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 語(논 어)
論語序說(논어서설)
史記世家曰(사기세가왈)
孔子 名丘 字仲尼 其先宋人 父叔梁紇 母顔氏 以魯襄公二十二年
(공자 명구 자중니 기선송인 부숙양흘 모안씨 이노양공이십이년)
庚戌之歲 十一月庚子 生孔子於魯昌平鄕鄒邑
(경술지세 십일월경자 생공자어노창평향추읍)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자는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이다. 그 선조는 송(宋)나라 사람이다.
아버지는 숙량흘(叔梁紇)이고 어머니는 안씨(顔氏)이니,
노(魯)나라 양공(襄公) 22년 경술년(B.C. 551 ) 11월 경자일에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공자를 낳았다.
爲兒嬉戱 常陳俎豆 設禮容 及長 爲委吏 料量平 爲司職吏 畜蕃息
(위아희희 상진조두 설예용 급장 위위리 요양평 위사직리 축번식)
適周 問禮於老子 旣反而弟子益進(적주 문예어노자 기반이제자익진)
嬉(즐길 희) 戱(놀 희) 俎(도마 조) 畜(쌓을 축) 蕃(우거질 번)
아이일 때 놀이를 함에 늘 제기(祭器)를 늘어놓고 예모를 갖추었다. 자라서 곡물창고 담당 관리가
되었을 때에는 셈하는 것이 공평하였으며, 희생가축 기르는 관리가 되었을 때에는 가축이 많이
번식하였다. 주(周)나라에 가서 노자(老子)에게 예(禮)를 물었으며, 돌아온 뒤에는 제자가 더욱 늘어났다.
昭公二十五年甲申 孔子年三十五 而昭公奔齊 魯亂 於是 適齊 爲高昭子家臣
(소공이십오년갑신 공자년삼십오 이소공분제 노란 어시 적제 위고소자가신)
以通乎景公 公欲封以尼谿之田 晏嬰不可 公惑之 孔子遂行 反乎魯
(이통호경공 공욕봉이니계지전 안영불가 공혹지 공자수행 반호노)
封(봉할 봉) 尼(중 니{이}) 谿(시내 계) 晏(늦을 안) 惑(미혹할 혹)
소공 25년 갑신년에 공자의 나이 35세였는데, 소공이 제(齊)나라로 망명하고, 노나라가 어지러웠다.
이에 제(齊)나라로 가서 고소자(高昭子)의 가신(家臣)이 되어 경공(景公)과 통하였다.
경공이 니계(尼谿)의 전지(田地)를 공자에게 봉해주려 하였는데 안영(晏嬰)이 안 된다고 하니
경공이 그 말에 미혹되었다. 공자는 드디어 그곳을 떠나 노나라로 돌아왔다.
定公元年壬辰 孔子年四十三 而季氏强僭 其臣陽虎作亂專政
(정공원년임진 공자년사십삼 이계씨강강참 기신양호작란전공)
故孔子不仕而退 修詩書禮樂 弟子彌衆
(고공자불사이퇴 수시서예악 제자미중)
僭(참람할 참) 亂(어지러울 난{란}) 仕(벼슬할 사) 彌(두루 미)
정공(定公) 원년 임진년에 공자의 나이 43세였는데, 계씨가 강성하고 참람하였으며,
그의 가신인 양호(陽虎)가 분란을 일으켜 국정을 전횡하였다.
그 때문에 공자는 벼슬하지 않고 물러나서 시, 서, 예, 악을 정리하였다. 제자가 더욱 많아졌다.
九年庚子 孔子年五十一 公山不狃 以費畔季氏 召孔子 欲往而卒不行
(구년경자 공자년오십일 공산불뉴 이비반계씨 소공자 욕왕이졸불행)
定公以孔子爲中都宰 一年 四方則之 遂爲司空 又爲大司寇
(정공이공자위중도재 일년 사방칙지 수위사공 우위대사구)
畔(두둑 반) 宰(재상 재) 寇(도적 구)
9년 경자년에 공자의 나이 51세였다. 공산불뉴(公山不狃)가 비읍(費邑)을 근거지로 하여
계씨를 배반하고 공자를 불렀는데, 가려고 하다가 결국은 가지 않았다.
정공이 공자로 중도(中都)의 읍재(邑宰)를 삼으니, 1년만에 사방에서 공자를 본받았다.
드디어 사공(司空)이 되고, 또 대사구(大司寇)가 되었다.
十年辛丑 相定公 會齊侯于夾谷 齊人歸魯侵地
(십년신축 상정공 회제후우협곡 제인귀노침지)
10년 신축년에 재상(宰相)의 일을 섭행하여, 협곡(夾谷)에서 제(齊)나라 임금과 회맹을 하는
정공을 보좌하였다. 제나라 사람들이 침략해 빼앗아갔던 땅을 노나라에 되돌려주었다.
十二年癸卯 使仲由爲季氏宰 墮三都 收其甲兵 孟氏不肯墮成 圍之不克
(십이년계유 사중유위계씨재 타삼도 수기갑병 맹씨불긍타성 위지불극)
墮(떨어질 타) 肯(옳이 여길 긍) 墮(떨어질 타)
12년 계묘에 중유(仲由)로 하여금 계씨의 가신이 되어
세 도읍(都邑)의 성(城)을 헐고 그 갑옷과 무기를 거두게 하였다.
맹씨(孟氏)가 성읍(成邑)을 헐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포위를 했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十四年乙巳 孔子年五十六 攝行相事 誅少正卯 與聞國政 三月 魯國大治
(십사년을사 공자년오십육 습행상사 주소정묘 여문국정 삼월 노국대치)
齊人歸女樂以沮之 季桓子受之 郊又不致膰俎於大夫 孔子行
(제인귀녀악이저지 계환자수지 교우불치번조어대부 공자행)
攝(당길 섭) 誅(벨 주) 聞(들을 문) 沮(막을 저) 俎(도마 조) 膰(제사 고기 번)
14년 을사년에 공자의 나이 56세였다. 재상(宰相)의 일을 섭행하여 소정묘(少正卯)를 처형하고
국정에 참여하니, 석 달만에 노나라가 잘 다스려졌다.
제나라 사람들이 여악(女樂)을 보내어 저지하니 계환자(季桓子)가 그것을 받아들였고,
교제(郊祭)를 지낸 뒤에는 또 제사 고기가 대부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공자가 떠났다.
適衛 主於子路妻兄顔濁鄒家(적위 주어자로처형안탁추가)
顔(얼굴 안) 濁(흐릴 탁) 鄒(나라 이름 추) 家(집 가)
위(衛)나라로 가서 자로(子路)의 처형(妻兄)인 안탁추(顔濁鄒)의 집에 거처하였다.
適陳 過匡 匡人以爲陽虎而拘之 旣解 還衛 主蘧伯玉家 見南子
(적진 과광 광인이위양호이구지 기해 환위 주거백옥가 견남자)
진(陳)나라로 가려고 광(匡)땅을 지날 적에 광땅 사람들이 양호(陽虎)인 줄로 알고 포위하여 길을 막았다.
풀려난 뒤, 위(衛)나라로 돌아와 거백옥(蘧伯玉)의 집에 거처하였다. 남자(南子)를 만났다.
去適宋 司馬桓魋 欲殺之 又去適陳 主司城貞子家 居三歲而反于衛 靈公不能用
(거적송 사마환퇴 욕살지 우거적진 주사성정자가 거삼세이반우위 영공불능용)
떠나서 송(宋)나라로 갔는데, 사마환퇴(司馬桓魋)가 죽이려고 하였다.
또 떠나서 진(陳)나라로 가서 사성정자(司城貞子)의 집에 거처하였다.
3년을 지내고 위(衛)나라로 돌아왔다. 영공(靈公)이 등용하지 못하였다.
晉趙氏家臣佛肹 以中牟畔 召孔子 孔子欲往 亦不果
(진조씨가신불힐 이중모반 소공자 공자욕왕 역불과)
肹(소리 울릴 힐) 牟(소 우는 소리 모) 畔(두둑 반)
진(晉)나라 대부 조간자(趙簡子)의 가신 필힐(佛힐)이 중모(中牟) 땅을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불렀다. 공자가 가려고 하다가 또한 결국은 가지 않았다.
將西見趙簡子 至河而反 又主蘧伯玉家 靈公問陳 不對而行 復如陳
(장서견조간자 지하이반 우주거백옥가 영공문진 불대이행 복여진)
장차 조간자를 만나려고 서쪽으로 가다가 황하(黃河)에 이르러 돌아와 거백옥의 집에 거처하였다.
영공이 진법(陳法)에 대해서 물으니, 대답하지 않고 떠나서 다시 진(陳)나라로 갔다.
季桓子卒 遺言謂康子必召孔子 其臣止之 康子乃召 冉求 孔子如蔡及葉
(계환자졸 유언위강자필소공자 기신지지 강자내소 염구 공자여채급섭)
蔡(거북 채) 葉(성 섭{잎 엽})
계환자(季桓子)가 죽을 때에 유언을 하여 강자(康子)에게 이르기를, 반드시 공자를 불러들이라
하였는데, 그 신하 공지어(公之魚)가 반대하였다. 강자가 이에 염구(冉求)를 불러들였다.
공자가 채(蔡)나라로 가서 섭(葉)땅에까지 이르렀다.
楚昭王將以書社地封孔子 令尹子西不可 乃止
(초소왕장이서사지봉공자 영윤자서불가 내지)
초(楚)나라 소왕(昭王)이 서사지(書社地)로 공자를 봉해주려 하였는데
영윤(令尹) 자서(子西)가 반대하자 이에 그만두었다.
又反乎衛 時靈公已卒 衛君첩欲得孔子爲政 而 冉求爲季氏將 與齊戰有功
(우반호위 시영공이졸 위군첩욕득공자위정 이 염구위계씨장 여제전유공)
康子乃召孔子 而孔子歸魯 實哀公之十一年丁巳 而孔子年六十八矣
(강자내소공자 이공자귀노 실애공지십일년정사 이공자년육십팔이)
또 위나라로 돌아왔다. 이 때에는 영공은 이미 죽었고, 위나라 임금 첩(첩)이 공자를 불러
정치를 함께 하고자 하였는데, 염구(염求)가 계씨(季氏)의 장수가 되어 제(齊)나라와 전쟁을 하여
공을 세우니 계강자(季康子)가 이에 공자를 불렀고 공자가 노(魯)나라로 돌아왔다.
실로 애공(哀公,B.C484) 11년 정사년이었고 공자의 나이 68세였다.
然魯終不能用孔子 孔子亦不求仕 乃敍書傳禮記 刪詩正樂 序易彖繫象說卦文言
(연노종불능용공자 공자역불구사 내서서전예기 산시정악 서역단계상설괘문언)
刪(깎을 산) 彖(단 단) 繫(맬 계)
그러나 노나라는 끝내 공자를 등용해 쓰지 못하였고, 공자도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아니했다.
이에 서전(書傳)과 예기(禮記)를 편차하고 시(詩)를 산정하고 악(樂)을 바로잡고
주역(周易)의 단사(彖辭),계사전(繫辭傳), 상사(象辭), 설괘전(說卦傳), 문언(文言)을 차례로 지었다.
弟子蓋三千焉 身通六藝者七十二人
(제자개삼천언 신통육예자칠십이인)
제자가 3천 명쯤 되었는데, 몸소 육예(六藝)에 통달한 자가 72명이었다.
十四年庚申 魯西狩獲麟 孔子作春秋 明年辛酉 子路死於衛
(십사년경신 노서수획린 공자작춘추 명년신유 자로사어위)
獲(얻을 획) 麟(기린 린{인})
14년 경신년에 노나라가 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기린(麒麟)을 잡으니,
공자가 춘추(春秋)를 지었다. 이듬해 신유년에 자로(子路)가 위나라에서 죽었다.
十六年壬戌 四月己丑 孔子卒 年七十三 葬魯城北泗上
(십육년임술 사월기축 공자졸 년칠십삼 장노성북사상)
弟子皆服心喪三年而去 惟子貢廬於冢上 凡六年
(제자계복심상삼년이거 유자공려어총상 범육년)
葬(장사지낼 장) 泗(물 이름 사) 惟(생각할 유) 貢(바칠 공) 廬(오두막집 려{여})
16년 임술년 4월 기축일에 공자가 세상을 뜨니 나이가 73세였다.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 가에 장례지냈다.
제자들이 모두 심상(心喪) 3년을 마치고 떠났는데
오직 자공(子貢)만은 무덤 곁에서 여묘살이를 하여 모두 6년을 지냈다.
孔子生鯉 字伯魚 先卒 伯魚生伋 字子思 作中庸
(공자생리 자백어 선졸 백어생급 자자사 작중용)
鯉(잉어 리{이}), 伋(속일 급), 庸(쓸 용)
공자가 리(鯉)를 낳았는데 자(字)는 백어(伯魚)이고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백어가 급(伋)을 낳았는데 자가 자사(子思)이며 중용(中庸)을 지었다.
何氏曰 魯論語二十篇 齊論語別有問王 知道 凡二十二篇
(하씨왈 노논어이십편 제논어별유문왕 지도 범이십편)
其二十篇中章句 頗多於魯論. 古論出孔氏壁中 分堯曰下章子張問以爲一篇
(기이십편중장구 파다어노논 고논출공씨벽중 분요왈하장자장문이위일편)
有兩子張 凡二十一篇 篇次不與齊魯論同
(유양자장 범이십일편 편차불여제논어동)
頗(자못 파), 壁(벽 벽), 堯(요임금 요),
하씨가 말하였다. "노논어(魯論語)는 20편이다. 제논어(齊論語)는 별도로 문왕편(文王篇)과
지도편(知道篇)이 있어서 모두 22편이며, 그 20편 가운데의 장구(章句)도 노논어보다 자못 많다.
고논어(古論語)는 공씨(孔氏) 집 벽(壁) 속에서 나왔는데, 요왈편(堯曰篇) 아랫장의 자장문(子張問)을
나누어 한 편(篇)을 만들어 자장편(子張篇)이 둘이라 모두 21편이며, 편차가 제논어, 노논어와 같지 않다."
程子曰 論語之書 成於有子曾子之門人 故其書獨二子以子稱
(정자왈 논어지서 성어유자증자지문인 고기서독이자이자칭)
정자가 말하였다. "논어(論語)의 글은 유자(有子)와 증자(曾子)의 문인(門人)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그 글에 유독 두 사람에 대해서만 자(子)로 일컬었다.
程子曰 讀論語 有讀了 全然無事者 有讀了後 其中得一兩句喜者
(정자왈 독논어 유독료 전연무사자 유독료후 기중득일양귀희자)
有讀了後 知好之者 有讀了後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
(유독료후 지호지자 유독료후 직유불지수지무지족지도지자)
정자가 말하였다. "논어를 읽음에, 다 읽고도 전혀 아무 일이 없는 자도 있고,
다 읽은 뒤에 그 가운데 한두 구절을 얻어서 기뻐하는 자도 있고,
다 읽은 뒤에 논어를 알고 좋아하는 자도 있고,
다 읽은 뒤에 곧 자신도 모르게 손발이 덩실덩실 춤추는 자도 있다."
程子曰 今人不會讀書 如讀論語 未讀時是此等人
(정자왈 금인불회독서 여독논어 미독시시차등인)
讀了後 又只是此等人 便是不曾讀
(독료후 우지시차등인 변시불증독)
정자가 말하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독서를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이를테면 논어를 읽음에, 읽기 전에도 이러한 사람이고, 다 읽은 뒤에도
또 다만 이러한 사람일 뿐이라면 바로 이것은 전혀 읽지 아니한 것과 같다."
程子曰 頤自十七八 讀論語 當時已曉文義 讀之愈久 但覺意味深長
(정자왈 이자십칠팔 독논어 당시이효문의 독지유구 단각의미심장)
정자가 말하였다. "내가 나이 열 일곱여덟 살 때부터 논어를 읽었는데,
당시에 이미 글뜻을 알았다.
읽기를 오래할수록 다만 의미의 심장함을 깨달을 뿐이었다."
第一篇 學 而 (제일편 학이)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慍(성낼 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마다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남들이 알아주지 아니해도 마음에 불평스러움이 없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랴."
*역주(譯註) 습(習)은 조삭비야(鳥數飛也)니 학이불이(學之不已)를 여조삭비야(如鳥數飛也)라.
즉 습은 새가 자주 나는 것이니 배우기를 그치지 않음을 마치 새 새끼가 자주 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有子曰 其爲人也 孝弟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유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됨이,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들을 공경하면서도 윗사람을 간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무니, 윗사람 간범하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면서 난리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않았다. 군자는 기본을 힘쓰니 기본이 서고 나서 도가 생기는 것이다.
효도하고 공경하는 것이 사랑하는 마음의 기본일 것이다."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잘 꾸미고 얼굴을 잘 꾸미는 사람치고 어진 사람이 드물다."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 자신을 살펴본다. 그것은, 남을 위해 일을 계획해
주면서 나의 진실된 마음으로 아니한 것은 없는가, 친구들과 사귀면서 신뢰를 바탕으로 아니한 것은
없는가, 스승의 학문을 제자에게 전해주면서 익히지 아니한 것은 없는가 하는 것이다."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승의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일을 경건한 자세로 하여 신임을 받아야 하며,
비용을 절약하여 사람을 사랑해야 하며, 백성 부리기를 때에 맞게 해야 한다."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은 집안에 들어와서는 효도해야 하며 집밖에 나가서는 공경해야 하며,
조심성이 있어야 하고 믿음직해야 하며, 사람들을 두루 사랑하되 어진이를 가까이 해야 한다.
그렇게 실천을 하고서 힘이 남으면 글을 공부해야 한다."
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竭(다할 갈)
자하께서 말씀하셨다. "속의 훌륭한 덕성을 중시하고 겉모습을 중시하지 아니하며, 부모를 섬김에
그 힘을 다하며, 임금을 섬김에 그 몸을 바치며, 벗들과 사귐에 말에 신의가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아니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반드시 배운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子曰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憚(꺼릴 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후중하지 아니하면 위엄이 없으니 학문도 견고하지 못할 것이다.
진실과 신의를 위주로 해야 하며, 자기만 못한 자를 벗삼지 말아야 하며, 허물을 지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초상에 예를 다하고 오래된 조상에 대해 제사를 잘 지내면 백성들의 마음이
후덕한 데로 귀결될 것이다."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子貢曰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禽(날짐승 금) 貢(바칠 공) 邦(나라 방) 抑(누를 억) 溫(따뜻할 온) 儉(검소할 검) 讓(사양할 양)
자금이 자공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이 나라에 이르시면 반드시 그 정치를 들으실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선생님께 묻는 것일까요?" 자공이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온순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검약하고 겸양하시어 그리 되시는 것이니,
선생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子曰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는 그 뜻을 관찰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 행실을 살피는 것이다. 삼년을 아버지가 행하시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효성스럽다고 할 수가 있다."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유자께서 말씀하셨다. "예의 쓰임에는 조화가 중요한 것이다. 선왕의 도는 이 조화로 인하여 아름답게
되었다. 크고작은 일들을 조화로 말미암다 보면 행할 수 없는 바가 있을 수 있다. 조화가 좋은 줄만 알고
조화에만 치중하면서 예로써 절제하지 아니하면 또한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有子曰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恥(부끄러워할 치) 辱(욕되게 할 욕)
유자께서 말씀하셨다. "신의는 의로움에 가까우니 신의 있는 자가 한 말은 실천할 수가 있고,
공손함은 예에 가까우니 공손한 자는 치욕을 멀리할 수가 있다. 신의와 공손함을 갖추고 거기다가
친척들에게 민심을 잃지 않으면 또한 종통이 될 수가 있다."
子曰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飽(물릴 포) 敏(재빠를 민), 愼(삼갈 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아니하고 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아니하며,
일은 민첩하게 하고 말은 신중하게 하며, 도 있는 이에게 가서 자신을 바로잡으니,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가 있다."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貧(가난할 빈), 諂(아첨할 첨), 驕(교만할 교), 磋(갈 차), 琢(쫄 탁), 磨(갈 마), 賜(줄 사),
자공이 여쭈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아니하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아니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정도도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함만은 못하다." 자공이 여쭈었다. "시에 '자르고 갈며 쪼고 문지른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두고 한 말 같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가 비로소 함께 시를 이야기할 수가 있게 되었구나.
지난 일을 말해주니 앞 일을 아는구나."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第二篇 爲 政
1.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
譬(비유할 비)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덕으로서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고 여러 별들이 그것을 향하여 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蔽(덮을 폐) 邪(간사할 사)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시 삼백 편은, 한 마디로 말해 사악한 생각은 한마디도 들어있지 않다.
3.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齊(가지런할 제) 恥(부끄러워할 치) 格(바로잡을 격)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제로서 다스리고 형벌로서 질서를 유지하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덕으로서 다스리고 예로서 질서를 유지하면 잘못을 수치로 알고
또 바르게 되느니라.
4.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踰(넘을 유) 矩(곱자 구)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 삼십세가 되어 모든 기초를 세우고,
사십세가 되어 사물에 대하여 의심나는 바가 없었고, 오십세가 되어 천명을 알았고,
육십세가 되자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고, 칠십세에 가서는 뜻대로 행하여도 도에
어긋나지 않았느니라.
5. 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無違.
樊遲曰 何謂也 子曰 生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
懿(아름다울 의) 違(어길 위) 樊(울 번) 遲(늦을 지) 御(어거할 어)
맹의자가 효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번지가 수레로
모시자 공자께서 일러 주시기를, “맹손이 나에게 효에 대해서 묻길래,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일러
주었다.” 하셨다. 번지가 말하기를 어인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살아 계실 때는 예로써 섬기며, 죽은 뒤에는 예로써 장사지내며, 그리고 예로써 제사지내는 것이니라.”
하셨다.
6.孟武伯問孝 子曰 父母 唯其疾之憂
맹무백이 효에 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부모는 오직 자식의 병을 근심하느니라.”
7.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游(헤엄칠 유)
자유가 효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지금의 효자는 부모를 능히 먹여 살리는 것을
말하는데, 심지어 개와 말 같은 짐승도 다 먹여서 키우고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어찌 부모와
짐승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8.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饌(반찬 찬) 曾(일찍 증)
자하가 효에 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부모의 표정(즉 마음에서 우러나는 표정)을
알아서 행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 수고를 대신하고 좋은 술과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먼저 드시게 하는 것만으로 어찌 효도를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9.子曰 吾與回言 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가 회와 더불어 종일토록 이야기 하였어도 그가 나의 말을 어기지 않음이
마치 바보 같더라. 그가 물러간 후에 그의 개인적인 일을 살펴보니 나의 참뜻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더라.
회는 정녕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로라.
10.子曰 視其所以 觀有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 人焉廋哉
察(살필 찰) 廋(숨길 수) 哉(어조사 재)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사람의 그 하는 바를 보고, 그 하는 동기를 살피고, 그 만족하는 것을
관찰하면 그의 사람됨을 어찌 숨기리오. 어찌 숨기리오.”
11.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溫(따뜻할 온)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이미 배운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가히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느니라.”
12.子曰 君子 不器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그릇(한 가지 구실 밖에 못하는)같은 존재가 아니다.”
13.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
자공이 군자에 대하여 여쭈어보자,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말한 바를 먼저 행하고 나서 그 다음을 해
나가느니라.”
14.子曰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
周(두루 주)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군자는 보편적이고 편벽적이 아니다. 그러나 소인은 보편적이고 편벽적이다.”
15.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罔(그물 망) 殆(위태할 태)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오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생각하고 배우지 아니함은 위태한 사상에 빠지기 쉽다고 하시느라.”
16.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端(바를 단) 斯(이 사)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이단을 행한다면 해로울 뿐이다.
17.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誨(가르칠 회) 女(흔히 여자로 쓰이나 여기서는 너로 보았음)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유야 내거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안다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니라.”
18.子張學干祿 子曰 多門闕疑 愼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闕(대궐 궐, 제거한다는 뜻) 疑(의심할 의) 愼(삼갈 신) 寡(적을 과)
尤(더욱 우) 悔(뉘우칠 회) 餘(남을 여) 祿(복 녹{록})
자장이 간록장을 배우는데,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많이 들어서 의문점을 없애고, 그러고도 남음이
있으면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으리라. 많이 들어 위태로움을 적게 하고, 그러고도 남음이 있으면
행동을 삼가 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말을 삼가 해서 허물을 적게 하고, 행동을 사막해서 후회를
적게 한다면 그 속에 녹(祿)이 있느니라.
19.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誤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
服(옷 복) 擧(들 거) 錯(섞일 착) 誤(그릇할 오) 諸(모든 제) 枉(굽을 왕)
애공이 묻기를, 어떻게 하면 백성이 마음까지 복종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 하시기를, “곧고 올바른 사람을 등용해서 곧지 않은 사람들 위에 놓으면 백성은 마음까지
굴복하나, 곧지 않은 사람을 등용해서 곧은 사람위에 놓으면 국민이 진심으로 굴복하지 않습니다.”
20.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 如之何 子曰 臨之以莊 則敬 孝慈 則忠 擧善而敎不能則勸
勸(권할 권) 莊(풀 성할 장) 慈(사랑할 자)
계강자가 “백성들로 하여금 공경하여지고 충성하여지게 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백성들에게 믿음직스럽게 대하면 공경하여지게 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자비스럽게 임하면 충성스러워 지고, 착한사람을 천거하여 바르지 못한 사람을
가르치면 곧 권하는 것이 되느니라.”
21.或謂孔子曰 子奚不爲政 子曰 書云 孝乎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奚(어찌 해) 惟(생각할 유) 于(어조사 우)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묻기를, 선생께서는 어찌 정치를 하시지 않으십니까? 하자.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서경에, 효도하라 오직 효도하라, 그리고 형제에게 우애 있게 하라, 그러면 네가 하는 일에 정치가
있느니라 일렀거늘, 바로 그것이 정치를 하는 것인데 일부러 정치를 한다고 나설 이유가 무엇이오?”
22.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輗(끌채 끝 쐐기 예) 軏(끌채 끝 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마치 큰 수레에 쐐기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이 없는 것 같으니, 어찌 행하여 나갈 수가 있다고 하겠는가?”
23.子張問 十世可知也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 可知也.
周因於殷禮 所損益 可知也. 其或繼周者 難百世可知也.
자장이 십세 이후의 일을 알 수 있겠나이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이어 받았으니 軏 있고,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이어 받았으니 그 손익 된 바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주나라의 뒤를 이어 받은 왕조라면 백세 이후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24.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鬼(귀신 귀) 諂(아첨할 첨)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조상의 영혼이 아닌 것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첨이며,
옳은 일을 알고도 행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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