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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222

제6회 매계문학상 시상식 및 매계 조위선생 학술발표회 그리고 제43회 매계백일장 2022년 9울 7일 오후 3시 김천시 봉산면 봉계 율수재(聿修齋)에서는 제6회 매계문학상 시상식 및 매계 조위선생(梅溪 曺偉先生) 학술발표회와 제43회 매계(梅溪)백일장이 매계선생의 탄생지인 율수재 앞 뜰에서 열렸다. 율수재 행사장 입구 이 행사는 이곳 김천 봉계 출신으로 조선 성종조의 대학자이자 명문장가로서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한시를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한 두시언해와 유배가사의 효시인 만분가(萬憤歌)를 집필하는 등 우리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기신 매계 조위선생의 업적을 기리고자 제정한 문화재행사이다. 매계문학상 본상 조 명(오른쪽), 매계문학상 향토문인상 문진환(왼쪽) 이날 시상식에서는 조 명 시인이 매계문학상 본상을 수상하였는데, 수상시집은 "내 몸을 입으시겠어요" 이며 현재 "예버덩 문학의.. 2022. 9. 7.
창녕조씨 김천문중 인물탐방~(2)조상들의 고택을 묵묵히 지켜온 조상환 조상환은 우리나라에 거주하지 않고 실제로는 미국에 살고있다. 그러면서도 선조들의 유산이 거의 잊혀지거나 멸실되어 가고있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오직 고향에 남겨둔 고택을 보존하기 위해 수년째 양국을 오가면서 많은 시간과 비용은 물론 때로는 혼자 숙식까지 해결하며 머물러야 하는 어려운 여건을 감수하면서도 고택을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케 하는데 헌신했다. 조상환(曺祥煥) 조상환(曺祥煥)은 찬성공 조경수(曺敬修)의 18세(대)손이요, 김천 입향조이신 참의공(參議公) 조심(曺深) 선조의 17세(대)손이 된다. 문장공(文莊公) 매계(梅溪) 조위(曺偉)선생의 15세(대)손이요, 우졸당(愚拙堂) 조유(曺逾)의 맏아드님이신 지사공(知事公) 조세호(曺世虎)의 9대손으로 부(父) 조병훈(曺秉薰)과 모(母) 서산정씨 사이에.. 2022. 1. 15.
남명 조식선생의 김해 산해정 김해 산해정(金海 山海亭)은 김해시 대동면 주박동에 있는 조선후기의 건축물로 조선시대의 거유(巨儒)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선생이 처가인 이곳 신산(新山)의 경치를 사랑하여 정각을 세워 산해정이라 이름 짓고 30세부터 45세까지 살면서 강학하던 곳으로, 경남 문화재자료 제125호이다. *참고로 산해(山海)는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학문을 닦아 경지가 높아지면 생각과 마음이 바다같이 넓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해정(신산서원) 조식선생이 별세한 뒤 1539년(선조 21)에 향인들과 제자들이 정자 동쪽 기슭에 서원을 착공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중지되었다가, 광해군 원년(1609)에 안희, 허경윤에 의해 준공되어 신산서원(新山書院)이라고 사액되었다. 그후 대원군의 서원 철.. 2022. 1. 13.
휘 우희(諱 遇禧)의 부인 성산이씨 묘소를 찾아서 휘 우희(諱 遇禧) 선조는 김천 입향조 참의공 휘 심(諱 深)의 조부되시며, 매계 조위(梅溪 曺偉)선생의 고조부 이시고, 환자 항렬의 19대조가 되신다. 묘소는 창녕 남지읍 성사리에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녕 남지읍의 19대조 휘 우희(諱 遇禧)의 묘소 그런데 부인(19대조모)인 성산이씨는 휘 우희(諱 遇禧) 선조의 묘 상석과 족보상에 창녕 용장사 서자좌(西子坐)라고 되어 있으나 그동안 실전(잃어 버림)되어 성묘도 못하는 아쉬움이 많았었는데 이번에 참의공 조운현 종회장의 숭조하는 지극한 정성과 노력으로 묘소를 찾게(미확정) 된것이다. 이 묘소는 조선조 초기 병조판서를 지낸 이장곤(李長坤,1474~1519)의 묘역안에 있어 아직은 벽진이씨 종중과의 이해관계 등 정리해야할 일들.. 2021. 11. 23.
김천 난함산과 내남산 백두대간의 난함산은 김천시 봉산면 상금리 산 2-3에 있는 해발 733.4m의 산이다. 그런데 고향의 태화초등학교시절 교가에도 넣어서 불렀던 내남산은 난함산에서 동북쪽능선으로 조금 더 떨어진곳에 있으며 높이는 해발 737.9m이고, 행정구역은 봉산면이 아닌 어모면 능치리 산84이다. 난함산은 정상에 통신중계소가 있는데 상금리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도로가 어모면쪽으로 나있어 차량을 이용하여 그쪽으로 가는것이 훨씬 쉽다. 난함산에서 내남산으로 가는 길은 등산로조차 없어 전문가외에는 가기조차 어려운데 그래서 내남산만 오른다면 어모면 도암리(932) 봉덕사에서 출발해야 할것같다. 봉황이 알을 품는 형상이라는 난함산 표지석 난함산에서 보는 김천방향으로 앞에 문암봉 저멀리는 금오산이 보인다 어모면 방향 산위에서 곱게.. 2021. 9. 18.
제5회 매계문학상 수상자선정 김천문화원에서는 2021년 제5회 매계문학상 수상자로 본상에는 천수호(57) 시인을, 향토문인상에는 조석현(69) 시인을 선정됐다고 공고했다. 매계문학상은 김천문화원이 김천지역의 석학인 매계 조위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이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지난 2017년부터 6명(본상 4, 향토문인상 2)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매계 조위 선생은 조선 성종조의 문인으로 '두시언해(杜詩諺解)' 간행을 주도하고 유배가사의 효시인 '만분가(萬憤歌)'를 집필하는 등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본상 수상자 천수호 시인 본상 수상자로 선정된 천수호 시인의 수상작은 시집 '수건은 젖고 댄스는 마른다'이다. 천수호 시인은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하여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 2021. 7. 10.
영천 지산 조호익 고택과 도잠서원(道岑書院) 영천 지산고택(永川 芝山故宅)은 영천시 대창면 신광리에 있는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1545~1609)선생의 종택이다.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요소를 잘 갖춘 가옥으로서, 특히 영천의 지역적 특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조금 떨어진 용호리에는 지산 조호익(芝山 曺好益)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도잠서원(道岑書院)이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천 지산 조호익 고택 조호익(曺好益,1545~1609)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우(士友), 호는 지산(芝山)이다. 창원 출생으로, 사옹원정 조치우(曺致虞)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예조정랑 조효연(曺孝淵)이고, 아버지는 증좌참찬 조윤신(曺允愼)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대.. 2021. 6. 4.
창녕조씨 김천문중 인물탐방~(1)조대환 전 민정수석비서관 조대환(曺大煥)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김천 입향조이신 참의공(參議公) 조심(曺深)선조의 17대손으로 문장공(文莊公) 매계(梅溪) 조위(曺偉)선생의 15대손이요, 매계선생의 증손자이신 교위공(校尉公) 옥(沃, 묵재공 익瀷의 동생)의 차남인 조하창(曺夏昌)의 후손이다. 아버지 조형동(曺瑩東)과 어머니 권삼분(權三粉) 사이에서 장남으로 청송에서 태어났으며, 매계 선영아래의 하창(夏昌)선조묘소를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는 조경동(曺景東)씨가 재종숙(再從叔)이다. 서울법대를 나와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육군 법무관과 검사(1986~2005)생활을 거친 뒤, 2005년부터 현재까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2016년 12월 10일부터 2017년 3월 10일까지 박근혜 정부 마지막 청와대 민정수석비서.. 2021. 4. 4.
우졸당 조유선생 유고집과 경매당 조술 묘소 우졸당(愚拙堂) 조유(曺逾,1649~1696)선생의 유고(遺稿)집은 한자로 작성되어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것을 김천향토사연구회에서 국역본으로 발간하게 된것이다. 국역과 서문은 전 성주향교 전교(典校) 강희대(姜熙大)님이 수고하였으며, 문중의 조규붕(曺圭鵬)님이 발간문을, 조지환(曺智煥)님이 발문을 하였다. 상목 권지단(常目 卷之單) 원본의 우졸당선생 연보는 조세룡(曺世龍)선조가, 연보의 발문은 조박(曺박 雨+博) 선조가 쓰셨다. 유고는 시(詩) 3편, 일기인 기자(記自) 4편, 서(書) 10편이고, 부록으로 만사(輓詞) 13편, 행장(行狀) 13편, 그외 소지(所志,백성이 도백이나 군수에게 올리는 청원서)가 김산유생(金山儒生) 김선기등 100여인과 도내유생 진사 신진경등 200여인, 도내 선산유생 박.. 2021. 3. 12.
김천을 빛낸 역사인물~창녕조씨 조유(曺逾)부자 김천을 빛낸 역사 인물 창녕조씨 조유(曺逾)부자 2021년 02월 25일 [김천신문] -지극한 효행과 우애로 한때 조효자동(曺孝子洞)으로도 불려 아들 조세호, 조세룡, 조세봉, 조세붕 4형제 학문으로 명성- 봉계 창녕조씨 4효4학행(四孝四學行)으로 불리며 칭송 얻어 어버이 섬기기를 지성으로 하였고 집안을 다스림에는 엄정하고 자애로움으로… 자제들을 가르침에는 뜻을 세우고 힘쓰게 하였으며 효제를 근본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봉산면 인의리, 예지리, 신리는 예부터 봉계라 통칭하며 김천지방을 대표하는 명문사족(名門士族)이 뿌리를 내려 일찍이 현인달사(賢人達士)와 충신, 효자, 열녀를 배출하는 반촌(班村)으로 이름이 났다. 그 가운데서도 창녕조씨 문중에서 올곧은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는데 점필재 김종직의 처남으로서.. 2021. 3. 4.
매계 조위선생의 한시기행~(78)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매계선생이 중추절에 달을 바라보며 옛 친구가 생각나서 숙강에게 보낸 "억진아(憶秦娥)"와 가을에 회포를 적은 "수룡음(水龍吟)은 아마도 만년에 지난 시절을 회고하고 그리워하며 읊은 것으로 보인다. 중추절에 달을 바라보며 숙강에게, 억진아(憶秦娥)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팔월 보름달에 / 중추월(中秋月) 저녁 구름이 다 날려가니 맑고 훤히 비치도다. / 모운비진청휘철(暮雲飛盡淸輝徹) 맑고 훤히 비치는 강의 남쪽과 북쪽이며, / 청휘철강남한북(淸輝徹江南漢北) 초가집 처마와 높은 대궐에 / 모첨위궐(茅簷魏闕) 해마다 변함없던 달빛이 오늘은 특별하네. / 년년월색금소별(年年月色今宵別) 함께 바라보는 천리길에는 응당 근심이 없으리. / 공간천리응수절(共看千里應愁絶) 응당 근심이 없다면 난파의 옛.. 2021. 2. 17.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11)교리 최부(崔溥)의 표류기 이 표류기는 교리 최부(崔溥)가 1487년, 제주 등 3읍의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임명되어 제주로 건너갔는데, 거기에서 이듬해 초에 부친상의 기별을 받고 곧 고향으로 급히 오는 도중에 풍랑을 만났다. 이에 43인이 탄 배는 14일 동안 동지나해를 표류하다가 해적선을 만나 물건을 빼앗기는 등 곤욕을 치르고 결국 명나라 태주부 임해현(台州府 臨海縣)에 도착하였다.  처음 왜구로 오인되어 몰살당할 뻔했으나 어둠을 이용, 빠져나와 조선 관원이라는 것을 간신히 승복시켜 일행은 북경으로 보내졌다가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그는 상신(喪身,상을 당한 몸)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상복을 벗을 수 없다고 고집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유가의 예와 윤리의 원칙에 대한 타협을 거부하였다.  그가 귀국하자 성종은 .. 2021. 1. 29.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10)일본 통신사로 떠날때 문충공 신숙주의 병이 나음에 성종이 "그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이웃 나라와 사귀려면 일본과 통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였다. 이로써 성화(成化) 기해년에 통신사 부사(副使) 서장관(書狀官)을 일본에 보내고, 또 문사(文士)를 더 증원하였다. 그때 문광(文匡) 홍겸손(洪兼善.홍귀달)과  인천(仁川) 채기지(蔡耆之)가 승지로 있으면서 나(曺伸)를 추천하여 서울에 왔더니,   임금이 어제(御題) 다섯을 내어 시를 지어 바치라 하셨다. 또 여섯 승지에게 명하여 각기 어려운 제목을 내게 하여 시험을 보았다. 이튿날 또 어제가 나와 5편을 지어 바쳤더니 모두 칭찬을 받았다.드디어 통신사에 임명되어 차비를 차리고 떠나는데 점필재(佔畢齋, 金宗直)가 시를 지어 보냈다.  천리마도 .. 2021. 1. 29.
적암 조신의 소문쇄록 ~ 9)문인들의 시평(詩評) 적암 조신(曺伸)선생은 저서 소문쇄록에서 고려말과, 조선초기 문인들의 시(詩)를 1)혼후(渾厚) 2)침통(沉痛) 3)공치(工緻) 4)호장(豪壯) 5)웅기(雄奇) 6)한적(閑適) 7)고담(枯淡)한 것 등 7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평하였다.  시(詩)라는 것은 말(言)이다. 사람의 말(言)이 같지 않은 것은 마치 그 얼굴과 같다. 시가 혹은 기험화려(奇險華麗)하고, 혹은 호장표일(豪壯飄逸)하고, 혹은 청준전실(淸峻典實)하고, 혹은 천연고담(天然枯淡)하여 각기 다르나, 그 원숙(圓熟)하여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루는 데 이르러서는 각기 장점이 있어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나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시어(詩語)가 1)혼후(渾厚, 온화하고 후덕하다)한 것은  목노(牧老, 목은 이색, 牧隱 李穡)의 시에바람 자.. 2021. 1. 22.
순천 임청대와 임청정원 순천시 옥천동 옥천변에 있는 임청대는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매계 조위(曺偉)와 한훤당 김굉필(金宏弼)이 유배되어 귀양살이하던 중 이곳 옥천계곡을 벗삼아 소일하면서 개울가에 단을 쌓아 임청대라 한곳이다. 1503년 조위가 병사하고, 갑자사화(1504) 때 김굉필이 사사된 뒤 60여 년이 지난 1563년(명종 18)에 이정(李楨)이 이곳 부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귀향살이를 하였던 조위와 김굉필을 추모하여 1565년(명종 20) 옥천서원과 임청대 비(碑)를 세웠는데, 비석 앞면에는 이황(李滉)으로부터 임청대(臨淸臺)란 친필을 받고, 뒷면에는 진사 정소(鄭沼)의 글씨로 음기를 새겨넣었다. 이 석비는 높이 1.35m, 너비 0.7m, 두께 0.2m로 공사는 진사 배숙(裵璹)이 하였다. 원래.. 2021.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