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222

예의범절과 상식~(7)묘제(묘사,진설,축문,홀기,홀기용어등) 1. 문중묘사(門中 墓祀)   문중묘사(中始祖, 入鄕祖, 派祖) 이외(以外)의 개인묘사(個人墓祀)에는   단헌(單獻)인고로 첫잔을 올리고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은 다음 독축 재배(讀祝 再拜)하고,   향이 없는 고로 고개 숙였다가  바로 사신 재배(辭神 再拜)하고 끝내는 경우(境遇)도 있다.  ①진설(陳設) :진설도(陳設圖)를 참고(參考)하여 제수(祭需)를 진설(陳設)할 것이다. ②참신(參神) :초헌자이하(初獻者以下) 참제원(參祭員)이 일제히 묘(墓)앞에 참배(參拜)하고 나서 초헌자(初獻者)가 묘(墓) 앞에 꿇어 앉고 집사(執事)는 단위시(單位時) 좌우(左右)에 각각 일인(一人)씩 들어 선다. ③강신(降降) :분향(焚香) 강신(降神)·헌작(獻爵)·개반·정저(整箸) 등 행사에 서집사(西執事)는 고위(考位)를.. 2010. 1. 9.
2009년 시조 태사공 묘제 창녕조씨 시조 태사공 조계룡(曺繼龍) 묘사(묘제)는 시조의 묘소가 있는 경북 경주시 안강읍 노당2리 초제에서 봉행한다. 시조 묘소입구에 종덕재(種德齋)가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제 자료 제91호로 지정되어 있다 시조를 추모하는 묘사는 매년 음력 10월 상정일(上丁日)즉 음력 간지로 시월 처음 정(丁)자가 들어가는 날에 봉행한다. 이 행사는 매년 각 도의 종친회가 돌아가며 제물 준비와 행사를 담당한다. 시조 태사공 조계룡의 묘 2012년 시조묘제 (2012.11.22) -대구 종회 주관- 봉축 부복 제수 진설과 대구종회 회원 2019년 시조묘제 (2019.11.6) -서울 종회 주관- 시.도 종회별 기념촬영 김천 참의공 후손 참례자 묘제 헌성금 접수 종덕재 앞 종덕재앞 마당풍경 시조태사공대제 판·제공 유사 연.. 2009. 12. 13.
예의범절과 상식~(5)지방과 축문 1.지방(紙榜)과 위패 ○지방이란 ▶제사를 모시는 분(신위)을 한지 종이에 적은 글이다. ▶요즘은 지방대신 고인의 사진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위패(신주)란 재실이나 서원에서 나무(주로 밤나무)에 신위를 적어 모셔둔 것이다 ▶지방이나 위패를 모신 자리를 신위라고 하며, 신위를 북쪽으로 간주하여 진설을 하게 된다. ○용지와 구격 ▶폭 6 cm, 길이 22 cm 정도인 깨끗한 백지에 먹으로 세로로 적는다. ▶양위(兩位)를 함께 쓸 때는 가운데를 나누어 남녀유별(有別)을 나타낸다. ▶삼위 지방일 경우에는 왼쪽에서 남자, 본 비, 재취비로 적는다. ○주제자 ▶아내의 경우 남편이 되며, 남편의 경우 아내가 된다. ▶윗대 어른들인 경우 손자가 장성해도 아버지가 된다. ○내용 ▶고(考)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뜻하고, .. 2009. 12. 10.
예의범절과 상식~(6)제례순서 제사란 집에 웃어른을 모셨을 때나 제사의 순서도 비슷합니다. 집안을 청소하고 아이들의 옷을 깨끗하게 입히고(경건함) 음식을 기호와 계절에 맞추어 준비하고(제수 마련) 좌석을 마련한 후에(신위봉안)손님을 모십니다(분향강신, 참신예) 가족의 소개를 하고 인사말씀을 올리고(축문) 술을 권해 올리며(초헌, 아헌, 종헌, 첨작) 식사를 대접한 후에(계반삽시, 합문, 계문) 차를 올리게 됩니다.(헌다) 손님이 가실 때 에는 배웅을 하고 상을 치운다.(분축, 철상) 그러나 인간의 4대 의식(관, 혼, 상, 제)에 속하는 제사에는 엄격한 절차가 있습니다. 형식인 절차는 본질인 제사를 일사분란하게 진행하여 경건하게 합니다. 가문이나 지방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1-1.제례순서(명절) 1.신위봉안 -제삿날은 몸은 .. 2009. 12. 10.
예의범절과 상식~(4)제사의 뜻과 진설(상차리기) 1.제사의 뜻 부모의 자녀 사랑보다 큰 것이 없고 우리는 선조님의 대대로 이어진 사랑속에 자랐고 앞으로도 자녀들을 통하여 끝없이 전할 것입니다. 우리가 전해 받은 무한한 사랑에 대한 감사와 추모의 의식이 제사의례(祭禮)입니다. 돌아가신 날에 후손들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감사를 표하는 날이기에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절차와 음식은 변하더라도 존경과 정성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멀리 있는 일가친척이 만남의 자리로 정을 두텁게 하는 일도 제사의 기능 중 하나입니다. 묘사란 4대가 넘으면 묘소에서 제사를 모시기에 묘사라고 합니다. 지금은 재실에서 모시는 경우도 많은데 재실에서 모시는 제사는 청사제 라고 합니다. 종교 등의 이유로 제사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으나 어느 종교든 부모는 잘 모시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2009. 12. 10.
창녕조씨의 본향인 창녕의 선영 창녕은 화왕산 정상에 창녕조씨의 득성지지가 있고 본관이기도 한 고장인데.  매계 조위선생이 큰 일이 있을 때 마다 내려와 창녕 선조묘소를 참배했던곳으로이곳 창녕 대지면 본초리(대초길)에는 김천 입향조이신 휘(諱) 심(深)선조의 증조부 이시며, 곧 매계선생의 5대조 되시며환(煥)자 항렬의 20대조인 휘(諱) 원계(元桂)선대의 묘소가 있고,창녕 남지읍 성사리(성사관당길)에는 휘 심(深)선조의 조부이시며매계선생의 고조부 되시며, 환자 항렬의 19대조인 諱 우희(遇禧)묘소가 있다. 바로 아래에는 둘째아들인 익수(益修)의 묘소가 있으며, 특히 이곳 성사리의 묘소는 고려말 묘제양식이어서 경상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원계 - 우희 - 경수(첮째 민수, 둘째 익수, 셋째 경수) - 심 - 계문.. 2009. 12. 2.
극락산 단풍잎도 거의 떨어지고, 벼를 벤 논에는 사료용으로 쓸 짚묶음들이 즐비하다. 하늘에는 어제 비온후에 아직 옅은 구름이 끼여 있어 극락산이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11월의 마지막날,묘사(음력 10.14)에 참여 하면서 극락산(極樂山)은 백두대간의 하나인 용문산으로부터 분기된 난함산에 딸린 해발498m의 산으로 정상부 아래에 극락사로 불린 절이 있어 극락산이라는 지명을 얻었다. 숙종 때인 1682년 간행된 ‘경상도좌우주군총도(慶尙道左右州郡總圖)’에는 황악산 옆에 극락산이 있는 것으로 표기돼있다. 또 1728년 여이명이 저술한 ‘금릉지’에 “군 서쪽 11리에 있으며 황간과의 경계다”라고 적고 있으며 1937년 간행된 ‘교남지(嶠南誌)’에도 “극락산은 군의 서쪽 11리에 있고 백운산으로부터 뻗어 내려와 황간과 경.. 2009. 11. 30.
창녕조씨 김천 입향조 산소와 덕원재 덕원재는 봉산면 예지리 외입석(일명 바깥선돌)인 극락산 남편자락에 있다. 이곳 선영에는 창녕조씨 김천 입향조이고 매계 선생의 할아버지 되시는 휘 심(諱 深) 선조(환자항렬의 17대조)와 큰 아드님이신 선무랑 휘 승중(諱 承重), 10대조인 우졸당(遇拙堂) 휘 유(諱 逾)묘소 외 여러 선조들이 잠들어 계신곳이다. 조경수(曺敬修,좌찬성) - 심(深,참의공) - 계문(繼門,울진공) - 위(偉,문장공) -사우(士虞,별제공) - 윤희(胤禧,영월공) - 익(瀷,묵제공) - 제창(悌昌, 참판공) - 유(逾,우졸당) - 술(述,경매당) 덕원재 상량문(德源齋上樑文) 조석(朝夕)으로 송추(松楸,무덤주위에 심은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보호하니 경모하는 뜻 저절로 생기고 춘추(春秋)로 상로(霜露,계절의 변천)를 밟으니 처창(悽.. 2009. 11. 30.
무오사화의 빌미가 된 김종직의 조의제문 연산군 4년인 1497년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점필재 김종직선생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김일손(金馹孫)이 사초(史草)에 실었는데, 유자광등이 이는 세조가 왕위를 빼앗은 데 대한 비유라고 연산군을 충동질하여 마침내 무오사화(戊午史禍)를 일으키고 그 뒤 갑자사화까지 연결되면서 김종직,김일손선생은 물론이고, 김굉필,조위선생등 사림파의 수 많은 선비들이 죽거나 축출 유배되었다. 점필재 조의제문(弔義帝文) 정축 10월 어느 날에 나는 밀성(密城)으로부터 경산(京山)으로 향하여 답계역에서 자는데, 꿈에 신(神)이 칠장(七章)의 의복을 입고 헌칠한 모양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楚)나라 회왕(懷王) 손심(孫心)인데, 서처패왕(西楚覇王)에게 살해 되어 빈강(郴江)에 잠겼다." 하고 문득 보이지 아니하.. 2009. 11. 22.
담양 한국가사문학관 순천 옥천서원과 임청대를 탐방하고 순천만을 둘러본후, 담양에 있는 한국가사문학관을 찾았다. 가사문학관은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데. 조위선생의 만분가, 조식선생의 권선지로가,조우인의 자도사를 비롯하여, 송순(宋純)의 <면앙집 俛仰集>과 정철의 <송강집 松江集&g.. 2009. 11. 1.
순천 임청대와 옥산서원 매계후손 8명은 2009년 10월의 마지막날인 31일 조위선생이 마지막 생을 보내고 마감했던 유배지 순천 옥천변의 임청대를 찾았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향교를 지나고 임청대와 옥천서원이 자리한 한많던 바로 그 자리를 갔다. 1498년 9월 20일 무오사화로 의주에 유배된후, 1500년 5월 의주에서.. 2009. 11. 1.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 (1)순천 임청대 순천 임청대 순천 임청각 임청대 비석 임청대(臨淸臺) 임청대는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7호로 순천시 옥천변 상류에 있다. 조선(朝鮮) 연산군(燕山君,1494∼1506년 재위)때 매계(梅溪) 조위(曺偉) 선생과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선생 두 분이 귀양살이 하면서 돌을 모아 대(臺)를 만든.. 2009. 10. 10.
한훤당 김굉필선생의 제선생문(祭先生文) 매계 조위선생 묘소(梅溪 曺偉先生 墓所) 제선생문은 조위 선생이 1503년 11월 26일(연산군 9년,당나라 홍치 16년) 유배지인 순천에서 돌아가셨을때, 같이 유배생활을 하던 도학자 한훤당 김굉필선생이 고을 사람들을 이끌고 예를 갗추어 상례를 치르면서 지은 제문이다. 제선생문(祭先生文).. 2009. 10. 3.
상례 상례(喪禮) 0.수시(收屍) *병자가 운명하면 지체없이 다음과 같이 수시한다. * 깨끗한 벽지나 솜으로 코와 귀를 막는다. * 눈을 감기고 입을 다물게한 뒤 머리를 높게하여 괴고 손발을 바로 놓는다. * 나무관 위에 시체를 눕히고 홑이불을 덮은뒤에 시상(屍床)으로 옮겨 병풍이나 장막으로 가리고 그 앞에 고인의 사진을 모시고 촛불을 밝힌 뒤 향을 피운다. 발상(發喪) 수시가 끝나면 가족은 검소한 옷으로 갈아입고 근신하며 애도하되,맨발이나 머리푸는 것은 아니하고 호곡을 삼가한다. 다시말해서 발상은 초상(初喪)을 발표하는 것인데 근래에 와서는 장례의 제반절차와 필요한 물품을 상비하고 있는 장의사가 있어서 검은 줄을 친 장막을 벽에 쳐 놓는다든가 근조(謹弔)라고 쓴 등을 달아 놓는다던가 또는 忌中이라 쓴 내모진.. 2009. 9. 30.
김천 마암재와 선영 마암(馬岩)의 현재 행정구역은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이지만 조선시대 후기까지는 영동군 황간면이었으며, 선영아래 마암재(馬岩齋)가 있다. 이곳 선영에는 매계선생의 부친되시며 환(煥)자 항렬의 16대조이신 울진공 휘 계문(諱 繼門) 묘소를 비롯하여 15대조인 매계 위(梅溪 偉)의 묘소, 11대조인 참판공(參判公) 휘 제창(諱 悌昌), 참판공의 종제(사촌동생)되시는 휘 하창(諱 夏昌), 또 참판공의 둘째 아드님이신 경매당(景梅堂) 휘 술(諱 述)묘소와 그리고 9대조이신 인제공 세룡(認齊公 世龍)묘소를 비롯한 여러 선조들이 영면하고 계시는 곳으로, 묘사는 음력 10월 12일 청사제로 봉행한다. 마암재 전경(2023.8.25) -매계 조위선생의 아버지이시며 울진 현령(증 가선대부)을 지냄- 증 이조참판 휘 계문 비.. 2009.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