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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조문 인물과 발자취,묘소64

창녕조씨 김천문중 인물탐방~(1)조대환 전 민정수석비서관 조대환(曺大煥)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김천 입향조이신 참의공(參議公) 조심(曺深)선조의 17대손으로 문장공(文莊公) 매계(梅溪) 조위(曺偉)선생의 15대손이요, 매계선생의 증손자이신 교위공(校尉公) 옥(沃, 묵재공 익瀷의 동생)의 차남인 조하창(曺夏昌)의 후손이다. 아버지 조형동(曺瑩東)과 어머니 권삼분(權三粉) 사이에서 장남으로 청송에서 태어났으며, 매계 선영아래의 하창(夏昌)선조묘소를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는 조경동(曺景東)씨가 재종숙(再從叔)이다. 서울법대를 나와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육군 법무관과 검사(1986~2005)생활을 거친 뒤, 2005년부터 현재까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2016년 12월 10일부터 2017년 3월 10일까지 박근혜 정부 마지막 청와대 민정수석비서.. 2021. 4. 4.
우졸당 조유선생 유고집과 경매당 조술 묘소 우졸당(愚拙堂) 조유(曺逾,1649~1696)선생의 유고(遺稿)집은 한자로 작성되어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것을 김천향토사연구회에서 국역본으로 발간하게 된것이다. 국역과 서문은 전 성주향교 전교(典校) 강희대(姜熙大)님이 수고하였으며, 문중의 조규붕(曺圭鵬)님이 발간문을, 조지환(曺智煥)님이 발문을 하였다. 상목 권지단(常目 卷之單) 원본의 우졸당선생 연보는 조세룡(曺世龍)선조가, 연보의 발문은 조박(曺박 雨+博) 선조가 쓰셨다. 유고는 시(詩) 3편, 일기인 기자(記自) 4편, 서(書) 10편이고, 부록으로 만사(輓詞) 13편, 행장(行狀) 13편, 그외 소지(所志,백성이 도백이나 군수에게 올리는 청원서)가 김산유생(金山儒生) 김선기등 100여인과 도내유생 진사 신진경등 200여인, 도내 선산유생 박.. 2021. 3. 12.
김천을 빛낸 역사인물~창녕조씨 조유(曺逾)부자 김천을 빛낸 역사 인물 창녕조씨 조유(曺逾)부자 2021년 02월 25일 [김천신문] -지극한 효행과 우애로 한때 조효자동(曺孝子洞)으로도 불려 아들 조세호, 조세룡, 조세봉, 조세붕 4형제 학문으로 명성- 봉계 창녕조씨 4효4학행(四孝四學行)으로 불리며 칭송 얻어 어버이 섬기기를 지성으로 하였고 집안을 다스림에는 엄정하고 자애로움으로… 자제들을 가르침에는 뜻을 세우고 힘쓰게 하였으며 효제를 근본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봉산면 인의리, 예지리, 신리는 예부터 봉계라 통칭하며 김천지방을 대표하는 명문사족(名門士族)이 뿌리를 내려 일찍이 현인달사(賢人達士)와 충신, 효자, 열녀를 배출하는 반촌(班村)으로 이름이 났다. 그 가운데서도 창녕조씨 문중에서 올곧은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는데 점필재 김종직의 처남으로서.. 2021. 3. 4.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11)교리 최부(崔溥)의 표류기 이 표류기는 교리 최부(崔溥)가 1487년, 제주 등 3읍의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임명되어 제주로 건너갔는데, 거기에서 이듬해 초에 부친상의 기별을 받고 곧 고향으로 급히 오는 도중에 풍랑을 만났다. 이에 43인이 탄 배는 14일 동안 동지나해를 표류하다가 해적선을 만나 물건을 빼앗기는 등 곤욕을 치르고 결국 명나라 태주부 임해현(台州府 臨海縣)에 도착하였다.  처음 왜구로 오인되어 몰살당할 뻔했으나 어둠을 이용, 빠져나와 조선 관원이라는 것을 간신히 승복시켜 일행은 북경으로 보내졌다가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그는 상신(喪身,상을 당한 몸)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상복을 벗을 수 없다고 고집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유가의 예와 윤리의 원칙에 대한 타협을 거부하였다.  그가 귀국하자 성종은 .. 2021. 1. 29.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10)일본 통신사로 떠날때 문충공 신숙주의 병이 나음에 성종이 "그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이웃 나라와 사귀려면 일본과 통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였다. 이로써 성화(成化) 기해년에 통신사 부사(副使) 서장관(書狀官)을 일본에 보내고, 또 문사(文士)를 더 증원하였다. 그때 문광(文匡) 홍겸손(洪兼善.홍귀달)과  인천(仁川) 채기지(蔡耆之)가 승지로 있으면서 나(曺伸)를 추천하여 서울에 왔더니,   임금이 어제(御題) 다섯을 내어 시를 지어 바치라 하셨다. 또 여섯 승지에게 명하여 각기 어려운 제목을 내게 하여 시험을 보았다. 이튿날 또 어제가 나와 5편을 지어 바쳤더니 모두 칭찬을 받았다.드디어 통신사에 임명되어 차비를 차리고 떠나는데 점필재(佔畢齋, 金宗直)가 시를 지어 보냈다.  천리마도 .. 2021. 1. 29.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9)문인들의 시평(詩評) 적암 조신(曺伸)선생은 저서 소문쇄록에서 고려말과, 조선초기 문인들의 시(詩)를 1)혼후(渾厚) 2)침통(沉痛) 3)공치(工緻) 4)호장(豪壯) 5)웅기(雄奇) 6)한적(閑適) 7)고담(枯淡)한 것 등 7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평하였다.  시(詩)라는 것은 말(言)이다. 사람의 말(言)이 같지 않은 것은 마치 그 얼굴과 같다. 시가 혹은 기험화려(奇險華麗)하고, 혹은 호장표일(豪壯飄逸)하고, 혹은 청준전실(淸峻典實)하고, 혹은 천연고담(天然枯淡)하여 각기 다르나, 그 원숙(圓熟)하여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루는 데 이르러서는 각기 장점이 있어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나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시어(詩語)가 1)혼후(渾厚, 온화하고 후덕하다)한 것은  목노(牧老, 목은 이색, 牧隱 李穡)의 시에바람 자.. 2021. 1. 22.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8)병신년에 김종직이 선산부사가 되어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성화(成化) 병신년(丙申年,1476년)에 군수가 되기를 청하여 선산부사가 되었다.그때는 공(公,김종직)이 큰 병을 앓고 난 뒤라 말을 타기가 불편하여 내(조신.曺伸)가 모시고 배로 갔다. *성화(成化)는 명나라 성화제의 연호이며,성화 병신년은 1476년으로 성화 12년이며, 조선 성종 7년이다.  여주에 이르러 닻을 내린 뒤 미복(微服)을 입고 청심루에 올라가 시판(詩板)을 보고 있자니, 누구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서 김생원의 행차라고 대답하였다.이윽고 내려오니 날이 저물어 이미 어두웠으므로 신륵사에 투숙하려고 했는데, 절의 중이 삼문 밖에서 재를 올리면서 잡인을 소리쳐 쫓아내는 바람에, 공(公)이 끝내 들어가지 못했다.   배로 돌아와서 시 두 편을 읊었는데, 한 .. 2021. 1. 10.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7)신축(辛丑, 1481)년 봄에 지금부터 꼭 540년전인 1481년 신축(辛丑)년 봄에문량공(文良公) 진산 강희맹이 중국 사신의 원접사가 되었를 때다. 매계(梅溪)가 종사관이었는데 관서지방에 이르러 창화(唱和)한 시가 매우 많다.공(강희맹, 姜希孟,1424~1483)이 매계(梅溪)를 희롱하여 절구 시를 지었는데, 그대 마음은 바람에 휘날리는 버들개지요저의 마음은 소반 위에 놓인 구슬이어라.구슬은 굴러도 소반위에 있건만버들개지 날리면 종잡을 수 없어라. 또 구화봉이 꺽이고 대동강이 막히니원앙단꿈 깨어나 천지신명 찾는데때마침 찾아온 어디 사는 남자 이길래온갖 교태 다 지으며 옛 님을 유혹하나. 또붓을 들고 비단 속옷에 천만자를 휘두르니한 자 한 획이 가슴에 점을 박았네.먹자국이 낭군의 마음을 함부로 바꾸지 못해도 진시황이 불사른 공적은 비.. 2021. 1. 7.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6)지리정보(地理情報) 작암 조신(曺伸)선생은 소문쇄록에서 시.화(詩.畵), 야사(野史)외에도 중국(7회)과 일본(3회)을 여러번 순행하면서 얻은 많은 경험과 지식들을 바탕으로명나라 연경(중국, 북경)까지와, 유구국(오끼나와)까지의 거리,지리,지형등에 관해 상세하고도 유용한 기록들을 남겼다.지금부터 510여년 전인 1510년, 바닷길까지도 하나하나 거리로 계산했던그 엄청나고 신비스러운 기록들을 역사속에서 하나하나 만나본다. 1.국내 지리고려시대에는 은으로 만든 병(甁)으로 돈을 삼았다.이름을 활구(濶口)라 했다. 우리나라 지형을 본 떠서 이른 것이다.요즘(1510년대)은 활구를 쓰는 제도를 볼 수 없다.대개 우리나라 지세가 협소하면서도 길다. 왕도(서울)에서 남쪽으로 장흥까지는 구백칠십오리(五里, 390km)요, 북쪽으로 강계.. 2020. 12. 29.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5)충간공 조석문(曺錫文) 적암 조신(曺伸)의 소문쇄록에 충간공 조석문에 대한 일화가 있다.조석문(曺錫文)은 매계 조위선생은 물론 조신에게도 5촌 아저씨가 되며어릴 때 서울 집에 데려다 놓고 학문을 손수 가르치신 분이다.찬성공파 파조이신 찬성공 조경수(贊成公, 曺敬修)는 슬하에 3형제분을 두었는데첫째는 조혼(曺渾)이고, 둘째가 조항(曺沆), 셋째가 김천 입향조이신참의공 조심(參議公 曺深)인데, 조석문은 둘째인 조항(曺沆)의 아드님이고매계와 적암은 셋째인 조심(曺深)의 손자(부는 조계문)로 5촌간(종숙)이 된다. 소문쇄록에 의하면충간공 조석문(曺錫文)은 사람됨이 조심스럽고 삼가며 맑고 간소하여세조에게 두터운 총애를 받았는데, 세조는 호조와 나라의 정책을 그에게 맡겼다.이시애(李施愛)가 반란을 일으켰을 떄 비록 장수로서의 지략에 익숙.. 2020. 12. 27.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4)단종, 수강궁에서 왕위를 물려주다 적암 조신(曺伸)의 소문쇄록에는 조선왕조실록이나다른 기록물에는 남아있지 않은 많은 야사(野史)들이 실려있는데,단종이 페위될 당시의 생생한 모습들과 애닲은 사연들을 옮겨본다.  노산군(단종)이 수강궁에서 왕위를 물려주었다.어두운 밤에 횃불이라고는 없고 단지 오십여 인이 종루거리를 돌아갔다.주위 행랑에 사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모두 곡을 했으나그치게 하거나 금하지 않았다.  마침 윤훈(尹壎)이 사금(司禁)이 되어 나에게 들려주기를노산군(단종)이 왕위를 물려주고 난, 뒷날 영월에서 스스로 슬픈 노래를 지었는데, 달빛 낮게 드리우고 두견새가 울 제에누각 끝에 기대노니 님은 더욱 그리워네 울음, 나에게 슬프게 들리지 않음도 괴롭지만너의 울음, 내 슬픔을 알릴 수 없음이 더욱 애달퍼슬픔에 쌓인 세상 사람들에게 알.. 2020. 12. 24.
적암 조신(曺伸)선생 ~ 3)소문쇄록(謏聞瑣錄) 소문쇄록(謏聞瑣錄)은 조선 성종 때의 역관이며 문인인 적암 조신(曺伸 1454~1529)이 자신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 관심사항을 자유롭게 기술해놓은 한편의 잡기집(雜記集)이다. 조신(曺伸)은 역관으로서 명나라에 일곱 번, 일본에 세 번 다녀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에서 연경(燕京)까지의 지리에 관한 것과 중국의 운하를 이용한 치수사업도 소개했으며, 유구국(琉球國, 현 일본 오끼나와 일원)까지의 경로와 제주도까지의 험란한 해로(海路) 및 그 사이에서 일어난 표류사건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겼다. 또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경계 및 고적에 관한 내용은 물론, 사신(使臣)들의 시(詩)와 조선의 외교에 대해 기술해 놓았으며, 특히 외국에서 들어온 많은 서적의 목록도 기재되어 있어,조선 초기의 외교.. 2020. 12. 16.
적암 조신(曺伸)선생 ~ 2)수난사 적암(適菴) 조신(曺伸)선생은 이륜행실도등 많은 저서와 시를 남겼다.그 중에서도  형(兄)인 매계(梅溪) 조위(曺偉)선생이 유배를 간 이후에 집안에 닥친 많은 어려움과  고난들, 그리고 죄인의 집안이라드러내 놓고 불평이나 원망도 하지 못하며 참고 지내야만 했던 수많은 날들, 기록으로도 남길수 없었던 참담하고 애닲은 마음들을 시로 남겼다. 520여년전 우리 선조님들이 겪었던 그 고난의 세월들을 모두 다 알수는 없겠지만 이 시를 통해서 대충이나마 미루어 짐작해보고자 한다.  1.대풍가(大風歌)     적암(適菴)  조신(曺伸, 1454~1529) 큰 바람 불어옴이여! 산 속 나무 부러지네.              맹수 부르짖음이여! 산 속 돌 찢어지네.                  남아 태어났으면 명당을 .. 2020. 12. 13.
적암 조신(曺伸)선생~1)생애(生涯) 적암(適菴) 조신(曺伸,1454.8.15.~1529)은 매계 조위선생의 동생으로자는 숙분(叔奮)이요, 호는 적암(適庵), 시호는 효강공(孝康公)이다.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조계문(曺繼門)이며. 점필재 김종직이 그의 매형이다. 매계(梅溪) 조위(曺偉,1454.7.10.~1503)는 조신(曺伸)보다 한 달 먼저 태어난 형이다.매계 조위는 조계문(曺繼門)의 적실(본부인)에서 태어났으며, 적암 조신은 측실(첩)에서 태어났다. 당시 조선은 적자(적실소생)와 서자(측실소생)의 차별이 엄중하여서자로 태어나면 교육은 물론 벼슬길에도 나가지 못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두 형제는 어릴 때부터 한집에서 태어나 같이 자라났으며교육은 물론 벼슬길에 올라서도, 또 순행을 할 때에도 평생을 그림자처럼 함께하며 우애 깊게 지냈다.  .. 2020. 12. 12.
2020의 간략한 묘사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우리 주변의 생활관습과 문화등 모든 부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중 조상을 모시는 묘사도 예외는 아니다. 각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경계하다보니 음식도 간소하게, 사람들도 최소한으로 모여 제례를 모시게 되었다. 경주 안강의 시조묘사도 임원진 20여명만 참여하여 모셨고, 각 파 종중묘사도 최소한의 종원만 모여 모시게 되었다. 관혼상제뿐만 아니라, 종교, 모임, 학교, 예술분야등 어느것 하나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조심조심하며 간략하게 형식만 갖춘다. 울진공과 문장공(매계)이하 선조들의 시제는 마암재에서 청사재로 봉행하고 있는데, 올해는 밥,갱(국),탕,나물,전등을 생략하고 떡(절편)도 조금만 하여 간략하게 준비하였고, 제관들도 서울,부산,거제등 타지역.. 2020.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