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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464

상주 운평리 구상화강암(천기 69호) 상주 운곡마을에 있는 구상화강암은 천연기념물 제69호이다. 운평리 구상화강암(球狀花崗岩)은 운곡리 계곡 바닥에서 발견되었는데, 계곡에는 늘 물이 흐르고 있으며, 계곡 양쪽의 기슭을 이루는 암석은 화강암이다. 이러한 지질로 된 계곡 바닥에 길이가 0.3m 내지 1.5m이고, 너비가 0.3m 내지 0.7m인 구상화강암 덩어리 8개가 발견되었다. 상주 운평리 구상화강암(천연기념물 제69호) 이들 8개 덩어리는 모두 상류에서 굴러 떠 내려 온 것이다. 상주 구상화강암은 지구 중심부에 있던 용암이 분출될 때 기온 변화 등으로 일정한 모양의 고체가 형성되고, 이것이 핵의 구실을 하다가 일정기간 뒤에 지표 쪽으로 다시 용암과 함께 나오면서 다른 환경 속에서 처음의 핵 위에 다른 고체의 결정이 덮치는 작용이 반복되어 .. 2024. 3. 2.
선산 송당정사(松堂精舍) 송당정사(松堂精舍)는 조선전기에 강계부사, 동부승지, 내의원제조 등을 역임한 송당 박영(松堂 朴英,1471~1540)선생이 1496년(연산군 2년) 고향인 선산(善山)으로 낙향하여 낙동강가에 세운 강학지소(講學之所)이다. 현재 건물은 1860년대에 중건된 것이다. 송당정사(松堂精舍) 박영(朴英)은 무신으로 본관은 밀양, 자는 자실(子實), 호는 송당(松堂)이다. 할아버지는 안동대도호부사 박철손(朴哲孫)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박수종(朴壽宗)이며, 어머니는 양녕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의 딸이다. 송당정사 입구에 새워진 명경당 시비 명경당(明鏡堂) ~ 송당 박영(松堂 朴英) 형상이 있다하여 있는게 아니요 / 유상비위유(有象非爲有) 형체가 없다하여 없는게 아니로다 / 무형부시공(無形不是空) 진실과 적중해야.. 2024. 3. 2.
상주 운곡마을과 의암고택 구름도 쉬어 가는 곳, 상주 운곡마을은 예법과 규범이 정연한 양반촌으로, 인심이 순후하고 풍요로운 마을이다. 아침에 마을 골짜기에 안개가 자욱하다하여 운곡(雲谷)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풍양조씨의 전통적인 세거지로서 일명 "갈가실" 이라고 한다. 운곡마을 안내도 운곡마을에는 의암고택(依巖古宅)과 청간정(聽澗亭), 유신당(維新堂), 양교당(養敎堂), 경신당(敬愼堂) 등의 고택들과 수령 500년 이상의 고목들, 마을 공동우물이 남아있고, 특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상화강암이 있다. 마을입구 담장 의암고택 골목 의암고택 앞 의암고택의 안채는 1800년경에 모임당 연안 이씨와 큰아들 조식이 지었고, 다른 건물은 현 소유자의 조부인 만당(晩堂) 조태연(趙泰衍,1877~1934)이 1910년에 기존의 낡은 건물들을 .. 2024. 3. 1.
국보로 승격한 관동팔경 죽서루 관동팔경 중 하나인 삼척 죽서루가 2023년 12월 28일 밀양 영남루와 함께 보물에서 국보(제343호)로 승격 되었다. 오십천이 휘감아 도는 적벽 벼랑 위에 날아갈 듯 아름답게 서 있는 죽서루(竹西樓)는 그 풍광이 아름다워 일찍이 관동팔경으로 꼽힌데다 명성 제28호로도 지정되어 있어 국보로서의 죽서루를 다시 음미해본다. 죽서루 설경 삼척 죽서루는 고려 명종(1171∼1197)대에 활동하였던 김극기(金克己, 1148∼1209)가 죽서루의 풍경을 읊은 시 등을 통해 적어도 12C에는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서루(西樓)로 불리다가 14C후반에 들어서 죽서루(竹西樓)라 불리기 시작했다. 1403년 부사 김효손(金孝孫,1373∼1429)이 옛터에 새로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또 김수온(金守溫, 1410∼148.. 2024. 2. 2.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부산의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세계유일의 유엔기념묘지로써 세계평화와 대한민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잠들어 있는곳이다 유엔기념공원 한파가 지나가고 입춘이 가까워 오는날, 내륙에서 가장먼저 개화하는 홍매소식도 궁금하여 겸사겸사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6.25전쟁 참전국가기 재한유엔기념공원 연혁 ● 1951.1.19. 유엔군 전사자 매장을 위하여 유엔군사령부가 조성 ● 1955.11.17. 대한민국 국회가 토지를 영구히 기증하고 성지로 지정할것을 유엔에 건의 ● 1955.12.15.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총회에서 결의 ● 1959.11.6. "유엔 기념 묘지 설치 및 관리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간의 협정" 체결 ● 1974.2.16. 관리업무가 유엔한국통일.. 2024. 1. 29.
명성황후 생가와 감고당 명성황후는 "풍전등화의 조선에서 치열하게 살다 간 여걸" 이다. 명성황후(明成皇后,1851~1895) 생가는 1687년(숙종 13)에 처음 지어졌다. 본래 이 집은 숙종(肅宗)의 비(妃)였던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의 부친이자 명성황후의 6대 조부인 민유중(閔維重, 1630~1687)의 묘가 마을 뒷산에 있어 묘를 관리하는 묘막(墓幕)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여주의 능말이라 불리는 마을(능현동)에 남서향으로 지어졌다 명성황후 생가 행랑채 명성황후는 이 집에서 민유중 묘를 관리하던 직계 후손 민치록(閔致祿)과 한산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8세 때(1858)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민자영(명성황후) 시절의 유일한 사진 민자영(명성황후의 어린 시절 이름)은 8살 때 아버지 민치록이 사망하자 친척집.. 2024. 1. 17.
세종대왕릉(영릉)에 얽힌 이야기 세종대왕릉은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교과서라 일컬어질 만큼 여러가지 조건을 두루갖춘 명당중의 대명당자리라 꼽는다. 이러한 세종대왕릉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세종대왕릉 입구의 세종대왕상 세종은 1397년(태조 6)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418년(태종 18)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8일 22세의 나이로 조선 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31년 6개월간 임금으로 재위하는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1450년 4월 8일 향년 54세로 승하하였다. 세종대왕릉(영릉,英陵)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설치하여 유망한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진흥하여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와 제도를 정비하였다. 당대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 2024. 1. 17.
밀양 영남루 국보로 승격되다 문화재청에서는 2023년 12월 28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인 2건의 대형누각(樓閣)인 삼척 죽서루와 밀양 영남루를 국보로 지정했다. 보물에서 국보로 격상된 감회가 남달라 밀양 영남루를 다시 찾아 젖어본다. 밀양 영남루 야경 국보 제344호로 지정된 밀양 영남루는 통일신라 때 세운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에 있던 금벽루(金璧樓) 또는 소루(小樓), 죽루(竹樓)라 불리는 작은 누각에서 시작되었는데, 이후 고려 때 절은 폐사되고 누각만 남아 있던 것을 1365년(공민왕 14)에 밀양군수 김주(金湊, 1339∼1404)가 중창하고 영남루(嶺南樓)라고 칭한 것이 관영 누각으로서의 시작이다. 밀양 영남루 전경 조선조 초에 밀양부사 안질(安質, ?∼1447)이 영남루를 중창하면서 영남루 서쪽 주변에 소루(小樓)를 건.. 2024. 1. 14.
박익(朴翊)의 청도 용강서원과 밀양 벽화묘 청도 이서면에 있는 용강서원(龍岡書院)은 고려 때 문신으로, 청도에 터전을 잡은 박익(朴翊, 1332∼1398)과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14의사의 충절을 기리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경내의 용강서원 충열사 및 14의사 묘정비(龍岡書院 忠烈祠, 14義士 廟庭碑)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9호로 지정(1998.8.3)되었다. 용강서원 전경 박익(朴翊,1332~1398)의 본관은 밀양(密陽,밀성). 초명은 박천익(朴天翊), 자는 태시(太始), 호는 송은(松隱)이며,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고려왕조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郎)·중서령(中書令)·세자이사(世子貳師) 등의 벼슬을 지내고, 여러 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여 전공을 세웠다. 용강서원 정문(중앙)과 14의사 묘정비각(오른쪽) 조선이 개국되자 .. 2024. 1. 11.
청도 금호서원(琴湖書院) 청도 금호서원(琴湖書院)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전공을 세우고 경상우수사 겸 삼도 수군통제사를 지낸 식성군(息城君) 이운룡(李雲龍, 1562~1610)과 향산(鄕山) 이백신(李白新)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청도 금호서원 전경 금호서원은 이운룡의 출생지인 청도군 매전면 명대마을(온막리)에 사당인 상충사(尙忠祠)를 건립하여 향사하다가, 1814년(순조 14)에 이곳 이서면 금촌리로 옮겨 세웠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서원 강당만 대월산 기슭으로 옮겨 세운 후 효충사(孝忠祠)라고 했다. 서원 초입의 "식성군 이운룡공 기적비(息城君 李雲龍公 紀跡碑)" 이운룡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경현(景見), 호는 동계(東溪이다. 성장 초기에는 유학을 하다가 24세에.. 2024. 1. 11.
단장천 밀양 반계정(盤溪亭) 밀양 반계정(密陽 盤溪亭)은 단장면 범도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이다. 이 정자는 1775년(조선 영조 51) 반계 이숙(李潚,1720∼1807)이 지은 정자로, 밀양 표충사 계곡아래 단장천 맑은 물이 감도는 언덕 반석 위에 서 있다 밀양강변 반계정과 배롱나무 반계 이숙은 조선후기 유학자로 세속을 떠나 시골에서 글을 읽으며 지내던 선비로, 반계정사에서 손사익, 신국빈, 안인일, 남경희 등 명사들과 시를 읊거나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던 곳이다. 지금은 오래된 배롱나무 군락으로 쌓여있어 배롱나무꽃이 붉게 물드는 여름철이면 시원한 강물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이 연출된다. 반계정으로 가는 강변길 절벽 반석위의 반계정 잎이 떨어진 계절이면 담장과 정자의 속살을 볼 수있어 좋다. 정자를 둘러싼 배롱나무 .. 2024. 1. 3.
지수면 승산 부자마을 이야기 진주 지수면 승산 부자마을 안내도에 의하면 "부자의 기(氣)가 흐르는 역사의 마을 !" 이라는 구호아래 "600년 전통의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 오는 승산 부자마을은 김해허씨와 능성구씨가 300년 이상 사이좋게 살아온 유서깊은 마을로 많은 기업인이 태어나고 꿈을 키운 터전입니다." 라고 시작한다. 지수 승산부자마을 안내도 또 "승산 부자마을 가운데 있는 100년 역사의 옛 지수 초등학교는 금성(LG.GS), 삼성, 효성 창업주가 다녔고, 구태회 LS그룹 명예회장,허정구 삼양통상 회장, 허준구 GS그룹 명예회장,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 등이 다녔던 대한민국 기업인의 산실입니다." 라고 되어있다. 더 이상 추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설명 그대로이다. 유명 기업인들이 다녔던 지수초등학교(1921년 개교) 전경 지.. 2023. 12. 17.
1조 7천억원의 기부왕 관정 이종환 생가 관정(冠廷) 이종환(李鍾煥) 생가는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에 있다. 그는 "평생 거지 같이 벌어서 천사처럼 쓰겠다."고 말하며 살아왔고, 악착같이 벌어서 1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삼영그룹을 만들었으며 평생모은 1조 7천억원을 장학재단에 기부한 후 세상을 떠났다. 이종환 생가 후원의 관정헌(冠廷軒) 전경 이종환은 1923년 5월 의령에서 태어나 2023년 9월 13일 별세했다. 꼭 백수를 채우고 떠난 그의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관정(冠廷)이다. 마산고를 졸업한 후 1944년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1945년 태평양전쟁 시 일본 측 학도병으로 끌려가면서 수료에 그쳤으며 이후 만주와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사선을 넘나들다 종전을 맞아 귀국했다. ​ 이종환 생가 대문채 해방 후 고향으로.. 2023. 12. 16.
"100년전 대구이야기" 기획전시회에서 대구근대역사관에서는 "1923년 대구(大邱), 100년전 대구이야기"를 2023년 11월 17일부터 2024년 1월 14일까지 기획전시 하고있다. "100년전" 만 아쉬워 1930년대 대구의 모습들도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대구근대역사관 (중앙공원 옆) 대구근대역사관 건물은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되어, 1954년부터는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된 근대문화유산이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역사관 건물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2003년 대구시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2008년 이후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단장돼 2011년 1월 문을 열었다. 대구근대역사관 입구 이번 "100년전 대구이야기"는 여러 분야별로 기획전시를 하고 있는데, 1920~30년대의 건축물 위주로 외.. 2023. 12. 10.
역사속의 고적을 찾아서 지금은 대부분 사라져버린 역사속의 고적을 찾아 본다. 100여년전의 모습과 현재의 변화된 모습을 비교해 보는것도 재미있다. 남한산성의 수어장대(守禦將臺) 1624년(인조 2)에 남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지은 4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북문의 장대인데, 처음에는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1751년(영조 27)에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守禦將臺)라 하였다. 수원화성의 서문인 화서문(華西門) 서문은 단층 누각에 옹성을 쌓았으며, 보물 제403호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으로 통행의 중심이었다. 수원 화홍문(華紅門) 수원화성의 북쪽 수문으로 북수문(北水門)이라 불렀다. 7개의 석조 무지개로 수문을 만들고 수문 돌다리 위에 다시 처마 곡선이 유연.. 2023.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