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분류 전체보기3361

창녕조씨 5대 대동보 족보서(昌寧曺氏 族譜序)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 의종(18대, 1146~1170)때  고려왕실의 계통을기록한 것으로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처음이다.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안에서 사적으로 간행되기 시작하였으나,1476년(조선 성종7년)에 안동권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가체계적인 족보 형태를 갖춘 최초의 족보로 알려져있다.이후 1565년(조선 명종 20)에는 문화유씨 가정보(文化柳氏 嘉靖譜)가혈족 전부를 망라하여 간행되면서 이를 표본으로 하여 명문세족에서앞을 다투어 족보를 간행하기 시작하게된다. 창녕조씨(昌寧曺氏)도 이전에 가문별로 가승보는 있었으나대동보가 간행된것은 1606년(선조 39)에 조탁(曺倬)이 친필로 간행했다는병오보(丙午譜)가 최초의 족보로 알려져 있다.당시의 족보를 접하기는 쉽지 않으나 그 서문.. 2024. 1. 19.
명성황후 생가와 감고당 명성황후는 "풍전등화의 조선에서 치열하게 살다 간 여걸" 이다. 명성황후(明成皇后,1851~1895) 생가는 1687년(숙종 13)에 처음 지어졌다. 본래 이 집은 숙종(肅宗)의 비(妃)였던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의 부친이자 명성황후의 6대 조부인 민유중(閔維重, 1630~1687)의 묘가 마을 뒷산에 있어 묘를 관리하는 묘막(墓幕)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여주의 능말이라 불리는 마을(능현동)에 남서향으로 지어졌다 명성황후 생가 행랑채 명성황후는 이 집에서 민유중 묘를 관리하던 직계 후손 민치록(閔致祿)과 한산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8세 때(1858)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민자영(명성황후) 시절의 유일한 사진 민자영(명성황후의 어린 시절 이름)은 8살 때 아버지 민치록이 사망하자 친척집.. 2024. 1. 17.
세종대왕릉(영릉)에 얽힌 이야기 세종대왕릉은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교과서라 일컬어질 만큼 여러가지 조건을 두루갖춘 명당중의 대명당자리라 꼽는다. 이러한 세종대왕릉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세종대왕릉 입구의 세종대왕상 세종은 1397년(태조 6)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418년(태종 18)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8일 22세의 나이로 조선 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31년 6개월간 임금으로 재위하는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1450년 4월 8일 향년 54세로 승하하였다. 세종대왕릉(영릉,英陵)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설치하여 유망한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진흥하여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와 제도를 정비하였다. 당대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 2024. 1. 17.
독립운동가 조성환의 여주 보통리 생가 독립운동가 조성환(曺成煥,1875~1948)은 여주시 대신면 보통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창녕, 호는 청사(晴蓑)이고, 다른 이름은 조욱(曺煜,曺旭)이다. 대대로 조선시대의 고관대작을 두루 역임한 명문대가 집안 출신으로, 한 집안에서 다수의 인재들을 탄생시킨, 모두가 부러워 했던 그 고택을 찾아본다. 여주 보통리 조성환 생가 이 고택은 경기 동부지역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으로 임진왜란때 조성환의 11대조인 조경인(曺景仁)이 전란을 피해 외가인 무송 윤씨의 터전인 이곳 보통리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 이후 조선 순조 13년인 1813년 이조판서를 지낸 조윤대(曺允大)와 역시 공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낸 그의 아들 조봉진(曺鳳振)이 건립하여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하였었다. 큰 사랑채(왼쪽)와 작은 사랑채(중.. 2024. 1. 17.
파도에 부서지는 동해의 겨울바다 겨울바다의 스러러 철석하는 시원한 파도소리가 정신을 번쩍 들게한다. 동해로 끝없이 펼쳐진 푸르런 수평선이 스러러 스러러 밀려오는가 했더니 어느새 바위에 부딪치며 구슬같은 포말을 수없이 쏟아낸다. 파도에 부서지는 겨울바닷가 영덕 강구에 가면 여기저기서 대게는 5만원 5만원 이란다 머잖아 나목의 가지에도 움트는 봄이 오고, 까치는 둥지를 틀리라! 2024. 1. 15.
밀양 영남루 국보로 승격되다 문화재청에서는 2023년 12월 28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인 2건의 대형누각(樓閣)인 삼척 죽서루와 밀양 영남루를 국보로 지정했다. 보물에서 국보로 격상된 감회가 남달라 밀양 영남루를 다시 찾아 젖어본다. 밀양 영남루 야경 국보 제344호로 지정된 밀양 영남루는 통일신라 때 세운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에 있던 금벽루(金璧樓) 또는 소루(小樓), 죽루(竹樓)라 불리는 작은 누각에서 시작되었는데, 이후 고려 때 절은 폐사되고 누각만 남아 있던 것을 1365년(공민왕 14)에 밀양군수 김주(金湊, 1339∼1404)가 중창하고 영남루(嶺南樓)라고 칭한 것이 관영 누각으로서의 시작이다. 밀양 영남루 전경 조선조 초에 밀양부사 안질(安質, ?∼1447)이 영남루를 중창하면서 영남루 서쪽 주변에 소루(小樓)를 건.. 2024. 1. 14.
박익(朴翊)의 청도 용강서원과 밀양 벽화묘 청도 이서면에 있는 용강서원(龍岡書院)은 고려 때 문신으로, 청도에 터전을 잡은 박익(朴翊, 1332∼1398)과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14의사의 충절을 기리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경내의 용강서원 충열사 및 14의사 묘정비(龍岡書院 忠烈祠, 14義士 廟庭碑)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9호로 지정(1998.8.3)되었다. 용강서원 전경 박익(朴翊,1332~1398)의 본관은 밀양(密陽,밀성). 초명은 박천익(朴天翊), 자는 태시(太始), 호는 송은(松隱)이며,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고려왕조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郎)·중서령(中書令)·세자이사(世子貳師) 등의 벼슬을 지내고, 여러 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여 전공을 세웠다. 용강서원 정문(중앙)과 14의사 묘정비각(오른쪽) 조선이 개국되자 .. 2024. 1. 11.
청도 금호서원(琴湖書院) 청도 금호서원(琴湖書院)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전공을 세우고 경상우수사 겸 삼도 수군통제사를 지낸 식성군(息城君) 이운룡(李雲龍, 1562~1610)과 향산(鄕山) 이백신(李白新)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청도 금호서원 전경 금호서원은 이운룡의 출생지인 청도군 매전면 명대마을(온막리)에 사당인 상충사(尙忠祠)를 건립하여 향사하다가, 1814년(순조 14)에 이곳 이서면 금촌리로 옮겨 세웠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서원 강당만 대월산 기슭으로 옮겨 세운 후 효충사(孝忠祠)라고 했다. 서원 초입의 "식성군 이운룡공 기적비(息城君 李雲龍公 紀跡碑)" 이운룡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경현(景見), 호는 동계(東溪이다. 성장 초기에는 유학을 하다가 24세에.. 2024. 1. 11.
아! 동해의 이가리 닻 전망대 동해바다 이가리 닻 전망대는 언제 찾아도 상큼 시원하다. 이처럼 시원하고 아름다운 동해를 어찌 또 다시 찾지 않을 수 있으랴! 동해의 이가리 닻 전망대 칠포리바다 쪽 청하 앞바다 쪽 거북바위에 부딫히는 하얀 물보라 이가리 닻 전망대 입구 2024. 1. 6.
울진 후포항 등기산공원을 아시나요 울진 후포항을 최근에 가보셨나요? 수산물이 풍부한 어항으로만 알았던 후포항 끝자락 등기산에 오르면 앞이 탁트인 시원스런 동해의 푸른바다가 먼저 한눈에 들어온다. 야트막한 등기산공원에는 제일높은 언덕위에 하얀 후포등대가 서있고 그 아래로 셰계 각국의 오래되고 아름다운 축소형 등대들을 만날 수 있다. 등기산공원 입구에서 보는 스카이워크(하늘 산책로) 울릉도와 제일 가깝다는 후포등대를 중심으로, 1611년에 세워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코르두앙 등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등대인 인천 팔미도 등대, 1855년에 가동을 시작한 독일 북부해안의 브레머하펜 등대, 1811년 불을 밝혔다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벨록 등대, 그리고 세계 최초의 등대로 알려진 이집트 파로스 등대 등을 만날 수.. 2024. 1. 4.
단장천 밀양 반계정(盤溪亭) 밀양 반계정(密陽 盤溪亭)은 단장면 범도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이다. 이 정자는 1775년(조선 영조 51) 반계 이숙(李潚,1720∼1807)이 지은 정자로, 밀양 표충사 계곡아래 단장천 맑은 물이 감도는 언덕 반석 위에 서 있다 밀양강변 반계정과 배롱나무 반계 이숙은 조선후기 유학자로 세속을 떠나 시골에서 글을 읽으며 지내던 선비로, 반계정사에서 손사익, 신국빈, 안인일, 남경희 등 명사들과 시를 읊거나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던 곳이다. 지금은 오래된 배롱나무 군락으로 쌓여있어 배롱나무꽃이 붉게 물드는 여름철이면 시원한 강물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이 연출된다. 반계정으로 가는 강변길 절벽 반석위의 반계정 잎이 떨어진 계절이면 담장과 정자의 속살을 볼 수있어 좋다. 정자를 둘러싼 배롱나무 .. 2024. 1. 3.
해동 용궁사에서 새해 소망을 2024년 갑진년 용의 해를 맞은 기장읍 해동 용궁사는 해가 제일 먼저 뜨는 절, 진심으로 기도하면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절, 용의 해를 맞은 용궁사라는 이름의 절, 아니면 그냥 해변의 경치가 좋아서 관광 겸 나들이 등등, 새해 초부터 소원을 비는 사람들과 국내외 관광객들로 길이 비좁도록 발길이 넘쳐난다. 구름을 타고 날아가려는 듯한 해동 용궁사의 청룡 용궁사는 1376년 고려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선사가 창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에 중창되었다. 파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광과 절이 어우러져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외국인 참배객들도 줄을 잇고 있다. 여의주는 앞발로 꼭 쥐고 소원을 빌며 던진 수많은 동전들 해안의 소원.. 2024. 1. 3.
옛 부산의 중심이었던 동래부 동헌 조선시대의 부산은 동래가 중심이었고 부산항은 포구에 불과했다. 동래고을을 보호하기 위한 읍성과 읍성안에는 동래부 동헌이 있었다. 동래부 동헌(東萊府 東軒)은 부산 동래구 수안동에 있는 관아건물이다. 조선 시대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의 부사가 직접 공무를 처리하던 장소로서 이청(吏廳), 무청(武廳), 향청(鄕廳) 등 각종 관아 건물의 중심이 된 건물이다. 동래부 동헌 충신당(東萊府 東軒 忠信堂) 동래부 동헌은 1636년(인조 14)에 동래부사 정양필(鄭良弼)이 창건하였으며, 같은 해 동헌의 앞대문인 독진대아문(獨鎭大衙門)이 건립되었다. 동헌 건물의 충신당(忠信堂)이라는 현판은 1711년(숙종 37) 동래부사 이정신(李正臣)이 걸었으며, 아헌으로서 개항기까지 사용되었다. 동래 독진대아문(東萊 獨鎭大衙門) 일.. 2024. 1. 3.
중종이 청백리 조치우에게 내린 옥비(玉碑)이야기 조치우(曺致虞,1459~1529)는 조선전기에 정언, 대구부사, 예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요 효자이며, 재임 중 선정으로 청백리에 녹선되었다.중종(中宗)은 조치우(曺致虞)가 선정과 노모봉양의 효심 또한 지극하여 소학(小學)을 내리고, 1529년(중종 24) 그의 사후에는 청렴결백한덕을 표창하고자 옥으로 만든 옥비(玉碑) 두좌를 하사하였다. 영천 내사옥비각(內賜玉碑閣,2023.12.28) 그 한 좌는 조치우에게 내린 청옥(靑玉)으로 현재의 영천 대창면 대재리 송청산(松靑山) 유후재(遺厚齋) 안 내사옥비각에 안치되어있고, 다른 한 좌는 부인인 숙인 창원 박씨에게 내린 백옥(白玉)으로부인묘소가 있는 창원시 북면 지개동 구룡산(九龍山) 아래 모선재(추감재,追感齋) 옆 어사옥비각(御賜玉碑閣)에 안치되어있다. 어.. 2023. 12. 29.
청룡의 기상으로 2024년을 맞이하자! 청룡이 용트림하며 솟구치는 힘찬 기상으로 2024년 새해를 밎자! 지난 몇년동안 코로나라는 희대의 전염병으로 움처렸던 가슴을 활짝펴고 희망과 용기가 넘쳐흐르는 가슴벅찬 한해를 열어보자. 구룡포 청룡의 기상 구룡포라는 이름은 신라 진흥왕 때 장기현감이 각 마을을 순찰하던 중 사라리 마을을 지날 때 별안간 천둥과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 때 앞바다에서 10마리의 용이 승천하는데 1마리가 떨어져 용이 9마리만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라고 이름붙였다고 전한다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모습 예로부터 용은 행운과 힘을 상징하는 신비로운 동물로 여겨져왔다. 2024 갑진년은 새로운 시작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해가 되리라 믿고 우리모두 활력을 불어넣어 구룡포의 아홉마리 용처럼 힘차게 승천하는 멋진 용이 되어 "갑진 한.. 2023. 12. 29.