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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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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자락 감자난초 감자난초의 잎은 1~2개씩 나오고 길이 20~40cm 정도이다.꽃은 5~6월에 피고 황갈색이며 높이 30~50cm정도의 꽃대에 핀 후 지상부가 말라 버리며, 꽃이 핀 후 잎은 황변해서 휴면에 들어가고 8-9월에 새눈을 내어서 월동을 한다. 김천 삼도봉 감자난초  더 크게 보면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긴 타원상 피침형이며 길이 1cm로서황갈색이고 입술모양꽃부리는 백색 바탕에 반점이 있다.삼도봉 자락 등반중 우연히 마주친 감자난초 모습이다. 2024. 5. 3.
큰꽃으아리와 싸리나무꽃 앞산 등산길에 큰으아리꽃이 활짝 피어 반겨준다.조록싸리도 질세라 홍자색의 예쁜꽃을 피워 냈다. 큰꽃으아리 조록싸리꽃 2024. 5. 2.
지난겨울의 국립공원 영상 지난 겨울(2023~2024년)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풍경들을 국립공원에서 제공하는 CCTV를 통해 영상으로 담아보았다.현재 국립공원에서는 설악산,오대산,치악산,태백산,소백산,주왕산,덕유산,한려해상국립공원(삼천포),북한산(백운대,사패산),태안해안,계룡산,변산반도,지리산(장터목),무등산,다도해해상국립공원(진도 지리청송해안) 등을 실시간 영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1.덕유산 설천봉2023.11.17 2023.11.25 2023.12.18 2024.1.17 2024.2.5 2024.2.7 2.설악산(울산바위)2023.12.17 2024.3.3 3.오대산2024.2.29 2024.3.10 4.치악산(상원사)2023.12.17 2024.1.23 2024.3.10 5.태백산2023.12.21 202.. 2024. 5. 2.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위(曺偉) ~ 7.끝) 조위는 그 후 김굉필과 함께 호남 순천으로 이배됐다. 순천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중 유배가사의 효시가 된 "만분가"를 지었다.국한혼용체 2음보 1구의 127구인 만분가는 3·4조와 4·4조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데, 안정복의 "잡동산이" 제44책에 수록돼 전하고 있다. 순천 유배 중 지어 유배가사의 효시가 된 "만분가"(한국 가사문학관 전시) 이 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이가원으로, 1963년 세상에 소개했다.작품해제에 "조위 호 매계(曺偉 號 梅溪)"라고 작가가 소개돼 있다."만분(萬憤)"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매우 원통함"이다.그러므로 만분가에는 분하고 억울하고 괴로운 마음이 담겨 있다. 억울하고 원통하게 유배된 자신의 처지를 천상 백옥경에서 인간세계로 추방된 것에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한국 가사.. 2024. 5. 1.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위(曺偉) ~ 6) 조위(曺偉)는 투옥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훈구파에 의해 조위, 김일손, 김굉필, 신종호, 정석견, 채수, 김전, 최보, 신용개, 권경유, 이계맹, 이주, 이원, 김심, 김흔, 표연말, 유호인, 정여창 등등 김종직의 제자들 명단이 작성됐다. 그들은 모두 의금부에 연행돼 모진 고문과 함께 거짓자백을 강요받았다.  고문 형틀 류자광과 훈구파가 원하는 자백은 김종직의 제자들이 조의제문에 대역부도의 뜻이 담겼음을 알면서도 찬사를 보내고 지지를 했다는 것이었다. 당사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관아 풍경 그러나 간접연루자들은 고문에 못 이겨, 혹은 회유에 넘어가서거짓자백을 했다. 훈구파는 그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을 근거로김종직의 제자들 상당수에게 대역부도의 죄, 그리고 김종직의유언에 따라 붕당을 이.. 2024. 5. 1.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위(曺偉) ~ 5) 조위(曺偉)가 명나라에 가고 없을 때였다. 류자광은 연산군을 알현하고, 김일손이 "성종실록"에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으려 하는데, 그 의도가 매우 불순하다고 고했다.“김종직의 "조의제문"이라? ”연산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경복궁 근정전 측면 “세조조 때 있었던 노산군 사건에서 노산군을 초의제 회왕에 비유하고 세조조를 항우에 비유하여 세조조를 은근히 비난한 내용입니다.류자광은 "조의제문"을 펼쳐 구절마다 풀이해서 아뢴 후, “이는 세조조의 정통성을 훼손함으로써 주상의 정통성까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역부도(大逆不道)의 글입니다. 경복궁 경성전(慶成殿) 지금 이 조정에 그의 문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번 일을 그냥 넘기시면 그들이 주상을 또 그렇게 비난하며 자기들끼리 공모하여 일을 꾸밀 것입니.. 2024. 4. 30.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위(曺偉) ~ 4)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남아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랴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  / 두만강파음마무(頭滿江波飮馬無)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 /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 이 시는 조위가 지은 것이 아니고, 세조대의 무신으로, 이시애의 난과 건주여진 정벌에 큰 공을 세워 세조의 총애를 받았던 남이의 북정가이다. 가평 남이섬 1468년(예종 1년) 당시 병조참지였던 류자광(柳子光)은 자신이 넘을 수 없는벽처럼 느껴졌던 뛰어난 장수 남이장군의 "북정가"에서 미평국(未平國)을미득국(未得國)으로 바꾸고는, “남이(南怡)의 북정가에, "남아 이십의 나이에나라를 얻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랴" 라는 말이 있으니,이게.. 2024. 4. 30.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위(曺偉) ~ 3) 조위(曺偉)는 1484년 서른하나에 연로한 아버지 봉양을 위해 자청(걸군)해서 함양군수로 나갔다. 홍문관저작 겸 세자시강원사경, 홍문관박사,부수찬, 영안도(지금의 함경도)경차관, 포쇄관, 시독관, 부교리, 시강원문학, 홍문관응교 등을 역임한 뒤였다. 함양 학사루 백성이 곧 하늘이다. 목민관 조위는 고을 백성들이 토지세를 균등하게 납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함양지도지(咸陽地圖志)" 를 만들었다.향사례와 향음주례를 실시해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를 권장했고, 학문을 일으켜 재주 있는 사람을 골라 가르쳤다."어질고, 용서하고, 간편하고, 검소하게"를 행정의 원칙으로 세우고 백성을 다스렸다.민본사상에 의한 위민정치의 실천이었다. 함양 향교 태극루 조위가 어떤 목민관이었는지는 함양군수 시절.. 2024. 4. 29.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위(曺偉) ~ 2) 성종은 학문을 사랑하고 문장을 사랑한 임금이었다. 때문에 학자이자 문장가인 김종직을 총애했으며, 그 제자로서 문장이 웅위하고 화려한 조위도 총애했다. 조위는 훈신 조석문의 당질이었고, 대유 김종직의 문도요, 거기에다 임금의 총애까지 더해져 그 배경은 화려했다. 경복궁 근정전 용상 그러나 관직생활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화려한 배경이 오히려 동료 관원들의 시기를 사서 독이 됐기 때문이다.조위는 1454년(단종 2년) 김산군 파미면(현 김천시 봉산면)에서 태어났다.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태허(太虛)이며, 호는 매계(梅溪)이다. 매계구거(梅溪舊居) ~ 매계 조위의 생가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의 사위인 조계룡이 시조이다.중시조는 태조 왕건의 사위 조겸이며, 김천 입향조는 조심(曺深)으로, 좌찬성 조.. 2024. 4. 29.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위(曺偉) ~ 1) 이 글은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에서 2020년 8월 "역사 인물의 탄생지를 가다"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위~ 라는 제하에 3회로 나누어 게재한 내용을 사진 등을 추가하고 일부내용을  편집하여 7회로 나누어 올립니다. 울진 월송정 1467년(세조 10년), 울진 바닷가 갯바위에 한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가나란히 앉아 있었다. 소년은 처음 보는 바다가 마냥 신기해서 물비늘 반짝이는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고, 어머니는 그런 소년을 또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동해바다 제법 시간이 흘러 무료해질 무렵이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하지 않겠느냐.”어머니가 소년의 무릎 위에 얹힌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올려놓으며 말했다.“이제 가면 언제 다시 바다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질 않습니까.볼 수 .. 2024. 4. 29.
단양천 돌단풍꽃 돌단풍은 바위틈에서 잘 자라며 단풍나무 잎을 닮은 잎이 달린다고 해서  "돌단풍"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돌단풍의 어린잎은 데쳐서 나물로도 먹을수 있다고 한다. 돌단풍 뿌리는 심장을 강화시키는 강심작용, 이뇨작용, 심장박동이 빠른 것을느리게 만들어 주는 작용, 다이어트, 항암작용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하며,꽃말은 봄에 바위틈에서 가장 먼저 돋아난다고 "희망" 이라한다.  사인암 사인암 앞 단양천 2024. 4. 28.
덕동계곡의 애기송이풀 등 야생화 탐방 애기송이풀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한반도 고유종인 귀한 식물로, 겉보기가 송이풀과 유사하지만송이풀은 줄기가 있으나 애기송이풀은 뚜렷한 줄기가 없이 뿌리에서잎과 꽃자루가 나와, 낮고 작아 보여서 "애기송이풀" 이라 한것이라 한다.  애기송이풀 애기송이풀은 수량이 풍부한 북사면(北斜面) 계곡에서 주로 자생하는데 연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제천 덕동계곡에서 4월의 야생화들을 만나본다.  계곡가에 자생하는 애기송이풀 는쟁이냉이꽃 돌단풍 족도리풀(꽃이 자주색,잎은 녹색) 꽃이 검은색의 만주족도리풀 1급수에서 볼수있는 엿장수 덕동계곡 풀솜대 홀아비꽃대 회리바람꽃 붉은 꽃의 현호색 너도바람꽃 구슬봉이 덕동생태숲 삿갓나물 벌깨덩굴 막 잎이 돋아나는 낙엽송의 담장이덩굴 피나물 줄딸기 금낭화를 마지막으.. 2024. 4. 28.
거창 강선대에서 분설담계곡 수달래 예로부터 경치가 좋아서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하여 강선대(降仙臺)라 불렀다는 곳을 비롯하여 분설담(噴雪潭),사선대 등사계절 내내 절경이 어우러지는 거창 월성계곡을 꽃피고 잎피는이 고운 계절에  어찌 찾지 않을 수 있으랴! 강선대(降仙臺) 오늘은 강선대에서 분설담까지 거닐며 봄의 풍경을 음미해 본다 분설담 살살부는 봄바람이 더욱 가슴설레게 하는 계절에. 2024. 4. 27.
합천 묵와고택 (陜川 默窩古宅)과 육우당(六友堂) 합천 묘산면에 있는 묵와고택은 국가민속문화유산 제 206호이다.이 고택은 가야산에서 뻗어 내린 깊은 산속의 화양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선조 때에 선전관을 역임하였던 윤사성(尹思晟,1557~1619)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고택의 명칭은 윤사성의 고손자인 묵와 윤우(默窩 尹楀,1784~1836)의 호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묵와고택 입구 묵와 고택은 윤사성의 10대손인 독립운동가 만송(晩松) 윤중수(尹中洙, 1891~1931)의 생가이기도 하다. 대문채 대문을 닫아 놓아 내부를 볼수없는 아쉬움이 있었으나문화재청의 설명에 의하면 문간채의 가운데에 있는 솟을대문을 들어가면‘ㅜ’자형으로 동향한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의 우측에는 중문채가 있다.중문채를 들어서면 ‘ㄱ’자형의 안채가 있으며, 안채 마당을 지나면.. 2024. 4. 27.
함양 오도재(吾道嶺) 이야기 오도령(吾道嶺) 즉 오도재는 남해와 하동의 물산들이 함양 등 내륙지방으로 운송하기위해 지리산 장터목과 벽소령을 넘나들며 반드시 넘어야했던 고개로, 중요한 육상교역로였다. 오도재 장성 또한 오도령은 해발 773m로 삼봉산(1,187m)과 법화산(911m)이 만나는 지리산 관문의 쉼터이기도 한데, 오도(吾道)는 도를 깨우친다는 뜻으로, 지리산 영원사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청매 인오선사(1548~1623)가이 고개를 오르내리면서 득도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한다. 안개비속의 오도재 특히 조선 성종 초년(成宗 初年) 김종직이 함양군수(咸陽郡守)로 재직할 때 (1472년 가을) 남긴 유두유록(遊頭流錄)에는 극기 유호인(克己 兪好仁), 태허 조위(太虛 曺偉), 한백원(韓伯源) 등과 함께 두류산(頭流山,智異山)에 올랐던 .. 2024.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