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위(曺偉)는 1484년 서른하나에 연로한 아버지 봉양을 위해
자청(걸군)해서 함양군수로 나갔다. 홍문관저작 겸 세자시강원사경,
홍문관박사,부수찬, 영안도(지금의 함경도)경차관, 포쇄관, 시독관,
부교리, 시강원문학, 홍문관응교 등을 역임한 뒤였다.
함양 학사루
백성이 곧 하늘이다. 목민관 조위는 고을 백성들이 토지세를 균등하게
납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함양지도지(咸陽地圖志)" 를 만들었다.
향사례와 향음주례를 실시해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를 권장했고,
학문을 일으켜 재주 있는 사람을 골라 가르쳤다."어질고, 용서하고,
간편하고, 검소하게"를 행정의 원칙으로 세우고 백성을 다스렸다.
민본사상에 의한 위민정치의 실천이었다.
함양 향교 태극루
조위가 어떤 목민관이었는지는 함양군수 시절에 지은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남으로 와 속함 땅에서 가을을 세 번 맞으니
한 해 내내 노력해도 반은 근심이었지.
단솔한 생애는 팽택과 비슷하건만
당당한 기상으로 엄주를 생각해본다.
남래삼견속함추(南來三見速含秋) / 졸세진노반시수(卒歲塵勞半是愁)
탄솔생애류팽택(坦率生涯類彭澤) / 헌앙기개상엄주(軒昻氣槪想嚴州)
함양 향교 명륜당
감방에는 죄수가 없으니 기뻐할 만하고
가을걷이도 이미 끝났으니 쉬어도 좋으리라.
봄바람에 머리 돌려 빈궁한 곳을 구휼하니
집집마다 피리 불며 사당 안에서 놀고 있네.
영무하교료감희(囹無荷校聊堪喜) / 가이등장편가휴(稼已登場便可休)
회수춘풍진궁처(回首春風賑窮處) / 가가고적사중유(家家鼓笛社中遊)
개평마을 일두 정여창 고택
눈앞에 황금빛의 벼가 익어가는 가을
이제는 백성들도 배부르니 근심이 없으리.
정령 너희들은 어려운 시절을 잊지 말며
다를 해를 헤아려 모여 놀지를 말라.
만안황운피화추(滿眼黃雲犤亞(禾+亞)秋) / 민금득포가무수(民今得飽可無愁)
정령여배무망거(丁寧汝輩無忘莒) / 상략타년막작주(商略他年莫作州)
지리산 칠선계곡 서암
책상머리에서 공문서 정리의 번거로움이 싫으니
길이 야외에서 수레를 부리는 일도 그만두리라.
벼슬과 세상사에 서로 얽매였으니
나막신 신고 등산하는 놀이도 못하겠구나.
염견안두공부극(厭見案頭公簿劇) / 요지야외역차휴(遙知野外役車休)
진루세망상견박(塵縷世網相牽縛) / 미의등산납극유(未擬登山蠟屐遊)
함양 상림공원 ~ 최치원이 함양 태수 시절 조성한 숲
조위는 해가 저물도록 하루 종일 일하지만 백성들 생각에 절반은 근심이다.
추수가 끝나 먹을 것이 풍성해서 백성들은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다.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 406호, 수령 800여년)
지난 춘궁기의 아픔을 잊고 집집마다 모여앉아 북과 피리를 치고 불며
여유롭게 지낸다.황금들판에 벼가 익어가는 가을, 백성들은 배부를 수 있어
근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위는 쉴 틈이 없다.
함양 안의계곡 농월정
백성들을 독려하여 모시풀로 섬유를 만들고 겨울 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또 흉년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들로 나가는 수레가
없을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흉년으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책상에 쌓인 문서는 지겨워서 꼴도
보기 싫지만 백성들을 생각하면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함양 상림공원 이끼동산
나막신을 신고 산에 오를 수는 없다. 나막신을 신고 산행할 여유가 없다는 것은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가까운 곳으로 산책 나갈 여유조차 없다는 뜻이다.
이 시를 보면 조위가 오로지 백성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할 수 있다.
함양 용추폭포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격무에서 잠시 벗어나 단풍놀이 한 번쯤
다녀왔을 것이다. 조위가 하늘과 백성은 하나라는 천민일치(天民一致)에
중점을 두고 고을을 다스렸음을 알 수 있는 글이 또 있다.신이 경상도에
있으면서 지난해의 수재를 직접 겪었는데, 전고에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함양 상림공원 꽃무릇
전답이 모두 떠내려가 백성들은 이미 세전으로부터 주린 빛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재해의 피해를 위에 보고하지 않아 국가에서 구황정책을 쓰지 못했으니,
신의 생각으로는 굶어 죽는 자가 반드시 많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또 재해의 피해를 답사할 때, 색리와 서원들이 그 죄가 무거워질까 두려워하여
피해가 있음에도 오히려 실적이 좋다고 보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림공원 야화(1)
밭주인이 감사에게 호소했지만 감사 또한 본관의 인리(人吏)를 시켜
조사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억울한 심정을 다 살피지 못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만약 호소하는 자가 있으면 한결같이 타관을 시켜서
다시 심사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또 공물에 있어서도,
백성들은 금년에 바칠 것도 근근히 준비하는 실정인데 명년의 것까지
앞당겨 받고 있어 백성들의 어려운 형상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1498년(연산군 4년) 특진관으로 나가서 임금께 올린 글이다.
상림공원 야화(2)
피폐한 농촌 현실을 확인하고, 과세의 폐단과 색리와 서원의 농간을
지적하며 시정을 건의하고 있다.대개 백성은 오직 나라의 근본이요,
곡식은 백성의 하늘이다.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는 마땅히
농사의 어려움을 안 뒤라야 개인적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절약하며
검소할 수 있고, 백성을 아껴 농사 시기를 빼앗지 않을 것이다.
함양 안의계곡 거연정
농사시기를 빼앗지 않는 것이 백성의 살림을 넉넉하게 하는 길이다.
백성의 살림이 넉넉해지면 저절로 교화가 행해진다.
교화가 행해지면 상하가 편안하다. 4민 중에 농업이 가장 고되다.
더위에 땅을 갈고 김매느라 몸이 젖고, 해가 질 때까지 발이
고통스럽도록 부지런히 해도 주림과 추위를 면할 수 없다.
남계서원 ~ 일두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
그러나 상업에 의지하여 이익을 얻는 자가 도리어 배불리 먹고
편안히 사는 낙을 얻는다. 이로 말미암아 근본에 힘쓰는 자는
날로 적어지고 말단의 이익을 좇는 자가 날로 많아지나니,
어찌 백성이 곤궁해지지 않겠는가.
함양 청계서원 ~ 탁영 김일손을 기리기 위한 서원
조위가 1491년 쓴 「권농문서」이다.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므로
정책을 세우는 자는 마땅히 농사를 알고 농민의 아픔을 알아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함양 목현리 구송(천연기념물 제358호)
농사를 권하고 상업을 줄여야 힘들게 일하는 농민이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백성의 아픔을 알고 백성 입장에서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은 위민정치 사상의 본질인
민본(民本)의 이상 실현 추구라 하겠다.
이런 목민관이 다스리는 고을은 그 백성이 편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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