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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171

2020지정 보물~(5)담양 창평향교 대성전과 명륜당 담양 고서면 교촌리에 위치한 창평향교는 정종 1년(1399)에 지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성종 10년(1479)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며,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그 후에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내삼문 등이 있다.2020년 12월 29일 대성전과 명륜당이 각각 보물 제2099호와 제2100호로 지정되었다. 건물은 경사지에 위치하여 내삼문을 경계로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과제사공간인 대성전을 두고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다.담양 창평향교 대성전은 창건 이래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쳤으며, 현재의 모습은 중수기를 통해 1689년(숙종 15)에 갖추어 진 것을 알 수 있다. 창평향교의 배치 형식은 ‘ㅁ’ 형으로 독특한 모습이며,.. 2021. 1. 14.
2020지정 보물~(4)순천향교 대성전 순천향교는 순천 창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향교로1407년(태종 7)에 창건되었으며, 1550년에 이건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801년(순조 1)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東廡)· 서무(西廡)· 명륜당· 동재(東齋)· 서재(西齋)· 풍화루· 수호실 등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대성전은 2020년 12월 29일 보물 제2101호로 지정되었다.  이 향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소장전적으로는 교생의 명부인 유생안(儒生案)이 가장 많으며,그 밖에 필사본인 청금록(靑衿綠)등 여러 서책들은조선 후기의 향교와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순천향교 대성전은 정면 5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전남지역에서는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제394호).. 2021. 1. 14.
2020지정 보물~(3)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산청 단성향교(山淸 丹城鄕校)는 산청군 단성면 강누리에 있는 향교이다.경남 유형문화재 제88호이며, 2020년 12월 29일 보물 제2093호로 승격지정되었다.이 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때 지어졌으며, 명륜당은 1725년(영조 1)에 중건된 이래로 여러 차례 중수과정을 거쳤다.정문인 관선문(觀善門)을 들어서면 누각형식의 독특한 명륜당이 있는데,명륜당 밑을 통하여 들어가도록 되어있어, 내삼문과 대성전의 지붕이 겹쳐서 보인다.또한 동·서재는 명륜당 뒤쪽에 위치하는 전당후재(前堂後齋)형 누(樓) 형식이다.경사지에 위치하여 앞쪽에는 명륜당이, 뒷쪽에는 1740년(영조 16)에 중수한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산청 단성현 호적장부(山淸 丹城縣 戶籍帳簿)는 경남 유형문화재 제139.. 2021. 1. 11.
2020지정 보물~(2)밀양향교 대성전과 명륜당 밀양향교는 밀양시 교동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향교로대성전과 명륜당이 2020년 12월 29일에 국가지정문화재 제2094호와 제2095호로 각각 지정되었다.영남지방에서 경주향교·진주향교와 함께 규모가 크기로 유명한 곳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2년(선조 35)부사 최기(崔沂)가 중창하였는데, 중창 당시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뿐이며,1821년(순조 21) 부사 이현성이 중수하였고, 다른 건물들은 그뒤 중건되었다.현존하는 건물로는 맞배지붕의 목조기와로 된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東齋)· 서재(西齋)·동무(東廡)·서무(西廡), 팔작지붕의 2층 누각인 정문 풍화루(風化樓),개복청(改服廳)· 전교실(典校室)· 수복청(守僕廳)· 제기고(祭器庫)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2021. 1. 5.
2020지정 보물~(1)옥천 이지당(二止堂) 옥천 이지당(沃川 二止堂)은 충북 옥천 군북면 이백리에 있는 서당건물로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107호로 승격 지정되었다.문화재청은 2020년 12월 29일 옥천 이지당을 포함한 강릉향교(江陵鄕校)의명륜당(明倫堂) 등 20건(서원 3건, 향교 14건, 서당 3건)을 보물로 지정하면서,이 20건은 역사· 예술· 학술· 건축 가치가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지정 사유를 밝혔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趙憲1544~1592)이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으로, 각신마을앞에 있다하여 마을 이름을 따라각신서당(覺新書堂)이라 하고 친필편액을 걸었었다.뒤에 송시열(1607~1689)이 시전(詩傳)의 “고산앙지경행행지(高山仰止景行行止”즉 1)‘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2021. 1. 3.
야은 길재의 금산 청풍사(淸風祠)와 청풍서원 2021년 첫 발걸음은 고려 삼은 중 하나요, 충절과 절개의 상징인 야은 길재선생의 혼이 베어있는 비단고을, 금산 청풍서원으로 향했다. 청풍서원(淸風書院)과 청풍사는 충남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 있다. 청풍사(淸風祠)는 고려말 충절공 야은 길재(吉再,1353~1419)선생의 청절(淸節)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사당으로 야은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사당은 1671년(현종 12년) 길재가 부친의 시묘살이를 하였던 이곳에 후손과 고을 선비들이 불이사(不二祠)를 처음지어 1678년(숙종 4) 위패를 모셨는데, 1741년(영조 17) 서원 남설금령(濫設禁令)에 위배된다 하여 훼철되었다. 이후 1761년(영조 37) 금산군수 민백홍과 지방유림이 "백세청풍(百世淸風)" 네글자의 큰 비(碑)를 청풍.. 2021. 1. 3.
김천 김산향교(金山鄕校) 김산향교는 김천시 김산향교길(구읍)에 있는데 김산은 김천의 옛 지명이다. 1392년에 창건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1634년에 진사 강설(姜渫)이 지역 유림들과 함께 대성전과 명륜당만을 중건하였고, 그의 아들 강여호가 선친의 뜻을 받들어서 건립비용을 널리 모금하여 동·서재(東西齋)와 묘문(廟門)을 완공하였다. 전학후묘(前學後廟) 건축형태이다. 지금의 건물은 그 당시 것으로서, 1970년 건물을 전면 해체, 보수할 때 이준(李埈)이 쓴 중수상량문과 함께 ‘숭정칠년갑술월중동초사일상량(崇禎七年甲戌月仲冬初四日上樑)’ 이라는 글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서기 1634년(甲戌) 섣달이다. 현존하는 건물은 5칸의 대성전과 7칸의 명륜당, 동무(東廡)· 동재(東齋)·서재(西齋)· 내삼문(內三門)· 외삼.. 2020. 12. 22.
숙종 어서가 있는 상주 흥암서원(興巖書院) 흥암서원은 상주시 연원동에 위치한 서원으로 1702년(숙종 28)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1705년 ‘흥암(興巖)’이라 사액되었으며,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경내 건물로는 흥암사(興巖祠)· 진수당(進修堂) ·집의재(集義齋)· 의인재(依仁齋)· 어필비각(御筆碑閣) 등이 있으며, 송준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어필비각은 1716년에 숙종이 하사한 어서(御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각으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문집과 서적이 여러 권 소장되어 있다. 송준길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어려서부터 이.. 2020. 12. 22.
안동 호계서원(虎溪書院) 안동 호계서원은 1575년(선조 8) 퇴계선생이 젊었을 때 독서를 하던 안동 동북쪽 월곡 여산촌에 여강서원(廬江書院)을 건립하고, 문순공(文純公) 퇴계 이황선생(退陶李先生)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그러나 여강서원은 1605년 대홍수로 유실되었고, 1606년 북쪽으로 100보를 옮긴 위치에 중창하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김성일(金誠一)과 유성룡(柳成龍)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1676년(숙종 2)에 호계(虎溪)서원으로 사액(賜額)되면서 명칭도 바뀌었다. 그뒤 이황은 도산서원, 김성일은 임천서원, 유성룡은 병산서원에 주향되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철거되었다가 7년 뒤 강당만 새로 지은 채 남겨졌었다. 1973년 안동 댐 건설로 수몰지역이 되자 임하댐 아래 임하리로 이건됐었다. 임하리는 임하댐하류로,.. 2020. 12. 22.
함안 무기연당과 주씨고가 함안 무기연당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1길에 있으며 주재성의 생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08호이다. 주재성은 조선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난을 진압한 인물로, 관군들은 돌아가는 길에 그의 덕을 칭송하여 마을 입구에 창의사적비(倡義事蹟碑)를 세우고 서당 앞 넓은 마당에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고 산의 모양을 본떠 놓았다. 이후 주재성은 연못의 이름을 '국담(菊潭)'이라 하고 호를 삼았으며, 연못가의 서당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유유자적하였다. 연못가에는 후대에 풍욕루(風浴樓)와 하환정(何換亭)을 지었고, 최근에 충효사(忠孝祠)를 지었다. 연못 주위에는 담장을 쌓고 일각문을 내어 영귀문(詠歸門)이라 하였다. 비교적 원래의.. 2020. 11. 28.
대구 칠곡향교 칠곡향교는 대구 북구 웁내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향교로 17c초기에 건립되었다고 하나 창건연대 및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東廡), 서무(西廡)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대성전은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호이다. 봄·가을에 석전(釋奠)대제를 봉행하고 있으며, 청소년 및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서예, 충효교실 운영과 전통혼례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사무실겸 서예,충효교실등을 운영하는 현대식 건물 2020. 11. 21.
봉화 사미정과 사미정계곡 봉화 사미정은 조덕린(趙德鄰,1658∼1737) 선생이 말년에 수양하고자경치 좋기로 이름난 곳을 찾아서 조선 영조 3년(1727)에 지은 정자이다.계곡을 낀 경사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에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사미정 현판과 내현판인 마암은 정조(재위 1776∼1800) 때이름난 정승 번암 채제공1720~1799)이 직접 썼다고 전하고 있다조덕린은 조선후기 교리, 사간,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택인(宅仁), 호는 옥천(玉川)이다.  사미정기에 정자 건립의 동기를 적어두어 건축사적으로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7호이다.  사미정기(四未亭記)에는 1725년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거세져당쟁의 폐해를  논하는.. 2020. 11. 17.
현풍 암곡서원 암곡서원은 대구 달성군 현풍면 원당마을인 대니산 동쪽에 소재한 서원으로 시조인 정의공 곽 경(郭 鏡), 이부상서 포산백 정간공 곽기정(郭基正), 병부상서 포산군공 곽한정(郭漢正), 금오위교위공 곽자의(郭子儀), 훈련원판사 목사공 곽순종(郭順宗)등 5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원래는 1960년도에 창건된 구 포산사(苞山祠)에서 매년 향사를 지내오다, 2009. 9. 28. 지역 유림의 결의에 의하여 암곡서원(巖谷書院)으로 승격하어, 새 묘우에서 매년 음력 2월 9일 유림향사(儒林享祀)로 지내고 있다 한다. 암곡서원 아래에 있는 추원당(追遠堂)은 군수 곽정부(郡守 郭廷府), 부사 곽함(府使 郭緘), 목사 곽순종(牧使 郭順宗)의 추모제당(追慕祭堂)으로 1897년 창건되었다. 암곡서원은 포산사(신.구), 강당.. 2020. 11. 9.
경주 서악서원 경주 서악서원은 경주시 서악동 선도산아래 있는 서원으로 김유신· 설총· 최치원을 배향하고 있으며,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고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이다. 이 서원은 1561년(명종 16) 당시의 경주부윤(慶州府尹) 이정(李楨)이 김유신(金庾信)을 기리기 위해 선도산 아래에 서악정사를 건립한것이 시초이다. 이후 임진왜란때에 소실되었던 것을 1600년에 부윤 이시발(李時發)이 옛 터에 초사(草舍)를 다시 지어 전란을 피해 보존된 위패를 모셨다, 1602년 부윤 이시언(李時彦)이 사당 중건을 시작하였고, 1610년 강당과 동재, 서재, 전사청(典祀廳)과 장서실(藏書室)을 새로 지었다. 1623년 조정에서 서악서원이라는 이름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646년 부윤 이민환.. 2020. 9. 24.
화순 영벽정(映碧亭) 화순 영벽정은 능주면 지석강 상류 영벽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이다. 영벽정이란 계절따라 변모되는 연주산의 경치가 맑은 지석강물에 투영되어 운치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영벽정을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김종직(1431∼1492)과 양팽손(1488∼1545)의 영벽루 시(詩)가 남아 있어 조선초기에 능주목(군) 주관하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632년(인조 10) 능주목사 정연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고쳐 지었다고 전하며, 1872년 불타 버린 것을 1873년(고종 10년)에 능주목사 한치조가 중건하였다. 현재 건물은 1920년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손질하여 고쳐 지었다. 영벽정 정자가 세워진 내력에 관한 신비스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 능주 고을에는 진 처.. 2020.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