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도 지나고 말복도 지나가고 그래서 무더위도 한풀 껶였나보다.
.그래서 모처럼 파란 하늘에 파란 바다를 즐기고자 남해의 노도를 찾아간다.
노도는 서포 김만중이 귀양살이를 했던곳으로 남해군에서 서포문학관, 사씨남정기원,
구운몽원, 서파 초옥, 작가창작실 등 노도 문학의 섬으로 조성해놓았다.
백련마을 해변의 그늘막
남해 백련마을은 서포 김만중이 귀영살이했던 노도로 가는 배를 타는 곳이다.
서포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예학으로 유명한 거물 유학자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자로,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서포(西浦) ,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백련마을 앞바다
서포 김만중은 감장생의 손자이던 아버지 김익겸이 정축호란으로
당시 강화도에서 순절하여 전쟁통에 태어난 유복자였다.
이런 연유로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구운몽을 썼다고 전해진다.
김만중은 1665년 과거에 급제, 1671년 암행어사,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리고 제2차 예송논쟁으로 파직당했다가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며, 1686년 장희빈 일가에 대해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선천으로 유배되었다.
남해 노도
1687년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기사환국으로 서인세력이 몰락하여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이곳 남해 노도로 유배되었다.
김만중은 이곳에서 숙종을 참회시키기 위해 사씨남정기를 집필했으며
1692년(숙종18) 6월 14일 향연 55세로 유배지인 이곳 노도에서 사망하였다.
백련마을과 노도 배시간
백련마을은 항구라는 이름도 갖지 못한 아주 작은 어촌으로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데다, 날씨도 무덥고 배시간도 맞지 않아
서포의 한이 서린 노도 탐방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발길을 돌린다.
봄이면 다랭이 유채꽃으로 유명한 두모마을 풍경
두모마을 앞바다(노도 바로옆)
남해 쇠섬
쇠섬주위 갯벌의 자연 굴
선소항이 보이는 곳
쇠섬 입구 담벽의 시
바다 문무학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것은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 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 말 한마디로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문무학은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전 대구문화재단 대표이다
노량진 앞바다
이곳은 이순신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노량 관음포해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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