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171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구미 채미정 구미 채미정(龜尾 採薇亭)은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기슭에 있는 정자로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건립하였으며 대한민국 명승 제52호로 지정되어 있다. 길재는 고려시대인 1386년,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에 올랐는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채미(採薇)란 이름은 길재가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것을 중국의 충신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명명한 것이다. 채미정은 흥기문을 지나 우측에 있으며, 뒤편에는 길재의 충절을 기린 숙종의 "어필오언구"가 있는 경모각과 유허비각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채미의 채(採)는 캘채, 미(薇)는 고비미로 .. 2020. 9. 11.
황희정승의 상주 옥동서원 경북 상주시 모동면 백화산 아래에 자리한 옥동서원(玉洞書院)은 조선 전기 문신인 황희(1363∼145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대한민국 사적 제532호(2015.11.10)로 지정되어있다. 황희는 태종과 세종대에 걸쳐 육조 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였고, 20여년 동안 의정부 최고 관직인 영의정 부사로서 왕을 보좌하였다. 학문이 깊고 성품이 어질며 청렴한 분으로서 조선 왕조를 통하여 가장 이름 높은 재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배를 품고 이 문을 출입한다는 뜻 중종 13년(1518)에 백화서원으로 세운 이 서원은 숙종 41년(1715)에 경덕사와 강당을 짓고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정조 13년(1789)에는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옥동’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 2020. 8. 17.
성주향교와 근대가옥 만산댁 1.성주향교는 성주읍 예산리에 있으며 1398년(태조 7)에 창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東廡)· 서무(西廡)· 명륜당· 입덕문(入德門)· 수복청(守僕廳)·고사(庫舍) 등이 있으며, 특히 명륜당과 대성전은 2011.12.30 보물 제1575호로 지정되어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원래 있던 만화루(萬化樓)와 양사재(養士齋)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는 6·25 때 전소되어 새로 중건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성주향교는 전면에서 볼 때 명륜당이 좌측에 자리하고 우측에 대성전이 위치하는 좌우의 배치법을 지니고 있다. 대성.. 2020. 8. 3.
영양 청계정과 삼구정, 그리고 오극성 고택 1.청계정(靑溪亭)은 영양 청기리에 있는 정자로 도 문화재자료 170호이다. 이 정자는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문월당(問月堂) 오극성(吳克成)의 둘째 아들인 우재(愚齋) 오익(吳瀷1591~1671)이 건립하였다. 이곳은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증손인 표은(瓢隱) 김시온(金是瑥)이 우재의 충절을 높이 보고 청기의 산과 땅을 분할하여 우재에게 주었는데 그 가운데 마을 앞 암석 위에 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청계정(靑溪亭)이라 하였다. 정자 앞에는 청계천 맑은 물이 흐르고 앞산은 천일봉(天一峯)이라하여 명현들이 놀던곳으로, 당시에는 정자앞에 은행나무와 괴목, 향나무등을 심어 아름답게 꾸몄으나 현재는 향나무만 남아있다. 2.삼구정(三龜亭)은 영양읍 대천리예 있는 정자로 도 유형문화재 232호이다. 이 정자는 당.. 2020. 7. 28.
정읍 태인 피향정(井邑 披香亭) 정읍 태인면에 있는 호남제일정 피향정(披香亭)은 보물 제289호이다. 정자라고 하지만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로 누대규모이다. 이 건물은 호남지방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자 중의 하나로 원래 헌강왕대(857~860 재위)에 최치원(崔致遠)이 지금의 정읍시 칠보면에 있던 태산군(太山郡)의 현감으로 있을 때 세운 것이며 풍월을 읊고 소요하던 연못가에 세워진 정자로서 고려 현종때 증축되었다고 전하나 현재의 모습은 1716년(숙종 42) 현감 유근(柳近)이 전라감사와 호조에 교섭하여 정부의 보조로 재목을 변산(邊山)에서 베어다가 현재의 규모로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이 건물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정자의 하나로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피향이란, 향국(香國)을 둘로 나누.. 2020. 7. 3.
양산 임경대(臨鏡臺) 임경대는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낙동강(옛 황산강) 절벽 위 오봉산 능선에 있는 바위 봉우리로, 일명 고운대, 최공대(崔公臺)라고도 한다. 이곳은 낙동강과 건너편의 산, 들과 어우러진 명소로, 통일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이 즐겨 찾았던 곳이며, 그의 시도 전해지고 있다. 임경대(臨鏡臺) 김효원(金孝元. 1532~1590, 조선전기 문신) 임경대 가에서 잔치자리를 크게 여니 석양의 노래 음악소리 술잔 자주 보내네. 좌중에 그 누가 사각사각 춤을 추나 홍장중에 제일 미인 마음 둔 사람이로다. 과임경대(過臨鏡臺) 이만도(李晩燾, 1842~1910,조선후기 문신) 임경대 앞에 물 거울을 열어놓고 몽몽한 보슬비가 나그네 마음 제촉하네. 최고운 신선 떠나가고 소식 없으나 그래도 고깃배는 달을 싣고 오누나. 임경대 양산지.. 2020. 6. 28.
현풍 향교와 석빙고 현풍향교는 달성군 현풍읍 원교리에 있으며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7호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임진왜란 후 현감 이영도(李詠道)가 구(舊)교동에 중건하였다가 1759년(영조 35) 현감 김광태(金光泰)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901년에 현감 허고(許估) 등이 중수하였으며 이 후 몇차례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렀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각 4칸의 동무와 서무, 각 4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내삼문 등이 있다. 현풍현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의 변경으로 달성군의 관할이 되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 2020. 6. 1.
영주 고계정과 우우정 영주시 안정면 용산동에는 고계정(古溪亭)과 우우정(友于亭)이 있다. 고계정은 용산동 184번지에 있는 정자로 효자(孝子) 이택진(李宅鎭)의 효행(孝行)을 추모하여 1895년(철종 10) 안동군 남후면 고상동에 건립된 것을 후손들이 이주하면서 이건하였다. 우우정(友于亭)은 용산동 390-5번지에 있으며 고계정 바로 인근이다. 순흥안씨 문중이 관리하는 정자로, 교리(校理) 안공신(安公信) 5형제가 동거(同居)하면서 우애(友愛)가 돈독하였다고 유덕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2020. 5. 27.
청송 찬경루(보물 2049호) 찬경루는 청송읍내 소헌공원에 있는 누.정으로 2019년 12월 30일 보물 제2049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찬경루는 조선 세종 10년(1428)에 부사 하담이 자연적으로 생긴 암반 위에 지은 건물로, 세종대왕의 아들 8명이 외가인 청송 심씨의 시조 심홍부 선생을 위해 지은 집이다. 1792년(정조 16) 청송 군내 큰 화재로 인해 불에 타 버린 것을 그 이듬 해 중건하였는데 지금의 누는 이 당시 중건된 것이다 찬경루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이 누각에서 세종의 부인인 소헌왕후 심씨의 시조묘를 바라보며 우러러 찬미한다는 뜻에서 '찬경루'라 하였다고 한다 1428년 객사와 함께 이에 부속된 관영 누각으로 처음 건립하였고 소헌왕후와 그의 가문 청송심씨의 관향임을 들어 관찰사 홍여방이 그 은덕을 찬미하며 찬경루라 .. 2020. 5. 5.
의성 금성면 학록정사 학록정사(鶴麓精舍)는 의성 금성면 산운리에 있으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2호이다. 영천이씨 산운리 입향조인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이 학문을 익히던 곳으로,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현액(懸額)이나 후손인 와운재(臥雲齋) 명천(命天)의 유고(遺稿)에 따르면 대략 1750년(영조 26)경으로 추정된다. 학록정사는 산운마을의 뒤편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는데, 대문채〔蘇始門〕를 들어서면 중앙에 학록정사라는 강당이 있다. 앞쪽 좌측에 관리사를, 우측에는 헛간을 두었다. 강당 뒤쪽 내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이 있고, 좌측에는 헌수각(獻需閣)이 있다. 2020. 4. 24.
전주 향교 전주 향교는 전주시 교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379호이다. 고려 공민왕 3년인 1354년에 경기전(慶基殿) 북편에 창건하였었는데 태종 10년인 1410년에 태조(太祖)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경기전이 준공되자 전주성의 서쪽 황화대(黃華臺) 아래로 이전하였다. 그 뒤 1603년(선조 36) 순찰사 장만(張晩)이 좌사우묘지제(左社右廟之制)에 어긋난다 하여 조정에 보고, 왕의 재가를 받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654년(효종 5)중수 이후 2차례 중수하였고, 1922년에 명륜당을 보수하였다. 조선 후기의 경내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 각 10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신문(神門), 외문(外門), 만화루(萬化樓), 5칸의 명륜당, 각 6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3칸의 계성사(.. 2020. 4. 24.
전주 한벽당 전주 한벽당은 전주시 교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로 한벽루라고도 하는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호이다. 예로부터 한벽청연(寒碧晴讌)이라 하여 전주8경의 하나로 손꼽혔으며남원 광한루, 무주 한풍루와 함께 호남의 삼한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 태종 때 월당(月塘) 최담(崔霮)이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세웠다고 전하며, 처음의 이름도 ‘월당루(月塘樓)’였다고도 한다.그 뒤 사람들이 깎아 세운 듯한 암벽과 누정 밑을 흐르는 물을 묘사한 벽옥한류(碧玉寒流)라는 글귀에서 한벽당이라 이름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도 1683년(숙종 9)과 1733년(영조 9) 등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지금의 건물은 1828년(순조 28)에 크게 중수한 것이다.불규칙한 암반에 맞추어 높낮이가 다른 돌기둥으로 전면 기둥을 세우고,.. 2020. 4. 24.
창녕 물계서원 창녕 물계서원(昌寧 勿溪書院)은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에 있는 서원으로 이 서원에는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성혼(成渾, 1525~1598)의 우계선생문집(牛溪先生文集) 책판 284판을 비롯하여, 두문동선생실기(杜門洞先生實記) 책판 33판, 창녕성씨문행열전(昌寧成氏文行列傳) 70판, 성시중효행록(成侍中孝行錄) 46판, 창녕성씨만력보(昌寧成氏萬曆譜) 책판 22판, 창녕성씨기축보(昌寧成氏己丑譜) 189판 등 총 644매로 창녕성씨(昌寧成氏) 관계 문적을 새긴 책판을 보관하고 있다. 이 책판들은 모두 창녕 성씨와 관계된 문적을 새긴 조선시대의 목판들로 서원철폐령 때 맥산재로 옮겨 보관하였다가, 1994년 물계서원을 복원하고 1996년에는 서원 경내에 책판고를 복원하여 책판을 다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창녕 물계서원목.. 2020. 4. 20.
무주 한풍루 무주 한풍루(寒風樓)는 무주읍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의 누정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에서 국가지정 유형문화재 보물로 승격지정(2021.6.24)되었다. 이 건물은 선조 때 문신 백호(白湖) 임제가 호남의 삼한(三寒)인 무주 한풍루, 남원 광한루, 전주 한벽당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건물이다.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지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글과 그림을 남기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당시 시대상과 문화상을 알 수 있는 건물이다. 창건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객관(客館) 옆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관아에 딸린 건물로 보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599년(선조 32) 임란공신(壬亂功臣)인 임권(林權)이 현감으로 부임하여 중건하기 시작하였으나 끝을 보지 못하.. 2020. 4. 15.
봉화 한수정(보물제2048호) 한수정(寒水亭)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 있는 정자로 2019년 12월 30일 보물제 2048호이다. 같은날 보물로 지정된 10개의 누.정(달성 하목정,김천 방초정, 안동 체화정, 안동 청원루, 청송 찬경루,경주 귀래정,진안 수선루, 영암 영보정,강릉 경포대,봉화 한수정)중 마지막으로 찾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충재(冲齋) 권벌(權橃)이 1519년(중종 14) 봉화 춘양의 현 위치를 별장지(別莊地)로 선정한 후 1534년(중종29) 이 일대의 토지를 매입하였으며, 아들 청암 권동보가 1576년(선조9)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현 한수정으로부터 약 백 여보 지점에 「거연헌」이란 집을 건립하였다. 한수정의 창건은 1608년(선조41) 충재 선생의 손자인 석천공(石泉公) 권래가 할.. 2020.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