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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조문 인물과 발자취,묘소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7)신축(辛丑, 1481)년 봄에

by 안천 조각환 2021. 1. 7.

지금부터 꼭 540년전인 1481년 신축(辛丑)년 봄에

문량공(文良公) 진산 강희맹이 중국 사신의 원접사가 되었를 때다. 

매계(梅溪)가 종사관이었는데 관서지방에 이르러 창화(唱和)한 시가 매우 많다.

공(강희맹, 姜希孟,1424~1483)이 매계(梅溪)를 희롱하여 절구 시를 지었는데,

 

그대 마음은 바람에 휘날리는 버들개지요

저의 마음은 소반 위에 놓인 구슬이어라.

구슬은 굴러도 소반위에 있건만

버들개지 날리면 종잡을 수 없어라.

 

구화봉이 꺽이고 대동강이 막히니

원앙단꿈 깨어나 천지신명 찾는데

때마침 찾아온 어디 사는 남자 이길래

온갖 교태 다 지으며 옛 님을 유혹하나.

 

붓을 들고 비단 속옷에 천만자를 휘두르니

한 자 한 획이 가슴에 점을 박았네.

먹자국이 낭군의 마음을 함부로 바꾸지 못해도

진시황이 불사른 공적은 비로소 믿노라.  하였다.

 

(강희맹)이 평양에 갔을 때, 전에 잠자리를 모셨던 기생이

이미 늙은 것을 보고 가련한 생각이 들어 적은 시에

 

십 년 만에 관서 땅에 다시 오니

기녀는 이미 백발이 되었고 나도 또한 늙었도다. 라고 했다.

 

그리고 의주에 이르러 사신을 보내고 돌아와 적은 시에

 

패강에서 늙은 기생을 또다시 보니

나를 따르면 뒷날 좋은 기약 있으리.

스스로 말하기를 용만은 예전 방문했던 곳이다.

거마를 따르고자 하나 한창 노는 때라네.

 

쇠피리를 한가하게 불며 새로운 솜씨를 자랑하고

꽃다운 머리털 살짝 쓸어넘기며 점점 싱글어감을 부끄러워하네.

나도 모르게 중도에서 애정이 식어버려

쓸쓸한 객관에 혼자 돌아오니 더욱 괴로워라. 라고 했다.

 

*패강은 대동강의 옛 이름으로 열수(洌水), 패수(浿水), 패강(浿江), 왕성강(王城江) 불렀다.

 

또 그녀의 부채에 적은 시에

 

나는 아직 검은 머리요 노도 젊은 계집

취하여 긴 거문고를 안고 통군정에 오른다.

거듭 용만에 이르니 정말 꿈과 같고

온 강의 구름을 불어 없애버려도 무방하리라.

 

십이 년 전에 이미 이별을 했다가

다시 와서 보게 되니 꿈인가 생시인가

거울 속의 나그네 모습 변한 줄 알지도 못하고

오히려 애정으로써 옛날을 말하네.  라고 했다.

 

그 뒤 그 기생은 더욱 늙어서 기적(妓籍)에서 빠졌는데

사신들이 평양에 오면 그 기생은 부채에 쓴 시를 그들에게 바쳤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그 시를 읊고는 도와주는 재물을 기생에게 주었다.

*용만은 의주의 옛이름이며, 통군정은 의주에 있는 정자이다.

 

*참고로 강희맹(姜希孟,1424~1483)은 조선전기의 문신,문장가로.

본관은 진주. 자는 경순, 호는 사숙재(私淑齋)· 무위자(無爲子),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또 이 당시에는 중국 사신이 조선의 왕보다 우월한 지위여서

원접사를 꾸려 압록강이 가까운 의주까지 가서 이들을 영접하였으며

왕은 서울의 모화루(慕華樓,지금의 독립문 자리)앞 

영은문(迎恩門)까지 직접 나가서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