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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梅溪 曺偉 先生

매계 조위선생의 한시기행~(62)김제 금구에서

by 안천 조각환 2020. 4. 23.

금구는 김제시에 속한 금구면으로 되어 있으나 본래 백제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이었는데,

신라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어 전주의 영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의종(毅宗) 24년에 이의방(李義方)의 외향(外鄕)인 까닭으로 현령으로 승격시켰고,

조선조에서는 그대로 하였다. 금구현은 동쪽으로 전주부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16리,

북쪽으로 같은 부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8리, 남쪽으로 태인현(泰仁縣)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18리,

서쪽으로 김제군(金堤郡)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18리, 서울과의 거리는 5백 26리이다.

 

매계 조위선생이 전라도 금구현을 순례한것은 1496년 늦가을이었다.

당시 금구현의 동헌과 객사는 흔적을 찾을길 없는데

아마도 현재의 금구면사무소가 있는 자리로 보인다.

이곳에도 향교는 인근에 남아있어 어렴풋이나마 당시의 자취를 더듬어본다.

 

금구 향교 정문인 만화루

금구향교는 1390년(공양왕 2)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404년(태종 4)에 중창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5년(인조 13)양시산(楊翅山) 아래에 중건하였으며,

1675년(숙종 1)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뒤 6·25남침 등을 거치면서 계속 퇴락하여 소장 전적 등이

대부분 유실되었으며, 1954년에는 유림의 공의로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지방청소년들의 교육기관으로 활용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만화루(萬花樓) 등이 있다.

 

담너머의 향교 안

 

금구에서 사간 이형지(의무)의 시에 운하다

(金溝次李司諫馨之(宜茂)韻)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공문서는 구름 같아 또한 잠시 머무는 것   簿牒如雲且暫留(부첩여운차잠류)

세월 따라 나그네 마음도 함께 아득하여라.  年華客意共悠悠(연화객의공유유)

외기러기 달밤에 우는 가을 하늘은 넓고  賓鴻呌月秋空闊(빈홍규월추공활)

지는 해가 서산에 머금어 저녁놀은 사방에 퍼진다.  落日含山暮靄浮(낙일함산모애부)

 

벼슬살이 많은 시간 몹시 바쁨에 슬프니   簪笏多時悲局促(잠홀다시비국촉)  

어느 날 자연에서 유유자적 할거나?   林泉何日得優遊(임천하일득우유)  

쥐와 새가 나를 거듭 괴롭혀 참기 어려운데   不堪雀鼠重勞我(불감체서중노아)

일 당하면 망연자실 부질없이 근심에 쌓인다.   遇事茫然漫作愁(우사망연만작수) 

 

*금구(金溝) : 전북 김제시 금구면 일원

*이의무(李宜茂,1447~1507) : 조선 초기 문신, 자는 형지, 사간, 상의원정 역임

 

문이 잠겨있어 담너머로 보는 대성전
향교 옆문
교 정문인 만화루앞 길옆에 세워둔 비림
당시 금구현 동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면사무소 주변

 

금구면사무소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