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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492

인동장씨 시조의 옥산고택과 옥산사(玉山祠) 인동장씨(仁同張氏) 옥산고택은 시조(始祖)인 고려 초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 상장군(神虎衛 上將軍)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의 유허지로, 고려 초에 창건한 후 천여 년 동안종손이 대대로 세거하고 있는 유서깊은 대종가(大宗家) 고택이다. 인동장씨 옥산고택(대종가) 이 종택은 조선 초기까지 여러 번 중수를 거치며 세거하여 왔으나 1592年(선조 25) 임진왜란 때 병화로 건물이 전부 소실되었다가1631년(인조 9) 20대 종손 극명당 장내범(張乃範)이 다시 중건하였다. 대문채 이 후에도 몇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이후 2000년 대동보의 헌성금으로 대대적인 중건을 하여 현재에 이른다.대지가 488평, 건물이 110평(27칸)으로 가묘(家廟,사당)도 복원했다.한 집에서 천여 년 동안 종손이 계속 살아온 것은.. 2024. 9. 1.
대구 강창 이락서당(伊洛書堂) 이락서당(伊洛書堂)은 대구. 칠곡. 성주에 세거하고 있는 성주도씨, 밀양박씨, 순천박씨, 달성서씨, 일직손씨, 광산이씨, 광주이씨,  전의이씨, 함안조씨 등 아홉문중이 인재양성과 향촌 사회의 교화를 위해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과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선생이  활동하던 곳인 파산(대구 강창)에 1798년(정조 47) 처음 건립하였다. 이락서당 전경 이락(伊洛)이란 이름은 정호(程顥). 정이(程頤) 형제가 학문활동을 한, 이수(伊水,금호강)와 낙수(洛水,낙동강)를 뜻하며, 주희(朱熹)까지 포함하는 정주학 즉 성리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락서당 서당이 세워진 이곳 강창은 이수(금호강)와 낙수(낙동강)가만나는 합수지(合水地)이며, 현재 건물은 2010년에 중건하였다. 이락서당과 바로 옆의 금호강 건너.. 2024. 9. 1.
의성향교와 마지막 성냥공장 의성향교는 1394년(태조 3) 창건되어 1545년(인종 1) 중수하였고,대성전과 명륜당은 1745년에 다시 중수하고,광풍루(光風樓)는 1762년과 1910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의성향교  건축형태는 남향으로 배치되어 대성전이 앞에 있고 명륜당이 뒤에 있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형태이다. 대성전이 명륜당 앞쪽 왼편으로 산허리 쪽에 따로 떨어져 있다.  의성향교 전경 왼쪽이 명륜당이고 오른쪽 언덕위에 있는 건물이 대성전이다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광풍루(光風樓)  봄,가을에 석전(釋奠)대제를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 2024. 8. 22.
여헌 기념관과 모원당(남산고택) 여헌기념관은 구미(인동) 출신의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그가 제자들에게 학문을 강론하던 동락서원 맞은편에 건립하였다. 여헌기념관 전경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선생은 벼슬에 뜻을두지 않고 학문에 힘써 당대 유학을 선도했고 왕과 대신들에게 도덕정치 구현과 정치개혁을 촉구하였다. 여헌기념관 입구의 표지판(석)과 여헌선생 좌상 여헌기념관은 국.도.시비 18억원과 자부담 5억원 등 23억원을 들여3천647㎡(1,204평) 부지에  2층 규모의 기념관을 건립(2008~2014)했다.기념관은 상설전시실, 시청각실, 사무실, 수장고, 기획전시실,강의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문집, 부채, 우의 등 유품 16점을 비롯해생애를 다룬.. 2024. 8. 21.
구미 인동 향교(仁同鄕校) 인동향교는 조선 중기에 창건된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창건연대는 미상이며, 현재의 향교는 1864년(고종 1)에 중건되었다.고종 말기에는 옥성학원(玉城學院)이 설립되어 교사로 쓰기도 하였다. 인동향교 입구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는 6. 25 때 소실되었으며,  동재(東齋)와서재(西齋)도 그 뒤 철거되어 서재 자리에 관리사(管理舍)를 지었다.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신도문(神道門),외삼문 등이 있으며, 명륜당은 초익공오량가(初翼工五樑架)이며공(工)자형 지붕을 하고 있어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향교 정문인 외삼문(外三門)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봄, 가을에 석전(釋奠)대제를 봉행하고 있으며,대성전은.. 2024. 8. 18.
여헌 장현광선생의 구미 동락서원 동락서원(東洛書院)은 1655년(효종 6)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張顯光,1554~1637)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서원으로 구미 임수동 낙동강변 언덕위에 위치해 있다. 동락서원 강당입구 동락서원은 장현광(張顯光) 선생이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1610년에 세웠던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 자리에 묘우를 짓고 서원 체제를 갖추어 "부지암서원" 이라 했다.그 후 1676년(숙종 2) 동락(東洛)이라고 사액이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서원 정문인 준도문(遵道門) ~ 누문(樓門) 형의 외삼문 1904년(광무 8) 영당을, 1932년 묘우를  복원함과 동시에장경우(張慶遇,1581~1656)를 추가로 배향하였으며,1971년 부속.. 2024. 8. 18.
청풍정에 얽힌 김옥균과 기생 명월 이야기 청풍정은 옥천 석호리 대청호반가에 있는 정자이다.산수가 수려하여 고려시대 때부터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조선말기 김옥균은 본인 주역의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자이곳 청풍정으로 내려와 은둔생활을 하던 곳이다.  대청호반가의 청풍정 금강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절벽 위에 정자 하나 우뚝 서있다.이곳 청풍정에 김옥균과 명월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업식 연회를 기회로 김옥균은 박영효, 홍영식 등과 함께 사대당 거두들을 사살한 뒤 신정부를 조직하고 호조참판 겸 혜상공국당상이 되었으나 청나라가 군대를 보내 정변을 막는 바람에 삼일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옥천 청풍정 정변에 실패한 김옥균은 명월이라는 기생과 함께 청풍정으로 내려와 울분을 달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그러.. 2024. 8. 9.
봉정사 극락전 축대 무너져 아찔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 중기·후기의 목조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국보 제15호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2018.6)되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이른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는데,이 귀중한 국가문화유산이 지난 7월 폭우 때 극락전 바로 뒤의축대가 무너져 극락전 벽체 일부가 토사에 파묻혀 긴급 복구하는 아찔한 수해피해가 발생하였다고 하여 찾아 보았다. 극락전 바로앞의 고금당(古金堂, 보물 제449호)과 삼층석탑  극락전(국보 제15호),대웅전(국보 제311호),화엄강당(보물 제448호),고금당(보물 제449호)과, 승방인 무량해회, 만세루, 우화루 등의 당우와 고려시대의 3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 등.. 2024. 8. 4.
담양 명옥헌 원림 배롱나무꽃 명승 제58호인 담양 명옥헌 원림은 따가운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 이글이글 타는듯한 여름날이면 빨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붉다 붉다 더하여 검붉게 변한 배롱나무 정원을 만날 수 있다. 담양 명옥헌 원림 배롱나무꽃 연못을 중심으로 둑방길을 따라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못 한가운데 있는 섬 안에도 배롱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그야말로 배롱나무는 이 정원을 온통 뒤덮고 있다.  연못 위에도 연못 속에도 빨갛게 물들인 배롱나무꽃 이곳의 배롱나무는 대부분 고목이 되어 총총히 가지를 뻗고 그 빼곡한 가지마다 빨갛게 탐스러운 꽃무리를 수관 가득히 달고 있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빨간 배롱나무꽃 명옥헌 뜨거워서 더 좋은 빨간 여름 명옥헌 원림 가는길의 하늘수박꽃 2024. 8. 1.
담양 독수정(獨守亭)과 가사문학관 담양 독수정(獨守亭)은 가사문학관과 소쇄원 등이 자리한 무등산 자락인 남면 연천리에 있는 정자이다.고려 공민왕 때에 병부상서를 지낸 전신민(全新民)이 세운 정자인데현재의 독수정은 1972년에 중건한 건물이다. 독수정 오르는 계단 독수정이라는 명칭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은거하며 살아가는 선비의 높은 절개를 나타낸다고 한다. ​서은(瑞隱) 전신민(全新民)은 고려가 망한 후에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독수정은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전신민이 아침마다 고려 도읍지인 송도(지금의 개성)를 향해 절을 하며 충절을 다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독수정 독수정 주변에는 느티나무, 회화나무, 살구나무, 매화 등이  심어져 있다.​ 독수정 전경 독수정 .. 2024. 8. 1.
전주이씨 시조 이한(李翰)의 조경단 조선왕실의 뿌리이자 곧 전주이씨의 뿌리이기도한 조경단은 전주 건지산(乾止山)기슭에 소나무와 편백나무숲으로 둘러 싸여있다.전주 이씨는 신라시대에 사공벼슬을 지낸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있다.이한(李翰)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21대조이며, 시조 이한에서 18대손인 목조까지 전주에 거주하였다고 하여 전주 이씨의 발상지가 되었다. 조경단(肇慶壇) 입구  이한(李翰,713~754추정)은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사공(司空)의 직급을 받았으며, 죽기 전에는 한림학사(翰林學士) 임무를 수행했다.또한 당(唐)나라 천보(天寶, 742~756년)말 때 방관(房琯)의 벼슬을 했다. 제29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10세손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했다. 조경단 안내판 1771년(영조 47)에 칠도 유생들은 조선왕조 시조인 .. 2024. 7. 30.
함양 남계서원 배롱나무꽃에 취하다 함양 남계서원의 7월은 붉게물든 배롱나무꽃에 둘러싸여있다.2019년 7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일두 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함양 남계서원(灆溪書院) 배롱나무꽃 1566년(명종 21)에 "남계(藍溪)서원"으로 사액되었다.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소실되었으며,1603년에 나촌(羅村, 구라마을)으로 옮겨 복원하였다가1612년 옛 터인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남계서원(灆溪書院)   이 서원은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창건되었으며,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 전사청(典祀廳), 명성당(明誠堂), 양정재(養正齋), 보인.. 2024. 7. 25.
남명 선생의 덕천서원 배롱나무꽃 남명 조식(曺植)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산청 덕천서원을 찾는다.덕천서원은 1576년(선조 9)에 창건되어,1609년(광해군 1) 사액서원으로 승격했으며, 그뒤 최영경(崔永慶)을 추가 배향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1920년대 복원되었다. 덕천서원 풍경 몇번을 다녀도 배롱나무꽃이 활짝핀 때를 맞추어 가기란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절정인 때를 제대로 맞추어 온것 같다. 홍살문 외삼문인 시정문(時靜門) 강학당과 동.서재 배롱나무꽃이 활짝핀 덕천서원 산청 덕천서원 강당인 경의당(敬義堂) 경의당 대청 경의당에서 본 동.서재와 정문 강당 서편 강당 동편  강당에 걸린 경의당과 덕천서원중수기 등 편액들 사당 입구 내삼문 숭덕사(崇德祠,사당) 사당과 내삼문 측면 사당 벽화(용과 호랑이) 관리동,장.. 2024. 7. 24.
한밤마을의 양산서원과 척서정 군위 대율리 한밤마을은 고려 중기 시중을 지낸 부림홍씨 입향조인 홍란(洪鸞)이 이주해 오면서 대식(大食) 또는 대야(大夜)라 불렀으나,  이 후 고려말 경재(敬齋) 홍노(洪魯)선생이 낙향하여 대야(大夜)를대율(大栗)로 고쳐 부르면서 대율리 즉 한밤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한밤마을 송림과 돌담 한밤마을의 돌담은 마을이 형성되면서 집을 지을 터를 닦을 때, 땅에서 파낸 많은 돌들을 처리하기 위해 그 돌로 땅의 경계를 삼은것이 돌담의 시초이며, 지금은 마을의 상징처럼 되었다. 양산서원(陽山書院) 입구 양산서원(陽山書院)은 군위 부계면 한밤마을에 있는 서원이다. 이 고을은 부림홍씨의 세거지로, 고려 말기 충신 문하사인(門下舍人)홍노(洪魯)선생과 조선 초의 문신 좌참찬 겸 양관 대제학 홍귀달(洪貴達),이조좌랑을 역.. 2024. 7. 17.
백촌 김문기의 의성 덕양서원(德陽書院) 의성 덕양서원(德陽書院)은 백촌 김문기(1399~145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25년(인조 3)에 세운 서원으로 춘산면 대사리에 있다.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8년 복원하였다. 의성 덕양서원(德陽書院)  경내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김문기의 위패를 모시는 상충사와학생들이 공부하는 경의당(강당), 공부하고 숙식하는 동재와 서재,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 관리인이 생활하는 주소 등이 있다. 덕양서원 전경 백촌 김문기(金文起,1399~1456)선생은 김알지의 후손으로김녕김씨였으나 김녕의 지명이 김해로 바뀌자 졸지에 김해 김씨가 되어버려 김문기도 당대에는 본관을 김해(金海)로 사용하였다.후대에서 김수로왕의 후손인  가야계통 김해김씨와 구별하기 위하여 신라계통은 김해의 옛 지명인.. 2024.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