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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조문 인물과 발자취,묘소62

봉계 창녕조씨입향조 참의공묘소에 얽힌 이야기 김천 봉계는 봉황이 물 위에 떠 있는 봉황부유형(鳳凰浮遊形)의 명당으로 불린다. 창녕 조씨 입향조 조심(曺深, 參議公)이 봉계로 입향한 것은 서산 정씨 정윤홍(鄭允弘)의 사위였던 인연으로 전해진다. 고려 말 군기부정(軍器副正)을 지냈던 정윤홍은 고려의 국운이 다함을 한탄하며 다섯.. 2019. 9. 27.
남명 조식의 산청 덕천서원 산청 덕천서원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조식(曺植 1501∼1572)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그가 학문을 닦던 곳에 세운 서원이다 1576년(선조 9)에 창건되었으며 1609년(광해군 1)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0년대에 유림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조식선생의 위패를 모셨으며 뒤에 최영경(崔永慶)을 추가 배향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는 사당, 신문, 강당, 동재와 서재, 외삼문 등이다. 공부하는 공간이 앞쪽에 있고 사당이 뒷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서원입구의 홍살문 서원 정문인 시정문(時靜門) 서원 강당과 동재,서재 덕천서원 강당 강당안 경의당(敬義堂) 편액 강당마루에서 본 동재와 서재, 정문(외삼문.. 2019. 8. 14.
귀애 조극승(曺克承)의 영천 귀애정 귀애정(龜厓亭)은 영천시 화남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귀애정은 귀애고택에 따른 정자이며, 귀애고택은 처음 터를 잡은 묵헌 조명직(曺命稷)이 1767년(영조 43)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47칸의 큰집이었으며, 정자는 증손자이며 조선조 순조시대의 문인인 귀애 조극승(龜厓 曺克承)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1917년에 지었다. 귀애정 전경 조극승(1803~1877)의 자는 경휴, 호는 귀애(龜厓), 관향은 창녕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사간, 사헌부 집의, 돈령부 도정을 역임하고, 공조 참의를 제수 받았으며, 특히 심학에 심취하고 대학강록의 저서를 남겼다 귀애정 앞에는 방형(方形)의 연못이 있고 연못 섬 안에는 육각정자를 두었었는데 모두 허물어지고 없던것을 지난 2009년에 복원하였다 귀애고택 입구 .. 2018. 12. 20.
직지문화공원의 고려성, 나화랑 형제노래비 김천 직지사입구에 있는 직지문화공원에 가면 고려성(본명 조경환,曺景煥)과 나화랑(본명 조광환,曺曠煥)의 형제노래비를 만날수 있다. 이들은 한국대중가요 1세대의 가요작가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김천 봉산 출신의 가요예술인들이다 형제 노래비 전경 형제 노래비(비문) 한국대중가요 1세대의 가요작가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이 고장 출신 고려성 나화랑 형제 가요예술인의 가요정신이 길이 계승되어, 가요문화 진흥의 촉매제가 되길 기원하면서 김천시와 우리들의 뜻을 모아 이 노래비를 세운다. 2014년 12월 30일 나화랑 기념사업회 창녕조씨 지사공 문중 고려성, 나화랑 흉상 작사자 가요 프로듀스 고려성(본명 조경환,1919.10~19569) 고려성 약력 석비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발길..."로 시작되는 고.. 2018. 11. 22.
기헌 조병선(曺秉善)의 팔공산 심원정 심원정(心遠亭)은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 바로앞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정자는 1937년 기헌(寄軒) 조병선(曺秉善,1873~1956 )이 건립하였는데 팔공산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개울가 넓다란 반석위에 한국전통 정원인 원림양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심원정 전경 아직 문화재로는 등록되어있지 않지만 2015년 10월 15일 세계문화유산보존활동을 벌이고 있는 세계기념물기금(WMF)에서 2016년도 세계기념물감시목록 50개중 한국최초로 심원정을 선정하였다고 한다 심원정과 성석 조병선(曺秉善)은 심원정을 건립한 자초지종을 담은 수석기에서 "자연의 지세를 따라 이룩하였고 억지로 만들지는 않았다"고 하였으며 주변의 공간과 수석들에 이름을 지어 이름마다 절구 한수씩 심원정 25영(詠)을 읊었다 그리고 제1영 심원정.. 2018. 6. 22.
남명 조식선생 생가를 찾아 남명 조식(曺植)선생의 생가는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 있다.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건중(楗仲),호는 남명(南冥)이며.1501년 (연산군 7년) 6월 26일 생가인 합천의 삼가현 토동외가댁에서 태어났다. 어릴때는 이곳에서 자랐으나 아버지가벼슬길에 나가자 임지를 따라 다니면서 학문을 배웠다.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생가(경상남도 기념물 제148호) 30세부터는 처가가 있는 김해의 신어산 아래에 산해정을 짓고학문에 정진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48세에 다시 고향인 삼가현의토동으로 돌아와 뇌룡정과 계부당을 짓고 제자를 길렀다.61세에 지리산 아래 산청 덕산으로 옮겨 산천재를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으며, 1572년 2월 8일 72세를 일기로 산천재에서 운명하였다.  사랑채 앞 마당에 사랑채를 지으려고 준비중(20.. 2017. 3. 11.
김천의 문중이야기~창녕조씨의 매계(梅溪) 조위(曺衛) 이 글은 대구 매일신문사에서 경북도내 각 문중이야기를 다루면서 "김천의 문중이야기 창녕 조씨~매계(梅溪) 조위(曺衛)" 라는 제목으로 2015년 6월 16일 게재되었던 내용을 옮긴것이다. 조선 성종 총애 '궐내 스캔들'도 용서받은 신진사류 대문장가 봉계에 위치한 율수재는 조위가 살던 옛집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구거)이다. 율수재에서는 1980년부터 김천문화원이 주최하는 매계백일장이 열린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천상(天上) 백옥경(白玉京) 십이루(十二樓) 어디 매오/ 오색운(五色雲) 깊은 곳에 자청전(紫淸殿)이 가렸으니… 옥황(玉皇) 향안전(香案前)의 지척(咫尺)에 나아 앉아/ 흉중(胸中)에 쌓인 말씀 쓸커시 사뢰리라…' 조위가 지은 유배 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만분가'.. 2015. 6. 16.
창녕조씨~봉황부유형의 명당 이 글은 대구 매일신문사에서 경북도내 각 문중이야기를 다루면서 "김천(金泉)의 문중(門中) 이야기 (4) 창녕조씨~봉황부유형의 명당" 이라는 제목으로 2015년 6월 9일 게재되었던 내용을 옮긴것이다. 묏자리 물 채워 양보 받은 명당 창녕 조씨 현침혈 명당 옹달샘. 현침 김천의 문중이야기에서 두 번째로 다룰 곳은 창녕 조씨(昌寧 曺氏) 문중이다. 창녕 조씨가 누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봉산면 인의리(상리)는 예지리(중리)와 신리(하리)를 포함해 '봉계'(鳳溪)라고 불린다. 봉계에는 창녕 조씨뿐만 아니라 서산 정씨와 영일 정씨가 함께 집성촌을 이뤄 살았다. 봉계는 봉황이 물 위에 떠 있는 봉황부유형(鳳凰浮遊形)의 명당으로 불린다. 창녕 조씨 입향조 조심(曺深)이 김천으로 입향한 것은 서산 정씨 정윤홍(鄭允.. 2015. 6. 16.
남명 조식선생의 산천재와 기념관 남명조식선생(南冥曺植先生)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대학자이다. 선생은 1501년 합천의 삼가에서 태어나 1572년 72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조정에서 여러번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모두 사양하였으며 61세때엔 지리산자락인 이곳 산청에 와서 산천재를 지어 후학들을 가르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후학들을 가르치던 산천재 사당옆의 재실 사당 남명조식선생 기념관 조식선생상 합천 황강변 함벽루에 걸린 남명선생시 편액 시비 2014. 5. 3.
파주 장단 묵재공과 서울 고척동 선영 창녕조씨 찬성공파의 파조(派祖)이신 좌찬성(左贊成) 휘 경수(諱 敬修) 선조 묘소(환,煥 자 학렬의 18대조)와 환(煥)자 항렬의 12대조 되시는 묵재공( 黙齋公) 휘 익(諱 瀷)의 묘소와 매계선생의 당숙되시며 영의정을 지낸 휘 석문(諱 錫文)의 묘소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에 있다. 1.장단 선영 이곳 장단면,진동면,진서면등은 민통선 안으로, 원래 장단군이었으나 1972년 행정구역개편으로 파주시에 편입시켜 선영은 진동면 지역이 되었다. 묵재공(黙齋公) 휘 익(諱 瀷) 묘소 (2008.10.18) - 진동면 동파리 을좌 이곳은 민통선 안으로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산 60번지와 그 일대 선영이다. 성묘를 하려면 1개월여전에 허가를 받아 장파리의 군부대에서 신원확인 후 임진강(민통선)을 건너야 선영에 가서 참.. 2011. 8. 18.
마암재와 선조 묘소 마암(馬岩)의 현재 소재지는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이지만 조선시대 후기까지는 영동군 황간면이었으며, 마암재(馬岩齋)가 있다. 이곳 선영에는 매계선생의 부친되시며 환(煥)자 항렬의 16대조이신 울진공 휘 계문(諱 繼門) 묘소를 비롯하여 15대조인 매계 위(梅溪 偉)의 묘소, 11대조(悌昌, 參判公)와 9대조(世龍, 認齊公) 그리고 고조(鎭汶), 증조(海永) 등 여러 선조산소가 모셔저 있으며, 묘사는 음력 10월 12일날이다. -매계 조위선생의 父이며 울진 현령(증 가선대부)을 지냄- 증 이조참판 휘 계문 비문(贈吏曹參判諱繼門碑文) 공의 휘(諱)는 계문(繼門) 자(字)는 윤부(胤父)로 창녕인(昌寧人)이다. 증조(曾祖)는 증 문하좌랑중(贈 門下左侍中)으로 휘(諱)는 우희(遇禧)이고 조부는 봉익대부 밀직사사(奉翊.. 2011. 4. 28.
태화리(범기미) 선산 속칭 범기미는 봉산면 태화리와 신암리에 걸쳐있다. 환(煥)자 항렬의 7대조이신 諱 文檍 선조를 비롯하여 6대조 ,5대조, 조부모, 부모산소와 여러 일가분들이 모셔져 있는 선산이다. 시사(묘사)일은 음력 10.15이다. 환(煥)자 항렬의 7대조이신 문억(文檍)조부와 연안김씨 내외분 합폄(合窆) 산소 (태화동 범기미 종산의 첮골과 밭골 상단에 모셔져 있다) 환(煥)자 항열의 6대조이신 순명(舜明)조부와 창녕성씨 내외분 합폄 산소 ( 화동 범기미 종산의 밭골 바로 위쪽에 모셔져 있다) 煥자 항렬 5대조(冕奎) 산소 -논골 제일 안쪽 우측상단에 모셔져 있다. 5대조산소 좌표 조부(洛承)와 固城南씨, 安東金씨 삼합폄 산소 (2004.4.4. 첫골 능선의 조부와 고성남씨산소를 논골초입의 안동김씨산소로 이장 三含窆을.. 2010. 11. 20.
창녕조씨의 본향인 창녕의 선영 창녕은 화왕산 정상에 창녕조씨의 득성지지가 있고 본관이기도 한 고장인데.  매계 조위선생이 큰 일이 있을 때 마다 내려와 창녕 선조묘소를 참배했던곳으로이곳 창녕 대지면 본초리(대초길)에는 김천 입향조이신 휘(諱) 심(深)선조의 증조부 이시며, 곧 매계선생의 5대조 되시며환(煥)자 항렬의 20대조인 휘(諱) 원계(元桂)선대의 묘소가 있고,창녕 남지읍 성사리(성사관당길)에는 휘 심(深)선조의 조부이시며매계선생의 고조부 되시며, 환자 항렬의 19대조인 諱 우희(遇禧)묘소가 있다. 바로 아래에는 둘째아들인 익수(益修)의 묘소가 있으며, 특히 이곳 성사리의 묘소는 고려말 묘제양식이어서 경상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원계 - 우희 - 경수(첮째 민수, 둘째 익수, 셋째 경수) - 심 - 계문.. 2009. 12. 2.
극락산 단풍잎도 거의 떨어지고, 벼를 벤 논에는 사료용으로 쓸 짚묶음들이 즐비하다. 하늘에는 어제 비온후에 아직 옅은 구름이 끼여 있어 극락산이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11월의 마지막날,묘사(음력 10.14)에 참여 하면서 극락산(極樂山)은 백두대간의 하나인 용문산으로부터 분기된 난함산에 딸린 해발498m의 산으로 정상부 아래에 극락사로 불린 절이 있어 극락산이라는 지명을 얻었다. 숙종 때인 1682년 간행된 ‘경상도좌우주군총도(慶尙道左右州郡總圖)’에는 황악산 옆에 극락산이 있는 것으로 표기돼있다. 또 1728년 여이명이 저술한 ‘금릉지’에 “군 서쪽 11리에 있으며 황간과의 경계다”라고 적고 있으며 1937년 간행된 ‘교남지(嶠南誌)’에도 “극락산은 군의 서쪽 11리에 있고 백운산으로부터 뻗어 내려와 황간과 경.. 2009. 11. 30.
창녕조씨 김천 입향조 산소와 덕원재 덕원재는 봉산면 예지리 외입석(일명 바깥선돌)인 극락산 남편자락에 있다. 이곳 선영에는 창녕조씨 김천 입향조이고 매계 선생의 할아버지 되시는 휘 심(諱 深) 선조(환자항렬의 17대조)와 큰 아드님이신 선무랑 휘 승중(諱 承重), 10대조인 우졸당(遇拙堂) 휘 유(諱 逾)묘소 외 여러 선조들이 잠들어 계신곳이다. 조경수(曺敬修,좌찬성) - 심(深,참의공) - 계문(繼門,울진공) - 위(偉,문장공) -사우(士虞,별제공) - 윤희(胤禧,영월공) - 익(瀷,묵제공) - 제창(悌昌, 참판공) - 유(逾,우졸당) - 술(述,경매당) 덕원재 상량문(德源齋上樑文) 조석(朝夕)으로 송추(松楸,무덤주위에 심은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보호하니 경모하는 뜻 저절로 생기고 춘추(春秋)로 상로(霜露,계절의 변천)를 밟으니 처창(悽.. 2009.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