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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조문 인물과 발자취,묘소62

매계 조위선생의 생애와 유적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선생은 조선조 김굉필(金宏弼)· 정여창과 더불어 초기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김종직과 더불어 신진사류의 지도자 역할을 했다. 김종직의 문인으로 1475년 식년문과에 급제, 1479년 영안도경차관이 되었다. 성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으며 검토관, 시독관 등으로 경연에 나갔으며 이후 지평, 문학, 응교를 거쳐 노모 봉양을 위해 함양군수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매계구거 율수재 (梅溪舊居 聿修齋) 1492년 동부승지, 도승지,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충청도,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498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다가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으로 일어난 무오사화로 김종직의 "조의제문" 시고를 수찬한 장본인이라 하여 체포, 투옥된 후 오랫동안 의주에.. 2023. 12. 3.
남명 조식선생의 생애와 유적 남명 조식(曺植,1501~1572)선생은 1501년(연산군 7년) 6월 26일 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토동) 외가댁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이다. 조선 전기의 대학자로 이황과 더불어 경상도(경상좌·우도) 사림을 각각 영도하는 인물로, 성리학자이며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삼가면 외토리(토동) 조식선생 생가 어릴때는 이곳에서 자랐으나 아버지가 벼슬길에 나가자 임지를 따라 다니면서 학문을 배웠으며, 30세부터 처가가 있는 김해의 신어산 아래에 산해정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48세에 다시 고향인 삼가현의 토동으로 돌아와 뇌룡정과 계부당을 짓고 제자를 길렀다. 61세에 지리산 아래 산청 덕산으로 옮겨 산천재를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으며, 1572년 .. 2023. 12. 1.
서양화가 조규석(曺圭石) 화백의 작품산책 서양화가 조규석은 파리유학시절의 스승이신 "이브 브라이예(Yves Brayer)" 교수로 부터 세계적인 작가가 되려면 일 만점의 작품을 제작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작품 한점 한점에 열과 성의를 다하며 초인적인 정열로 작품에 임해왔다. 2019년 10월 19일 제43회 남명(조식) 선비문화축제에서 만난 화백 1940년 경산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하다가 2024년 2월 25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영원한 화단의 세계로 돌아갔다. 화가 조규석은 가장 광범위하고 풍부한 화필로서 힘찬 대비로 선명함을 높은 톤(ton)으로 특히 야생의 자연안에서 권위를 갖고 처리하고 있다. ~ 이 세련된 수인(壽人,Anateur)에 대해 현실보다 많은 영혼을 포착한 그의 우수하고 만능적인 미적 세계를 덧붙이고 싶.. 2023. 11. 27.
2023년 창녕 선조산소 성묘 창녕 대초리와 남지에 모셔져 있는 선조 묘소에 성묘를 다녀왔다. 이곳은 경주 안강 초제리에 모셔져 있는 시조 태사공(조계룡) 묘소를 제외하고는 고려말 조선초기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선조묘소이다. 휘(諱) 원계(元桂) 선조 묘소 창녕 대초리에 있는 휘(諱) 원계(元桂) 선조는 김천 입향조이신 휘(諱) 심(深) 선조의 증조부 이시며, 매계선생의 5대조 되신다. 환(煥)자 항렬 기준으로는 20대조(규자는 21대조)가 되시며, 고려말기에 모신 묘소로 600여년이 넘은 산소이다. 성묘 준비중 묘사는 시류에 따라 수년전부터 김천 덕원재에서 입향조와 합설하여 모시고 있으며, 이곳은 매년 성묘만 하고 있다. 오늘은 올 겨울들어 처음 쌀쌀한 날씨인데다 각자의 사정이 있어 6명(규상,정만,운현,지환,순집,각환)만 참석하.. 2023. 11. 12.
영천 만취당(晩翠堂)과 금산당 영천 금호읍 오계리 만취당 건물은 1781년(정조 5) 전라도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曺學臣)이 젊은시절 살림집을 건축하고 주위에 송림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 집은 앞쪽의 길을 향하여 나앉은 광명헌(光明軒)과 행랑채의 솟을대문 지붕 사이로 사랑채와 안채의 지붕마루가 조금씩 보이는 평면적인 경관을 이루고 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175호로 지정(1984년)되어있다. 행랑채와 대문 이 집은 조선시대 후기의 주택으로 정침(正寢, 안채)을 비롯하여 사랑채와 새사랑채인 광명헌, 오른편에는 사당이, 그 후방에는 체천위(遞遷位)를 모신 별묘재사(別廟齋舍: 報本齋)에 이르기까지 사대부 주택의 구성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당시의 건축양식과 주생활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는 건축물이다. 사랑채인 만취당(晩.. 2023. 5. 21.
창녕조씨 김천문중 국학자료(고문서 등) 기탁목록 안동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국학자료의 수집과 보존 연구 등의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 중 각 문중 등 민간소장 국학자료를 자연적 멸실과 인위적 훼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소장자의 소유권을 보장하고 관리권만 위임받는 "기탁"에 의한 방식으로 자료의 조사· 수집사업을 수행하고있다. 2021년 수탁 국학자료 목록집(한국국학진흥원) 표지 지난 2022년 9월 말까지 수집된 국학자료만 606,073건으로 고서가 186,521건, 고문서 341,652건, 목판 66,656건, 현판 1,362건, 서화 5,706건, 기타 4,176건 이다. 우리 창녕조씨 김천 문중에서도 각 집안에 소장하고 있던 중요한 자료들을 기탁하였는바 2021년도에 기탁된 국학자료 목록집이 발행되어 이를 근거로 살펴보고자 한다. 매계구.. 2022. 11. 11.
창녕 선조 성묘가는길 구름한점없이 화창한 가을날 창녕의 선조 성묘길에 나선다. 경주 안강의 시조(신라 태사공 조계룡)산소를 제외하고는 창녕의 20대조(원계,元桂)와 19대조(우희,遇禧), 18대조(익수,益修)산소는 각각 고려말 묘제양식이어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산소이다. 은사시나무숲 곳곳마다 가을이 무르익어 수를 놓은듯 만산홍이다 벗나무단풍길 20대조 휘(諱) 원계(元桂)묘와 부인 김씨묘 이 산소는 김천 입향조이신 휘(諱) 심(深)선조의 증조부 이시며, 매계선생의 5대조 되시며 환(煥)자 항렬의 20대조 이시다. 성묘전 일찍 벌초를 하여 웃자란 아카시아 등을 제거했다 남지의 창녕 조우희,조익수 묘 안내판 휘(諱) 우희(遇禧) 묘소(위) 둘째 아들인 익수(益修)의 묘소(아래) 창녕 남지읍 성사리에 있는 휘(諱) 우희(遇禧)의.. 2022. 11. 6.
우졸당 조유(曺逾) 선생의 묘비를 세우다 조유(曺逾) 선생의 자(字)는 자고(子高)이며 호는 우졸당(愚拙堂) 이다. 1649년(을축) 봉계 매계 구거에서 매계 조위(曺偉) 선생의 5대손으로 태어나서 1696년 에 돌아가셨으며, 묘는 선돌 참의공 묘 좌측(청룡 외을좌)에 모셔져있다. 특증(特贈)에 지평(持平)이며, 추증(追贈)되어 이조판서(吏曹判書)이시다. 부인(配)은 선산김씨로 정부인(貞夫人)이며, 묘는 봉계 율수재 좌측에 모셔졌다. 우졸당 조유선생 묘소와 묘비 지난 2021년 3월에 김천향토사 연구회에서는 우졸당 조유(曺逾)선생의 한자로된 유고(遺稿)집을 국역본으로 발간한바 있으며, 이번 2022년 여름에는 율수재 옆의 정부인(貞夫人) 선산김씨 묘소를 이장하여 선돌(외입석)의 우졸당(愚拙堂) 묘소와 326년만에 합폄(合窆)하여 모시고, 병계(.. 2022. 9. 8.
창녕조씨 김천문중 인물탐방~(2)조상들의 고택을 묵묵히 지켜온 조상환 조상환은 우리나라에 거주하지 않고 실제로는 미국에 살고있다. 그러면서도 선조들의 유산이 거의 잊혀지거나 멸실되어 가고있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오직 고향에 남겨둔 고택을 보존하기 위해 수년째 양국을 오가면서 많은 시간과 비용은 물론 때로는 혼자 숙식까지 해결하며 머물러야 하는 어려운 여건을 감수하면서도 고택을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케 하는데 헌신했다. 조상환(曺祥煥) 조상환(曺祥煥)은 찬성공 조경수(曺敬修)의 18세(대)손이요, 김천 입향조이신 참의공(參議公) 조심(曺深) 선조의 17세(대)손이 된다. 문장공(文莊公) 매계(梅溪) 조위(曺偉)선생의 15세(대)손이요, 우졸당(愚拙堂) 조유(曺逾)의 맏아드님이신 지사공(知事公) 조세호(曺世虎)의 9대손으로 부(父) 조병훈(曺秉薰)과 모(母) 서산정씨 사이에.. 2022. 1. 15.
남명 조식선생의 김해 산해정 김해 산해정(金海 山海亭)은 김해시 대동면 주박동에 있는 조선후기의 건축물로 조선시대의 거유(巨儒)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선생이 처가인 이곳 신산(新山)의 경치를 사랑하여 정각을 세워 산해정이라 이름 짓고 30세부터 45세까지 살면서 강학하던 곳으로, 경남 문화재자료 제125호이다. *참고로 산해(山海)는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학문을 닦아 경지가 높아지면 생각과 마음이 바다같이 넓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해정(신산서원) 조식선생이 별세한 뒤 1539년(선조 21)에 향인들과 제자들이 정자 동쪽 기슭에 서원을 착공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중지되었다가, 광해군 원년(1609)에 안희, 허경윤에 의해 준공되어 신산서원(新山書院)이라고 사액되었다. 그후 대원군의 서원 철.. 2022. 1. 13.
휘 우희(諱 遇禧)의 부인 성산이씨 묘소를 찾아서 휘 우희(諱 遇禧) 선조는 김천 입향조 참의공 휘 심(諱 深)의 조부되시며, 매계 조위(梅溪 曺偉)선생의 고조부 이시고, 환자 항렬의 19대조가 되신다. 묘소는 창녕 남지읍 성사리에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녕 남지읍의 19대조 휘 우희(諱 遇禧)의 묘소 그런데 부인(19대조모)인 성산이씨는 휘 우희(諱 遇禧) 선조의 묘 상석과 족보상에 창녕 용장사 서자좌(西子坐)라고 되어 있으나 그동안 실전(잃어 버림)되어 성묘도 못하는 아쉬움이 많았었는데 이번에 참의공 조운현 종회장의 숭조하는 지극한 정성과 노력으로 묘소를 찾게(미확정) 된것이다. 이 묘소는 조선조 초기 병조판서를 지낸 이장곤(李長坤,1474~1519)의 묘역안에 있어 아직은 벽진이씨 종중과의 이해관계 등 정리해야할 일들.. 2021. 11. 23.
김천 난함산과 내남산 백두대간의 난함산은 김천시 봉산면 상금리 산 2-3에 있는 해발 733.4m의 산이다. 그런데 고향의 태화초등학교시절 교가에도 넣어서 불렀던 내남산은 난함산에서 동북쪽능선으로 조금 더 떨어진곳에 있으며 높이는 해발 737.9m이고, 행정구역은 봉산면이 아닌 어모면 능치리 산84이다. 난함산은 정상에 통신중계소가 있는데 상금리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도로가 어모면쪽으로 나있어 차량을 이용하여 그쪽으로 가는것이 훨씬 쉽다. 난함산에서 내남산으로 가는 길은 등산로조차 없어 전문가외에는 가기조차 어려운데 그래서 내남산만 오른다면 어모면 도암리(932) 봉덕사에서 출발해야 할것같다. 봉황이 알을 품는 형상이라는 난함산 표지석 난함산에서 보는 김천방향으로 앞에 문암봉 저멀리는 금오산이 보인다 어모면 방향 산위에서 곱게.. 2021. 9. 18.
영천 지산 조호익 고택과 도잠서원(道岑書院) 영천 지산고택(永川 芝山故宅)은 영천시 대창면 신광리에 있는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1545~1609)선생의 종택이다.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요소를 잘 갖춘 가옥으로서, 특히 영천의 지역적 특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조금 떨어진 용호리에는 지산 조호익(芝山 曺好益)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도잠서원(道岑書院)이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천 지산 조호익 고택 조호익(曺好益,1545~1609)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우(士友), 호는 지산(芝山)이다. 창원 출생으로, 사옹원정 조치우(曺致虞)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예조정랑 조효연(曺孝淵)이고, 아버지는 증좌참찬 조윤신(曺允愼)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대.. 2021. 6. 4.
창녕조씨 김천문중 인물탐방~(1)조대환 전 민정수석비서관 조대환(曺大煥)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김천 입향조이신 참의공(參議公) 조심(曺深)선조의 17대손으로 문장공(文莊公) 매계(梅溪) 조위(曺偉)선생의 15대손이요, 매계선생의 증손자이신 교위공(校尉公) 옥(沃, 묵재공 익瀷의 동생)의 차남인 조하창(曺夏昌)의 후손이다. 아버지 조형동(曺瑩東)과 어머니 권삼분(權三粉) 사이에서 장남으로 청송에서 태어났으며, 매계 선영아래의 하창(夏昌)선조묘소를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는 조경동(曺景東)씨가 재종숙(再從叔)이다. 서울법대를 나와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육군 법무관과 검사(1986~2005)생활을 거친 뒤, 2005년부터 현재까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2016년 12월 10일부터 2017년 3월 10일까지 박근혜 정부 마지막 청와대 민정수석비서.. 2021. 4. 4.
우졸당 조유선생 유고집과 경매당 조술 묘소 우졸당(愚拙堂) 조유(曺逾,1649~1696)선생의 유고(遺稿)집은 한자로 작성되어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것을 김천향토사연구회에서 국역본으로 발간하게 된것이다. 국역과 서문은 전 성주향교 전교(典校) 강희대(姜熙大)님이 수고하였으며, 문중의 조규붕(曺圭鵬)님이 발간문을, 조지환(曺智煥)님이 발문을 하였다. 상목 권지단(常目 卷之單) 원본의 우졸당선생 연보는 조세룡(曺世龍)선조가, 연보의 발문은 조박(曺박 雨+博) 선조가 쓰셨다. 유고는 시(詩) 3편, 일기인 기자(記自) 4편, 서(書) 10편이고, 부록으로 만사(輓詞) 13편, 행장(行狀) 13편, 그외 소지(所志,백성이 도백이나 군수에게 올리는 청원서)가 김산유생(金山儒生) 김선기등 100여인과 도내유생 진사 신진경등 200여인, 도내 선산유생 박.. 2021.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