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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梅溪 曺偉 先生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삶과 생각

by 안천 조각환 2024. 6. 25.

2024년 6월 21일 오후 4시 김천문화원에서 열린

매계 조위선생 학술발표회에서는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융합본부장

권진호박사가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삶과 생각"이라는 주제로

생애와 시(詩)세계를 요약하여 발표했는데, 그 전문을 여기에 싣는다.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삶과 생각

 

조위(曺偉,1454~1503)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 시호는 문장(文莊)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신라 때 창성부원군을 지낸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고

고려 태조의 부마가 된 조겸(曺謙)을 중시조로 한다.

 

매계 조위의 상계(上系), 사우관계 및 학문연원

 

충간공 조석문(曺錫文)에게 소학을 배웠고, 자형이자 스승인

점필재 김종직에게서 김굉필,정여창 등과 동문 수학하였으며

신종호,권건,정석진,유호인, 채수,이창신,허침,정미수 등과는

벗으로서 학문을 강론하고, 시문을 수창하였다.

 

매계의 관직생활

 

매계 조위는 홍문관에 있은지 15년동안 가끔 춘방(시강원 문학)과

사헌부(장령)에 한 두차례, 승정원에 3년 남짓, 외직으로 관찰사

두 차례(충청감사.전라감사), 군수(함양)로 한 차례 등을 역임하였다.

 

성종의 부음을 듣고, 문국상(聞國喪) 한시

 

국상을 듣고 / 문국상(聞國喪)

 

예관이 전한 부음 역마로 달려오니 / 예관전부역서래(禮官傳訃驛書來)

부모를 여윈듯한 통곡을 어찌 견디랴. / 통곡나감상고애(痛哭那堪喪考哀)

눈물이 마르고 창자 찢어지려는데 / 누진안고장욕열(淚盡眼枯腸欲裂)

청산은 말이 없고 서산에 해만 지누나. / 청산무어일서퇴(靑山無語日西頹)

 

6년의 유배생활

 

그는 6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곳에 유배 온 한훤당 김굉필과 

서로 오고가며 매우 친하게 지냈다. 매계가 졸(卒)하자

한훤당은 제문을 지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또한 매계는 규정기(葵亭記)와 임청대기를 비롯하여 유배가사의

효시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 만분가를 짓기도 하였다.

 

매계의 대표적 시문

 

                  진안 마이산(鎭安 馬耳山)                          

 

우뚝하다 쌍으로 높은 저 마이봉  /  돌올쌍열마이봉 (突兀雙劣馬耳峰)

구름 끝에 벽부용이 솟아났구려 /  운단격출벽부용(雲端擊出碧芙蓉)

어느 제 중천의 날개를 얻어 /  하당삽득충천익(何當揷得冲天翼)

첨두를 날아올라 가슴 한번 풀어볼꼬 /  비상봉두일탕흉(飛上峰頭一盪胸)

 

 

밤비에 차가운 날씨 옥 같은 살갗을 여위게 하는데

                                    / 야우생한수옥기(野雨生寒瘦玉肌)

아침에 나무를 안고 돌며 긴 가지를 휘어당겨 본다.

                                    / 평명요수만장지(平明繞樹挽長枝)

지금은 파발 사자의 소식도 없으니

                                    /  여금역사무소식(如今驛使無消息)

비록 한향을 잡은들 누구에게 붙여줄 것이랴.

                                  / 종유한향기여수(縱有寒香奇與誰)

 

31세(1484년) 함양 군수 시절에 지은 시

 

남으로 와 속함(함양)에서 가을을 세 번 맞으니  /  南來三見速含秋(남래삼견속함추)

한 해 내내 노력해도 반은 근심이네.  / 卒歲塵勞半是愁(졸세진노반시수)

담백한 생애는 도연명과 비슷하고  /  坦率生涯類彭澤(탄솔생애류팽택)

당당한 기개는 엄자릉을 생각해보네.  /  軒昻氣槪想嚴州(헌앙기개상엄주)

 

감방에는 죄수 없으니 기뻐할 만하고  /  囹無荷校聊堪喜(영무하교료감희)

가을 걷이도 끝났으니 쉬어도 좋으리라.  / 稼已登場便可休(가이등장편가휴)

봄바람에 머리 돌려 빈궁한 곳을 구휼하니 /  回首春風賑窮處(회수춘풍진궁처)

집집마다 피리 불며 사당 안에서 놀고 있네.  / 家家鼓笛社中遊(가가고적사중유)

 

매계에 대한 평가

 

의주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47세(1500년) 때

전라도 순천으로 유배지를 옮기게 되는데, 한강을 지나면서 읊은 시다.

 

시름 속에 돌아오니 하늘도 안 보이더니 / 모소귀래불견천 (眊矂歸來不見天)

종남산 지척에서 내와 구름 바라보네. / 종남지척망운연(緃南咫尺望雲煙)

삼 년의 변방살이 외론 신하 그 눈물이 / 삼년색하고신루(三年塞下孤臣淚)

오늘 이 강위에선 더욱 아득하여라. /  금일강두배암연(今日江頭倍黯然)

 

한훤당 김굉필의 제문

 

한 차례 군수가 되어서는 백성들이 그 은혜를 입었고

두 도(道)에서 교화를 펴니 사람들이 그 덕을 사모하였네.

 

 

~ 홀로 남은 외로운 몸으로 그림자 돌아보며 한 숨만 짓네.

이제 남은 세월을  뉘와 함께 보낸단 말인가. ~

 

술 부어 정성을 아뢰니 늙은이 눈물이 먼저 흐르네.

아! 슬프도다. 부디 흠향하소서.

 

조위(曺偉)는 1507년(중종 2) 신원되어 이조참판에 증직되다.

1708년(숙종 34)순천 유생들의 상소로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문장(文莊)이란 시호를 받았다.

 

매계 조위는 45세(무오, 1498년) 때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무오사화가 일어난 것을 알고

같이 갔던 동생 신(伸)이 요동에서 점을 잘치는

추원결(鄒源潔)을 찾아 길흉을 물으니 다음의 두 글귀를 주었다.

 

천층 물결속에서 몸을 뛰쳐나오니  /  천층낭리번신출(千層浪裡飜身出)

응당 바위 밑에서 세 밤을 유숙한다. / 야수암하숙삼수(也須巖下三宿宵)

 

제8회 매계문학상 시상식, 매계 조위선생 학술발표회 안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