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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482

대구 향교를 찾아서 대구향교는 1398년(조선 태조7) 중구 교동에 창건하였다가 임진왜란때 소실된 후 1599년에 달성공원으로 이전 재건하였으며, 1605년 다시 원래 위치인 교동으로 이건하였다가, 1932년 현재의 자리인 중구 남산동으로 이건한 후 현재에 이른다. "신축년 춘계석전대제 봉행" 2021년 3월 20일(토) 10:00(신축년 2월 상정일,上丁日) 대구향교" 현수막 외삼문(外三門)을 들어서면 정원에 자리잡은 공자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공자상(孔子像)은 대구의 자매도시인 중국 청도(칭따오)시에서 백옥으로 제작하여 1997년 10월 달구벌 축제 때에 우리시에 기증하였다. 명륜당(明倫堂)은 유학을 가르치던 향교의 강학당이다. 명륜(明倫)’이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 등문공편(滕文公篇)에 “.. 2021. 3. 15.
구례 사도리 쌍산재(雙山齋) 쌍산재는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에 있는 해주오씨(海州吳氏) 고택으로, 방송사에서 예능프로그램 또는 드라마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마을이름은 신라말의 도선국사(827~898)가 마을강변 모래밭에서 그림을 그려놓고 풍수지리설을 논하였다고 하여 사도리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해주오씨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이곳에 들어와 터를 잡았으며 쌍산재는 현재 고택관리자의 고조부 호를 따서 지어졌다고 하며 자연풍광을 최대한 살린 가옥형태로 전남 민간정원 제5호로 지정하였다. 이 당몰샘은 쌍산재 대문 바로 입구에 있으며, 7년 가뭄에도 쉬지않고 물이 흐른다는 샘으로 수량이 일정하고 맛도 좋다. 이 샘은 1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여 샘 안쪽벽에 천년고리 감로영천(千年古里 甘露靈泉) 즉 "천년 된 마.. 2021. 3. 11.
수령 천년의 구례 산수유 시목(始木) 산수유 시목지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 계척마을 일원으로 그 중에서도 마을앞의 산수유시목(山茱萸始木)이라 일컫는 이 나무는 수령이 1,000여년이고 수고가 7m, 나무둘레는 무려 4,8m나 된다. 보호수지정된 이 나무앞에 세워진 나무의 특징 및 연혁에는 "중국 산수유의 주산지인 산동성에 살고있던 한 처녀가 산동면으로 시집을 오면서 고향의 풍경을 잊지 않기 위해서 산수유나무 한 그루를 가져와 심은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산수유 시목 석비에는 "이 산수유나무는 천여년전 중국 산동성에서 가져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심은 산수유 나무 시조이다. 달전마을의 할아버지 나무와 더불어 할머니 나무라고 불리워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우리군을 비롯한 전국에 산수유가 보급되었다고 한다. 산동면(山東面)의 지명도 산수.. 2021. 3. 11.
수령 750년의 "하늘아래 첫 감나무" 상주 외남면 소은리에는 수령 750여년(2005.3.14 기준)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하늘아래 첫 감나무"가 있다. 상주시에서는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바로 인근에는 곶감공원이 조성되어있다. 소은마을에는 수령 750년의 감나무외에도 수령이 3~400년은 족히 되어보이고 세력도 왕성한 감나무 4그루가 마을뒤에 우뚝 서있다. 2021. 3. 8.
칠곡 각산마을 천년 은행나무 칠곡 기산면 각산마을 천년은행나무는 칠곡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한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심어진것으로 추정하고있다. 각산마을에는 옛부터 전해져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칠곡 통지미마을(각산마을의 옛지명)에는 신비한 힘을 가진 은행나무가 있는데 성주에서 통지미마을로 시집 온 새색시는 이 은행나무 덕에 말못할 고민을 해결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신의 고민을 은행나무에게 털어 놓았으며, 그럴 때마다 은행나무는 꿈에 가장 사랑하는 가족으로 나타나 그들을 위로해주고 해결책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오랜세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말하는 은행나무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칠곡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안내판에 의하면 보호수로 지정한 1993년 기준으로 수.. 2021. 3. 8.
문익점선생의 산청 생가와 보성 부조묘(不祧廟) 문익점(文益漸,1331~1400, 또는 1329~1398)선생은 고려 말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일신(日新), 호는 삼우당(三憂堂)이다. 문익점은 1331년 진주 강성현(江城縣, 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났다. 1360년(공민왕 9)에 문과에 급제한 뒤 김해부 사록(司錄) 등을 역임하였다. 1363년 사간원 좌정언으로 있을 때, 사신 이공수(李公遂)의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갔으며, 귀국할 때 목화씨를 붓대롱에 숨겨 와서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재배하여 우리나라 의생활 발전에 혁신을 가져 왔다. 선생의 생가마을이며 목화 시배지(최초 재배지)이기도 한 산청 사월리와 선생의 부조묘(不祧廟,불천위 사당)가 있는 전남 보성 도개마을을 찾아나선다. 목면시배지(木棉始培地)는 .. 2021. 2. 23.
생육신을 봉안한 함안 서산서원(西山書院) 함안 서산서원은 경남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 있다.1706년(숙종 32) 생육신인 조려(趙旅)· 원호(元昊)· 김시습(金時習)· 이맹전(李孟專)·성담수(成聃壽)·남효온(南孝溫)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1713년에 서산(西山)’이라고사액되었으며,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1984년 정부의 보조와 유림의 협력으로 복원되어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묘우(廟宇),신문(神門), 4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외문(外門), 육각정(六角亭), 3칸의 고사(庫舍)와 육각비(六角碑),조려의 사적비 등이 있다.재산은 전답 4,000평, 임야 100정보, 대지 1,000평 등이 있다.   서산서원은 숙종대왕이 서산(西山)이라는 사액을 제.. 2021. 2. 19.
함안 어계 고택과 채미정 어계고택(漁溪古宅)은 경남 함안 군북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 조려(漁溪 趙旅, 1420~1489)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초에 조려(趙旅)의 조부(祖父)인 전서공 조열(典書公 趙悅)선생은 이성계가 고려 공양왕을 폐위(고려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여 태조왕이 되자 공조전서(工曹典書, 정2품, 오늘날 국토건설부장관)의 벼슬자리를 내던지고 경기도 두문동으로 들어가 몇 달 살다가, 경남 합천 두심동으로 내려와 거기서 2~3년간 살다가, 다시 지금의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로 내려와 정착함으로써 함안조씨(咸安趙氏)가 되었으니, 함안조씨라는 본관이 태생된 집이 바로 어계고택(漁溪古宅)이라 할수있다 참고로 함안조씨(咸安趙氏)들은 시조를 조정(趙鼎)으로.. 2021. 2. 19.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종가와 계정(溪亭)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 종가는 상주 외서면 우산리에 있으며, 경북 민속자료 제31호이다.정경세(鄭經世)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운 뒤관계에 나아가 예조좌랑등을 역임하고, 경상도관찰사와병마수군절도사등을 지내던 중, 광해군 때 탄핵을 받아 귀향한다.  종가 일원건물은 이 시기(1600년경) 부터 창건하기 시작했다고추정하며, 인조반정 이후 다시 관직에 복귀하게 되었으므로이후에는 집 짓는 일이 불가능하던 시기로 보기 때문이다.종가는 안채·사랑채·행랑채·사당채와 대산루,계정·도존당 등이 현존한다.  사랑채는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마주하는데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2칸 방과 마루 그리고 방이 있다. 종택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었는데 전체적으로 ㅁ자형에 가깝게 배치되.. 2021. 2. 6.
2020지정 보물을 찾아서~(10)상주향교 대성전과 동무.서무 상주향교는 상주시 신봉2길에 있는 조선전기에 창건된 향교로 대성전과 동무, 서무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5호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2020년 12월 29일 보물 제2096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1426년(세종 8)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것을 1618년(광해군 10)에 중건하였는데, 대성전과 동무· 서무는 몇 차례의 수리과정이 있었지만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대설위(大設位) 향교의 평면과 구조형태, 세부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동재(東齋), 서재(西齋), 태평루(太平樓) 등이 있다. * 대설위(大設位)란 조선시대에 관찰사가 상주하는 주(州)의 행정구역에 취해진 설위 형식을 말한다. 상주향교 대성전은 5칸 전퇴개방형 규모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서울 문묘.. 2021. 2. 6.
수원 화성행궁 수원 화성행궁(華城行宮)은 수원 남창동 화성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으로 행차할때 임시거처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궁궐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1997.12)되었다. 화성행궁은 사적 제478호, 화녕전은 사적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운한각, 복도각, 이안청은 보물 제2035호로 지정(2019.8) 되어있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자 무덤을 당시 최고의 명당이라 평가받던 현륭원(현 융건릉)으로 옮기면서 능 주위에 살던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의 위치로 이주시키고 이곳에 새로운 도시와 성곽을 축성하였다. *참고로 융건릉(隆健陵)의 융릉은 사도세자와 현경왕후를 모신곳이고,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를 모신.. 2021. 1. 26.
수원 화성 서장대(西將臺) 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의 꿈이 담긴 성곽으로 둘레는 5,7km로 성벽은 돌로 쌓았으며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가 있는데 북문이 장안문이고 반대 남쪽이 팔달문이다. 동서에 청룡문과 화서문이 있다. 이외에도 수문 2곳, 적대 4곳, 노대 2곳, 공심돈 3곳, 봉돈 1곳, 치성 8곳, 포루 10곳, 장대 2곳, 각루 4곳, 포사3곳 등의 시설이 있다. 서장대(西將臺)는 동장대(東將臺)와 함께 군사 지휘소로 사방이 탁 트여 수원시내를 한눈에 볼수있는 곳이다. 특히 서장대는 정조대왕의 친필 화성장대 현판과 시가 걸려있어 더 격조높은 곳이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이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었다. 재위 15년째인 1791년 사도세자의 능을 화성으로 이장한 정조는 첫 참배를 떠났다. 무덤 이름은 현재.. 2021. 1. 26.
2020지정 보물~(9)수원향교 대성전 수원향교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에 있는 고려시대 향교로 1291년(고려 충렬왕 17) 당시 수원의 읍 중심이었던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화산 앞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그 후 여러번의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東廡)· 서무(西廡)·내삼문(內三門)· 외삼문·수복청·유림회관 등이 있다.이 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20년 12월 29일에는 대성전이 보물 제2090호로 지정되었다.  향교 직원의 안내로 잠겨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관람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지성선사 공자(至聖先師 孔子)상은중국 제남시에서 수원시와 자매도시 결연 10주년을 기념하고계속적인 우호증진을.. 2021. 1. 26.
보물을 찾아서~(8)안성향교 대성전과 풍화루 안성향교는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조선전기의 향교로 1532년(중종 27)에 창건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중건하였으며, 1932년· 1986년· 1988년에 각각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東齋)· 서재(西齋)·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풍화루(風化樓) 등이 있으며, 2020년 12월 29일 대성전이 보물제 2091호로, 풍화루는 보물 제2092호로 지정되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안성향교 풍화루는 중층 누각형태의 정면 11칸, 측면1칸의 장대한 규모를 가지며, 유식(遊息)을 위한 누와 향교 출입구 역할의 외문을 겸하는 문루로서, 현존하는 조선 시대 향교 문.. 2021. 1. 26.
2020지정 보물을 찾아서~(7)국학(國學)의 시원(始原) 경주향교 경주향교는 경주시 교동 17-1에 위치하고 있는데 반월성 계림(鷄林)의 서쪽이며, 경주 최부자집이 있는 교촌마을 안쪽으로 신라의 국가 최고교육 기관인 국학(國學)이 있었던 자리이다. 경주향교 명륜당은 2020년 12월 29일 보물 제2097호로, 같은날 대성전의 동무. 서무, 신삼문은 보물 제 2098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대성전은 2011년 12월 7일 이미 보물 제1727호로 지정되었다. 경주향교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신라 멸망 뒤에 서라벌이 경주로 개칭되면서 고려 조정에 의해 향학(鄕學)이라는 이름의 지방교육 기관으로 개편되었으며, 조선시대에도 향교로써 지방교육 기관의 역할을 이어갔다. 성종(成宗) 23년(1492년) 경주부윤 최응현(崔應賢)에 의해 한양 성균관의 제도에 준하여 .. 2021.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