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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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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높이는 2미터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고 넓은 달걀 모양인데 가장자리에 굵은 톱니가 있다 8~9월에 노란색의 큰 두상화(頭狀花)가 줄기 끝이나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를 맺는다. 씨는 기름을 짜서 등유로 쓰거나 식용하고 줄기 속은 이뇨, 진해, 지혈에 약.. 2009. 7. 5.
달맞이꽃 달밤에만 핀다고 이름도 달맞이인 달맞이꽃이 병아리보다 더 병아리 같은 노오란 꽃잎이 아름답다. 벌들도 이른아침부터 꿀 찾기에 분주하다(2009.신천) 청초..... 아름다움..... 수줍음..... 나도 좀 봐주세요 울진 두천리(2011.10.6) 울진 두천리(2011.10.6) 영오동 농장에서(2012.7.21) 문광저수지에.. 2009. 7. 5.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6)중종 원년~38년 제6편 중종원년(1506년) - 중종38년(1543년) 중종실록(中宗實錄) 중종 원년(1506) 11월 11일(제1권 p139) O 전교하기를, “죽은 안양군. 봉안군은 계성군(桂城君). 전성군(全城君) 예에 의하여 각각 미. 태 50석, 종이 1백 권, 정포(正布) 30필, 백저포(白苧布) 5필, 목면 5필, 석회 30석, 진유(眞油) 7두 5승, 청밀(淸蜜) 5두를 제급하고, 패주 때 무죄하게 귀양 가서 죽은 자인 봉안군 봉. 안양군 항, 우산군 종,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표 연말(表沿沫), 참판(參判) 조 위(曺偉), 권 주(權柱), 관찰사 남궁 찬(南宮璨), 참판 이 창신(李昌臣)은 혹 적소(謫所)에 빈소를 치렀거나 혹 고향에 장사지낸 이도 있으니 모두 관원을 보내어 제사지내고 죽은 판서 이.. 2009. 7. 3.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 (5)연산군 원년~11년 제5편 연산군원년(1495년) - 연산군11년(1505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연산군 원년(1495) 1월 27일(연산군일기 제2권 p98) O 이 철견을 월성군 겸도총관으로, 정 경조를 동지의금부사로, 박 건을 병조참판으로, 허 침을 형조참판으로, 안 처량을 한성부 좌윤으로, 조 위(曺偉)를 우윤으로, 김 극검을 겸동지성균관사로, 이 극규를 장례원 판결사로, 김 율을 사헌부 집의로, 최 응현을 겸부총관으로, 오 순을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삼았다. 연산군 원년(1495) 2월 21일(p3권 p140) O 충청도 영춘현에서 대낮에 유기병 같이 생긴 물건이 그 빛깔은 불같은데 하늘로부터 떨어져서 땅에 닿자마자 사라지고 남은 빛은 도로 올라가서 흩어지므로 가서보니 달걀 같은 모양에 연노랑 빛이고 돌처럼 굳으.. 2009. 7. 3.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 (4)성종24~25년 제4편 성종24년(1493년) - 성종25년(1494년) 성종 24년(1493) 1월 3일(제273권 p204) O 조 위(曺偉), 김 응기(金應箕), 한 사문(韓斯文), 황 사효(黃事孝), 윤 숙(尹?)은 의논하기를, “형옥(刑獄)은 반드시 먼저 국문하여 사증(辭證)의 일의 형상이 명백하여 의심할 바가 없어야만 마땅히 형신해야하고 만약 사증이 분명하지 않은데 갑자기 고문하게 되면 볼기를 치는 형벌 아래에서 반드시 무왕(誣枉 남을 억지로 죄에 빠뜨림)함이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예전에 형벌은 대부(大夫)이상에게 행하지 않았으니 조관(朝官)의 형신은 더욱 신중히 해야 마땅합니다.” 하고, 정 성근(鄭誠謹)은 의논하기를, “요사이 선비의 습속이 예전 같지 않으니 수령으로서 더러 침범하여 빼앗고 탐욕스럽거나 .. 2009. 7. 3.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 (3)성종23년 제3편 성종23년(1492년 1월 - 12월) 성종 23년(1492) 1월 4일(제261권 p239) O 동부승지 조 위(曺偉)가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충청도 모든 고을의 수군(水軍)이 거의 다 그 수효를 거짓으로 과장해 놓았다고 합니다. 지금 목천현의 수군 10여 호도 사실상 없는 것이 군안(軍案)에 실려 있고 한 사람도 방수에 서는 자가 없는데 수군절도사는 달마다 군사를 징발하고 고을에서는 사람을 사서 병역을 세우고 있어 그 폐단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청컨대 허실을 핵실(?實)하여 그 폐단을 없애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한 것은 과연 옳지 않으니 관찰사와 절도사에게 글을 내려 묻도록 하라.” 하였다. 성종 23년(1492) 1월 일(제261권 p243) .. 2009. 7. 3.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 (2)성종14~22년 제2편 성종14년(1483년) - 성종22년(1491년) 성종 14년(1483) 1월 2일(제150권) O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조 위(曺偉)가 와서 아뢰기를, “임 보형(任甫衡)을 이제 사축(司畜)으로 제수하였는데, 임 보형은 전에 그 아내 양씨(梁氏)를 음분(淫奔 음란한 행위를 함)한다고 무고하고 종을 시켜서 끌어내게 하였으므로 유사(有司)가 심문하여 죄를 과(科)하였는데 이제 또다시 벼슬하는 대열에 끼이게 되었으며, 이 선남(李善男)은 일찍이 괴산군수가 되어 함부로 형벌한 까닭으로써 벼슬을 깍아 영구히 서용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제 돈영부 판관(敦寧府判官)으로 제수하였으며, 이 숭수(李崇壽)는 대왕대비의 도서(圖書 인신)를 위조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죄를 받았는데 이제 승진하여 당상관(堂上官)이 .. 2009. 7. 3.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 (1)성종5~13년 이 글은 조선왕조실록중에서 성종실록,연산군일기,중종실록에 기록된 조위선생에 대한 내용을 6편으로 나누어 발췌 수록하였다 이 실록은 조위 선생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당시 나라사정이나 법도,행정환경, 주민생활상등의 사정을 짐작케 하는 재미있고 살아있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1편은 성종 5년(1474.1.) - 성종13년(1482.12) 2편은 성종14년(1483.1) - 성종22년(1491.11) 3편은 성종23년(1492.1 - 12) 4편은 성종24년(1493.1) - 성종25년(1494.8) 5편은 연산군원년(1495) - 연산군11년(1505) 6편은 중종원년(1506) - 중종38년(1543) 성종실록 (성종강정대왕실록) 성종 5년(1474) 1월 1일(제38권 p216) O 임금이 백관(百官)을 거.. 2009. 7. 3.
마가렛 2009. 7. 3.
노랑코스모스 2009. 7. 3.
신천의 7월 꽃 무더위와 장마가 서로 밀고 당기고 하는 7월초입이다. 꽃들은 서로 질세라 자기의 아름다음을 뽐내면서 여름을 즐긴다. 무궁화가 피기 시작했고 부용화,배롱나무,벌개미취,비비추,금계국,능소화,흰색루드베키아가 앞을 다툰다. 6월의꽃 원추리는 아직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버티고 있.. 2009. 7. 3.
순천 옥천서원 경현문 옥천서원 玉川書院記 嘉靖 癸亥년에 龜巖 李公(李楨)이 昇平府使로 나왔을 때 寒暄 金先生이 이곳에 와서 謫居하다가 서거 하였다. 하여 慨然히 선생을 추모하였다. 마침 臨淸坮記 한편을 입수하고는 선생의 小作으로 여겼는데, 赴任즉시 이른바 임청대의 옛터를 尋訪(심방)하고 .. 2009. 7. 2.
조위선생의 매계구거 율수재와 매계 문화재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선생은 조선조 김굉필(金宏弼)· 정여창과 더불어 초기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김종직과 더불어 신진사류의 지도자 역할을 했다. 김종직의 문인으로 1475년 식년문과에 급제, 1479년 영안도경차관이 되었다. 성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으며 검토관, 시독관 등으로 경연에 나갔으며 이후 지평, 문학, 응교를 거쳐 노모 봉양을 위해 함양군수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매계구거 율수재 (梅溪舊居 聿修齋) 1492년 동부승지, 도승지,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충청도,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498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다가 때마침 일어난 무오사화로 김종직의 "조의제문" 시고를 수찬한 장본인이라 하여 체포, 투옥된 후 오랫동안 의주에 유배되었다가 순천으.. 2009. 7. 2.
매계 조위선생의 시문학 매계 조위선생은 본관이 창녕이고 호가 매계이다. 단종2년(1454)경북 김천시 봉산면 인의동에서 태어났다. 조위의 아명은 오룡인데 서제(庶弟)인 조신과 함께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일곱살에 시를 지을줄 알았다 그러나 조위의 학문은 김종직과의 만남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가 열살때 누나가 김종직에게 출가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김종직의 문인이 됐다 자형 김종직 에게서 예기와 문장을 배운 조위는 18세때 생원진사에 3장 장원급제했다 21세때 문과급제하면서 관계에 진출했다. 승문원정사 예문관검열을 거처 23세때 성종의 명으로 갓생긴 호당에 들어가 사가독서(賜暇讀書)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때 조위는 양희지,조호인,권건등과 장의사에서 글을 읽었는데 조위가 제일 나이가 적었다. 그의 뒤를 이어 김일손 강위등 문우들이 속.. 2009. 7. 2.
노을지는 신천 신천이 끝나고 금호강과 만나는 곳, 거기에는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 있다. 장마 사이사이 하늘이 빼꼼 보일때 대구의 하늘은 푸름을 자랑한다. 아직 나는 살아 있노라고, 언제라도 푸르를수 있다고, 멀리 팔공산위로도 노을은 물든다 뒤로 돌아보면 가로등 불빛이 밤을 제촉한다. 2009.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