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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梅溪 曺偉 先生

매계 조위선생의 만분가(萬憤歌)

by 안천 조각환 2024. 5. 7.

만분가는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선생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의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전남 순천으로 이배되었을 때 지은것이다.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읊었는데, 이것은 한국 최초의 유배가사(流配歌辭)이다.

 

 

지은이가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유배된 뒤 귀양살이하는 원통함을,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처지를 옥황상제로 비유된 성종에게 하소연한

내용으로 작품의 가의(歌意)가 굴원의 천문(天問)과 유사한 점이 있다.

 

 

만분가는 한편으로는 임을 잃은 여성을 서정적 자아로 설정하여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辭)의 형상을 취하는 한편, 만분가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유배를 당하게 된 현실에 대한

발분의 정서를 아울러 표출하는 특징을 갖는 유배 가사로, 작가가 귀양간

처지를 천상 백옥경에서 하계로 추방된 것에 비유하여 지은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후대에 지어지는 정철의 사미인곡 속사미인곡,

 그리고 그것을 모방한 김춘택의 별사미인곡과 이진유의 속사미인곡

송주석의 북관곡, 김진형의 북천가, 이방익의 홍리가 

조선시대 유배가사의 효시가 되었다.

 

통도사 설중매

 

만분가(萬憤歌)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천상 백옥경  십이루 어디멘고 / 오색운 깊은 곳에  자청전이 가렸으니

구만 리 먼 하늘을  꿈이라도 갈동말동 / 차라리 죽어져서  억만 번 변화하여 

남산 늦은 봄에  두견의 넋이 되어 / 이화 가지 위에 밤낮으로 못 울거든

삼청 동리에 저문 하늘 구름 되어  /  바람에 흘리 날아 자미궁에 날아올라 

옥황 향안 전에 지척에 나가 앉아 / 흥중에 쌓인 말씀 실컷 사뢰리라.

 

동해 월출

 

아아! 이내 몸이 천지간에 늦게 나니 / 황하수 맑다마는 초객의 후신인가

상심도 가이없고 가태부의 넋이런가 / 한숨은 무슨 일인고 형강은 고향이라  

십 년을 유락하니 백구와 벗이 되어 / 함께 놀자 하였더니 어르는 듯 괴는 듯  

남 없는 님을 만나 금화성 백옥당의 / 꿈조차 향기롭다.

옥색실 이음 짧아 님의 옷을 못하 여도 / 바다 같은 님의 은혜 추호나 갚으리라. 

 

합천 오도산 운무

 

백옥같은 이내 마음 님 위하여 지키고 있었더니 / 장안 어젯밤에 무서리 섞어치니 

일모수죽에 취수도 냉박하구나 / 유란을 꺾어 쥐고 님 계신 데 바라보니  

약수 가로놓인 데 구름길이 험하구나 / 다 썩은 닭의 얼굴 첫맛도 채 몰라서  

초췌한 이 얼굴이 님 그려 이리 되었구나 / 천층랑 한가운데 백 척간에 올랐더니  

무단한 양각풍이 환해 중에 내리나니  / 억만장 못에 빠져 하늘 땅을 모르겠도다.

 

고창 일몰

 

노나라 흐린 술에 한단이 무슨 죄며 / 진인이 취한 잔에 월인이 웃은 탓인가 

성문 모진 불에 옥석이 함께 타니 / 뜰 앞에 심은 난이 반이나 이울었구나

오동 저문 비에 외기러기 울며 갈 때 / 관산 만릿길이 눈에 암암 밟히는 듯  

청련시 고쳐 읊고 팔도한을 스쳐 보니 / 화산에 우는 새야 이별도 괴로워라  

망부 산전에 석양이 거의 로다  / 기다리고 바라다가 안력이 다했던가. 

 

철원 단정학

 

낙화 말이 없고 벽창이 어두우니  /  입 노란 새끼새들 어미도 그리는구나  

팔월 추풍이 띠집을 거두니 /  빈 깃에 싸인 알이 수화를 못 면하도다 

생리사별을 한 몸에 흔자 맡아  / 삼천장 백발이 일야에 길기도 길구나  

풍파에 헌 배 타고 함께 놀던 저 무리들아  / 강천 지는 해에 주즙이나 무양한가.

 

고창 동림지 가창오리 군무

 

밀거니 당기거니 염예퇴를 겨우 지나  /  만 리 붕정을 머얼리 견주더니  

바람에 다 부치어 흑룡 강에 떨어진 듯  /  천지 가이없고 어안이 무정하니  

옥 같은 면목을 그리다가 말려는지고  /  매화나 보내고자 역로를 바라보니   

옥량명월을 옛 보던 낯빛인 듯  /  양춘을 언제 볼까 눈비를 혼자 맞아  

벽해 넓은 가에 넋조차 흩어지니  /  나의 긴 소매를 누굴 위하여 적시는고  

 

동해 추암 설경

 

태상 칠위 분이 옥진군자 명이시니  /  천상 남루에 생적을 울리시며  

지하 북풍의 사명을 벗기실까  /  죽기도 명이요 살기도 하나리니   

진채지액을 성인도 못 면하며  /  누설비죄를 군자인들 어이하리  

오월 비상이 눈물로 어리는 듯  /  삼 년 대한도 원기로 되었도다   

초수남관이 고금에 한둘이며  /  백발황상에 서러운 일도 하고 많다.   

 

경주 동궁(안압지) 설경

 

건곤이 병이 들어 흔돈이 죽은 후에  /  하늘이 침음할 듯 관색성이 비취는 듯 

고정의국에 원분만 쌓였으니  /  차라리 할마같이 눈 감고 지내고저   

창창막막하야 못 믿을쏜 조화로다  /  이러나저러나 하늘을 원망할까 

도척도 성히 놀고 백이도 아사하니  /  동릉이 높은 걸까 수양산이 낮은 걸까 

남화 삼십 편에 의론도 많기도 많구나  /  남가의 지난 꿈을 생각거든 싫고 미워라. 

 

삼척 무건리 이끼폭포

 

고국 송추를 꿈에 가 만져 보고  /  선인 구묘를 깬 후에 생각하니 

구회간장이 굽이굽이 끊어졌구나  /  장해음운에 백주에 흩어지니  

호남 어느 곳이 귀역의 연수런지  /  이매망량이 실컷 젖은 가에 

백옥은 무슨 일로 청승의 깃이 되고  /  북풍에 혼자 서서 가없이 우는 뜻을 

하늘 같은 우리 님이 전혀 아니 살피시니 /  목란추국에 향기로운 탓이런가.  

 

가야산 일출

 

첩여 소군이 박명한 몸이런가  /  군은이 물이 되어 흘러가도 자취 없고

옥안이 꽃이로되 눈물 가려 못 보겠구나 /  이 몸이 녹아져도 옥황상제 처분이요 

이 몸이 죽어져도 옥황상제 처분이라  /  녹아지고 죽어지어 혼백조차 흩어지고

공산 촉루같이 임자 없이 굴러 다니다가  /  곤륜산 제일봉에 만장송이 되어 있어

바람 비 뿌린 소리 님의 귀에 들리기나  /  윤회 만겁하여 금강산 학이 되어

일만 이천 봉에 마음껏 솟아올라  /  가을 달 밝은 밤에 두어 소리 슬피 울어

님의 귀에 들리기도 옥황상제 처분이겠구나.

 

진안 마이산 여명

 

한이 뿌리 되고 눈물로 가지삼아  /  님의 집 창 밖에 외나무 매화 되어

설중에 흔자 피어 참변에 이우는 듯  /  윌중소영이 님의 옷에 비취거든

어여쁜 이 얼굴을 너로구나 반기실까  /  동풍이 유정하여 암향을 불어 올려

고결한 이내 생계 죽림에나 부치고저  /  빈 낚싯대 비껴 들고 빈 배를 흔자 띄워

백구 건너 저어 건덕궁에 가고 지고  /  그래도 한 마음은 위궐에 달려 있어

내 묻은 누역 속에 님 향한 꿈을 깨어  /  일편장안을 일하에 바라보고 외로 머뭇거리며

이몸의 탓이런가 이몸이 전혀몰라  /  천도막막하니 물을 길이 전혀 없다.

 

덕유산 일출

 

복희씨 육십사괘 천지 만물 섬긴 뜻올  /  주공을 꿈에 뵈어 자세히 여쭙고저

하늘이 높고 높아 말없이 높은 뜻을  /  구름 위에 나는 새야 네 아니 알겠더냐

아아 이내 가슴 산이 되고 돌이 되어  /  어디어디 쌓였으며 비가 되고 물이 되어

어디어디 울며 갈까 아무나 이내 뜻 알이 곧 있으면 /  백세교유 만세상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