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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464

남명 선생의 덕천서원 배롱나무꽃 남명 조식(曺植)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산청 덕천서원을 찾는다.덕천서원은 1576년(선조 9)에 창건되어,1609년(광해군 1) 사액서원으로 승격했으며, 그뒤 최영경(崔永慶)을 추가 배향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1920년대 복원되었다. 덕천서원 풍경 몇번을 다녀도 배롱나무꽃이 활짝핀 때를 맞추어 가기란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절정인 때를 제대로 맞추어 온것 같다. 홍살문 외삼문인 시정문(時靜門) 강학당과 동.서재 배롱나무꽃이 활짝핀 덕천서원 산청 덕천서원 강당인 경의당(敬義堂) 경의당 대청 경의당에서 본 동.서재와 정문 강당 서편 강당 동편  강당에 걸린 경의당과 덕천서원중수기 등 편액들 사당 입구 내삼문 숭덕사(崇德祠,사당) 사당과 내삼문 측면 사당 벽화(용과 호랑이) 관리동,장.. 2024. 7. 24.
한밤마을의 양산서원과 척서정 군위 대율리 한밤마을은 고려 중기 시중을 지낸 부림홍씨 입향조인 홍란(洪鸞)이 이주해 오면서 대식(大食) 또는 대야(大夜)라 불렀으나,  이 후 고려말 경재(敬齋) 홍노(洪魯)선생이 낙향하여 대야(大夜)를대율(大栗)로 고쳐 부르면서 대율리 즉 한밤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한밤마을 송림과 돌담 한밤마을의 돌담은 마을이 형성되면서 집을 지을 터를 닦을 때, 땅에서 파낸 많은 돌들을 처리하기 위해 그 돌로 땅의 경계를 삼은것이 돌담의 시초이며, 지금은 마을의 상징처럼 되었다. 양산서원(陽山書院) 입구 양산서원(陽山書院)은 군위 부계면 한밤마을에 있는 서원이다. 이 고을은 부림홍씨의 세거지로, 고려 말기 충신 문하사인(門下舍人)홍노(洪魯)선생과 조선 초의 문신 좌참찬 겸 양관 대제학 홍귀달(洪貴達),이조좌랑을 역.. 2024. 7. 17.
백촌 김문기의 의성 덕양서원(德陽書院) 의성 덕양서원(德陽書院)은 백촌 김문기(1399~145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25년(인조 3)에 세운 서원으로 춘산면 대사리에 있다.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8년 복원하였다. 의성 덕양서원(德陽書院)  경내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김문기의 위패를 모시는 상충사와학생들이 공부하는 경의당(강당), 공부하고 숙식하는 동재와 서재,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 관리인이 생활하는 주소 등이 있다. 덕양서원 전경 백촌 김문기(金文起,1399~1456)선생은 김알지의 후손으로김녕김씨였으나 김녕의 지명이 김해로 바뀌자 졸지에 김해 김씨가 되어버려 김문기도 당대에는 본관을 김해(金海)로 사용하였다.후대에서 김수로왕의 후손인  가야계통 김해김씨와 구별하기 위하여 신라계통은 김해의 옛 지명인.. 2024. 7. 14.
영일정씨 시조 묘단과 남성재(南城齋) 영일정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지백호(智伯虎)이다.정종은(鄭鍾殷)의 후손인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을 역임하고 영일현백으로 봉해졌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영일을 본관으로 정했다.영일의 옛 지명이 연일로도 불려 연일정씨라고도 하고, 이들이 살고 있는 본 고장이 오천(烏川)이어서 오천정씨라고도 한다. 영일정씨 시조 재실 남성재 정문 영일정씨는 연원이 같으면서도 갈래가 다른 2파가 존재한다.고려 의종 때 추밀원지주사를 역임한 정습명을 시조로 하는 지주사공파와 감무를 역임한 정극유를 시조로 하는 감무공파가 있다. 고려 추밀원지주사 형양 정선생 신도비(高麗 樞密院知奏事 滎陽 鄭先生 神道碑) 이들 두파는 선계가 실전되어 합보(合譜)하지 못하고 있는데, 지주사공파에는 포은 정몽주(鄭夢周)가 있으며, 감무공파에는 송강 .. 2024. 7. 7.
덕연구곡의 명소 용계정(龍溪亭) ~ 보물지정 예고 포항 기북면에 소재한 덕연구곡의 명소인 용계정과 덕동숲은이미 명승 제81호로 지정되어 있을만큼 아름다운 숲속의 마을이다.그 용계정이 포항 분옥정과 함께 보물로 지정예고(2024.7.5) 되었다. 포항 용계정(龍溪亭)   용계정은 1546년(명종 1) 임진왜란 때 북평사를 지낸 정문부가별장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후손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정자원림을경영해 왔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이다.그 후 수차례의 중수와 개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팔작지붕형태의 누정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용계정 옆면 포항 용계정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2층의 누마루를 가진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축물로, 앞에는 용계천이 흐른다.창건 당시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여강이씨 후손.. 2024. 7. 7.
포항 분옥정(噴玉亭)~보물지정 예고 분옥정(噴玉亭)은 포항시 북구 기계면에 있는 조선후기의 정자이다. 숙종 때의 유학자 김계영(金啓榮)을 기리기 위해 후손 김종한이 1820년(순조 20)에 건립한 건물로, 용계정사(龍溪精舍)라고도 불린다.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에서 2024년 7월 5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포항 분옥정(噴玉亭) 분옥정은 "구슬을 뿜어내는 듯한 폭포가 보이는 정자"라는 의미로, 정면에는 용계천 계곡과 노거수가 있는 등 산천이 어우러진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분옥정 앞 용계천 분옥정 안에는 "청류헌(聽流軒,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곳)"과"용계정사(龍溪精舍, 물이 흐르는 형상이 용과 같음)" 라는 추사 김정희 글씨의 현판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분옥정 정문 분옥정은 경주 김씨 집성촌인 기계면 봉계리 용계천 계곡가에.. 2024. 7. 6.
왕건이 쉬어간 독좌암, 봉무정과 독암서당 독좌암은 팔공산 가는 길목의 봉무동 천변에 있는 바위로,고려 태조 왕건이 927년 공산 동수동 전투에서 견훤의 군사에게 포위당하여 생명이 위태로울 때 신숭겸장군의 지략과 충성덕분에 무사히 탈출, 왕산을 거쳐, 팔공산의 염불암 옆 일인석에 앉아 있다가, 다시 파군재를 넘어 봉무동으로 와서 이 바위에 홀로 앉아 쉬었다고 해서 독좌암(獨坐岩) 또는 독주암,독자바우라 불렀다. 독좌암 마을입구의 표석 이곳은 동수동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현장에서 불과 2km 남짓 떨어진 봉무동으로, 독좌암 바로 뒤에는 봉무정(鳳舞亭)이 있고, 길 건너편에는 독암서당이 있다. 독좌암(獨坐岩)  봉무동은 마을 뒷산모양이 마치 봉황이 춤을 추는 형상 이어서 봉무동으로 이름 지어졌다고 하며,독좌암과 봉무정 뒤에는 봉무토성이 있다. 옆.. 2024. 7. 3.
세계유산 한국의 전통마을 ~ 안동 하회마을(2) 하회마을 충효당(忠孝糖)은 조선 중기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종택으로 보물 제414호이다. 이 건물은 류성룡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모인 수많은 유림들이 장손인 졸재 류원지공을 도와 17세기에 지어진 전형적인 조선 시대 사대부 양식의 고택이다. 충효당 고택(종택) 충효당은 사랑채, 안채, 사당,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규모는 총 52칸으로, 류원지공이 처음 안채를 지었고, 그의 아들 눌재 류의하가 사랑채를 완성하였다.12칸의 긴 행랑채는 류성룡의 8세손 류상조가 병조판서를 제수받고 부하 군사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외양간, 광, 방, 마굿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효당 앞뜰의 구상나무 이 구상나무는 1999년 4월 21일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 하회마을.. 2024. 6. 27.
세계유산 한국의 전통마을 ~ 안동 하회마을(1) 하회마을은 2010년 07월 31일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등재 결의문에서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으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인의 삶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 그대로이다.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 표지석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지 올해로 14년째가 되는 해이다.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마을인데 그동안의 변화된모습들이 있는지도 궁금 할 겸 전통마을을 한바퀴 돌아본다. 하회마을 주차장앞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와 초가(草家)가 어울려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으로, 특히 .. 2024. 6. 27.
아! 6.25, 호국의 다리에 서다 6.25 전쟁이 일어난지 올해로 74주년이 된다.그런데도 여전히 남북은 대치상태이고 전쟁의 아픔은 잊혀져 간다.젊은 세대들은 그 아픔을 잘 모르고,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간다.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그 전쟁의 상흔 왜관철교 이 다리는 일제가 1905년 군용 단선철도로 개통한 경부선 철도교로1941년 11월 30일 이곳 북쪽 100m 지점에 500m의 복선철교가가설되면서 이 다리는 경부선 국도로 사용되었다. 최후의 보루가 되었던 바로 그 현장을 찾았다 이 철교는 한국전쟁(1950~53) 당시 북한군과 유엔군의주력부대 사이에 격전이 전개된 중심지역에 있었다.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미군 제1 기병사단이 경간(徑間)1개를 폭파하였는데, 이로써 북한군의 추격을 따돌리고낙동강 전투에서 승리하면.. 2024. 6. 22.
경산 관란서원과 조곡서원 관란서원(觀瀾書院)은 경산 용성면에 있는 조선후기 서원으로1660년(현종 1) 이언적(李彦迪)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조곡서원(早谷書院)은 경산 남산면에 있으며, 정조 18년(1794)에 안우(安祐)와 안지(安止)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1.관란서원(觀瀾書院) 경산 관란서원(觀瀾書院) 전경 이언적(李彦迪,1491~1553)의 도덕과 학문을 추앙하기 위하여창건하고 위패를 봉안한 관란서원은 1869년(고종 6)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서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유생들의 학문을 닦는 곳으로만 사용되어 오다가 최근세에 일부 복원하였다. 관란서원 입구 경내의 건물로는 강당(3칸),고사(2동 5칸),대문(1칸) 등이 있다.강당은 중앙에 마루가 있고, 양쪽에는 협실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 2024. 6. 16.
최철견의 경산 난포고택(蘭圃故宅) 난포고택은 경산 용성면에 있는 조선전기의 건축물이다.난포(蘭圃)는 영천최씨 시조 최한(崔漢)의 14세손 최철견(崔鐵堅)의 아호이며,  난포고택(종택)은 그가 1546년(명종 원년)에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난포공실기(蘭圃公實記)에 전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1975년) 되어있다. 난포고택 대문 1809년(순조 7)경의 막새기와와 1817년(순조 16)의 상량문이 있어중수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안채, 아랫채, 사당채, 수오당(守吾堂)이현존하며, 대문간채, 사랑채, 중사랑채, 고방채, 방아실채 등 일부는최근세에 복원하였고, 수오당도 용산(龍山)에서 이건하였다. 난포종택 표석 최철견(崔鐵堅,1548~1618)의 본관은 영천(永川, 윗대는 전주에서 분파),자는 응구(應久).. 2024. 6. 16.
창녕성씨(昌寧成氏) 뿌리와 물계서원 창녕 성씨의 뿌리인 시조 묘는 창녕 대지면 맥산(麥山)에 있다. 시조 성인보(成仁輔)는 고려 중기 때 향직(鄕職)을 역임하였으며,묘소 뒤편에는 재실인 맥산재(麥山齋)가 있다. 창녕성씨 시조 묘소 가는길 창녕성씨 뿌리인 시조묘가 있는 맥산을 부리산(浮鯉山)이라고도하는데, 지형을 물위에 뜬 잉어로 형상화한 것으로, 풍수 형국도유어농파형(遊魚弄波形,물고기가 물결을 일으키며 뛰노는 형국)이다.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묘 창녕지방(昌寧地方)의 중윤호장(中允戶長)이었던 성인보(成仁輔)는 어느 해 정월초 왕(王)에게 신년하례(新年賀禮)를 드리기 위해 송경(松京,현 개성)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병사(病死)했다.이때 조정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던 그의 아들 송국(松國)은 아버지의 시체(屍體)를 지고 천리길.. 2024. 6. 13.
동계 정온의 거창 모리재(某里齋) 거창 모리재는 1637년 인조가 청나라 태종 앞에 나가 항복하는 치욕적인 화의가 성립되자 척화파인 동계 정온(1569~1641)은 자결을 시도했으나 전의와 광주목사의 손에 구명된 후, 이곳에 낙향하여 죽을 때까지 은거했던 곳으로, 유림에서동계 정온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선후기에 건립한 재실이다. 대문인 화엽루 거창 북상면에 있는 이 건물은 월성계곡인 위천가의  강선대에서 모리산 정상쪽으로 산길을 1.9km정도 올라가야 만나 볼 수 있다. 경내에는 사당과 본당인 모리재, 관리사인 서무,동무, 대문인 화엽루, 그리고 유적비가 있으며, 화엽루는 1806년에 건립하였고,모리재 건물은 대들보 상량문에 1921년에 건립한것으로 쓰여있다. 누각형태의 화엽루(花葉樓)   정문인 화엽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024. 6. 7.
청주 지선정과 노봉서원 청주 지선정(淸州 止善亭)은 청주시 현도면 중척리에 있는 조선후기 오명립(吳名立)이 건립한 팔작지붕 형태의 정자이다.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주 지선정(淸州 止善亭)   오명립(吳名立,1563~1633)의 본관은 보성(寶城)으로1610년(광해군 2)에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였으나광해군의 폐모론이 일자 벼슬을 단념하고 낙향하여1614년(광해군 6)에 정자를 짖고 자신의 호를 따서 지선정이라하였으며, 이곳에서 강의를 하고 제자들을 길렀다. 청주 지선정 전경 숙종 30년(1704)에 다시 짓고, 영조 14년(1738)과 순조 2년(1802)에수리하였으며, 고종(재위 1863∼1907) 때 담장과 중문을 지었다.현재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현판과 권상하가 쓴 "지선정" 현판이있다고.. 2024.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