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산책492 봉화 법전마을 경체정과 고택 둘러보기 봉화 경체정(奉化 景棣亭)은 법전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예조좌랑과 승지를 지낸 강윤(姜潤),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강완(姜浣), 가의대부를 지낸 강한(姜瀚) 삼형제의 우애와 덕행을 기리기 위해, 강윤의 증손자로 철종 때 병조참판을 지낸 강태중(姜泰重)이 1858년(철종 9)에 지은 정자이다. 봉화 경체정(奉化 景棣亭) 정자는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의 정사각형 건물이다.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08호(2017.5.15 지정)이다. 경체정(景棣亭) 편액 정자의 이름은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에 있는 형제의 우애를그린 글에서 취했다고 하며, 정자의 정면 오른쪽 현판은 추사 김정희,왼쪽 현판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병국의 친필이다.. 2024. 10. 29. 봉화 사덕정과 한산군종택 사덕정(俟德亭)은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에 있는 정자로추만 이영기(秋巒 李榮基, 1583~1661) 선생이 덕을 닦고 선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1641년에 처음 지은 정자이다. 봉화 사덕정(俟德亭) 1863년(철종 14)과 1928년에 각각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고, 온돌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마루방을 두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9호이다. 연못과 사덕정사덕정 출입문 사덕정(俟德亭) 현판 "사덕정" 이란 이영기 자신은 덕이 있지 않기 때문에 백대토록 이어질덕을 갖고 있는 사람을 기다려 그들과 종유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편액의 글씨는 말미의 낙관에 남병호(南秉鎬)가 행서로 쓴 것이다. 사덕정 앞면과 옆면 한산군종택(韓山君宗宅) 대문채 사덕정 바로옆에는 전주이씨 풍정촌 한산.. 2024. 10. 29. 영양 주실마을의 조지훈 생가 시인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趙芝薰,1920∼1968)이 태어난영양 주실마을은 일월산 남쪽자락에 있으며, 조지훈 시인이태어난 호은종택(壺隱宗宅)은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이곳에는옥천종택(玉川宗宅) 등 많은 문화자원들이 있다. 마을 입구 주차광장의 조형물 조지훈의 본명은 동탁(東卓)이며, 1946년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청록집의 시편들에서는 주로 민족사의 맥락과 고전미 세계에 대한 찬양, 선(禪) 세계 등을 노래하였다. 조지훈은 어릴 적부터 서당 교육을 받았고, 검정고시를 거쳐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에 합격했으며, 일제식 교육은 받지 않았다.1941년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부터 사망할 때까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 2024. 10. 23. 운무속의 도산서원과 농암종택 그리고 고산정 가을비가 내리는 10월 느즈막에 운무속의 청량산 자락을 찾는다.신선이 노닐다 갔는지, 선녀가 노닐다 갈려는지, 몽환경이다.도산서원과 농암 종택, 고산정을 찾아 운무속을 거닐어 본다. 도산서원 도산서원 강당과 동.서재 강당인 전교당(典敎堂) 고직사(庫直舍) ~ 도산서원을 관리하고 식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 수령 400여 년의 왕버들 시사단(試士壇) 천연대(天淵臺) 오르는 길 단풍이 들어가는 도산서원 전경 도산서원을 둘러보고 농암 이현보선생 종택으로 농암종택 대문 너머로 보는 청량산자락 운무 이현보(李賢輔,1467~1555)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자는 비중, 호는 농암(聾巖), 설빈옹(雪賓翁), 본관은 영천(永川),시호는 효절(孝節)이다. 농암종택 사랑채 농암은 안동 도산 분천리에.. 2024. 10. 23. 추풍령역 급수탑공원과 가을장미 추풍령은 서울과 부산의 중간지점인 추풍령고개에 있는 지역으로 옛날부터 한양을 오가는 길손들의 교통요지이며 쉼터였다.추풍령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하였고,경부선 철도역 중 가장 높은곳에 위치해있다. 추풍령역 급수탑과 연못(국가 등록문화재 제47호) 추풍령역 급수탑은 경부선을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39년에 설치한 시설로 급수탑 뿐만 아니라, 펌프와 물을 끌어들이는 연못 등의 부수 시설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철도 급수탑 중 유일하게 원형이 아닌 사각형으로 되어있다. 근대문화유산 국가등록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추풍령역앞 추풍령 표지석 여기가 추풍령, 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자고가는 추풍령 고개 추풍령역 건물 역사 맞은편에서 보는 추풍령역 추풍령역 급.. 2024. 10. 21.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의 묘 청주 한씨(淸州 韓氏)는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시조 한란(韓蘭)은 충북 영동 황간면 난곡리에서 한지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40세 무렵에 청주 방서동(方西洞)으로 이주하여 마을 언덕에 무농정(務農亭)을 짓고 방정리(方井里) 무농평(務農坪)의 농토를 개척한 호족이었다. 청주한씨 시조 재실 정문(솟을 삼문) 928년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견훤(甄萱)을정벌하기 위하여 청주를 지날 때, 당시 가뭄으로 왕건의 군사와 군마 등이모두 지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한란은 왕건을 군례(軍禮)로 맞이하고자신의 군사와 군마 그리고 10만 대군이 먹을 수 있는 군량미를 제공하고,왕건과 함께 종군(從軍)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담너머로 본 세일재(歲一齋) ~ 청.. 2024. 10. 11. 풍산류씨 금계재사(金溪齋舍)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安東 豊山柳氏 金溪齋舍)는 풍산부원군 류중영(1515∼1573)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서후면 성곡리에 있으며 국가민속문화재 제288호(2016.7.1 지정)이다. 금계재사 영모루(永慕樓) 류중영(柳仲郢,1515~1573)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언우(彦遇), 호는 입암(立巖)이다.영남지방의 사족으로 풍산 류씨 가문의 중흥을 일군 인물이자류운룡과 명재상인 영의정 류성룡 형제의 아버지이기도 하며,안동 하회마을에 입향한 류종혜(柳從惠)의 5대손이다. 영모루 정문 류중영은 1540년 식년시문과에 급제하여 의주목사,황해도관찰사, 승지, 예조참의 등을 지냈다. 사후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풍산 부원군으로 추봉되었다. 보수공사 중인 숭실재 금계.. 2024. 9. 23. 안동 서후면 송은정과 학천정 안동 송은정은 조선시대의 문인 송은(松隱) 송형구(宋亨久)가1664년(현종 5) 이송천 근처에 처음 세운 정자인데, 그 후 쇠락하여1932년 후손 송인명(宋仁命)이 지금의 태장리로 옮겨 지었다. 안동 송은정(松隱亭) 송형구는 안동출신으로 1642년(인조 20)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은퇴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학문을 닦았다. 송은정(松隱亭) 편액 송은정의 내력과 이곳을 찾은 문인들이 남긴 시 편액 들 안동 학천정 입구 바위의 "김태사 단소동 구암(金太師 壇所洞 口巖)" 음각 김태사는 안동김씨 시조 김선평(金宣平)을 말하며 태장재사와 단소는 여기서 1km이내 거리에 있으며 후손들이 새긴듯 하다. 안동 학천정(鶴天亭) 측면 안동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학.. 2024. 9. 21. (구)안동김씨 중시조 김방경의 음수재(飮水齋) (구)안동김씨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손자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로, 일반적으로 안동 김씨로 칭하는데,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신 안동김씨(후 안동 김씨)와의 구별을 위해 구 안동 김씨(선 안동 김씨, 또는 상락 김씨)라고도 한다. 구(상락) 안동김씨 음수재(飮水齋) 전경 고려 후기 몽골과의 전쟁과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에서 맹활약한 명장인 문하시중.첨의중찬을 지낸 김방경(金方慶)이 중시조이다.선(구) 안동 김씨는 조선 중기 이후 몰락에 가까운 위기에 처하는데 그 중심에 있는 김자점(金自點)은 1623년 3월(광해군 15) 이괄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 6품직에 오르고 후에 승정원동부승지가 된다. 음수재(飮水齋) 정문 병자호란(丙子胡亂)때 도원수가 되어 토산 전투에서 대패하자 삭탈관직 .. 2024. 9. 21. 안동 김씨 시조 김선평의 태장재사 안동김씨 태장재사(安東金氏 台庄齋舍)는 안동 서후면에 있는조선 후기에 건립된 건물로 (신)안동김씨 시조인 태사 김선평(金宣平)의 단소(壇所)를 지키고 봉향(奉享)을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태장재사(台庄齋舍) 원경 1711년(숙종 37) 작은 집을 지었다가 1749년(영조 25)에확장하였는데, 식수난과 질병이 겹쳐 사헌부 지평 김양근(金養根)이경향 각처의 뜻을 모아 현 위치에 승려의 집을 철거하고 터를 닦아1793년(정조 17)에 28칸을 중건하고 익실(翼室 : 분채의 좌우편에딸려 있는 방)과 문루(門樓)를 옮겨 지었다. 태장재사 측면 1913년 주사(廚舍)를 현위치에 확장하여 10칸을 중건했고1960년 풍수해를 당해 재사를 보수했는데, 재사는 일(一)자형의이상루(履霜樓)와 口자형의 재사, ㄷ자형의.. 2024. 9. 20. 안동권씨 시조 권행의 능동재사(陵洞齋舍) 안동 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는 고려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며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의 재사(齋舍)이다.조선 중기의 건물로 국가민속문화유산 제183호(1984년 지정)이다. 안동 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 능동재사는 1653년(효종 4) 관찰사 권우(權堣)가 종인(宗人)들과 논의하여 마루, 방, 곳간 등 16칸을 건립하였으며1683년(숙종 9) 관찰사 권시경(權是經)이 누각 7칸을 추가로 지었다.그러나 1743년(영조 19)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어 중건하였다. 안동 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 추원루(追遠樓) 1896년 다시 화재를 입어 당시 70여 칸의 건물 중임사청(任事廳), 전사청(典事廳) 등 몇 칸만 남기고 모두 소실된 것을 1896년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추원루 편액.. 2024. 9. 20.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城谷齋舍)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張太師公 城谷齋舍)는 안동 장씨(安東 張氏)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제단을 관리하고제사를 지내기 위해 1806년(순조 6)에 세워진 건물이다. 성곡재사 영휘루(永輝樓) 930년 고려 태조 왕건(王建,877~943)과 후백제의 견훤(甄萱,867~936)이고창(현 안동)에서 전투를 벌이자 장정필은 김선평, 권행과 함께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936년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고, 세 사람은 공신으로 태사의 벼슬을 하사 받았다. 왼쪽으로 돌아 이 후 왕건은 고창(현 안동)이 동쪽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안동(安東)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다.성곡재사(城谷齋舍)는 1806년 건립되어 1853년에 중건하였고, 1966년에 누문인 영휘루(永輝樓)를.. 2024. 9. 20. 안동 3태사묘(안동 김씨,권씨,장씨)와 재사(齋舍) 안동의 3태사묘는 고려 건국 때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토벌한 공로로 대광태사(大匡太師)의 벼슬이 하사된 3공신인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 안동장씨의 시조인 장정필(張貞弼)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3태사묘(三太師廟) 정문인 경모루(景慕樓) 안동은 신라 초기에는 고타야군으로, 통일 신라 경덕왕 때는고창군으로 불렸으며, 이곳 고창군 병산에서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이사활을 건 대전투를 펼쳤고 병산은 지금의 안동시 상아동 득심골이다. 태사묘앞 태사광장 득심골은 역사책 속에 등장하는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결전을 펼쳤던 고창군 병산전투 현장이며, 고창전투라고 알려진 이 전쟁은 왕건을 고려 태조로 만들어준 아주 귀중한 전투였다.안동은 고려 태조 왕건이 지어준 지명으로 .. 2024. 9. 20. 화순 학포당과 쌍봉사, 임대정원림 화순 쌍봉마을에 있는 학포당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자 서화가인 학포 양팽손이 후학들을 가르치던 서재로 1521년에 처음 건립하였다.현재의 학포당은 양팽손이 쓰던 당시의 건물이 중간에 퇴락하여없어진 것을 1920년에 후손들이 현 위치에 복원한 것이다. 학포당 입구 양팽손(梁彭孫)은 중종 11년(1516) 과거에 급제한 후 정언을 거쳐교리로 재직하던 중,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절친이던 조광조가유배를 당하자 부당함을 호소하다 삭탈관직을 당한 후고향인 화순으로 내려와 자연을 벗삼으며 시와 그림으로 지냈다. 학포당 전경 학포당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각지붕으로 꾸몄다.경내에는 학포당을 창건할 당시에 양팽손의 둘째 아들 응태가심었다는 500년된.. 2024. 9. 10. 능성구씨 시조 재실 영모재와 단소 능성 구씨(綾城 具氏)는 화순 능성(능주의 옛 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고려 왕조의 공신으로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지낸구존유(具存裕)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능성구씨 시조 묘역 능성 구씨는 고려와 조선에 걸쳐 유력 가문이었으며, 문신과 무신 중에서도 특히 무관으로 유명한 무신(武臣) 가문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관직에 진출했고, 조선 왕실의 인척이기도 했다. 현대에도 여러 고관대작과 대재벌가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모재 정문 능성구씨 2세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었던 구민첨(具民瞻), 3세는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을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연(具珚), 4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예(具藝), 5세는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2024. 9. 10. 이전 1 2 3 4 5 6 ··· 3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