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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조문 인물과 발자취,묘소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9)문인들의 시평(詩評)

by 안천 조각환 2021. 1. 22.

적암 조신(曺伸)선생은 저서 소문쇄록에서 고려말과, 조선초기 문인들의 시(詩)를

1)혼후(渾厚) 2)침통(沉痛) 3)공치(工緻) 4)호장(豪壯) 5)웅기(雄奇)

6)한적(閑適) 7)고담(枯淡)한 것 등 7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평하였다.

 

()라는 것은 말(言)이다.

사람의 말(言)이 같지 않은 것은 마치 그 얼굴과 같다.

시가 혹은 기험화려(奇險華麗)하고, 혹은 호장표일(豪壯飄逸)하고,

혹은 청준전실(淸峻典實)하고, 혹은 천연고담(天然枯淡)하여 각기 다르나,

그 원숙(圓熟)하여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루는 데 이르러서는

각기 장점이 있어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나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시어(詩語)가 1)혼후(渾厚, 온화하고 후덕하다)한 것은

 

목노(牧老, 목은 이색, 牧隱 李穡)의 시에

바람 자니 나무 모양이 중후하고 / 풍정수용중(風定樹容重)

비가 많으니 이끼 빛이 진해지네. / 우다태색심(雨多苔色深)

비는 뽕나무와 삼밭사이에 묻혀 보이지 않고/ 우암상마경(雨喑桑麻徑)

가을은 토란과 밤 동산에서 깊어 가노라. /추심우율원(秋深芋栗園)

 

정포(鄭誧, 자는 중부, 호는 설곡)의 시에

평생 부드러움은 번쾌와 함께 하는 것이거늘 /평생치여회등오(平生恥與瞺等俉)

후세에 반드시 양웅을 알아 줄 이 있으리. /후세필유양웅지(後世必有楊雄知)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의 시에,

아내는 잔 씻어 새 술독을 열고 / 세군세작개신운(細君洗酌開新醞)

어린 자식은 심지 돋우며 고서를 읽는구나 / 치자도등독고서(稚子挑燈讀古書)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시에,

향을 사르며 세상이 편안하기를 기도하고 /분향기도태(焚香祈道泰)

밥을 대하고는 풍년이 들기를 기원한다. /대식원년풍(對食願年豊)

해질녘 기러기 소리에 강촌은 저물어 가고 /안성낙일강촌모(雁聲落日江村暮)

한가롭게 새론 시 읊으며 홀로 누각에 기대노라. /한영시서독의루(閑詠詩書獨倚樓)

같은 따위이다.

 

2)침통(沉痛, 몹시 무겁고 어둡다)한 것으로는

 

목노(牧老)문적입서경시(聞賊入西京詩)

어찌 문득 이 같다고 하는고 /개위편여차(豈謂便如此)

망연히 할 말을 잊었노라. /망연미소위(茫然迷所爲)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시에,

근심스레 두자(杜子)3년 피리소리 듣다가 / 수청두자삼년적(愁聽杜子三年笛)

서글프게 장후(張侯)의 만리 뗏목 바라본다. /창망위강만리사(悵望爲江萬里槎)

 

안근재 안축(謹齋 安軸)의 시에,

해묵은 언덕에는 정든 풀이 없어도 /백년구롱무정초(百年丘隴無情草)

십리 걸친 안개에는 소식전하는 노래 있도다. /십리풍연유신구(十里風煙有信鷗)

 

설손(偰遜)의 시에

먼지 일으키는 바람이 자는 걸 보지 못하고 /불견풍진식(不見風塵息)

어찌하여 바다(한수)로 나아가려 하느뇨. /호위강한행(胡爲江漢行)

 

둔촌(遁村)의 시에,

늙어 갈수록 강과 바다의 풍파가 심해지니 /만래강해풍파악(晩來江海風波惡)

어느 깊은 물굽이에 낚싯배를 매어 둘꼬. /하처심만계조주(何處深灣繫釣舟)

 

3)공치(工緻, 기술이 교묘하고 치밀하다)한 것으로는

 

목노(牧老)의 시에

총애 이미 다함에 정령위의 학 같고

기량이 다함에 검주(黔州)의 노새로다.

비 그친 뒤 다시 오니 산 빛이 변하였고

불던 바람 그치려하니 풀은 향기를 내는 도다.

 

담 밖의 햇빛은 집을 뚫고 새 들어오고

처마사이 새 그림자는 병풍 속에 들락날락.

시를 지음에 백야를 대적할 이 없음을 알겠고

꽃이 짐에 우미인(虞美人)인들 어떻게 하랴.

 

포은(圃隱)의 시에

나그네는 채 돌아가지 못했는데 제비새끼를 만나고

살구꽃 지자마자 또 복사꽃 피는 도다.

매화 핀 들창에 봄빛이 이르고

판잣집엔 빗소리 많도다.

 

최졸옹의 시에

감나무 뜰에 비가 지나니 금단이 연하고

밤나무 언덕에 서리 내리니 옥각이 아롱이네.

 

*금단 : 발그레하게 익은 감      *옥각 : 벌어진 밤송이

 

사가정의 시에

늙은 계집종 실을 켜니 서리가 귀밑머리에 하얗고

어린아이들 글자배우니 먹이 적삼에 묻힌다.

산에 온다는 약속 있어 문 밀치기에 능하고

꽃이 짐에 누대에 떨어지는 것을 무심히 배우네.

 

점필재의 시에

시골집 대나무는 죄다 머리 숙여 땅에 부딪치고

들판 나무에 앉은 새는 모두 가지에 날개를 드리웠네.

들판의 소는 코를 들고 나무를 건너가고

둥지속의 백로는 새끼 데리고 저녁연기를 가른다.

 

시골집은 온통 제비집이고

들판의 물에는 이미 모를 심었네.

소와 양 해묵은 갈대를 뜯어먹고

백로와 황새는 뜬 뗏목에 모여드네.

 

4)호장(豪壯, 기상이 씩씩하다)한 것으로는,

 

목은의 시에

성은 비어 달은 한 조각인데

돌은 해묵고 구름은 천년 세월이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시에

푸른 구름은 저물녘 물고기와 오리가 노니는 물에 마주해 있고

단풍든 나무는 가을이면 새와 쥐 노니는 산을 있노라.

 

정몽주의 시에

푸른 산 보일 듯 말 듯 한 부여국이요

누런 나뭇잎 어지러운 백제성이다.

구월 바람 거세니 나그네를 슬프게 하고

한평생 호기는 서생을 그르치도다.

 

산하의 평평한 숫돌은 서승상이요

천지의 경륜은 이태사로다.

옹성에서는 사양 속에서 피리소리 들려오고

과포에서는 가랑비 속에 돛배가 지나가네.

 

이행의 시에

만선에 가을 달빛이 비치기를 기다려

피리 불며 강가 누대 지나기를 좋아했다네.

 

사가(四佳)의 시에

주렴은 장마비에 더위를 재촉하고

의건은 연꽃바람에 향내 젖노라.

숲 우거진 산봉우리 울부짖으니 바람은 북쪽에서 불고

북두칠성 밝게 빛나니 달은 서쪽으로 기우네.

 

점필재의 시에

이글이글한 해는 군산도로 지고

흰 깁을 드리운 연기는 벽골못에 비꼈네.

구름이 돌아간 골짜기에는 발과 깃발에 해 저물고

바람에 물결이는 못가 둑에는 배개와 댓자리에 가을드네.

 

소와 양 멀리 나가 치는데 풀은 들판에 깔렸고

백로와 황새 놀라 날 적에 바람이 누대에 친다.

 

십년동안의 세상일 읊조리는 가운데 외롭고

팔월의 가을 모습 나무사이에서 어지럽네.

이름난 정원에는 벌써 매화열매 맺었고

수놓은 거리에는 모두가 버들개지로다.

 

5)웅기(雄奇, 우수하고 기이하다)한 것으로는,

 

목노의 시에

배고 눕자니 시끄러운 마른 콩깍지는 말 야윈 것 가엾고

담 두른 묵은 냉이는 사람 살찌기 바란다.

 

익재(益齋)의 시에

십년동안의 고생은 고기가 천리를 가는 것 같고 / 十年艱險魚千里

만고의 부침은 담비가 한 언덕에서 죽는 것 같도다. / 萬古升沈貉一丘

 

굉연(宏演)의 시에

어린아이는 구름 속으로 약 캐러가고

어른은 대숲 밖에서 거문고를 안고 온다.

호수의 어룡은 가을 물에 차갑고

동남 땅 늙은이는 새벽 별처럼 드물다.

 

천년(天女)는 간혹 파란 옥으로 된 지팡이를 가졌고

선인은 홀로 황정경을 읽는다.

 

설손(偰遜)의 시에

바람 앞의 새 한 마리 사람을 스쳐 지나가고

하늘 끝 외로운 구름 기러기 나는 모습 배우네.

청산은 용처럼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흰 물결에 말린꽃은 날리는 눈처럼 가볍다.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의 시에

한 평생 내 신세는 나그네로 길을 헤맸고

온 골짜기 안개와 노을 끼니 중은 문을 닫네.

 

6)한적(閑適, 막힘에 이르다)한 것으로는,

 

목노(목은,牧隱)의 시에

밤기운 차니 고양이 놈 가까이 오고 / 夜冷狸奴近

하늘이 맑으니 제비가 높이 난다 / 天晴燕子高

남은 여생에는 깊이 문을 닫고 /殘年深閉戶

맑은 새벽이면 홀로 뜨락을 거닌다. /晴曉獨行庭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의 시에,

대나무를 아끼느라 둘러가는 길을 내었고 / 護竹開迂徑

산이 좋아 조그만 누대를 지었노라. / 憐山起小樓

 

급암(及菴) 민사평(閔思平))의 시에,

고기 낚느라 울타리 가 돌에 고요히 앉아 있고 / 釣魚靜坐籬邊石

고사리 캐느라 비 갠 날 집 뒷산에 오른다. / 採蕨晴登屋上山

 

설장수의 시에

따뜻한 봄 잔잔한 호수에는 안개가 천리에 끼었고

맑은 가을 옛 물가엔 달빛 속에 배한척이 홀로 떠 있네.

 

쌍매당(雙梅堂)의 시에

뀌뚜라미는 벽속에 숨어서 울고

잠자리는 사람 가까이에 앉아있다.

풀은 눈 녹는 언덕에서 돋아나고

소나무는 해 저무는 마을에 비스듬히 누워있네.

 

둔촌(遁村)의 시에

어떻게 하면 이웃에 자리 잡은 두 늙은이 되어

살구꽃 핀 봄비 속에서 나란히 밭 갈기 할 수 있으리.

 

사가(四佳)의 시에

생강의 수염뿌리 내 수염처럼 흰데

홍시의 얼굴은 누굴 위해 붉나.

백발이 되면 공정한 도리가 생기지만

푸른 산은 세상의 물정에 아랑곳하지 않네.

 

따뜻한 햇빛은 구슬 같고

윤택한 눈빛은 우유 빛 같다.

 

점필재의 시에

산골짜기 샘물은 대 홈통에 남아있고

향은 살라 없애도 소반에 쌓이네.

도마뱀은 깊은 풀 속에서 뛰고

어린아이들은 얕은 모래사장에 모여 있다.

 

버드나무 가에 채색한 배 대어두고

대나무 아래에서는 바둑판을 울린다.

나나니벌은 붓 대롱에 집을 짓고

점무늬 모기는 향내 나는 연기를 지나네.

 

구름에 비친 빗줄기 후두둑 지나가고

저편 대숲에서는 꽃향기 은은하게 전해온다.

 

7)시어가 고담(枯淡, 꾸밈이 없는 수수한 내용과 풍부한 시풍)한 것으로는,

 

목은(牧隱)의 시에,

찢겨진 창에는 달빛이 가득하고 / 破窓多月影

텅 빈 평상에는 솔 그림자 반이로세 / 虛榻半松陰

장마가 깊으니 병든 나뭇잎 때때로 떨어지고 /雨深病葉時時落

봄이 지나가니 남은 꽃이 연이어 핀다. /春去餘花續續開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의 시에,

강 하늘에 구름 걷히니 돌아가는 기러기가 보이고 / 江天雲盡見歸雁

산사에 달이 밝으니 두견새 소리 들린다. / 山寺月白聞杜鵑

 

둔촌(遁村)의 시에,

여윈 말은 해질녘에 울고 / 瘦馬鳴西日

파리한 아이는 삭풍을 등지네. / 嬴童背朔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