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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464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단풍(천기 제84호)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이다. 수령은 1,000살 정도로 추정하며, 천연기념물 제84호이다. 높이 24m, 가슴높이 둘레는 무려 12.93m이며 줄기는 썩어서 동굴처럼 비어 있으나 전체 수형은 아름답고 싱싱하다. 이 나무도 지난해 봄에 찾았으나 잎이 나지않아 가지만 보고간 아쉬움으로 노란단풍을 보고자 다시 찾았는데 아직 푸른색이 조금 남아있는 상태다.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지난 2021년 10월 29일에 목신재를 지낸 흔적 2021. 11. 6.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 단풍(천기 제365호) 금산 보석사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65호이다. 지난해 4월에 왔을땐 봄이 한창인데도 잎이 나지않아 앙상한 가지만 보고 갔는데 노랗게 물든 노거수의 은행나무잎이 보고싶어 이 가을에 다시 찾았다. 수령을 1,100년이 넘은것으로 추정하는 이 은행나무의 높이는 40m, 가슴높이의 원줄기 둘레는 10.72m나 되는 노거수이다. 나라와 마을에 큰일이 생기면 소리를 내어 위험을 알려주었다는 신목이다. 수령이 30~40년정도로 추정되는 어린 은행나무는 잎도 일찍나고 단풍도 일찍드는데 수령 1,000여년의 오래된 은행나무는 잎도 늦게돋고 단풍도 늦게든다. 2021. 11. 6.
세계문화유산 ~ 고색창연한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의 꿈이 담긴 성곽으로 1796년에 팔달산과 그 동쪽의 낮은 구릉을 감싸며 쌓은 평산성(평지와 산을 이어서 쌓은 성)으로 타원형태를 이루고 있다.성의 전체둘레는 5.744km이고 높이는 4.9~6.2m이다.  성벽은 돌로 쌓았으며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가 있는데 북문이 장안문이고반대쪽의 남문이 팔달문이며, 동서에 청룡문과 화서문이 있다. 이외에도 수문 2곳, 적대 4곳, 노대 2곳, 공심돈 3곳, 봉돈 1곳치성 8곳, 포루 10곳, 장대 2곳, 각루 4곳, 포사 3곳 등의 시설이 있다.이중 서장대(西將臺)는 동장대(東將臺)와 함께 군사 지휘소로사방이 탁 트여 수원시내를 한눈에 볼수있는 곳이다.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이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북동적대와 장안문 .. 2021. 10. 2.
세종대왕자태실과 성주이씨 중시조 이장경의 오현재 조선 제3대왕인 태종 이방원은 태조의 아들 중 학문이 가장 뛰어 나서고려 때 과거에 급제하며 아버지 이성계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로 정몽주를 제거하는 등 조선 건국에 많은 공은 세운 인물 중 하나다.그는 함흥 귀주동에서 태어났는데 태종 임금으로 즉위하자, 그 해인 1401년 함주에 있던 어태를 길지인 성주 용암면 조곡산으로 옮겨 태실을 조성하였다, 태종은 이를 기념하여 당시 경산부에 속해 있던 성주를 성주목으로 승격시켰다. 세종대왕자(子) 태실(태봉) 이어서 4대왕인 세종도 1438년(세종 20)에서 1442년(세종24)사이에 적서(嫡庶) 18왕자와세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를 현 성주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아래 태봉정상에 봉안하게된다.태봉이 된 이곳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中始祖) 이장경(李長庚)의 .. 2021. 9. 17.
영남의 3대반촌이라 일컫던 칠곡 매원마을 광주이씨(廣州李氏) 집성촌 칠곡 매원마을은 조선시대에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의 3대 반촌(班村·양반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한 마을)이라 일컬어 왔던곳이다. 매원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는 매화낙지형(매화가 떨어진 모양)이라고 했다. 매화의 꽃잎처럼 뒤로는 용두봉, 동쪽은 장원봉, 서쪽은 자고산과 산두봉의 반월형(반달 모양), 남쪽은 금무산과 안산이 원형을 이루고 있다. 칠곡 왜관의 매원마을 주변은 금장지구로 묘를 쓰지 않는 풍습이 있다. 오래전에는 이 마을에 원이 있었으며 한양을 가는 길목이라 말을 메고 쉬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한데, 칠곡군 군화를 매화로 정한 이유도 매원의 역사적 배경이다. 원래 이 마을은 야로 송씨와 벽진 이씨가 살았었는데 1595년(선조 28년)경 신동 웃갓마을에 살던 석담 이윤우(石潭 李潤雨,1.. 2021. 9. 4.
600년 전통의 풍천 가일마을 안동권씨집성촌 가일(佳日)마을은 풍산읍에서 하회마을 조금못간 오른쪽 풍천면 가곡리에 있다. 마을 입구에는 가곡지(佳谷池)라는 못이 있고, 정산(鼎山)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이 바로 안동 권씨 복야공파의 가일마을이며, 퇴계 이황의 처향(妻鄕)이기도 하다. 정산은 소산(素山)에 곧바로 이어져 있는데, 두 봉우리가 산세의 흐름에 따라 같은 높이로 앞뒤로 나란히 벌어져 있어 솥가마[鼎]처럼 안정되어 있다 하여 정산(鼎山)이라 불렀다. 이곳은 고려시대에는 왕(王)씨가 살았고 그 뒤에 풍산 류(柳)씨가 대대로 살았다. 이후 고려 개국공신 태사공 권행(權幸)의 후손인 안동 권씨 복야공파가 일가를 이루어 살아온 곳으로, 세종 때 정랑을 지낸 참의공 권항(權恒)이 이곳 풍산 류씨 입향조인 전서공 류중혜(柳從惠)의 숙부인 류개(柳開)의.. 2021. 8. 27.
청도 하평리 은행나무 청도 하평리 은행나무는 청도 매전면 하평리 1323 마을뒤 언덕에 있는 노거수로 수령은 450여년, 높이는 27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7.6m로 경북도 기념물 제109호이다. 이 은행나무는 이 마을에 살고 있던 낙안당(樂安堂) 김세중(金世仲)이 창녕의 광계리에 살고 있을 때 운문사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지세가 명지이고 마을 인심이 순박하여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나무는 동신목(洞神木)으로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는 동제를 지내고 있다. 거수목인데도 죽은가지 하나없이 세력이 싱싱하다. 2021. 6. 28.
광주(廣州)이씨 시조묘 광릉(廣陵)과 우정이야기 경기도 광주(廣州) 이씨 시조묘인 광릉(廣陵)은 영천 북안면 도유리에 있다.광주이씨의 시조묘가 영천에 있게된 사연은 지금부터 65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광주이씨 시조인 이당(李唐)의 아들 이집(李集)은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신돈을 탄핵하려다가 발각되어 신돈이 이집을 죽이려고 체포령을 내리자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집은 늙은 부친을 모시고 몰래나와 낮에는 숨고 밤에만 걸어전직 사간을 지낸 친우 최원도(崔元道)가 사는 영천 북안면 도유리 행랑채에 도착한다.  이때 최원도는 마을사람들과 사랑채에서 작은 잔치를 벌리고 있었는데기별을 들은 최원도는 망하려면 혼자 망하지 어째 우리 집안까지 망치려 드느냐 하고는노발대발하여 부자(父子)를 쫓아내고, 역적이 앉았던 자리라하여 행랑채를 불태워버렸다.이집(李集).. 2021. 6. 27.
바위위에 앉은듯한 하동 축지리 문암송(文岩松) 하동 악양면 축지리 문암송(文岩松)은 천연기념물 제491호이다. 문암송은 수령이 600년정도이고, 높이가 12.6m, 가슴높이 줄기둘레 3.2m, 수관폭(樹冠幅)은 동서로 16.8m, 남북으로 12.5m에 이른다. 이 소나무는 이 바위를 뚫고 자라고 있어 바위와 함께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크고 편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는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특이한 생육환경과 아름다운 수형은 식물학적, 경관적으로 가치가 크며, 또한 드넓은 악양들녁이 전망되는 곳에 입지하여 경관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문인들이 즐겨 찾아 시회(詩會)를 열어 칭송하였던 것으로 전하고 지역민을 중심으로 문암송계가 조직되어 보호되어 온 나무로 문화적 가치도 크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지정 사유이다. 축지리의.. 2021. 6. 2.
용을 닮은 신포리 느티나무 의령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수백년의 거목만해도 네그루나 있다. 세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2호), 성황리 소나무(천연기념물 제359호), 백곡리 감나무(천연기념물 제492호), 세간리 현수고(느티나무, 제493호)등이다. 그런데 아직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천연기념물보다 더 천연기념물 같은 꼭 용트림을 하는듯한 희귀한 느티나무가 있어 칠곡면 신포리마을(723)을 찾았다. 수령이 560년의 거수목이지만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나무이다. 대부분의 느티나무는 줄기가 위로 향하여 쭉쭉 뻗어나가는데 비해 이 나무는 밑둥의 2m가 채 안되는 높이에서 수많은 가지가 옆으로 뻗어 땅으로 붙으면서 자라는데 그 길이가 수십미터에 달하는 참으로 신기한 나무이다. 일반 느티나무와는 수형.. 2021. 6. 2.
천연기념물이 된 의령 백곡리 감나무 의령 정곡면 백곡리에 있는 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92호이다. 수령은 450여년, 나무의 높이는 20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4m 정도로 감나무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규모가 매우 크고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이다. 보통 감나무의 최고 수명이 200~250년인 것을 감안하면 백곡리 감나무는 거의 두 배나 수령이 길다. 이 감나무는 원래 백곡리의 당산나무였으며, 마을에서는 해마다 이 나무 앞에서 당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으나 나무의 수령이 너무 오래 되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자 더 이상 당제를 지내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지난해(2020년)에는 아주 오랜만이 5개의 감이 달렸었다고 하며, 올해(2021년)는 생육상태가 좋아 더 많이 달릴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줄기에 큰 공동(空洞).. 2021. 6. 2.
곽재우의병장이 북을 매달았던 의령 세간리 현고수(懸鼓樹) 의령 세간리 현고수(宜寧 世干里 懸鼓樹)는 의령 유곡면 세간리의 의병장 곽재우장군 생가지앞에 있는 느티나무로 천연기념물 제 493호이다. 나이는 550~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높이는 15m, 밑둥 둘레는 7m이다.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적이 부산포로 침입하자 당시 41세의 유생이었던 곽재우가 4월 22일 이곳 유곡면 세간리 바로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義兵)을 모아 훈련을 시켰다고 하여 이 때부터 느티나무보다는 현고수(懸鼓樹, 매달 현, 북 고, 나무 수)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의병장 곽재우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이곳 세간리에서는 동신제를 세번 올리는데 제일먼저 마을 뒷산의 당산나무(참나무)를 시작으로 천연기념물 제493호인 현고수와 다음으로 .. 2021. 6. 2.
2020지정 보물을 찾아서~13)안동 병산서원 만대루(晩對樓) 안동 병산서원(安東 屛山書院)은 서애 류성용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1978. 3. 31 사적 제260호에 지정되고, 2019. 7. 10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020. 12. 29일에는 병산서원 만대루(晩對樓)가 보물 제2014호로 지정되었다. 국가지정 보물이된 만대루를 녹음이 우거진 5월 느즈막에 다시 찾아나선다.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압도적인 규모에 팔작지붕을 가지고 전체가 개방되어 있어, 다른 곳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경사지에 자리한 병산서원의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을 외부로부터 막아주는 방어막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병산서원의 맞은편에 있는 강과 병산의 절벽이 이루는 승경을 서원 내부로 끌어들이는 시.. 2021. 5. 30.
대구 도동 측백나무숲(천기 제1호) 대구 동구 도동에 있는 측백나무숲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있다. 이 측백나무숲은 평광동에서 흘러내리는 냇가옆, 높이 100m 안팎, 너비 600m 안팎의 절벽바위산 35,603㎡(12,000여평)에서 높이 5~7m의 1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측백나무가 순림(純林: 80% 이상이 한 가지 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에 가까운 숲을 형성하고 있는데, 숲 사이에는 관음사와 구로정이 있다. . 서거정의 북벽향림(北壁香林) ~ 북쪽 절벽의 향나무 숲 옛 벽에 푸른 측백 옥창같이 자라고 / 그 향기 바람 따라 철마다 끊이지 않네 정성들여 심고 가꾸기에 힘쓰면 / 맑은 향 온 마을에 오래 머물리 고벽창삼옥삭장(古壁蒼杉玉槊長) / 장풍부단각시향(長風不斷脚時香) 은근갱착재배력(慇懃更着栽培力) / 유득청분공.. 2021. 5. 28.
합천 역평리 은진송씨 고가(종가) 합천 역평리 송씨종가(陜川 驛坪里 宋氏宗家)는 합천 대병면에 있는 건축물이다. 은진송씨 문중의 송종만이 조선 고종 3년(1866)에 지은 가옥이다. 본채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건넌방·마루·큰방·부엌 순으로 배치하였다. 안채 앞에 사랑채가 있으며, 종가 옆에는 사의정(四宜亭)이라는 누각식 정자가 있다. 이 건축물들은 원래 1km정도 떨어진 유전리에 있던 것을 합천댐이 건설되면서 1986년 12월 15일 이곳으로 이건 복원하였으며, 합천 사의정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03호로, 종가는 제105호로 각각 지정(1984.11.23) 되었다. 이 건물에서 고가식당을 운영중이라 고택 본래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이 정자는 손님이 묵고 가기 위한 숙소로 1922년 은진 송씨 문중에서 지었다.. 2021.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