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492

고려와 조선의 향교(鄕校) 이야기 향교(鄕校)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유학(儒學)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공공교육기관으로, 유교교육과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재사를 지내는 2가지 역할을 맡았으며, 오늘날의 중등교육 기관 또는지방국립대학, 공립대학에 해당되는데, 현재 전국에 234곳이 남아있다. 함양향교 태극루(太極樓) 중앙인 한성부는 직할 특수행정구역 관할이어서 향교가 없었으며,대신에 향교 역할을 하는 4부학당(四部學堂)과 성균관 등이 있었다.학당은 고려 후기에는 개경(개성)에 있었으나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철폐하고, 한성에 동부학당, 서부학당, 중부학당, 남부학당 등 4곳의학당을 세웠는데 현재 건물은 단 한 곳도 남아 있지 않다.  선산향교 청아루(菁莪樓) 향교의 경내 건물로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통틀어 어진 인물들의위패를 봉안하고 .. 2025. 1. 7.
원앙새와 노닐다 원앙(鴛鴦)새는 천연기념물 제327호로 지정되어있는 보호종이다.두 마리가 항상 함께 다닌다고 금슬이 좋은 부부를 원앙이라고 한다. 원앙은 아시아에 사는 철새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텃새이다. 원앙새 수컷 원앙은 번식기가 되면 수컷에게 아름다운 장식깃이 생기는데,번식이 끝나면 아름다운 갓깃이나 뺨의 장식깃도 떨어지며, 온몸이 암컷과 비슷한 깃색이 된다  겨울의 무리에서는 수컷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데,이 현상은 암컷이 많은 수컷들 중에서 더욱 아름다운 수컷을 골라 번식행동을 하는 것이 그 원인으로, 수컷 사이에서는 선택되기 위해 아름다움 경합이 벌어져 미화를 촉진하게 된다. 논속의 원앙 암.수 한쌍   원앙새 수컷과 암컷들 눈속에 노니는 원앙새 무리 2024. 12. 29.
재(齋)와 재실(齋室)과 재사(齋舍) 재(齋)와 재실(齋室)과 재사(齋舍)는 거의 같은 의미와 용도로 쓰인다.먼저 재(齋)의 사전적 의미는 "재계하다, 공경하다" 라는 의미인데주로 조상이나 성현 등을 모시고 섬길 때 몸과 마음가짐을 깨끗이하고정갈히  하는것을 이르며, 재실이나 재사를 줄여서 재(齋) 라고도 한다.  1.여주 세종대왕 영릉 재실(2024.1.16) 좀더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재실(齋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 이라고 하며, 재사(齋舍)란 학문과 덕행, 충효가뛰어난 인물이나 입향조, 중시조 등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묘소나 사당 인근에 지은 건축물로 정의하고 있다. 여주 세종대왕 영릉(2024.1.16) 세종대왕릉(영릉)의 이장은 세조 때부터 논의되다가1469년(예종 1년)에 와서 현재 자리로.. 2024. 12. 27.
조선시대의 서원(書院)과 서당(書堂) 서원(書院)은 조선시대에 제사와 교육을 담당하던지방 기관으로 주로 사대부를 대상으로 유학을 가르치고 성현들의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그 기능은 제사를 지내는 사당과유학을 가르치는 강당, 유학생들의 숙식 등 세가지 공간으로 나뉜다.또 서원은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과 일반서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백운동서원(현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周世鵬)선생  서당(書堂)은 향교나 서원과는 다르게 일정한 규칙이나 조건없이 문중이나 마을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용도와 성격이 정해졌다.주로 7세에서 16세 까지가 가장 많았으며, 천자문을 통한 학습과명심보감, 소학, 사서삼경 등 유학을 배우는 초등 교육기관이었다.2024년에 탐방했던 서원(20)과 서당(5) 25곳을 다시 만나본다 1.청도 금호서원(20.. 2024. 12. 26.
김천 봉계마을 봉암서당과 영천이씨 정려각 김천 봉암서당은 봉산면 봉계마을에 있는 조선전기의 서당이다. 1540년(중종 35) 영일(연일) 정씨 문중에서 만취당 정이교(鄭以僑)를 추모하고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도장서당(道藏書堂)으로 창건하였다.  봉암서당 정문 약 100년 뒤 인종 중엽에 각곡(角谷) 평전(坪田)으로 옮겼다가1757년(영조 33)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고 봉암서당이라고 했으며,1895년(고종 32)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천 봉암서당(鳳巖書堂)  서당 건물은 1,652.9㎡(500평) 정도의 부지에, 66.12㎡(약 20평)의 3칸 겹집 건물이다. 봉암서당 편액 이곳 봉암서당에서는 조선시대에 생원 진사에서 대사성,삼도통제사, 참의, 참판, 판서 등 문무(文武) 정 2품까지 75인의 인재를 배출하였고, 근세에는 육군 .. 2024. 12. 5.
주실마을의 월록서당,만곡정사,지훈시공원 조지훈의 생가가 있는 영양군 주실마을을 다시 찾았다.주실마을은 1519년 조광조의 기묘사화로 인해 전국에 흩어진 한양 조씨 집안 중 일부가 1629년(인조 7년) 태백준령의 오지인 이곳 영양으로 들어와서 터를 잡으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월록서당(月麓書堂) 지난번 왔을 때 오후 늦은시간이라 둘러보지 못한 월록서당과 만곡정사, 지훈시공원 등을 천천히 둘러본다.월록서당은 월하 조술도(趙述道,1729∼1803)가 만곡 조술도(趙述道)와함께 1764년에 착공하여 1773년에 완성하였으며, 한양조씨(漢陽趙氏),함양오씨(咸陽吳氏), 야성정씨(野性鄭氏)가 함께 건축하였다.  영산서당이 서원으로 승격된 후 영양군에서 처음 지어진 서당이다.당시 서당의 설립은 관변측(官邊側)의 지원없이 순수 민자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 2024. 12. 3.
영양남씨의 뿌리 시조 남민(南敏) 영양 남씨(英陽南氏)는 경북 영양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인데, 신라 경덕왕 14년(서기 755년), 즉 당나라 현종(玄宗) 천보(天寶) 14년에 중국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에서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귀로에 태풍을 만나 영덕(盈德)의 죽도(竹島)에 표착하여 신라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에 신라 경덕왕은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성(姓)을 남씨(南氏)로, 이름은 민(敏)으로,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내렸다.   영양남씨 시조묘역 입구 증보문헌비고에는 남민의 7세손이며 고려 때 대장군을 지낸 남진용(南鎭勇)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 남홍보(南洪甫)는고려 충렬왕 때 도첨의찬성사를 지냈으며, 영양남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차남 남군보(南君甫.. 2024. 12. 3.
영주 삼판서 고택(정도전 생가) 영주 삼판서 고택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세 명의 판서가 연이어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이 고택의 첫 주인은 고려 공민왕 때 형부상서(조선시대 형조판서 해당)를 지낸 정운경(鄭云敬,1305~1366)으로정운경은 그의 사위인 공조판서 황유정(黃有定,1343~?)에게, 황유정은 다시 외손자인 이조판서 김담(金淡,1416~1464)에게물려주었으며, 이때부터는 김담의 후손들이 계속 살았다. 영주 삼판서 고택 이 고택에서는 3명의 판서를 비롯하여, 조선개국의 일등공신이며 정운경의 아들인 정도전(鄭道傳,1342~1398)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정도전 외에도 사헌부 지평 황전(黃銓), 집현전 교리 김증(金曾) 등 많은학자와 명신(名臣)이 배출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삼판서의 후손들이다. 삼판서 고택 가는길 삼.. 2024. 11. 30.
안동 풍천 상봉정과 파산정 상봉정(翔鳳亭)은 서애(西厓) 류성룡의 종증손 회당(悔堂) 류세철(柳世哲,1627~1681)이 도학(道學)을 연찬(硏鑽)하고 강론하며 말년을 보내기 위해 1662년(현종 3년) 하회(河回)마을 서쪽 강건너 언덕 위에 세운 정자이다. 안동 풍천 상봉정(翔鳳亭)  서애 류성룡(柳成龍)은 이곳을 흡사 봉이 하늘을 나는 형국이라 하여,상봉대(翔鳳臺)로 이름짓고 정사를 지으려 하였으나 재력이 없어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지명을 자호(自號)로 하였던 곳이다. 담너머로 본 상봉정  상봉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가운데 마루를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의 상봉정(翔鳳亭)으로,정자의 이름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이곳 절벽을 "상봉대(翔鳳臺)"라 부른데서 따왔다.  1696년 수해로 대지가 침하되.. 2024. 11. 22.
포항 흥해 칠인정(七印亭) 칠인정(七印亭)은 조선 태종 9년(1409) 고려말 흥위위 보승랑장 출신의 장표(張彪)가 건립한 정자로서 포항 흥해읍 초곡리에 있다.정조 21년(1797) 중창, 그 후 1904년, 1986년, 1993년 세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69호이다포항 칠인정(七印亭)  1409년(태종 9) 정자 낙성식을 거행할 때 장표의 네 아들인장을제(張乙濟), 장을하(張乙河), 장을해(張乙海), 장을포(張乙浦)와세 사위인 유정봉(柳廷鳳), 이읍(李邑), 이현실(李玄實)이 모두관인(官人)으로 참여하였으며, 그들은 칠인정 바로 앞에 기이한형상의 쌍괴수(雙槐樹)를 심고, 그 나무에 각자 자신들의 벼슬을 증명하는인수(印綏) 7개를 걸었는데 이를 기념하여 칠인정(七印亭)이라고 하였다.  남향의 정자로서 .. 2024. 11. 10.
포은 정몽주선생 생가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1337~1392)선생은 고려말 문신으로영천 임고면 우항리 울목마을에서 출생하였다.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이다. 정몽주선생 생가 출입문인 성임문(聖臨門) 초명은 어머니 영천 이씨(李氏)가 난초화분을 품에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리는 꿈을 꾸고 낳았기 때문에 정몽란(鄭夢蘭) 이라 했다가,뒤에 정몽룡(鄭夢龍) 으로 개명하였고, 관례를 치를 즈음 아버지 꿈에 주나라의 성현 주공이 나타나자 정몽주(鄭夢周)로 고쳤다고 한다. 대문 앞 충의(忠義) 단성(丹誠) 표석 ~ 중국 태항산에서 생산되는 홍보석(紅寶石) 고려후기 문하찬성사, 예문관제학, 인물추변도감제조관 등을 역임했으며, 고려말 친원파가 득세하던 상황에서 신진사류로서 친명정책을 주장했고, 명과 왜에 .. 2024. 11. 9.
수령 천년이 넘은 금산 요광리와 보석사 은행나무 나이가 1,000년이 넘어, 살아있는 화석이라 할만큼 오래된충남 금산의 요광리와 보석사의 은행나무 두그루를 만나본다.요광리 은행나무는 1,000여 년이 넘었으며, 천연기념물 제84호,보석사 은행나무는 1,100년이 넘었으며, 천연기념물 제365호이다. 요광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84호)  천연기념물 제84호인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은행나무는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나이는 약 1,000살 정도 이상으로 추정하며, 높이가 24m, 가슴높이 둘레 12.93m정도인데, 수형도 좋고 생육상태도 양호하다.   요광리 은행나무는 단풍이 조금 이르긴 한데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면 잎이 한순간에 몽땅 떨어지기 때문에 샛노란 은행나무 단풍잎을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싱싱한 요광리 은.. 2024. 11. 8.
영주 군자정과 오계서원 영주 평은면 군자정(君子亭)은 1570년(선조 3)에 지은 건물로,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 선생이 공부하던 정자이다.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영주 군자정(君子亭)  정자의 앞쪽에는 군자당(君子塘)이란 연못이 있고, 서쪽에는이덕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오계서원이 있다.이덕홍선생은 10여 세에 이황의 제자로 들어가 오로지학문에만 열중하였다.   군자정 이덕홍은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는 거북선을, 육지에는거북선 모양의 수레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임진왜란 후에는 백성을 구제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으며,많은 저서를 남겼다.   군자정 측면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 2024. 10. 29.
국가등록문화유산 봉화 척곡교회 봉화 척곡교회는 1907년에 창립하였고, 예배당은 1909년에 건립하였으며, 이 교회는 개인이 선구적인 의지로 세운 종교건물로이 시기 기독교 건축 초기의 평면과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한옥의 봉화 척곡교회(尺谷敎會) 척곡교회 소장전적은 1)세례교인명부, 2)척곡장로교 면려회회록,  3)봉화척곡면려회 출석부, 4)척곡당회록(이호), 5)척곡교회기본금기성회창립총회록 등이 있으며, 국가등록문화유산이다. 한옥 기와집의 척곡교회 척곡교회는 구한말 탁지부 관리를 지낸 김종숙(1872~1956)이 세웠다.김종숙은 덕수궁에서 언더우드를 만나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처음에는 나라를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새문안교회에 출석하였으며,이후 고향으로 돌아와서 1917년 5월 17일 척곡교회를 창립하였다. 척곡교회 측면 김종숙은.. 2024. 10. 29.
입재 강재항 삼형제의 봉화 뇌풍정 뇌풍정(雷風亭)은 봉화 법전리 성잠마을에 있는 정자이다.뇌풍정은 입재(立齋) 강재항(姜再恒, 1689∼1756), 설죽당(雪竹堂) 강재숙(姜再淑, 1677~1758) 형제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입재의 6대손 강욱이 1907년에 세운 건축물이다. 봉화 뇌풍정(雷風亭)  조선후기의 정자 건물로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쳤으나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고, 노론계열 정자라는 의미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일자형 건물로 암반위에 건축되었다.정자에는 입재문집 310여장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현재는국학진흥원에 기탁보관중이고, 이시영선생이 쓴 현판 10장이 있다.  뇌풍정(雷風亭) 편액 편액은 중앙이 뇌풍정(雷風亭), 왼쪽은 성잠서실(星岑書室),오른쪽은 설죽당(雪竹堂)이며, 뇌풍정 현판글씨.. 2024.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