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임영지』의 기록을 통해 이 유적의 중요성과
옛 강릉부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후 강릉대도호부관아 복원계획에 의거 2006년 임영관등을 복원 하였다.
고려 공민왕은 1366년(무오년) 낙산사 관음에 후사를 빌기 위하여 왔다가
길이 막혀 열흘동안 강릉에 머물렀을 때 ‘임영관(臨瀛館)’ 편액을 썻었다.
그러나 현재의 편액은 1970년대에 다시 모사 제작한 것으로
임영관 삼문에 걸려 있던것을 임영관 건물을 복원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칠사당은 조선후기의 관아건물로 조선 시대 수령의 주요 업무가 칠사(七事)로
규정되었던 데서 연유하여 지방에서 수령의 집무처를 칠사당이라 명명하였다.
칠사란 빈민과 1)노약자를 구호하는 존심인서(存心仁恕),
2)비용 절약에 관한 행기염근(行己廉謹),
3)명령의 준행과 전파 상황을 보는 봉행조령(奉行條令),
4)제언과 식목을 관리하고 농사를 장려하는 권과농상(勸課農桑),
5)교육에 관계된 수명학교(修明學校),
6)공부(貢賦)와 군역(軍役)에 관한 부역균평(賦役均平),
7)노비 소송을 비롯한 잡송처리에 관한 결송명윤(決訟明允)을 말한다
이 집경전터는 경주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옮겨와 모셨던 곳으로
1631년 3월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지금은 전주 경기전 한 곳에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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