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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222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75)시.문학과 매계문집 조위(曺偉)선생은 본관이 창녕이고 호가 매계(梅溪)이다. 단종2년(1454)경북 김천시 봉산면 인의동 봉계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위 선생의 아명은 오룡(五龍)인데 서제(庶弟)인 조신(曺伸)과 함께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일곱살에 시를 지을줄 알았다 그러나 조위의 학문은 김종직과의 만남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가 열살때 누나가 김종직에게 출가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김종직의 문인이 됐다 자형 김종직 에게서 예기와 문장을 배운 조위는 18세때 생원진사에 3장 장원급제했다 21세때 문과급제하면서 관계에 진출하여, 승문원정사 예문관검열을 거처 홍문관 교리 박사, 그리고 일본 통신사 이향원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건너가 그곳에서 시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는데, 이무렵 조정에서는 세종때 착수했던 중국 만당의 시성 두포의 .. 2009. 9. 1.
조위 선생 연보 매계선생 신도비 매계 조위 선생 연보 1454년(단종2년) 7월 10일 공은 금산(현 김천 봉산면) 봉계리 집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자는 오룡(五龍)이다. 1455년(세조원년) 공의 나이 2세이다. 1456년(세조 2년) 공의 나이 3세이다. 8월에 아버지가 삼군진무(三軍鎭撫)를 제수 받았다. 1457년(세조 3.. 2009. 8. 17.
문장공 매계 조위 선생 매계 조위선생 초상화 조위(曺偉)선생은 자는 대허라 하고 호는 매계(梅溪)라하니 세칭 매계선생으로 불리운다. 선생은 1454년 (단종2년 갑술) 봉산면 인의동에서 울진현령 계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의 할아버지가 심인데, 여말 고려의 국운이 상잔, 다함을 한하여, 김산(현 김천)으로 낙향한 창녕조씨의 김산 입향조가 되며, 음으로 산원을 지냈으나 30세로 조세하고 뒤에 병조참의로 증직되었다 선생의 증조부는 단성좌명공신으로 서성군에 봉해진 밀직부사 추봉 의정부좌찬성 경수이며, 고조부는 판전의 사사 중 문하시중 창성부원군 우희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주와 생각이 특이하여 동생 적암 신과 같이 말을 배우면서부터 글자를 알고 7세때 능히 시문을 지어 이름이 났으니 이 때의 사람들이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그 장.. 2009. 8. 14.
백일,돌맞이 절차 백일.돌맞이 절차 백일맞이 절차 구 분 내 용 삼 신 풀 이 아이가 태어나 100일이 되면 어머니나 할머니가 아침에 쌀밥, 미역국, 백설기 등을 차려 삼신 할머니께 그 동안의 보살핌에 감사하면서 아이의 명과 복을 빈다. 그 밥과 국을 산모에게 먹인다. 배냇머리 깍음 아이의 배냇머리를 곱.. 2009. 8. 10.
매계 조위선생의 한시 기행~(73)만분가 만분가(萬憤歌)는 매계(梅溪) 조위(曺偉)선생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의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순천으로 이배된 뒤에 순천 옥천(玉川)가에 임청대(臨淸臺)라는 단을 쌓고는 같이 귀양온 문우 김굉필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짓기도했다. 이무렵 그는 "천상백옥경의 십이루 어듸메오"로 시적되는 만분가 를 지어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처지에서 옥황상제로 비유된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읊었는데, 이것은 한국 최초의 유배가사(流配歌辭)이다. 또한 이 작품은 후대에 지어지는 유배가사의 일종인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만분가(萬憤歌)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천상 .. 2009. 7. 29.
혼례절차 전통혼레 장면(하회마을 에서) 혼 례 절 차 사주를 보내는 데는 먼저 주인이 신랑의 생년 월일을써서 편지와 함께 보내는 것으로 혼인을 청하는 의식으로 사주를 보내는 법은 간지를 다섯번 접어 그 가운데 쓰며 편지를 보에싸서 같이 보내는 법이다. 백지에 길 이 10cm폭13cm 정도로하며 육.. 2009. 7. 9.
예의범절과 상식~(2)친족간의 호칭 1.친족간의 호칭(1) 친족 (親族) 가르킬때 부를때 자기를 가르킬 때 본인이 말할때 남이 말할 때 조부 生 조부 祖父 할아버지 소손 小孫 불초손 不肖孫 손자 할아비 할애비 조부장 祖父丈 死 선조고 先 祖考 효손 孝孫 선왕대인 先王大人 조모 生 조모 祖母 할머니 소손 小孫 불초손 不肖孫 손자 할미 선왕대인 先王大人 死 선조비 선祖비 효손 孝孫 선왕대부인 先王大夫人 부 生 가친 家親 엄친 嚴親 아버지 소자 小子 불효자 不孝子 아들 아비 애비 춘부장 春府丈 춘장 春丈 死 선친 先親 선고 先考 고자 孤子 효자 孝子 선대인 先大人 선장 先丈 모 生 자친 慈親 모친 母親 어머니 소자 小子 불효자 不孝子 아들 어미 애미 자당 慈堂 死 선비 先비 애자 哀子 효자 孝子 선대부인 先代夫人 백부 生 백부 伯父 큰아버지 맏.. 2009. 7. 8.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6)중종 원년~38년 제6편 중종원년(1506년) - 중종38년(1543년) 중종실록(中宗實錄) 중종 원년(1506) 11월 11일(제1권 p139) O 전교하기를, “죽은 안양군. 봉안군은 계성군(桂城君). 전성군(全城君) 예에 의하여 각각 미. 태 50석, 종이 1백 권, 정포(正布) 30필, 백저포(白苧布) 5필, 목면 5필, 석회 30석, 진유(眞油) 7두 5승, 청밀(淸蜜) 5두를 제급하고, 패주 때 무죄하게 귀양 가서 죽은 자인 봉안군 봉. 안양군 항, 우산군 종,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표 연말(表沿沫), 참판(參判) 조 위(曺偉), 권 주(權柱), 관찰사 남궁 찬(南宮璨), 참판 이 창신(李昌臣)은 혹 적소(謫所)에 빈소를 치렀거나 혹 고향에 장사지낸 이도 있으니 모두 관원을 보내어 제사지내고 죽은 판서 이.. 2009. 7. 3.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 (5)연산군 원년~11년 제5편 연산군원년(1495년) - 연산군11년(1505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연산군 원년(1495) 1월 27일(연산군일기 제2권 p98) O 이 철견을 월성군 겸도총관으로, 정 경조를 동지의금부사로, 박 건을 병조참판으로, 허 침을 형조참판으로, 안 처량을 한성부 좌윤으로, 조 위(曺偉)를 우윤으로, 김 극검을 겸동지성균관사로, 이 극규를 장례원 판결사로, 김 율을 사헌부 집의로, 최 응현을 겸부총관으로, 오 순을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삼았다. 연산군 원년(1495) 2월 21일(p3권 p140) O 충청도 영춘현에서 대낮에 유기병 같이 생긴 물건이 그 빛깔은 불같은데 하늘로부터 떨어져서 땅에 닿자마자 사라지고 남은 빛은 도로 올라가서 흩어지므로 가서보니 달걀 같은 모양에 연노랑 빛이고 돌처럼 굳으.. 2009. 7. 3.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 (4)성종24~25년 제4편 성종24년(1493년) - 성종25년(1494년) 성종 24년(1493) 1월 3일(제273권 p204) O 조 위(曺偉), 김 응기(金應箕), 한 사문(韓斯文), 황 사효(黃事孝), 윤 숙(尹?)은 의논하기를, “형옥(刑獄)은 반드시 먼저 국문하여 사증(辭證)의 일의 형상이 명백하여 의심할 바가 없어야만 마땅히 형신해야하고 만약 사증이 분명하지 않은데 갑자기 고문하게 되면 볼기를 치는 형벌 아래에서 반드시 무왕(誣枉 남을 억지로 죄에 빠뜨림)함이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예전에 형벌은 대부(大夫)이상에게 행하지 않았으니 조관(朝官)의 형신은 더욱 신중히 해야 마땅합니다.” 하고, 정 성근(鄭誠謹)은 의논하기를, “요사이 선비의 습속이 예전 같지 않으니 수령으로서 더러 침범하여 빼앗고 탐욕스럽거나 .. 2009. 7. 3.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 (3)성종23년 제3편 성종23년(1492년 1월 - 12월) 성종 23년(1492) 1월 4일(제261권 p239) O 동부승지 조 위(曺偉)가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충청도 모든 고을의 수군(水軍)이 거의 다 그 수효를 거짓으로 과장해 놓았다고 합니다. 지금 목천현의 수군 10여 호도 사실상 없는 것이 군안(軍案)에 실려 있고 한 사람도 방수에 서는 자가 없는데 수군절도사는 달마다 군사를 징발하고 고을에서는 사람을 사서 병역을 세우고 있어 그 폐단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청컨대 허실을 핵실(?實)하여 그 폐단을 없애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한 것은 과연 옳지 않으니 관찰사와 절도사에게 글을 내려 묻도록 하라.” 하였다. 성종 23년(1492) 1월 일(제261권 p243) .. 2009. 7. 3.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 (2)성종14~22년 제2편 성종14년(1483년) - 성종22년(1491년) 성종 14년(1483) 1월 2일(제150권) O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조 위(曺偉)가 와서 아뢰기를, “임 보형(任甫衡)을 이제 사축(司畜)으로 제수하였는데, 임 보형은 전에 그 아내 양씨(梁氏)를 음분(淫奔 음란한 행위를 함)한다고 무고하고 종을 시켜서 끌어내게 하였으므로 유사(有司)가 심문하여 죄를 과(科)하였는데 이제 또다시 벼슬하는 대열에 끼이게 되었으며, 이 선남(李善男)은 일찍이 괴산군수가 되어 함부로 형벌한 까닭으로써 벼슬을 깍아 영구히 서용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제 돈영부 판관(敦寧府判官)으로 제수하였으며, 이 숭수(李崇壽)는 대왕대비의 도서(圖書 인신)를 위조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죄를 받았는데 이제 승진하여 당상관(堂上官)이 .. 2009. 7. 3.
조선왕조실록중 조위선생 - (1)성종5~13년 이 글은 조선왕조실록중에서 성종실록,연산군일기,중종실록에 기록된 조위선생에 대한 내용을 6편으로 나누어 발췌 수록하였다 이 실록은 조위 선생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당시 나라사정이나 법도,행정환경, 주민생활상등의 사정을 짐작케 하는 재미있고 살아있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1편은 성종 5년(1474.1.) - 성종13년(1482.12) 2편은 성종14년(1483.1) - 성종22년(1491.11) 3편은 성종23년(1492.1 - 12) 4편은 성종24년(1493.1) - 성종25년(1494.8) 5편은 연산군원년(1495) - 연산군11년(1505) 6편은 중종원년(1506) - 중종38년(1543) 성종실록 (성종강정대왕실록) 성종 5년(1474) 1월 1일(제38권 p216) O 임금이 백관(百官)을 거.. 2009. 7. 3.
순천 옥천서원 경현문 옥천서원 玉川書院記 嘉靖 癸亥년에 龜巖 李公(李楨)이 昇平府使로 나왔을 때 寒暄 金先生이 이곳에 와서 謫居하다가 서거 하였다. 하여 慨然히 선생을 추모하였다. 마침 臨淸坮記 한편을 입수하고는 선생의 小作으로 여겼는데, 赴任즉시 이른바 임청대의 옛터를 尋訪(심방)하고 .. 2009. 7. 2.
조위선생의 매계구거 율수재와 매계 문화재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선생은 조선조 김굉필(金宏弼)· 정여창과 더불어 초기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김종직과 더불어 신진사류의 지도자 역할을 했다. 김종직의 문인으로 1475년 식년문과에 급제, 1479년 영안도경차관이 되었다. 성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으며 검토관, 시독관 등으로 경연에 나갔으며 이후 지평, 문학, 응교를 거쳐 노모 봉양을 위해 함양군수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매계구거 율수재 (梅溪舊居 聿修齋) 1492년 동부승지, 도승지,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충청도,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498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다가 때마침 일어난 무오사화로 김종직의 "조의제문" 시고를 수찬한 장본인이라 하여 체포, 투옥된 후 오랫동안 의주에 유배되었다가 순천으.. 2009.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