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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梅溪 曺偉 先生128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3)황간 가학루 가학루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있는 정자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다. 민주지산과 삼도봉의 북쪽계곡에서 발원하여 물한계곡을 지나 초강천 맑은 계류가 황간을 적시며 흐르는 바로 그곳, 깎아지른 듯한 절벽위에 가학루가 있다. 이 가학루는 1393년(태조 2) 황간현감 하첨이 창건했.. 2012. 8. 3.
김천 선비의 고장 매계 조위 梅溪舊居 전경 -이 글은 2012.7.27일자와 8.4일자 매일신문에 각각 게재된 글을 옮긴것이다- 1. "大幹 숨을 고르다-황악(30) 김천 선비의 고장 매계 조위(상)" 성종 "문예는 조위가 최고" 극찬, 사화 광풍 속에서 희생 황악산 자락인 김천 대항면 복전리 마암산 창녕 조씨 선영에 조성된 매계 조.. 2012. 8. 2.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2)강진 백련사 전남 강진의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의 만덕산 기슭에는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인 다산초당이 있고, 바로 얼마 옆에 백련사가 있다 다산초당은 정약용(1782~1836)이 18년 유배생활중 10년을 보낸곳이며 여기서 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등 500여권의 저서를 하였다 이곳에서 백련사 혜장선.. 2011. 2. 10.
제31회 매계백일장 제31회 매계백일장이 2010.6.9.14:00에 매계선생의 생가터인 봉산면 봉계 율수재에서 초중고생 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화창한 날씨속에 시제가 펼쳐지자 모두 그동안 닦은실력을 뽐내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열심히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2010. 6. 9.
무오사화의 빌미가 된 김종직의 조의제문 연산군 4년인 1497년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점필재 김종직선생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김일손(金馹孫)이 사초(史草)에 실었는데, 유자광등이 이는 세조가 왕위를 빼앗은 데 대한 비유라고 연산군을 충동질하여 마침내 무오사화(戊午史禍)를 일으키고 그 뒤 갑자사화까지 연결되면서 김종직,김일손선생은 물론이고, 김굉필,조위선생등 사림파의 수 많은 선비들이 죽거나 축출 유배되었다. 점필재 조의제문(弔義帝文) 정축 10월 어느 날에 나는 밀성(密城)으로부터 경산(京山)으로 향하여 답계역에서 자는데, 꿈에 신(神)이 칠장(七章)의 의복을 입고 헌칠한 모양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楚)나라 회왕(懷王) 손심(孫心)인데, 서처패왕(西楚覇王)에게 살해 되어 빈강(郴江)에 잠겼다." 하고 문득 보이지 아니하.. 2009. 11. 22.
담양 한국가사문학관 순천 옥천서원과 임청대를 탐방하고 순천만을 둘러본후, 담양에 있는 한국가사문학관을 찾았다. 가사문학관은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데. 조위선생의 만분가, 조식선생의 권선지로가,조우인의 자도사를 비롯하여, 송순(宋純)의 <면앙집 俛仰集>과 정철의 <송강집 松江集&g.. 2009. 11. 1.
순천 임청대와 옥산서원 매계후손 8명은 2009년 10월의 마지막날인 31일 조위선생이 마지막 생을 보내고 마감했던 유배지 순천 옥천변의 임청대를 찾았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향교를 지나고 임청대와 옥천서원이 자리한 한많던 바로 그 자리를 갔다. 1498년 9월 20일 무오사화로 의주에 유배된후, 1500년 5월 의주에서.. 2009. 11. 1.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 (1)순천 임청대 순천 임청대 순천 임청각 임청대 비석 임청대(臨淸臺) 임청대는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7호로 순천시 옥천변 상류에 있다. 조선(朝鮮) 연산군(燕山君,1494∼1506년 재위)때 매계(梅溪) 조위(曺偉) 선생과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선생 두 분이 귀양살이 하면서 돌을 모아 대(臺)를 만든.. 2009. 10. 10.
한훤당 김굉필선생의 제선생문(祭先生文) 매계 조위선생 묘소(梅溪 曺偉先生 墓所) 제선생문은 조위 선생이 1503년 11월 26일(연산군 9년,당나라 홍치 16년) 유배지인 순천에서 돌아가셨을때, 같이 유배생활을 하던 도학자 한훤당 김굉필선생이 고을 사람들을 이끌고 예를 갗추어 상례를 치르면서 지은 제문이다. 제선생문(祭先生文).. 2009. 10. 3.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75)시.문학과 매계문집 조위(曺偉)선생은 본관이 창녕이고 호가 매계(梅溪)이다. 단종2년(1454)경북 김천시 봉산면 인의동 봉계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위 선생의 아명은 오룡(五龍)인데 서제(庶弟)인 조신(曺伸)과 함께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일곱살에 시를 지을줄 알았다 그러나 조위의 학문은 김종직과의 만남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가 열살때 누나가 김종직에게 출가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김종직의 문인이 됐다 자형 김종직 에게서 예기와 문장을 배운 조위는 18세때 생원진사에 3장 장원급제했다 21세때 문과급제하면서 관계에 진출하여, 승문원정사 예문관검열을 거처 홍문관 교리 박사, 그리고 일본 통신사 이향원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건너가 그곳에서 시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는데, 이무렵 조정에서는 세종때 착수했던 중국 만당의 시성 두포의 .. 2009. 9. 1.
조위 선생 연보 매계선생 신도비 매계 조위 선생 연보 1454년(단종2년) 7월 10일 공은 금산(현 김천 봉산면) 봉계리 집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자는 오룡(五龍)이다. 1455년(세조원년) 공의 나이 2세이다. 1456년(세조 2년) 공의 나이 3세이다. 8월에 아버지가 삼군진무(三軍鎭撫)를 제수 받았다. 1457년(세조 3.. 2009. 8. 17.
문장공 매계 조위 선생 매계 조위선생 초상화 조위(曺偉)선생은 자는 대허라 하고 호는 매계(梅溪)라하니 세칭 매계선생으로 불리운다. 선생은 1454년 (단종2년 갑술) 봉산면 인의동에서 울진현령 계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의 할아버지가 심인데, 여말 고려의 국운이 상잔, 다함을 한하여, 김산(현 김천)으로 낙향한 창녕조씨의 김산 입향조가 되며, 음으로 산원을 지냈으나 30세로 조세하고 뒤에 병조참의로 증직되었다 선생의 증조부는 단성좌명공신으로 서성군에 봉해진 밀직부사 추봉 의정부좌찬성 경수이며, 고조부는 판전의 사사 중 문하시중 창성부원군 우희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주와 생각이 특이하여 동생 적암 신과 같이 말을 배우면서부터 글자를 알고 7세때 능히 시문을 지어 이름이 났으니 이 때의 사람들이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그 장.. 2009. 8. 14.
매계 조위선생의 한시 기행~(73)만분가 만분가(萬憤歌)는 매계(梅溪) 조위(曺偉)선생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의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순천으로 이배된 뒤에 순천 옥천(玉川)가에 임청대(臨淸臺)라는 단을 쌓고는 같이 귀양온 문우 김굉필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짓기도했다. 이무렵 그는 "천상백옥경의 십이루 어듸메오"로 시적되는 만분가 를 지어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처지에서 옥황상제로 비유된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읊었는데, 이것은 한국 최초의 유배가사(流配歌辭)이다. 또한 이 작품은 후대에 지어지는 유배가사의 일종인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만분가(萬憤歌)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천상 .. 2009. 7. 29.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6)중종 원년~38년 제6편 중종원년(1506년) - 중종38년(1543년) 중종실록(中宗實錄) 중종 원년(1506) 11월 11일(제1권 p139) O 전교하기를, “죽은 안양군. 봉안군은 계성군(桂城君). 전성군(全城君) 예에 의하여 각각 미. 태 50석, 종이 1백 권, 정포(正布) 30필, 백저포(白苧布) 5필, 목면 5필, 석회 30석, 진유(眞油) 7두 5승, 청밀(淸蜜) 5두를 제급하고, 패주 때 무죄하게 귀양 가서 죽은 자인 봉안군 봉. 안양군 항, 우산군 종,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표 연말(表沿沫), 참판(參判) 조 위(曺偉), 권 주(權柱), 관찰사 남궁 찬(南宮璨), 참판 이 창신(李昌臣)은 혹 적소(謫所)에 빈소를 치렀거나 혹 고향에 장사지낸 이도 있으니 모두 관원을 보내어 제사지내고 죽은 판서 이.. 2009. 7. 3.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 (5)연산군 원년~11년 제5편 연산군원년(1495년) - 연산군11년(1505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연산군 원년(1495) 1월 27일(연산군일기 제2권 p98) O 이 철견을 월성군 겸도총관으로, 정 경조를 동지의금부사로, 박 건을 병조참판으로, 허 침을 형조참판으로, 안 처량을 한성부 좌윤으로, 조 위(曺偉)를 우윤으로, 김 극검을 겸동지성균관사로, 이 극규를 장례원 판결사로, 김 율을 사헌부 집의로, 최 응현을 겸부총관으로, 오 순을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삼았다. 연산군 원년(1495) 2월 21일(p3권 p140) O 충청도 영춘현에서 대낮에 유기병 같이 생긴 물건이 그 빛깔은 불같은데 하늘로부터 떨어져서 땅에 닿자마자 사라지고 남은 빛은 도로 올라가서 흩어지므로 가서보니 달걀 같은 모양에 연노랑 빛이고 돌처럼 굳으.. 2009.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